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그룹 인재 확보 경쟁에 불이 붙었다. 주 타깃은 미국 유수 대학의 MBA와 연구개발 핵심 인력. 그룹마다 해외채용 투어는 물론 2년, 3년 앞을 기약하는 장기관리 방식으로 부가가치 높은 인재를 ‘입도선매’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국경·인종·성별을 넘어선 인재 쟁탈전의 안과 밖.
노조가 연구개발 인력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그런데 그 배경이 재미있다. LG전자의 한만진 인사·노경 담당 상무의 설명이다.
“노사의 중국출장 일정 중 중국 최대전자업체인 하이얼 생산라인 투어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자업계를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경쟁력을 직접 살피기 위해서였지요. 라인에 들어서자 한쪽 편에 세운 커다란 보드가 눈에 들어왔어요. 5명의 라인책임자 사진 밑에 여러 표정의 얼굴그림판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엔 각 라인 작업자들의 생산성·품질완성도·근태 등을 평가한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얼굴그림판에는 라인 작업자들의 실적 그래프에 따라 웃거나 찡그리는, 아니면 우는 얼굴이 부착돼 있었다.
“중국 근로자 임금이 우리의 15%, 생산성은 85% 수준인 걸로 파악하고 있었는데, 원가경쟁에서 훨씬 유리한 중국이 생산성 향상에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충격을 받기는 노조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영자 입장에선 생산성 높고 비용 적게 드는 중국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터. 그렇다면 국내 근로자들은 언젠가 고용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국에 대응하려면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면 연구개발 분야에서 우수 인력을 많이 확보해야 하죠. 그에 생각이 미치자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선 겁니다. 노경 R&D인센티브는 고용안정과 회사발전이라는 노사간 윈윈 전략 차원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LG전자는 지난해 516억원의 성과급 재원을 마련, 이중 6억원을 지난 5월 R&D인센티브로 연구개발인력들에게 지급했다. LG전자의 노경 인센티브제는 회사 안팎으로부터 ‘연구개발 인재를 중시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 많은 연봉 줄 인재 데려오라”
지금 삼성·LG·SK 등 대기업들은 새 시장 선점을 위해 격렬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품이나 시장점유율 다툼이 아니다. 이른바 ‘인재전쟁’이다. 해외유명대학의 MBA부터 연구개발인력, 글로벌 마케팅 인재에 이르기까지, 다른 기업보다 먼저 핵심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LG전자처럼 노사화합을 인재 확보·지원·육성으로까지 승화시킨 기업이 있는가 하면, SK텔레콤처럼 사장이 사내 인재개발연구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삼성그룹은 CEO 평가에 인재확보 실적을 일정비율 반영한다. 영입한 인재가 조기에 회사를 그만둘 경우 최고경영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인력관리책임제도 추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CJ그룹(제일제당그룹)의 경우 이재현 회장이 경영전략회의에서 CEO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인재를 구해오라고 지시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기업들이 인재확보에 적극 나선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2~3년 글로벌 무한경쟁의 물결이 급속도로 밀려들면서 고급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간 전쟁은 재계에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기업의 인사담당 임원들은 “핵심인재에 대한 연봉, 주거지원 등에는 사실상 ‘상한’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우수인재 확보야말로 미래사업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인만큼 아까울 것이 없다는 투다. 이제 해외에서 스카우트한 임원급 경력자에게 월세 1000만원이 넘는 고급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 인사팀 안승준 상무는 “제품 생산비용을 줄여 가격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갔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혁신제품을 내놓은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최후 승자가 된다. 핵심인재 확보는 승리의 보증수표나 같다”고 말했다.
한편 SK텔레콤 인사팀 허남철 상무는 “최근 기업간 인재확보전을 워 포 탤런트(The War for Talent)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글자 그대로 전쟁 수준까지 가 있다는 것이다. 허상무는 “해외채용에 나서보면 국내 몇 개 기업으로부터 동시에 제안을 받은 사람들이 꽤 많다”며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 채용담당자들이 아예 해외에 상주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고급인력 채용이 이벤트성, 일회성 투어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기업의 상시경영활동 중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해외유명대학의 MBA를 잡으려고 입학부터 졸업, 채용 때까지 유무형의 공을 들이기도 한다. 이들은 기업의 성장성이나 미래비전 등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며 인재들과 꾸준히 접촉한다.
