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대선 여론조사 뒤집어보기

  • 글: 김형준 명지대 객원교수·정치학 kimhjok@yahoo.co.kr

    입력2002-11-06 10: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여론이 왜곡되면 민주정치는 위협을 받는다.
    • 정확하지 않은 여론조사는 특정세력에 악용되고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가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정확한 조사와 심층 분석, 투명한 공개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선 여론조사 뒤집어보기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됨에 따라 여론조사 역시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해 나가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정치적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망을 직접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 여론조사 결과의 보도는 유권자의 행태와 후보자 경쟁 구도 형성에 두 가지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먼저 정치 커뮤니케이션 차원의 심리적 효과를 지적할 수 있다. 여론의 형성과 확산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개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소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태도나 행동을 관찰해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자신이 지배적 여론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때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침묵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세자 편승 효과

    이 때문에 여론의 흐름을 지배하는 의견은 우세자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에 따라 더 강화되고 소수 의견은 이른바 침묵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욱 잦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봄 노풍(盧風)이 강하게 휘몰아 쳤을 때 노풍을 확인한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은 어디를 가나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고, 반대로 노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조용히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노후보에 대해 잘 모르거나 판단을 유보한 유권자들은 심리적 부담이나 사회적 압력을 느끼며 노후보 쪽으로 기울었을 개연성이 크다.

    또 다른 하나는 유권자의 전략적 움직임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전략적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도보다 선거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투표 방향을 결정한다. 선거 여론조사 보도는 이러한 평가 과정에 누가 당선 가능성이 높고 누가 낮은가 등의 정치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를 부추긴다.



    우리 사회와 일반 국민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론조사는 순기능 못지 않게 역기능도 가진다. 특히 정확하지 않은 여론조사는 특정 세력에 악용되고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국민의 뜻을 반영하기 위한 여론조사가 반대로 국민의 뜻을 왜곡함으로써 민주정치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여론이 왜곡되면 민주정치는 위협을 받게 된다.

    현재 전화 여론조사와 관련해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할 문제는 후보 지지도와 같은 중요한 현상에 대해 비슷한 시점에 실시한 조사결과가 기관마다 크게 다르게 나오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지난 5월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10% 이내로 줄어들었다는 모 신문사의 기사가 나왔다. 그 하루 전 다른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후보간 격차가 23%가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 차이가 크게 감소했다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번 추석 연휴 직후 비슷한 시점(9월22∼25일)에 국내 주요 언론기관이 직접 조사하거나 또는 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해 발표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추석 이후 5명의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는 ‘2강(强) 1중(中) 2약(弱)’ 구도로 요약된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30∼35%의 지지율을 보이며 1위를 차지하고, 독자 신당을 추진중인 정몽준 후보가 30% 내외의 지지율로 그 뒤를 바짝 쫓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15∼20%로 다소 뒤처진 상태로 3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이한동 전 총리의 지지율은 1∼3%로 약세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시기에 조사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발견된다. 에서 보듯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모든 여론조사기관에서 거의 차이가 없이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는 조사기관별로 큰 차이가 발견됐다.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노후보의 지지율은 아주 낮은 수준인 14.4%인데 반해, 문화일보·TN소프레스 조사에서는 21.8%로 나와 동일한 후보의 지지율이 7.4%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선 여론조사 뒤집어보기
    무응답층의 규모에서도 큰 차이가 발견된다. 5자 대결구도시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무응답의 비율이 12.5%로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지만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23.7%로 나타났다.

    한편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해 통합 신당 후보로 정몽준 의원이 출마하면 이회창 후보에 앞서는 것은 조사기관마다 동일했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발견된다. 중앙일보의 경우 정-이 두 후보간 지지율 차이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0.7%에 불과한 반면 다른 조사기관에서는 약 6∼11%의 큰 차이로 정의원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선후보 지지도와 지역, 연령간의 상관관계도 조사기관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지역별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에서 보듯이 조선일보·한국갤럽과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호남지역에서 정의원이 노후보를 각각 8.5%와 5.5%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가 9월7일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호남지역에서 노후보가 48.2%로, 25.3%를 얻은 정몽준 후보보다 지지율이 훨씬 높았으나 9월23일 조사에서는 정의원이 36.1%의 지지로, 30.6% 지지에 그친 노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보도됐다.

