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18일 김대업씨가 국정감사가 열리는 서울병무청앞에서 희망네트워크 회원들과 집회를 갖고 있다.
이 엄청난 ‘폭로’는 과연 사실일까. 이후보의 큰아들 정연씨 관련 의혹의 경우 검찰 수사 결과 정황은 있지만 입증하기 어려운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수연씨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지난 3개월 동안 몇 차례의 말바꾸기, 약속 불이행 등으로 김씨 주장의 신뢰성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병역비리 전과자에서 정보원으로
기자는 그동안 김대업씨를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지켜봐왔다. 2000년 초 병역비리수사 내막을 취재하면서 맺은 인연이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의혹을 제기하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를 취재원으로 삼은 것은 병무비리에 관한 한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인데다 군검찰과 검찰이라는 국가 기관에 들어가 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자가 지난 3년 동안 김대업씨에 대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리한 ‘김대업 보고서’다.
1998년 7월 군검찰이 병역비리 전과자인 김씨를 정보원으로 받아들인 것은 한가지 이유에서였다. 수사하는 데 그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마약수사에서 마약 전과자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김씨는 병역비리 커넥션을 꿰뚫고 있었고 병무행정 의무행정 의학지식 등 병역비리수사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병적기록표 등 관련 자료를 보고 병역비리를 찾아내는 능력은 탁월했다. ‘병역비리 족집게’라는 별명이 붙을 만했다. 수사팀은 그가 여자 문제와 관련해 협박죄로 실형을 살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능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그의 언행을 검증하려는 것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의혹과 관련해 그가 몇차례 말을 바꾸고 입증하기 어려운 무리한 주장을 펴는 등 ‘결격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정치권은 반부패국민연대라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으로 뒤숭숭한 상태였다. 이 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병역비리의혹이 있다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명단을 흔들며 병역비리 재수사를 촉구했다. 재수사라는 표현을 쓴 것은 1998년 12월∼1999년 12월까지 진행된 병역비리수사가 축소·은폐의혹을 낳은 채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관심을 끈 것은 이른바 ‘정치인 리스트’였다.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이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총선용 정치 공작’이라는 한나라당의 반발은 정치인의 병역비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여론에 묻혀 버렸다. 기자회견 직후 반부패국민연대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명단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청와대는 이를 다시 검찰로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