K씨는 LG전자가 박사과정 2년차 때부터 ‘공략대상’ 데이터베이스(DB)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진득하게 공을 들인 인재다. 미국 현지법인 직원들이 남가주대학(USC)에 갈 때마다 회사 행사에 초청하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인간 관계를 다져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위진행 정도를 체크, 언제쯤 LG맨이 될 수 있을지 가늠해 보았음은 물론이다.
각 기업의 표적인 K씨가 국내 경쟁사나 외국계 회사에도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채용담당자들은 장기간 교류와 인간관계, 기업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제공 등을 통해 ‘표적’의 마음을 움직였다. K씨가 한국에 올 때도 임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등 관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인재확보전이 과열되면서 발빠른 기업이 인재시장을 ‘싹쓸이’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한 대기업 사장은 “지난 6월 해외고급인재 확보를 위해 미국 주요대학을 방문했는데 이미 국내 모 기업이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MBA 유학생들을 다 훑고 지나간 다음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인재확보전략은 ‘메이크 앤드 바이(Make & Buy)’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사람을 육성하고, 외부에선 인재를 수혈해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것. ‘메이크’와 ‘바이’ 중 요즘 경쟁이 더 두드러진 부문이 ‘바이’, 즉 인재유치다. 이에 따라 한국 유학생이나 교포 등 범한국계 위주의 채용방식에서 벗어나 국적을 불문, 글로벌 리크루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재확보전에 불을 댕긴 쪽은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주재하는 사장단회의 내용을 일부 언론에 공개한다. 그렇게 공개된 삼성의 움직임은 여파가 매우 크다. 특히 이회장의 발언은 여타 그룹의 경영에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한 예로 삼성그룹이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에 따라 계열사 몇 군데가 보유한 부동산이나 조그마한 비수익사업부를 판다거나 명예퇴직을 실시한다고 하면, 언론은 곧바로 재계 전체에 거대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칠 것처럼 보도한다. 이른바 ‘삼성 효과’다. 엄밀히 따져보면 올해 재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인재전쟁도 이런 삼성효과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삼성, 인재확보 능력으로 임원 평가
지난 6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 이곳에서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그룹 수뇌부 및 계열사 사장단이 전례없는 주제로 전략회의를 열었다. ‘인재전략 사장단 워크숍’이었다. 그룹 차원에서 어떻게 고급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해 나갈 것인지, 사장단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의했다.
그러나 이회장이 인재 확보에 ‘특별한 관심’을 처음 표명한 건 그보다 두달 앞선 4월이다. 삼성전자가 1분기에 사상 최대실적을 냈다는 발표를 한 날, 전자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주재한 이건희 회장은 “첨단기술력을 확보해 세계 톱3 전자기업이 될 수 있게 초우량인재를 단기간에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이회장의 발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자만에 대한 경고, 즉 회사가 ‘잘 나갈’ 때마다 내놓는 이회장 특유의 위기 강조 메시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달 후인 6월5일, 온 국민이 월드컵 첫 승에 들떠 있던 날 이회장이 주재한 인재전략 워크숍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채용하며, 석박사급 인력을 해마다 1000명씩 뽑겠다는 이날 회의의 골자는 이내 ‘인재 확보전’이라는 말을 재계에 퍼뜨렸다.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이 1000명,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영의 시대다. 나는 요즘 우수인재 확보와 양성에 관한 생각만 하고 있다. 이는 기업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전국민이 축배를 드는 날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오너에게 유난히 높은 충성도를 자랑하는 삼성그룹 사장단이 이러한 이회장의 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불문가지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인재 확보실적은 올해부터 사장단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기존 평가지표인 실적(경제적 부가가치, EVA), 주가와 함께 주요 평가지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것.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유능한 CEO라도 인재확보에 실패하면 짐을 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 인재확보의 최일선에는 최고경영자가 있다. 최고경영자의 인재확보 활동은 인재중시기업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신속한 의사결정에 따른 우수인재 조기확보와 능력검증의 정확성 등 다양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황창규 사장은 요즘 인텔이나 노키아, 델 등 대형고객을 만나러 가는 출장길마다 스카우트 대상인력 물색 및 접촉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황사장은 “전에는 임원이나 고문급을 채용할 때나 직접 인터뷰했다. 그런데 요즘은 직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층의 인재들을 만난다”고 말했다.
