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5일 근무시대가 활짝 열리려 한다.
-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보자. 이맘때면 산도 좋고 바다도 좋다. 늦가을 정취를 실컷 맛볼 수 있는 곳을 꼼꼼히 취재했다.
방태산자연휴양림의 산림문화휴양관
산자락이 높고 험준한 곳은 골짜기가 깊고 길게 마련이고, 숲이 울창하면 계류의 수량은 사시사철 풍부하다. 이곳에도 대골, 적가리골, 지당골 등의 이름난 계곡 이외에 무명의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다. 이들 골짜기 가운데 맏형 격은 적가리골. 옛날부터 연가리, 명지가리, 아침가리, 달둔, 살둔, 월둔과 함께 이른바 ‘삼둔사가리’의 비장처(秘藏處; 난리를 피해 숨어 살 만한 곳)로 알려진 오지다.
적가리골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에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개장된 뒤부터다. 그 이전부터 개설돼 있던 임도(林道)를 다듬고, 풍광 좋은 물가에는 산림문화휴양관(복합산막), 야영장, 정자, 나무다리 등의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특히 이곳의 유일한 숙박시설인 산림문화휴양관은 웬만한 콘도를 능가할 정도로 내부구조와 시설이 좋다. 게다가 객실 앞쪽에는 커다란 통유리 창문이 설치돼 커튼만 열어젖히면 깨끗한 원시림이 통째로 방안까지 들어온다.
적가리골의 비경은 방태산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면서부터 하나둘 자태를 드러낸다. 산림문화휴양관 바로 앞쪽의 물가에는 곱게 물든 단풍과 나지막한 폭포와 소(沼)가 한데 어우러진 마당바위가 있고, 여기서 비포장 찻길을 따라 400m쯤 더 올라가면 적가리골 최고의 절경인 이단폭포(일명 이폭포저폭포)가 나타난다. 높이가 각기 10m에 이르는 두 폭포 주변에는 단풍나무를 비롯한 각종 활엽수들이 빼곡이 둘러쳐 매혹적인 가을 풍광을 연출한다.
이단폭포 위쪽으로도 찻길은 계속 이어진다. 원색의 단풍잎이 둥둥 떠가는 물길 위에는 작은 나무다리가 하나 걸려 있어 동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다리를 건넌 뒤 조금 더 오르면 찻길은 끊기고 호젓한 등산로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올라가도 아쉬움은 없지만, 방태산의 속내를 더 보고 싶거든 정상까지 등산을 시도해볼 만하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4㎞이며 왕복하는 데에는 4~5시간이 소요된다.
그밖에도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위치한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는 탄산철분약수인 방동약수가 있다. 그리고 방동리에서 418번 지방도를 따라 방대천 상류쪽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대의 원시림으로 꼽히는 점봉산 진동계곡에 이른다. 몸통 지름이 1~2m가 넘는 신갈나무를 비롯해 전나무, 단풍나무, 떡갈나무, 피나무 등 각종 활엽수가 밀림을 이루는 이곳은 ‘마지막 처녀림’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33)
※여행 적기: 10월 중·하순(절정의 단풍을 보려면 10월 중순, 만추의 정취를 느끼려면 10월 하순 이후가 좋다.)
▷숙식
방태산자연휴양림(463-8590)의 숙박시설로는 복합산막인 산림문화휴양관(총 8실)뿐이다. 여느 자연휴양림과는 달리, 단독형 통나무집이 하나도 없다. 더욱이 요즘은 인터넷(www.huyang.go. kr)을 통해 예약을 받기 때문에 주말에는 객실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럴 경우 휴양림 입구의 대골마을에 있는 왕솔농원민박(463-5947), 방태산쉼터(463-5433), 산촌민박(463-1930) 등을 이용하면 된다. 진동계곡 들어가는 길가에도 ‘언덕 위에 하얀집’(463-2161), ‘하늘밭 화실’(463-9975) 등 근사한 민박집이 여럿 있다. 맛집으로는 방동리 직전의 큰길가에 자리잡은 두부 전문점인 고향집(461-7391)이 권할 만하다. 이 집 두부 맛은 지금껏 필자가 먹어본 것 중에서 최고였다.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속사IC(31번 국도)→운두령→현리(우회전, 418번 지방도)→방동→방태산자연휴양림
② 서울→양평(44번 국도)→홍천→철정검문소(우회전, 451번 지방도)→상남(31번 국도)→현리→방태산자연휴양림
아부오름 분화구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느 소떼.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하다.
