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가벼운 책 읽기’를 위한 변명

  • 글: 황정민 KBS아나운서 energy71@dreamwiz.com

    입력2002-11-05 17: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벼운 책 읽기’를 위한 변명
    연극 ‘TV동화 행복한 세상’/사진제공 정동극장처음 원고 청탁을 받고 돌덩이를 삼킨 것처럼 불편했다. ‘신동아’류의 시사지들이 갖는 어렵고 딱딱한 느낌이 말할 수 없이 무겁게 다가왔다. 뚝심있게 “못 쓰겠습니다”를 되풀이하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이 ‘독서일기’란 지면에 어떤 글을 썼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리라. 일종의 커닝인 셈이다. 예상대로 내가 손댄 적 없는 분야의 책들이 목록에 올라 있었다. 한결같이 이름만 들어본 책들이었다. 감은 잡히지 않고 ‘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운 책들을 읽으며 살아가고 있구나. 이렇게 딱딱한 책들은 내 취향이 아닌데’하는 공포감만 몰려왔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캄캄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막가파’식 돌파였다. 어려운 책 골라서 아는 척 흉내내봐야 금방 탄로날 테고, 캄캄한 길을 헤매다보면 그 길이 또 그 나름대로 지도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므로 천박하지만 즐거운 독서일기를 날것 그대로 공개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책 읽기라는 ‘행복한 집착’

    서점에 가서 책들을 보면 우선 욕심이 생겼다. 서점 판매대에 남겨둔 책은 항상 아쉽고 그리웠다. 집에 들고 왔다 해도 한 번 보고 던져버릴 게 분명하지만, 꼭 방안 책꽂이에 꽂아야 마음이 흡족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책이 쏟아지는지. 예쁜 자태로 유혹하는 책은 또 얼마나 많은지. 급기야 무슨 강박증 같은 것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날아오는 공을 계속 받아쳐야 하는 게임 속 주인공처럼 필사적으로 책을 찾았다. 뛰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기는 듯한 책읽기는 계속됐다.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시간도 많았고,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괜찮은 남자 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시간을 바쳐 독서에 몰두했다. 행복한 집착이었다.

    돌아보면 ‘허기’ 때문이었다. 지적인 허기. 늘 배고팠다. 무언가로 머리를 채우지 않으면 뇌가 텅텅 비어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 머리 뚜껑을 열어 보고 “어, 안이 텅 비었네”라고 소리칠까봐 두려웠다. 복잡다단했던 시간들을 거쳐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는 양파처럼 매일 체력과 지력과 의지가 소진되는 생활 속에서 무언가로 속을 채워가지 않으면 언젠가 수렁으로 빠져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소화가 되든 말든 꾸역꾸역 채워나가야 했다. 내용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거나 음미할 사이도 없이 읽고 또 읽었다. “베스트셀러를 읽어야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비웃으면서도,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베스트셀러에 먼저 손이 가곤 했다.

    탐독의 대상, 무라카미 하루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서 균형을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과식에 편식이 뒤따랐다. 탐독 1순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었다.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비롯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주위, 특히 남성들의 평가는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하는 식이었지만, 유독 끌리는 작가였다. 하루키의 나른함과 게으름이 좋았다. 현실에서 바쁘고 지친 마음을 그에게서 위로받고 싶었다. 특별히 분주한 것 같지 않은 주인공이 집에 돌아와 혼자 느긋하게 자기의 일상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에 나까지 편해지곤 했다. 자리에 누워서도 회사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아직도 한낮의 뜨거움으로 달아오르는 나에 비해 그는 늘 서늘하고 관조적이다. 집착하지 않고 늘 평온하다.

    그에게선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세상에 싣고 싶어하는 나와는 정반대다. 정반대 성격인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지만, 하루키의 생활상을 소개한 인터뷰를 보고 나는 그를 닮아가기에 열중했던 적도 있다.

    마라톤을 열심히 한다는 그의 말에 한동안 마라톤도 해보고 그를 만나면 좋아한다는 한마디라도 해야겠기에 일본어도 배웠다. 가장 탐나는 자리는 그의 아내 자리였다.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 다니며 글을 쓰는 그의 곁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가벼운 책 읽기’를 위한 변명
    하루키가 조금 물러난 틈은 아웃사이더를 다룬 소설들이 차지했다. 최윤의 ‘속삭임, 속삭임.’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세상을 향해 목청껏 소리지르고 있는 이 마당에 속삭임이라니. 무심한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지나칠 것이고 조금 예민한 사람이나 겨우 눈길을 줄 텐데.

    호수, 과수원, 시골집으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회상은 어린 시절 자신의 시골집에서 과수원지기로 일하던 아재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남로당 열성 간부였던 아재비가 작은 시골에 정착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 그는 반공 포로가 아니라 도망자였다. 신원이 불분명한 그의 바람막이가 되어준 아버지와 아재비의 속삭임. 어린 송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속삭임까지도 송이는 함께 받아들였다.

    유년시절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 아재비의 모습에서 일종의 의리를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묵직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늘고 연약한 속삭임이기에 더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김형경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엔 어떠한 기준도 제시돼 있지 않다. 빈틈없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 세진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능력을 인정받지만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한 고립된 섬이다.

    내가 세진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매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도 나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들어서 쓰러질 상황에 처해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도움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부족한 것 없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임에도 콤플렉스 덩어리다.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높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아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녀가 스쳐가듯 느끼는 외로움도 그렇다. 외로운 건 두렵지 않다. 사실 바쁘게 살다보면 외로움을 느낄 시간도 없다. 하지만 가끔 아주 우연히 칼날처럼 스치는 외로움에 대한 무서움은 그녀도 나도 견디기 힘든 부분이다. 결핍에 대한 이해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이렇게 글을 통해 아웃사이더들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위로나 따뜻한 격려가 되기도 한다.

    강박적인 책 수집벽에 대한 自省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강박적인 책 수집과 가벼운 책 읽기는 계속됐다. 뉴스를 진행하고 라디오DJ를 하면서 이야기 꾸러미를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분야의 책에 손을 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생방송이 있고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이것저것 해야 하는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권우의 책 좀 읽자’ 코너에 소개되는 책을 허덕허덕 읽을 뿐이다. 최근 책에 관해 두 가지 결단을 내렸다.

    우선 강박적인 책 수집은 ‘도서관 기증’으로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학교에 책을 보내기로 하고 서가에 꽂힌 책을 하나하나 박스에 넣으면서 살펴보니 반은 내가 좋아하는 책이고 반은 내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책의 종류도 경제원론에서 정치입문서까지 다양했다. 그런 책일수록 앞부분만 새카맣게 손때가 묻어 있다. 내용이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책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소유하지는 못했다’는 아픈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가벼운 책 읽기에 대한 부담감, 또는 자책감은 ‘무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간혹 “조금 깊이 있는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어?”라고 부드럽게 충고하는 이웃이 있지만 어려운 책들은 여전히 내게 독서의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잠자리에 누운 뒤 저자의 서문이나 누군가의 추천 글을 읽을 때의 설렘은 여전하다. 무작정 책을 사고 보는 습벽도 다 버리지 못했다. 새로 산 책은 머리맡에 두고 종이 냄새를 맡는다.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 책의 기운들을 느끼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쓰다듬고 더듬기만 해도 마음은 벌써 배부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