디지털미디어부문 진대제 사장은 최근 실리콘밸리를 방문, 10명 정도의 디지털 분야 전문가를 뽑았다. 임형규 사장은 올들어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을 돌며 시스템온칩(SOC) 분야에서만 20여 명의 박사급 연구인력을 선발했다.
중국·인도·동구·러시아 인력이 타깃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이윤우 사장도 지난 8월 미국 동서부 출장길에 10여 명의 반도체부문 핵심인력과 인터뷰를 했고, 9월에는 베이징대·칭화대·푸단대 등 중국 최고 인력이 모였다는 3대 명문대학에서 특강과 간담회를 가졌다. 중국인력은 미국·유럽 인력과는 별도로 연구개발과 마케팅 영업 분야 등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핵심 인재풀로 삼성이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쪽이다.
삼성 관계자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우수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기초과학이 발달한 동구나 러시아 쪽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재 확보와 관련한 삼성그룹의 행보 중에는 전국 과학고등학교 순회강연이 눈길을 끈다. 이공계 기피 풍조가 확산되면 기업경쟁력는 물론 국가경쟁력마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일이다.
한 재계 인사는 “과학고 출신 중에는 20대에 박사학위를 취득해 국내외 유명대학 교수직에 오른 이가 적지 않다”며 “과학고 순회강연은 국내외 각종 연구기관과 대학 등에 포진한 과학고 출신 인력에 삼성 이미지를 심는 동시에 과학고 재학생들을 ‘입도선매’ 하려는 의도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학고 순회특강에는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을 비롯, 계열사의 CRO(최고 연구책임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해외인력 확보방식은 채용대상 유학생 명단을 작성, 이들에게 채용제안서 및 인터뷰제안서를 보내고 현지 공항 근처 호텔에서 1박2일간 면접과 비전설명 등을 진행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미주지역의 경우 시카고 공항 근처 호텔을 포스트로 정하고, 각 지역 채용대상자들의 항공료와 호텔숙식비를 기업에서 제공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한꺼번에 많은 인재들과 접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사담당과 사업담당 임원들이 인터뷰 대상자와 식사를 같이하는 등 사적 활동을 통해 그 장단점을 파악하기도 한다.
LG그룹 계열사들은 올들어 벌써 여러 차례 해외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투어를 진행했다. LG는 구본무 회장이 올 신년사에서부터 ‘1등 LG’의 기치를 내걸고 지난해에 이어 연구개발인력 양성을 강조함에 따라 인재 확보업무를 강화했다. 해외에 상주하는 법인장들도 우수인재 확보가 업무로 굳어졌다.
이에 따라 LG에서는 과거 인사부서의 고유업무처럼 인식돼 오던 인력채용이 현업부서로 상당부분 이양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5월 LG전자가 실시한 미국 현지 면접에서 한 응시자가 자신이 준비한 프로젝트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해외거래선 미팅과 사업논의 등을 위해 1년의 절반 정도를 해외에 머무르는 구부회장은 틈나는 대로 입사가 예정된 인재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 9월 중순에도 해외우수인력 유치단을 구성, 하버드·프린스턴·MIT·미시간·위스콘신 등 미국 주요대학에서 연구개발분야 및 MBA 유학생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를 가졌다. 조만간 시카고에서 LG전자·LG화학·LGCNS 등 3개사가 공동으로 현지면접을 실시해 연말까지 MBA 100여 명, 연구개발분야 석·박사 인력 200여 명 등 총 300여 명의 글로벌 인재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200여 명에 비해 50%가 늘어난 규모다. 러시아인, 인도인을 대상으로 한 인력 확보에도 많은 자금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박사급 핵심인재는 졸업 시즌 때 한번 채용행사를 갖는 것만으로는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미국 대학가를 돌며 기업설명회, 채용상담회 등을 여는 동시에 장기관리대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에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본사 인사담당자들이 연간 네 차례 정도 이런 작업을 진행한다.
미국 상위 50개 대학 박사급에 대해서는 대개 학위 2년차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유학생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학에 ‘정보원’을 심어놓기도 한다. 대학마다 한 명 정도의 ‘모니터요원’을 선정, 그에게 유학생 현황 및 변동사항을 체크하고 통보하는 임무를 맡기는 것. 그에게는 모니터활동비를 지원한다.
