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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뇌 유린하는 ‘겸손한 천재’의 상상력

베르베르 전문번역가 이세욱의 베르베르 이야기

  • 이세욱·번역가 jeromesulee@hanmail.net

독자의 뇌 유린하는 ‘겸손한 천재’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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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프랑스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종합주간지 ‘렉스프레스’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작가들 몇 명을 초청해 축하행사를 가졌다. 베르베르는 미셸 우엘베크, 카트린 밀레, 장 크리스토프 뤼팽 등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다른 참석자들과 베르베르를 비교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미셸 우엘베크는 ‘소립자’라는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 책만 냈다 하면 온 신문과 방송이 크게 다뤄주는 하이퍼 미디어제닉이고, 카트린 밀레는 프랑스 문단의 최고 권력 ‘솔레르스 사단’의 지지를 얻으며 온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든 ‘카트린 M의 성생활’의 저자이며, 장 크리스토프 뤼팽은 소설 ‘붉은 브라질’로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다. 요컨대, 이들은 열렬한 찬사든 냉혹한 비판이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에 힘입어, 또는 문학상의 권위를 등에 업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작가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서 베르베르는 평단이나 언론으로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은 적이 없다. 베르베르가 7년 동안 과학부 기자로 일했던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지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지면을 할애해주고, 몇몇 주간지나 지방신문에서 간간이 큰 기사를 실어주긴 했지만, 중앙의 유력 일간지들은 대체로 그에게 냉담했다. ‘르 몽드’ 같은 신문은 뒤늦게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뇌’가 나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올 3월에야 처음으로 한 면 전체를 그에게 할애하며 특별한 대접을 해줬다.

한번은 베르베르에게 프랑스 문단이나 언론이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먼저 자기 소설 장르의 특수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과학적인 정보와 추리 기법과 철학적인 내용을 융합한 자신의 소설은 기존의 장르 구분법으로는 SF, 추리소설, 일반소설 등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평론가도 자기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자기의 ‘새로움’을 알아주지 않는 프랑스 문단의 보수성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프랑스 문단이 말로는 늘 새로움을 강조하면서도, 상상력도 빈곤하고 이야기도 없는 소설을 양산하고 있을 뿐, 과학과 소설을 결합하려는 자신의 새로운 시도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아웃사이더’는 이젠 옛말이 됐다. 예전에 가끔 그는 자신에 대한 프랑스 평단의 무관심을 염두에 두고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어떤 권위나 인맥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꿋꿋하게 쌓아온 베르베르의 성채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우뚝해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필자는 그의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실린 자축과 감사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당신은 기뻐할 자격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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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욱·번역가 jeromesu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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