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2-11-05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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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111개 국가에서 사형제를 폐지했다. 한국에서도 진보적인 변호사와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13년째 “사형 대신 종신형으로!”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은 반향(反響)이 크지 않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지난 4년 간 사형은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지만, 60여 명에 이르는 사형수들은 지금도 ‘내일’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가슴을 졸인다.
    • 사형제 폐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영우 신부를 만났다.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10월4일,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은 국회 법사위의 법무부 감사에서 사형 집행이 지지부진한 점을 문제삼고 나섰다.

    “1997년 12월30일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이 한 건도 없었으며, 올해 7월 현재 미집행 사형수가 60여 명에 달합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형집행 명령을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법무부가 여론을 의식, 법규를 사문화해 국가 형벌권과 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구치소. 25명의 사형수들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금요일 종교집회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7명의 천주교 신자 사형수들은 그들을 만나러 온 가족 같은 손님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39)를 비롯한 종교위원들이다. 최근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로 온 새 식구가 있기에 모임은 더욱 진지했다. 매주 두세 차례 구치소를 찾는 종교위원들은 사형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겐 너무도 소중한 하루 하루의 삶을 축복해준다.

    사형수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줄곧 미소를 잃지 않던 이영우 신부가 기자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5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던 것은 ‘인권 대통령’을 자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다음 정권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연말에 사형을 집행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표류하는 사형폐지 특별법

    존폐 여부를 놓고 사람마다 시각 차가 큰 게 사형제도다. 정치인들도 소신과 종교, 혹은 개인적 경험에 따라 타협이 어려울 만큼 커다란 의견차를 보인다. 한쪽엔 ‘형법과 국가 체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제도’인 반면, 다른 한쪽엔 ‘범죄억제 효과도 없이 구래의 악습을 반복하는 국가 차원의 보복행위’다.

    사형제는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의 활동에 힘입어 이미 국회의원 155명의 발의로 폐지에 대한 특별법안이 상정됐다. 그러나 아직 국회 법사위 심의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검사 출신이 대부분인 법사위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이 발의한 특별법안이 법사위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무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국민의 법감정 또한 사형제에 익숙해 있다.

    이에 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전방위로 국회를 압박했다. 국회의장을 방문해 사형제 폐지를 다시 건의했고, 국회의장 직권으로 이 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수 있게 하자며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회관 3층에 자리잡은 사회교정사목위원회. 교정사목(矯正司牧)은 일명 ‘교도소 사목’으로 불리는 특별사목이다. 구금시설 수용자들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하는데, 두 명의 신부를 비롯한 40명의 위원과 사목회가 함께 서울지역 구치소와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의 신앙생활을 돕는다.

    이영우(본명 토마스) 신부는 5년째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관할인 서울·영등포·성동구치소와 안양교도소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사형수들을 위시한 재소자 선교에 힘쓴다.

    서울구치소에 25명, 전국적으로는 60여 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다. 예년엔 30명선을 유지했는데 사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1997년 12월30일 이후 단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아 그 숫자가 늘었다. 8명의 사형수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 김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지만, 사형제 폐지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법무부도 주춤하게 된 게 사실이다.

    이영우 신부는 천주교 사형제 폐지운동의 주축이다. 사형제 폐지협의회(사폐협)와 앰네스티 그리고 범종교연합이 이끄는 사형폐지운동에는 천주교 교정사목이 늘 함께 해왔다.

    “천주교는 200년 전 이 땅에 들어오면서 갖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교인이 처형됐죠. 천주교가 사형폐지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천주교는 1970년 ‘교도소 후원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재소자와 양심수들의 인권수호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죠.”

    이신부의 캐비닛은 편지묶음들로 가득하다. 지난 몇 년 간 서울구치소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다. 이신부가 그중 한 통을 꺼내 보여줬다.



    사형수의 일과는 단순하다. 그들은 미결수 신분이라 모든 작업과 행사에서 제외된다. 30분 정도 밖에서 운동을 하는 것 외엔 하루의 대부분을 감방에서 보낸다. 자해를 염려해 독방은 주어지지 않고 다른 미결수들과 함께 생활한다. 미결수들은 대부분 잡범. 이들에게 ‘흉악범’인 사형수들은 가까이 가기도 두려운 존재다. TV 시청과 독서가 유일한 소일거리며,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가끔씩 찾아오는 면회와 종교집회가 전부다.

