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록도는 여의도 한배 반 정도의 크기에 온갖 전경을 다 담고 있다.
이름하여 월례 정기면회. 나환자 부모와 그 아이들의 만남은 한달에 한번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안거나 만져볼 수도 없다. 그렇긴 커녕 나병이 전염될까 무서워 부모는 바람을 안고, 자식은 바람을 등진 채 만나야 했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 면회는 바로 취소됐다.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숯처럼 새까맣게 탔는지도 모른다. 월례 면회를 수탄장(愁嘆場), 즉 근심과 한탄의 장이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1950년대 무렵에나 있었던 일이지만 전남 고흥 소록도, 국립 나병원이 있는 그곳엔 당시의 한과 눈물이 지금도 서럽게 배어있다.
황톳길 소묘
섬 모양이 폴짝 뛰는 아기 사슴을 닮았대서 소록도(小鹿島)다. 이름만 깜찍하고 예쁜 게 아니다. 여의도의 한배 반 정도 크기에 온갖 절경을 다 담았다. 하얀 백사장, 철썩이는 바다, 눈 가득 들어오는 육지와 올망졸망한 섬들의 조화. ‘가위손’으로 다듬었음직한 멋진 공원. 그리고 야트막한 둔덕을 빽빽이 메운 송림과 눈부신 햇살….
가슴이 미어질 듯 무거운 한과 슬픔을 안은 섬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거기다, 일찍이 ‘문둥이 시인’ 한하운 선생이 한탄했듯 그 섬에 가는 길도 역설적이다. ‘소록도로 가는 길’이란 부제를 붙인 시, ‘전라도 길’에서 그는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시인이 나환자의 애상을 담은 ‘전라도 길’을 발표한 건 1949년이다. 53년 만에 그의 행로를 더듬어 보성 벌교를 지나 고흥반도로 들어섰으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천봉산 월악산 등성이를 넘어 과역을 지나 팔영산 운암산 천등산을 옆구리에 끼고 숨가쁘게 반도의 끄트머리를 향해 나아가 보지만 황톳길은 눈에 띄지 않는다.
흰사슴의 눈
“도대체, 한시인이 읊은 황톳길이란 어디를 말합니까?”
참다못해 묻자 안내인은 짐짓 의외라는 표정이다. 그러다 이내 간단하게 “여깁니다”고 답한다. 여기라니, 소록도로 가는 가장 크고 좋은 길 27번 국도를 따라 파릇파릇한 숲과 논 사이로 시원스레 달리고 있는데 바로 여기가 황톳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