이들 오름은 대체로 비고(比高·실제 등산하는 높이)가 낮아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수많은 오름과 멀리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좋다. 또한 오름 기슭과 오름 주변의 광활한 초원지대에는 억새와 들꽃이 무성하다. 사실 제주도의 가을은 억새의 흔들림과 함께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줄기 가녀린 바람에도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억새꽃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선다. 아무리 모진 바람에 시달려도 억새꽃은 다시 일어선다. 어찌 보면 짓밟히고 억눌릴수록 더 굳세지는 제주 사람들의 강인한 끈기와 생명력을 고스란히 닮았다.
동부 중산간지대의 여러 오름 가운데 가볼 만한 곳이라면 아부오름(301m)이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이 오름은 송당리 건영목장 정문 옆에 솟아 있는데, 비고가 30~50m에 불과해서 오르기가 아주 수월하다. 게다가 78m의 깊이로 움푹 팬 분화구 정상에 올라서면 송당리 일대의 여러 오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장쾌한 풍광에는 아무리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감탄사를 절로 연발한다. 그밖에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오름(월랑봉·382m)과 그 동생 격인 아끈다랑쉬(198m),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는 용눈이오름(248m)도 오름의 독특한 풍정에 매료된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오름과 억새밭과 목장이 밀집한 동부 중산간지대에는 여러 갈래의 찻길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어느 길을 타도 제주도만의 독특한 가을 풍광과 정취를 만날 수 있다. 특히 1112번 지방도의 교래~송당, 동부산업도로(97번 지방도)의 대천동~성읍, 16번 국도의 송당~수산, 1119번 지방도의 성읍~수산 구간의 가을 풍경은 가위 환상적이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64)
※여행 적기: 10월 중순~11월 초순(억새의 은빛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시기다. 11월 중순에 들어서면 모든 씨앗을 바람에 날려보낸 억새는 앙상한 줄기만 드러낸 채 겨울을 준비한다.)
▷숙식
제주도 동부의 오름 밀집지대에는 편의시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랑터울(교래리, 782-0102), 명송리조트(송당리, 784-4931) 등의 펜션(Pension; 고급민박)이 있어서 숙식을 해결하기가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송당리 대천동에서 동부산업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8㎞쯤 가면 성읍민속마을이다. 이곳에는 늘푸른레저타운(787-2343)을 포함해 민박집이 여럿 있으며, 옛정의골(787-0934), 괸당네(787-1905) 등의 음식점에서는 흑돼지구이를 비롯한 제주도의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는 길
① 제주시(11번 국도)→견월악 삼거리(1112번 지방도)→교래(산굼부리)→대천동 사거리→건영목장 입구→송당리
② 제주시(16번 국도)→송당리→용눈이오름 입구(상도리 공동목장)→성읍 민속마을
미륵리 절터의 석불입상
이 길이 지나는 금성면 성내리 충주호 호반에는 드라마 의 야외 세트가 있다. 고려 초기의 국제무역항인 개성 벽란도 포구를 재현했다는 이 세트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제천시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야외 세트를 지나면 곧 청풍교가 나타나고, 이 다리를 건너면 전망 좋은 산중턱에 옛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선 청풍문화재단지(043-647-7003)에 이른다. 충주댐 건설로 제자리를 잃어버린 옛 관아와 민가, 고인돌과 비석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이다. 그중에는 보물 제528호와 제546호로 지정된 한벽루, 석조여래입상 같은 문화재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은 밥주걱, 삼태기, 디딜방아, 지게 등의 생활도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민가들이다. 갖가지 생활도구가 놓인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노라면 주인 되는 이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며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다시 수산면 삼거리를 거쳐 30㎞쯤 더 가면 월악산 초입의 월악선착장에 당도한다. 여기서 왼쪽의 579번 지방도로 들어서면 월악산 품에 깃든 송계계곡, 덕주사, 미륵사지 등이 연이어 나타난다. 가을빛이 무르익어 가는 이맘때쯤이면 깨끗한 너럭바위 위로 유리처럼 투명한 계류가 흐르는 송계계곡과 오색단풍으로 치장한 월악산 자락의 풍광이 눈부시게 화사하다. 천혜의 자연풍광뿐만 아니라 사자빈신사터의 사사자석탑(보물 제94호), 덕주산성, 덕주사 마애불(보물 제406호), 미륵리 절터(사적 제317호), 계립령(지릅재), 하늘재 등의 역사유적도 인상적이다. 특히 미륵리 절터는 일부러라도 들러볼 만하다.