    일부 언론의 경우 이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盧로부터 떠나가는 호남 민심’이라는 기사(주간조선, 2002.10.7)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한나라당 광주지부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엄밀히 말해 노무현 후보의 부진과 정몽준 의원의 약진이다. 동아일보가 지난 4월1일자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71.4%였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9월2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남지역 노무현 후보 지지율은 30.8%로 급락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정몽준 의원으로 39.3%에 달했다.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이 정몽준 지지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현 정권의 실정으로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민주당을 낳고 키운 호남에서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앞서고 있다. 몇 달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중앙일보, 문화일보·TN소프레스 조사에서는 이와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노후보의 지지율이 정의원보다 각각 5.3%와 10.3% 앞섰으며, 문화일보·TN소프레스 조사에서는 노후보의 지지율이 50.7%를 기록하면서 23.3%를 얻은 정의원을 27.4%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일보·TN소프레스와 조선일보·한국갤럽 두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만을 비교해 본다면 호남지역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간에는 무려 35.9%의 지지율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조사 기관별 후보 지지율 차이는 호남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서울 지역에서도 후보간 지지율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문화일보·TN소프레스 조사에서는 정의원 지지율이 이회창 후보보다 11.6%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반대로 이후보 지지율이 정의원을 0.4%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여론조사 뒤집어보기


    이번 대선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충청지역도 비슷하다. 정후보가 이후보를, 조선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서는 4.1%,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4.8%,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0.5%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문화일보·TN소프레스에서는 이후보가 정후보를 9.7%나 앞서고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2.7%나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지역 여론조사에서 이렇듯 상반된 결과가 도출됨으로써 이 지역 공략을 위한 각 정당과 후보들의 선거전략에 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추석 이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한결같이 정몽준 후보는 20∼30대, 이회창 후보는 40∼50대에서 우세를 보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서는 50대 이상의 고 연령층에서 정의원 지지가 8.0%에 불과한 반면,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23.8%로 나타나 동일한 연령층에서 동일한 후보의 지지율이 15.8%나 차이가 났다.

    여론조사 기관별 차이가 크다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시간 경과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는 대선후보의 지지도 변화 추이일 것이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추석 전(9월9일)과 추석 후(9월22일)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이후보와 정후보는 지지율이 상승했고, 노후보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후보는 30.2%에서 31.3%로 1.1% 상승했고, 정의원은 27.3%에서 30.8%로 3.5% 상승했다. 반면 노후보는 20.4%에서 16.8%로 3.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의 추석 전(9월7일)과 추석 후(9월24일) 조사를 비교해 보면 이후보 1.8% 상승, 정의원 1.0% 하락, 노후보 3.2% 하락으로 나타났다. 정의원 지지가 추석연휴를 거치면서 어느 조사에서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다른 조사에서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중요하고 민감한 사항에 대해 조사기관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니 유권자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점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조사기관마다 다르게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전화 여론조사는 만 20세 이상의 전국 유권자를 모집단으로 적게는 700명에서 보통 1000명 정도의 표본 자료를 통해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예측하는 것이다.

    표본집단 바꾸지 말아야

    따라서 표본을 뽑을 때마다 결과가 달리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을 표집오차라 하고 이러한 오차는 보통 ‘표본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표본이 1000명일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이고, 1500명을 조사했을 경우는 2.5%다. 따라서 각 여론 조사기관의 결과는 표본수의 차이에 따라 표집오차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론조사 기관별로 표본수에서 큰 차이가 없고 거의 같은 시기에 조사했는데도 결과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할당표집과 같은 비확률적 표집 방식의 사용과 재통화 원칙을 준수하지 않아 생긴 낮은 응답률과 관련된 표집오차(sampling error)이고, 다른 하나는 설문내용 구성 및 조사방식 차이, 조사원 구성 및 조사비용 등과 연관된 비표집오차(non-sampling error) 등이 대폭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할당표집(quota sampling)과 같은 비확률적 표집방식(non-porobability sampling)의 남용이 차이를 가져온다. 선거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의 의견과 흐름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물론 3000만명이 넘는 20세 이상 유권자 전부의 의견을 듣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전체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표본집단(sample)을 뽑아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표본을 선정하느냐, 즉 표집(sampling)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은 유효 표본수를 채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조사시 통화가 안됐을 때 최초로 선정된 표본 전화번호를 바꾸고, 통화가정 내 무작위 선정 원칙(randomsampling)을 지키지 않으며 조사과정에 임의로 성별, 연령별로 할당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기관들이 동일한 원칙에 따라 응답자를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별로 자신이 정한 임의 기준에 따라 할당하기 때문에 기관별로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만약 모든 기관이 응답자를 선정할 때 동일하게 ‘가구내 선택 방식(in-house selection)’과 같은 무작위 확률표집(porobability sampling) 방식을 준수한다면 조사기관별 차이가 현격히 줄 것이다.

