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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부끄럽냐구요? 배부른 소리죠”

홍익대 관리장 김주한씨

  •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부끄럽냐구요? 배부른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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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뺨의 흉터는 어떻게 해서 생겼나요.

“이 흉터요?”

그제서야 김씨가 입을 열고 말을 잇는다.

“초등학교 때 생긴 겁니다. 고향이 강원도 양양인데 어성전 초등학교를 다녔지요. 학교가 집에서 15리가 넘는 먼 거리에 있어서 등하교에 한시간 반이나 걸렸어요. 어린애들이 산길을 타고 학교를 다니다보니, 바위를 넘기도 하고 길 없는 비탈을 쏘다니기도 했지요. 그러다 바위에서 굴러떨어져 얼굴이 깨진 것이지요. 그때만해도 어려운 시절이어서 병원은 물론 약 바를 생각도 못했어요.”

-수위를 직업으로 삼게 된 것도 역시 가난 때문이었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수위라고 하지 않고 관리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당연히 제 직책은 수위장이 아니라 관리장이고요. 이 학교에서는 31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그보다 3년 전에(1970년) 수도공대에서 수위생활을 시작했어요. 수위로서는 제가 최고참일 겁니다.”

-스스로 원해서 수위 일을 시작하셨나요.

“그건 아닙니다. 그저 오갈 데가 없어서 시작한 것이 천직이 됐죠. 그래도 학교를 지키면서 아이들 키우고, 집 장만하고, 자가용(쏘나타)까지 샀으니 그만하면 됐지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나마 제가 직업에 충실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의 선친은 면사무소의 임시직 말단 공무원이었다. 농토라도 있었다면 먹고 사는 것이 나았겠지만 그의 아버지에게는 손수건만한 조각땅 하나 없었다. 아이들이 굶기를 밥 먹듯 하는 것이 일과다 보니, 면서기로는 도저히 식솔을 거느릴 수 없다고 판단했던 아버지는 어느날 시장 바닥에 참빗, 실꾸러미, 러닝셔츠 등을 늘어놓고 잡화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경험이 없는 아버지는 밑천만 날리고 가족은 더 짙은 가난에 휩싸였다는 것이 김씨의 회상이다. 더구나 그의 나이 12세 때 어머니를 잃고 나자 삶은 더욱 가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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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새어머니를 맞았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생모가 3남, 계모가 1남2녀를 낳아 모두 6남매나 되는 자식들은 매일 밥 한끼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다. 산나물에 밀가루를 넣어 쑨 죽을 두 차례 먹으면 사치였다. 장남이자 한창 먹을 나이였던 김씨에게 배고픔의 고통은 더욱 컸다.

“집안의 험한 노동은 전부 내 몫이었지만 먹을 것은 갓난애나 저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어요. 정말 원 없이 한번 먹고 죽는 게 소원이었어요. 남의 무밭깨나 드나들었지요. 배고프니 도리가 없었거든요.

생모가 돌아가신 것도 가난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산에서 봄나물을 캐다가 죽을 쒔는데 그중에 독초가 들어있었던 거죠. 출산 직후라 죽을 가장 많이 드신 어머니는 쓰러져 며칠째 신음만 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나 저도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렸고, 철없는 동생들은 배가 아프다고 방바닥을 기었죠. 어머니는 죄책감 때문에 아프다는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고 참다가 돌아가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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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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