원래 이 절터에는 미륵대원(彌勒大院)이라는 석굴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우(堂宇)는 모두 사라지고 석불입상(보물 제96호),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삼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돌거북 등의 석물(石物)만 남아 있어 당대의 영화(榮華)를 짐작케 한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석불입상이다. 네 개의 커다란 화강석으로 이루어진 이 석불은 높이가 10.6m에 이르는데, 자비로움이 만면에 가득하여 보는 이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더구나 돌옷으로 뒤덮인 몸체와는 달리 조성될 당시의 질감과 색깔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상호(相好)가 자못 신비로운 까닭에 예불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43)
※여행 적기: 10월 하순(충주호 주변의 산자락과 월악산, 송계계곡 일대의 단풍은 10월20~30일에 가장 보기 좋다.)
▷숙식
청풍문화재단지 근처의 충주호 호반에는 국민연금청풍리조트(640-7000), 뉴월드장(652-3843), 금수산모텔(651-5233)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그리고 청풍문화재단지 인근에는 민물고기매운탕과 올갱이(다슬기)국을 주메뉴로 내는 문화식당(647-0883), 팔영루(647-2643), 청풍루(652-4200) 등의 음식점이 있다. 송계계곡 부근에 위치한 월악산장휴게소(651-5615)와 미륵사지 입구의 미륵가든(848-6612)도 산채백반, 토종닭백숙, 버섯전골 등을 맛있게 내는 집이다.
송계계곡과 덕주사 초입에는 덕주골산장(653-8352), 월송민박(651-6476), 자연산천민박(651-3324) 등의 민박집 이외에는 숙박시설이 별로 없다. 그러나 미륵리 절터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수안보온천에는 수안보파크호텔(846-2331), 수안보와이키키호텔(846-3333), 수안보한화콘도(846-8211) 등 숙박업소가 많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82번 지방도)→청풍문화재단지→수산 삼거리(36번 국도)→월악선착장(597번 지방도)→송계계곡→미륵리 절터
화림동 제일의 절경으로 꼽히는 농월정
통일신라 말기인 진성여왕 때에 함양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함양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위천이 자주 범람해 백성들의 고통이 적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둑을 쌓게 하여 위천 물길을 돌린 다음 새로 쌓은 둑을 따라서 나무를 심게 했다. 이것이 퍼져 이루어진 숲이 상림인데, 원래는 대관림(大館林)이라 불렸다. 그 이후에 대홍수로 인해 둑 중간이 잘려나가자 그 틈으로 민가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상·하림으로 나뉘었다. 그러다가 하림은 없어지고 오늘날의 상림만 남게 된 것이다.
그 역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인지 상림은 인공림이면서도 웬만한 천연림보다도 더 천연스럽다. 아름드리 활엽수가 울창한 숲에는 흙 냄새 짙은 오솔길과 맑은 물이 쉼 없이 지즐대는 실개천이 길게 뻗어 있어 사시사철 언제나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특히 꽃잎처럼 곱고 화사한 단풍잎이 소슬해진 갈바람에 우수수 흩날리는 늦가을의 정경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이 숲에 앉아 있다보면 다시 길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좀체 들지 않는다. 수백 년 동안 붙박이로 살아온 나무들처럼 눌러앉고 싶어진다.