‘저강도식 접근’의 장점
이런 방식으로 일단 대상이 선정되면 철저한 관리에 돌입한다. 방학 때 국내 인턴으로 채용해 1~2개월 근무케 하거나, 입국할 때마다 항공비를 지원한다. 그러다 학위를 취득할 시점이 되면 정식 면접을 실행한다.
면접은 인사담당자들이 직접 미국에 가거나, 방학 때 본인이 귀국하는 시간을 이용하고, 인턴활동의사가 있는 사람은 그 기간에 면접을 하는 등의 세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면접을 거치면 처우조건 협상을 한다. 한국은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을 기준으로 연봉수준이 정해져 있으나, 해외 박사들은 직장 경력이 있는 경우도 있어 그 산정이 복잡한 편이다.
3대 그룹 중 이런 ‘저강도식 접근’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삼성이다. 비즈니스 및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표적’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쌓고 그를 바탕으로 스카우트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임형규 비메모리사업부 사장은 “데리고 온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 다시 스카우트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결과가 확실하다는 것이 장점. 안승준 상무는 “스카우트 대상이 삼성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비전과 역할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삼성도 그 인재의 역량과 그에 적합한 업무를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은 최근 들어 글로벌 오픈채용제를 확대 실시하면서, 특히 해외유명대학의 MBA 채용에 주력하고 있다. SK의 주력계열사인 SK텔레콤은 지난해 해외 인터뷰를 통해 20여 명의 MBA인력을 채용했다.
SK텔레콤 인사팀 허남철 상무는 “인재 매니지먼트를 위한 인사정책을 CEO가 진두지휘하고 있다”면서 “경기도 이천의 인재연구원을 미래경영연구원으로 확대개편해 표문수 사장이 직접 원장직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래경영연구원은 현재 인재전략을 집중연구하면서 관련 인프라 구축작업을 진행중이다.
SK가 인재채용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패기와 도전정신. 허상무는 “일과 싸워 이기는 기질인 패기와 적극적인 사고, 빈틈없고 야무진 일 처리가 가능한가를 중시한다”면서 “이런 자질에다 글로벌 감각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여부가 채용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허상무는 “각 사업부문의 전략담당 인재와 e비즈니스 분야 인재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며 “오는 11월중 또 한번 해외채용투어를 개최해 MBA들을 불러들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외부영입파건 내부육성파건 핵심인재가 될 자질이 있는 재목은 특별 관리한다.
삼성전자 인사팀은 핵심인력들을 S(슈퍼)급과 H급(Head)으로 분류, 별도관리하고 있다. S급 인력은 400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특급대우를 받는다. 연봉이 같은 직급 임직원보다 2~3배 많다. 해외에서 ‘모셔온’ 고급인력의 경우 주거문제부터 차량지원 등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위 임원급이 자리를 옮길 때는 당연히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게 마련”이라면서 “불편이 없도록 최대한 요구에 맞춰주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영입한 핵심인력으로는 TI(텍사스인스투르먼트)의 CTO(최고기술경영자) 출신인 오영환 부사장(SoC연구소장), 루슨트테크놀로지 부사장 출신인 전명표 디지털솔루션센터장 등이 있다.
SK그룹은 개인의 역량(competency)과 업적(performance)에 따라 등급을 나눠 인력을 관리한다. 역량과 업적이 모두 뛰어난 사람들은 이른바 ‘하이포’(High Potencial) 풀로 분류해 금전적·비금전적 보상을 하고, 체계적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성장을 지원한다.
하이포 풀은 대리·과장·부차장 등 팀장급과 임원급 등 각 직위에 능력이 탁월한 인재들을 따로 편입시켜 놓고, 직위가 올라갈 때마다 계속 탁월한 업적과 능력을 보일 경우 지속적으로 하이포군으로 분류해 궁극적으로 CEO 후보군으로 정한다. 직위가 올라가면서 역량부족으로 하이포군에서 밀려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편 각사 인사담당자들은 고급해외인력을 대거 채용해 기업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명제와 국내 인력 고용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또 유학생이 아닌 교포나 현지인의 경우 한국행을 꺼리는 수가 많아 그 해결방안 모색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로서는 현지 연구소를 과감하게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기업의 핵심인력 영입 전략에 대한 기존 인력의 거부감도 해결해야 할 과제. 삼성전자 안승준 상무는 “외부 인재 를 영입하다보면 기존 조직원들이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많은 정보와 역량을 가진 인재가 ‘파이’를 키우면 회사 전체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