    둘째, 낮은 응답률에 따른 대표성 문제도 조사기관마다 다른 결과를 낳는 중요한 요인이다. 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전화조사를 통해 1000명의 응답자를 얻기 위해 조사기관은 보통 그 다섯 배가 넘는 5000개에서 6000개의 전화번호를 뽑는다. 그렇게 뽑힌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면 대략 60%는 결번, 통화중, 부재중 등의 이유로 통화에 실패한다. 통화에 성공한 나머지 40% 중에서도 실제로 조사에 응하는 사람은 많아야 절반 정도여서 전화조사 응답률은 처음에 뽑힌 전화번호의 20%를 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령 A라는 조사기관은 하루에 조사를 마치기 위해 통화가 안됐을 때 최초로 선정된 표본 전화번호를 바꾼 반면, B라는 조사기관은 부재중일 경우 재통화를 시도하거나 거부한 표본 전화번호에 대해 2차 전화설득(refusal conversion)을 시도했다면 그 결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전화조사를 위해 처음에 무작위로 1000명의 표본 전화를 선정하면 거기에는 다양한 계층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관심이 많고 정치에 적극적인 사람이 포함되는가 하면, 반대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소극적인 사람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 후자의 사람들보다는 전자의 사람들이 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 즉 전자의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 조사 관행대로 전화를 걸어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임의로 다른 표본으로 대체해 조사한다면 정치에 적극적인 사람이 질문 대상에 선정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반면 최초 표본 전화에 충실하기 위해 조사를 거부한 사람이나 전화를 받지 못했던 사람에게 재통화를 하거나 예약을 받아 조사한다면 다양한 계층이 조사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조사에 포함되는 계층의 차이가 궁극적으로 결과의 차이를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조사기관이 가능한 한 처음 뽑힌 전화번호의 사람들 모두로부터 응답을 받아내려고 노력한다면 기관별로 조사결과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조사 설문지(questionnaire) 내용과 조사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지난 3월 민주당 경선과정에 노풍이 거세게 일자 이인제 후보는 노풍의 진원지로 여론조사 조작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이인제 후보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대한매일 3월23일)하며 “노풍이 출발된 13일의 TN소프레스 여론조사 문항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빌라 문제를(의도적으로) 거론한 뒤 서민 이미지의 노후보 지지를 이끌어 냈으며 방송사를 통해 연이어 여론조사를 실시해 노후보의 급상승을 끌어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TN소프레스에 조사를 의뢰했던 문화일보는 “이총재와 노고문의 양자대결을 처음에 질문하고 이총재 빌라 파문은 마지막에 질문했기 때문에 문항 순서 조작으로 결과를 유도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설문순서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사례다.

    한국갤럽, 코리아리서치, TN소프레스 3개 조사기관이 9월에 실시한 조사 설문 내용과 순서를 검토해보면 대선 가상 대결 구도에 대한 문항의 순서에는 기관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서 보듯이 5자 대결구도에 관한 것은 모두 두번째 문항에 포함돼 있었다. 문화일보·TN소프레스의 경우 5자 대결구도를 처음에 질문하고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수사 지속’ 등과 같은 민감한 정치현안은 나중에 물어봤다. 다만 정당 지지의 경우, 한국갤럽은 맨 나중에 물어봤고, 코리아리서치와 TN소프레스는 중간에 질문한 것이 달랐다.

    당선 가능성 후보와 지지후보 차이

    한편 대선후보 가상대결에 대한 설문 내용(wording)에서는 기관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에서 보듯이 한국갤럽의 경우는 “만일 이번 대통령 선거에 한나라당 이회창씨, 민주당 노무현씨, 민주노동당 권영길씨 그리고 독자 정당을 추진중인 정몽준, 이한동씨가 출마한다면, ○○님께서는 이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반면, 문화일보·TN소프레스는 “내일 바로 대통령 선거가 있고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신당의 정몽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이한동 후보가 출마한다면 ○○님께서는 누구를 지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응답자의 입장에서는 당선을 기대하는 후보와 지지하는 후보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당지지에 관한 질문 내용을 보더라도 한국갤럽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등의 정당이 있습니다. ○○님께서는 이중 어느 정당을 지지하십니까?” 라고 물어본 반면,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는 “현재 우리나라 정당에는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자민련, 한국미래연합 등이 있습니다. ○○님께서는 이 중 어느 정당을 가장 좋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마찬가지로 지지하는 정당과 선호하는 정당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설문순서와 설문 내용 이외에 같은 문항에 대해 응답자에게 한 번만 질문하느냐 아니면 추가로 질문하느냐에 따라 조사결과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선 후보 지지’와 ‘정당 지지’에 관한 질문에서 “없다/모른다” 라고 응답한 소위 무응답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무응답층에게 추가로 “그래도 어느 후보 또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십니까”라고 물어 본 다음 그 결과를 최초 지지 응답에 포함시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간에는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가령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5자 대결시 무응답층 비율이 12.5%에 불과한 반면,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23.7%로 큰 차이를 보였다. 그 이유가 최초 무응답층에 대한 처리 방식 차이에서 빚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두 기관의 조사방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추론에 불과하다. 다만 설문 내용과 조사 방식에 따라 기관별로 차이를 보일 경우 조사 결과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