상림 앞으로 1001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이 도로와 37번 지방도를 번갈아 타고 조금만 달리면 백운산(1278m)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백전면 백운리를 지나게 된다. 집 근처는 물론이고 산비탈과 밭 주변에도 감나무가 지천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아스라이 보이는 지리산 정상 부근이 희끗희끗해질 무렵이면 감을 따고 말리느라 몹시 분주해진다. 처마 아래에는 먹음직스런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낮은 슬레이트지붕과 돌담에는 감 껍질을 말리는 채반이 즐비하게 올려져 있다. 고향에서의 아득한 추억을 새록새록 되살리게 하는 풍경이다.
37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달리면 백운산과 괘관산 사이의 고갯길을 하나 넘어선 뒤 마침내 화림동계곡의 깨끗한 물길을 만난다. 함양군 안의면과 서상면에 걸쳐 있는 화림동계곡은 경호강 상류인데, 예로부터 물 맑고 풍광 좋은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팔담팔정(八潭八亭)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 계곡의 물가에는 지금까지도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등의 여러 정자가 남아 있다. 산수(山水) 좋은 곳만 찾아다니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면서 풍류를 즐기던 옛 시인묵객들이 남긴 자취들이다.
화림동 여러 정자 중에서도 농월정 부근의 풍광이 가장 빼어나다. 정자 앞으로 넓게 펼쳐진 반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살은 소리조차 시원스럽고, 정자 뒤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솔숲은 한 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를 보는 듯하다. 여독으로 노곤해진 심신을 잠시 의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탁족(濯足)을 즐기며 더위를 물리치기도 하고, 보름달 두둥실 떠오르는 밤이면 정자에 올라 반석에 비친 달빛을 희롱하였다고 전해온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55)
※여행 적기: 10월 하순~11월 초순
▷숙식
상림 부근에는 상림장(963-1170), 산해장(963-1500), 별궁장(963-7980)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화림동계곡에도 농월장여관(963-1936), 동호모텔(964-1738), 새들촌모텔(964-0656) 등이 있다. 맛집으로는 함양읍내의 우대회관(숯불갈비, 962-3300), 동호정 옆의 동호정식당(메기찜, 962-9346), 농월정 인근 안의면에 위치한 삼일식당(갈비찜·갈비탕, 962-4492)을 추천할 만하다.
△가는 길
88고속도로 함양IC→함양읍→상림
선운산 낙조대에서 내려다본 도솔암
철철이 신록과 녹음과 단풍으로 변화무쌍하게 치장되는 선운사 숲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우람한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선운사 초입의 숲길은 내장사 입구의 단풍터널과 쌍벽을 이루는 단풍 명소다. 하지만 이곳 단풍은 화려한 내장사의 그것과는 달리, 그윽하고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선운산 기슭에 자리잡은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설에 따르면, 검단선사가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던 신라의 의운국사와 협력하여 신라 진흥왕의 시주를 받아서 창건했다고도 한다.
절을 창건할 당시에 선운산의 진흥굴과 용문굴, 서해의 칠산바다에는 산적과 해적이 들끓어 양민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운사를 세운 검단선사는 그들을 교화하여 도둑질을 그만두게 하고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서 생계를 꾸려가게 했다. 양민이 되어 소금을 구우며 생계를 꾸리던 그들은 해마다 봄과 가을 두 차례씩 ‘보은염’이라는 이름의 소금을 선운사에 보냈다. 실제로 해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창 일대의 염전에서는 선운사에 소금을 보냈다고 한다.
한창 번창하던 시절의 선운사는 8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3000명의 승려가 머무르던 대찰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4개의 암자와 본절 경내에 천왕문, 만세루, 대웅전, 영산전 등 10여 동의 당우를 거느릴 만큼 사세(寺勢)가 위축되었다. 그렇다 해도 절집의 전체 규모는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 적당하며,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초라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절집다운, 그윽하면서도 조용한 정취가 오롯이 살아 있는 고찰이다.