    사형수들은 대개 세상을 저주하면서 감방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로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며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이신부에게 위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8년 전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 조직폭력배 J모씨. 그도 수형생활 초기에는 살기 등등한 낯빛으로 원망과 증오의 나날을 보냈지만, 요즘은 쾌활한 태도로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법정최고형을 받아 ‘최고수’라 불리는 사형수들은 그 명칭부터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사상범이 사형선고를 받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살인범이다. 더구나 언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모를 운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형수들이 하나같이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에 묶여 있지만 그들 역시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작은 일에 울고 웃고 감동하고, 후배가 들어오면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문 앞에 붙어 있는 빨간딱지만 아니라면 사형수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들을 변화시키는 데는 종교의 힘이 크다.

    “처음엔 누구랄 것 없이 사회에 대한 적의로 가득하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면 이내 마음을 엽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죠. 사형수나 우리나 똑같이 죄많은 인간이니까요.”

    사형선고를 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대개 가정생활부터 평탄하지 못하다. 그들은 사람의 진심어린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세상을 증오하며 살아왔다. 구치소에 갓 들어온 사형수는 대개 살기를 번뜩인다. 하지만 차츰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이나마 애써 부여잡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사형수 가운데 자살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만 봐도 그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성정이 달라진 사형수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요.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해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국가는 이들에게 기어이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이신부는 사형수 문제에도 우선 종교적으로 접근한다.

    “누가 뭐래도 생명만큼 소중한 게 없습니다. 종교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바로 그 생명입니다. 그러니 생명을 저버리는 것은 종교의 도리가 아니죠.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의 인생까지 포기해가며 남의 삶을 망치려 하진 않았을 겁니다.”

    종신형이 더 무거운 벌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명동 천주교회관 3층 사회 교정사목위원회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이영우 신부

    사형제 폐지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여론’이라는 실체 없는 허상이다. 국회 법사위가 지난해 6월 사형제 폐지 특별법 소위원회만 구성하고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명분도 “국민들이 아직 사형제 폐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신부는 “여론도 좋지만, 어떤 관점의 여론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반인들은 무기형을 불신하는 것 같아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도 10년 정도만 살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소한 흉악범이 다시 사회를 어지럽히지 않을까 걱정하지요. 물론 흉악범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게 국민정서겠죠. 그렇다면 우선 종신형제를 도입하고 20년 이상 수감자에게만 감형을 거론하는 법체계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를 폐지하면 법체계가 무너진다고 오해하는 것도 종신형제에 대한 홍보가 덜 됐기 때문이라고 봐요.”

    프랑스도 여론을 따라 사형제를 없앤 것은 아니다. 여론은 오히려 사형제 존속에 손을 들어줬지만, 미테랑 전 대통령은 신념에 따라 사형제를 폐지했다. 그후 결과는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국민의 찬사가 이어졌다.

    강력범죄에 대한 예방책으로 가장 먼저 사형제가 거론된다. 사형제가 없다면 ‘사람을 죽여도 살인자는 살아남는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신부의 견해는 다르다.

    “사형제가 범죄억제 효과를 낸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가정입니다. 그런데도 맹신에 가까울 만큼 자주 거론돼요. 100여 개 국가에서 사형제를 없앴는데, 과연 강력 범죄가 증가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범죄예방 효과는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혀서 죄값을 받는다’는 사회적 조건입니다. 이건 범죄수사의 수준을 어떻게 높이냐에 달려 있어요.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완전범죄를 꿈꾸며 사람을 해치기까지 하죠. 흉악범을 사형시킨다고 범죄가 줄어들진 않아요. 사형제가 범죄를 억제한다면 아예 공개처형을 하는 게 낫겠죠.”

    인륜을 저버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 종신형은 죄값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신부는 펄쩍 뛴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오히려 사형보다 더 잔인한 형벌일 수 있다”는 것.

    이신부는 사형제도가 있기 때문에 범죄자가 회개를 하고, 종신형제를 도입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도 일축했다.

    “사형수들은 죽음에 임박했기 때문에 죄를 뉘우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인간 대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뉘우치는 겁니다. 비용 얘기도 그래요. 종신형제보다 사형제가 더 고비용일 수 있습니다. 미결수인 사형수들은 일은 안 하면서 몇 년씩 놀고먹습니다. 하지만 종신형을 사는 죄수는 평생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비용문제가 사형제 폐지론의 본질은 아니지만….”

    이신부와 얘기는 나누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교정사목위원회를 방문했다. 올 초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신부는 예비신부들에게 교정사목이 당면한 과제를 설명했다.

    “죄인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누군가가 꼭 돌봐야 할 우리의 형제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구치소 세 곳과 교도소 두 곳, 소년원과 분류심사원에서 사목활동을 합니다. 재소자 교화사업, 출소자 재활사업, 교도행정과 재소자 인권개선, 민영교도소 추진, 사형제도 폐지 등이 우리 임무입니다.”