    넷째, 조사기관별 조사원의 자질과 조사원 운용 방식의 차이도 무시 못할 주요한 요인이다. 조사원은 응답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람이므로 이들의 성실성과 행태가 조사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예를 들어 조사원이 응답자에게 빠른 조사 완료를 위해 대답을 유도하거나 심지어 조사 결과를 잘못 기재할 경우 큰 차이가 발생한다.

    조사 완료 여부와 상관없이 시간당으로 조사원 급여를 지불하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어떤 기관은 조사 완료 숫자에 따라 차등적으로 조사수당을 지급한다. 경험이 부족한 조사원이 조사 완료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부작용이 나올 수 있고 신뢰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변수를 과장보도하지 말아야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짧은 선거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선거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시비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관행처럼 뿌리내리고 있는 기존 조사방식에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여론조사와 선거보도를 위해서는 최소한 ▲정확한 조사 ▲심층적인 분석 ▲투명한 공개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정확하고 동일한 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확률표집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다단계층화표집(multistage stratified random sampling)을 통해 전화번호 예비표본을 추출하고, 통화 가정 내 응답자 선정 역시 임의적인 할당이 아니라 가구 내 선택(in-house selection) 방식을 통해 무작위 확률표집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재통화 규칙 ▲예약시스템 ▲2차 전화설득 등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유효 표본의 응답률을 대폭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는 조사디자인, 표집과정, 조사원의 수준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응답률이 조사데이터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사 일정을 최소 5일 이상으로 정하고 전화를 받지 않는 표본대상에 대해 최소 5회 이상 재통화한다는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한 번 전화해서 통화를 못했다고 표본을 바꾼다면 그것은 전화를 받기 위해 항상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주자가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하루를 3개 시간대로 나누어 하나의 샘플 전화번호에 조사기간 동안 수 차례 재통화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거부한 표본 전화번호에 대한 2차 전화설득(refusal conversion)을 시도해 예비표본의 활용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이는 표본 전화번호 하나 하나가 통계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둘째, 어느 후보가 몇 % 앞서느냐 하는 경마식, 흥미 위주의 보도가 아니라 주요 현상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기관이 신속성과 경제성을 강요하면 조사결과는 정확성과 신뢰성을 상실하게 된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기관은 선거 여론조사를 보도할 때 흥미 위주로 보도하면서 심층분석은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부정확하게 조사된 특정 후보 지지율과 같은 변수를 과장 보도하고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분석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층 분석을 통해 중요한 정치 현상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신비주의와 맹목주의의 함정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다. 즉 유권자가 비이성적인 잣대로 투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셋째, 투명한 공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제108조 4항은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 또는 보도하는 때에는 조사 의뢰자와 조사기관·단체명, 피조사자의 선정방법, 표본의 크기, 조사지역·일시·방법, 표본 오차율, 응답률, 질문내용 등을 함께 공표 또는 보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한국조사연구학회 조사윤리강령은 “선거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조사목적, 모집단과 표집틀, 표본대체 규칙, 재통화·재방문·재발송 횟수, 가중치 부여방식, 기타 조사 및 분석절차와 관련된 사항”까지 밝히라고 권장하고 있다.

    언론의 정확한 분석 필요

    선거법이 질문내용을 포함한 여러 사항 공표를 의무화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를 건전하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투명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조사결과를 공표하는 언론기관이 더욱 분석적으로 그 결과를 사용해야 한다. 국민은 사실상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도 이제는 질 높은 여론조사에 근거해 수준 높은 분석기사를 제공하는 언론기관을 선호하는 수준이 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여론조사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는 여론조사의 공개 및 배포에 관한 법을 제정하는 한편 법무부장관 감독 하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여론조사위원회까지 두고 있다. 여론조사가 본연의 책임과 기능을 못하고 오히려 정치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남는다면 우리도 프랑스식 모델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질 것이다. 여론조사의 비중은 높아가지만 잘못된 여론조사가 지속되고 있다. 이 글이 향후 한국 여론조사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모색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