    사회사목은 농촌, 도시 빈민, 노동자, 알코올 중독자 등을 돌본다. 주일에 일반 교인들을 챙기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특수사목’이라 통칭한다.

    이신부도 신부가 된 후 서울 변두리 지역을 돌며 7년을 보내다 선배 신부의 인도로 교정사목의 길에 들어섰다. 신학대학 시절 밀알노동사목연구회에서 농촌 봉사활동과 도시 빈민 체험을 한 것이 특수사목으로 진로를 바꾼 계기다.

    사형제도에 대한 회의론은 1764년 이탈리아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처음 제기됐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 폐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1989년 이상혁 변호사가 사형제 폐지협의회를 만들어 변호사,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부터.

    하지만 광복 이후 서대문형무소를 오가며 재소자와 사형수의 인권을 위해 음지에서 애쓴 이도 적지 않다.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김자선씨(고 김홍섭 판사의 부인)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형무소를 오가며 사형수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 겨우 13년 전에야 사형제 폐지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군사독재정권의 사상탄압 때문이다.

    “1987년 이전에는 누구도 감히 사형제도를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한때는 89개 법률에서 사형선고가 가능했던 살벌한 사회였죠. ‘빨갱이’를 처단하겠다는데, 사형제를 반대한다면 그건 곧 이적행위니까요. 정권을 유지하는 방편으로도 악용됐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그 예죠. 사형은 언제나 악용될 소지가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선 1945년부터 1999년까지 634명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살인율(인구 10만명 당 살인건수)’이 한국과 비슷한 일본보다 사형 집행 건수가 30% 가량 더 많은 것은 한국이 분단상태인 데다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 살인범 외에 사상범, 정치범에 대한 사형 집행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당수 법학자들은 사형이 적용되는 법률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적인 법체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래의 사형수는 다 흉악범들이다. 사상범은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세상이 또 바뀌면 집권자들이 정권 수호 차원에서 써먹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사형폐지운동은 완전 폐지와 단계적 폐지의 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완전 폐지는 당장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사형제도를 ‘사형’시키거나 헌법소원을 통해 위헌판결을 받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법은 15대에 이어 16대 국회에서도 표류하고 있고, 1993년 이상혁 변호사가 사형수와 함께 낸 헌법소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6년에 위헌소송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현재로서는 합헌이지만 앞으로는 존폐를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판결에서 두 명의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냈다.

    단계적 폐지의 방법으로는 적극적인 감형운동, 사형 범죄의 종류와 수를 줄이고 사형 구형과 선고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나가는 것 등이 있다. 재심사유를 확대해 억울한 사형수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형제,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

    “사형수들은 대부분 가난합니다. 그래서 법적인 도움을 못받는 경우가 많아요.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패륜 대학교수가 갖가지 법적 수단을 동원해 사형을 면한 것과는 대조적이죠.”

    그래서 이신부는 사형폐지운동 초창기부터 변호사들과 함께 흉악범과 패륜범 사건에 적극 개입했다. 존속살해로 사형선고가 예상됐던 이모씨의 경우 그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데 초점을 맞춰 무기징역형을 이끌어냈다.

    사형수는 약자다. 한때 누군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국가가 사형을 명령한 순간부터 그는 언제 죽여도 괜찮은 존재가 된다. 더욱이 그들 대부분은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기 때문에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돌봐줄 이 하나 없이 고립된다.

    사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한다는 게 사형폐지론의 가장 큰 전제다. 또 법관이 신이 아닌 이상 늘 오심(誤審)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사형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이라는 게 이신부의 지적이다.

    “사형수들의 재심청구는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에서 보듯, 단지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또 다른 한 인간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습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면 종신형제를 도입해 좀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둬야 합니다.”

    사회는 한 개인에게 너무도 쉽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범죄가 한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사회구조가 죄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통감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네 인간성이 잘못됐으니 너를 없애야겠다’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게 죄인을 제거하고 우리는 마치 죄에서 자유로운 인간인 척 행동하는 게 옳은 태도일까요?”

    이신부는 1997년 사형이 집행된 김모씨 얘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자라 교육은커녕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건강도 좋지 않은 데다 시력이 아주 나빠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세상을 증오하며 여의도광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두 명의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된 그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다른 미결수들의 발을 씻어주는가 하면 무더운 여름밤에는 동료 수감자들이 잠들 때까지 부채질을 해줬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사형수들과 사형폐지운동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후보가 천주교 신자인 데다, 평소 사형폐지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김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은 사형 집행이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까. 1998년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둔 12월30일, 무려 23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김씨는 사형 집행장에서 소리내 흐느끼는 종교위원들을 오히려 달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

    이신부는 “사형수들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이 싸늘하기만 한 것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순간의 이미지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인들은 사형수들의 변화된 모습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 격분한 나머지 ‘그런 놈은 죽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어쩌다 생각이 나도 ‘이미 죽었겠지’ 하고 지나칩니다. 사건 이후 그들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변화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면 누구라도 사형폐지에 동의할 겁니다.”

    사형폐지운동을 벌이는 과정에 누구보다 부담스럽고 그래서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들은 바로 피해자 가족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계속 기도하지만, 그분들의 아픔은 좀체 가라앉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이 내 옆에 살아 있다는 게 견딜 수 없다’고도 합니다. 당연한 얘기죠. 하지만 살인자를 죽인다고 분노가 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용서하면 홀가분해지지 않을까요? 비록 내 가족을 죽인 원수지만, 그를 가족으로 삼고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91년 여의도 차량질주사건 때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사형선고를 받은 범인 김씨를 양아들로 삼고 매일 면회 왔다. 할머니는 “한(恨)을 품고 살아봐야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는 솔라스(Solas)라는 범죄피해자모임이 있다. 그들도 사형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다. 슬픔과 미움은 대물림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그런 감정에 빠져 있으면 자녀들도 어두운 분위기에서 자라 한과 증오를 물려받게 된다는 것. 솔라스 회원들은 범죄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가장 커다란 사랑의 실천이고, 스스로도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신부가 1997년 11월 교정사목 발령을 받은 지 한 달 후에 사형수 23명에게 형이 집행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신부는 집행장에 가지 못하고, 대신 선임 신부가 그들이 가는 광경을 지켜봤다.

    “사형 집행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끔찍한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몇 년 동안 함께 웃고 울며 지낸 사람들의 생명을 끊는 장면을 지켜본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 역시 몇 십년이 지나도 죽은 사형수의 이름과 수번을 기억할 만큼 충격이 크다고 합니다. 법무부장관이야 집무실에 앉아서 집행서류에 서명하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장관이 직접 사형수들의 변한 모습이나 집행 광경을 보면 절대 집행 지시를 내릴 수 없을 거예요.

    어쨌든 그후로는 사형 집행이 없었으니 저는 아직까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제가 돌봐야 할 사형수들이 지금도 저와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사형폐지운동에 매달릴 생각입니다.”

    ‘재고정리’ 집행 막아야

    사형제도에 대해 차기 대선 주자들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이미 공개적으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했고, 정몽준 후보는 지난해 사형폐지 특별법을 처음 발의할 때부터 서명에 동참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명확하게 소신을 밝히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특별법 서명에 상대적으로 덜 참여했지만, 이회창 후보가 천주교 신자라는 점에서 종교계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신부는 늘 교도소를 드나들며 재소자와 출소자를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구금시설 사정에 누구보다 훤하다. 그는 “요즘은 교도소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감옥이 결코 편한 공간은 못되고 의료지원도 부족하지만, 교도소측이 수감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교도관들은 재소자에게 높임말을 쓰며, 최근에는 TV와 선풍기도 들여놨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도소는 재소자를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듭니다. 문도 다른 사람이 열어주고 밥도 다른 사람이 퍼줍니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권하지 않아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도 많죠. 이 때문에 오직 지시만 따르는 수동적인 태도가 몸에 배야 하는데, 여기에 적응하면 교도소 안에서는 잘 지내겠지만 바깥에 나가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후원금을 모아 출소자를 위한 평화의 집과 나눔의 집을 만들었다. 기숙사식 쉼터로 꾸며 남·여 젊은이들과 무의탁 어르신들을 받아들여 재교육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꾸려간다. 이신부도 평화의 집에 살면서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신부는 벨기에와 이탈리아를 방문하기 위해 10월7일 한국을 떠났다. 민영교도소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민영교도소 설립에는 50억원 이상이 소요돼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보이지만, 국가를 대신해 작고 이상적인 교도소를 만들어 운영해보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민영교도소가 미래의 목표라면 당장 올해의 목표는 정권교체기의 사형 집행을 막는 것이다.

    “사형수가 늘어나면서 법무부가 적잖이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입니다.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에도 차기 정부를 고려해 23명을 사형시킨 것 아닙니까. 일종의 ‘재고정리’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언제 집행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들에게 공개질의를 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집행을 막아야지요. 종교의 바탕은 생명입니다. 하느님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생명이 생명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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