천년고찰 선운사를 품은 선운산(355m)은 도솔산으로도 불린다.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많아서 옛날부터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풍광이 빼어난 산이다. 게다가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등과 같은 절경이 곳곳에 있다. 산세도 별로 험하지 않아서 남녀노소 모두 쉽게 오를 수 있는데, 사람들은 도솔암과 용문굴을 거쳐 낙조대에 올랐다가 곧장 도솔암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가장 즐겨 찾는다. 이 코스의 산행시간은 3~4시간이면 충분하고 선운산 일대의 대표적인 역사유적과 자연풍광을 모두 섭렵할 수 있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63)
※여행 적기: 10월 하순~11월 초순(선운사 초입에 늘어선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단풍나무의 단풍이 절정이 이르는 시기다. 또한 그 즈음에는 선운산 자락의 울창한 숲도 온통 붉게 물든다.)
▷숙식
선운사 입구에는 ‘풍천장어’의 유명세를 앞세운 장어요리 전문점이 40여 군데나 있다. 그중 선운사 초입의 삼거리에 위치한 신덕식당(564-1533)과 연기식당(562-1537), 선운사 상가단지에 있는 동백식당(562-1560) 등이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 숙박업소로는 산새도관광호텔(561-0204), 동백호텔(562-1560), 선운장모텔(561-2035) 등이 있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22번 국도)→흥덕→선운사
소쇄원의 만추. 앞쪽 건물이 소쇄원 중심에 자리잡은 광풍각이고, 뒤쪽 건물은 사랑채와 서재를 겸한 제월당이다.
담양 땅에 산재한 원림과 정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은 남면 지곡리에 있는 소쇄원(瀟灑園, 사적 제304호)이다. 우리나라 전통원림의 백미로 꼽히는 소쇄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완벽하게 구현돼 있다는 점이다. 온갖 기교와 욕심을 부려 만든 게 아니라 자연경관을 한껏 끌어안은 터에 적당한 규모의 건물만 들여앉혔다. 꼭 필요한 길과 다리도 자연 그대로의 숲과 계곡을 해치지 않게끔 작고 소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곡류(五曲流)의 물길이 지나는 흙담 밑에는 널찍한 바위를 걸쳐놓아 계류가 자연 그대로 흘러들게 하였다. 더욱이 무르익은 가을날이면 아담한 정자와 작은 계곡과 오색 단풍의 조화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소쇄원에서 다시 큰길을 따라 광주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근래 완공된 가사문학관이 보이고, 이곳을 지나면 식영정(息影亭) 입구에 이른다. 지곡리 별뫼[星山]의 솔숲 언덕 위에 자리잡은 식영정은 송강정(松江亭), 환벽당(環碧堂)과 더불어 송강 정철(1536~93)의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다. 여기서 송강은 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성산별곡을 지었다. ‘자미탄’이라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가사문학관과 마주보는 언덕에 자리한 환벽당은 송강이 어린 시절에 학문을 익히던 곳이며,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솔숲에 위치한 송강정은 송강이 낙향했을 당시에 지은 정자다.
담양군 북쪽에는 높고 수려한 산이 많다. 예로부터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혀온 추월산(731m)도 그중 하나다. 이 산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석벽이 우뚝하고 철마다 풍광의 변화가 뚜렷하다. 게다가 산 아래에 담양호가 생겨난 뒤로는 수면에 드리워진 산영(山影)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추월산의 진면목을 보려면 담양호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금성산(603m)에 올라야 한다. 금성산 정상 부근의 암봉과 산허리에는 삼한시대에 처음 축조됐다는 금성산성이 있다. 튼실하게 축조된 성 자체도 볼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변 산자락과 들녘과 마을을 죄다 끌어안은 조망이 일품이다. 호수 건너편 추월산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멀리 광주 무등산과 광양 백운산까지도 아스라이 들어온다. 2㎞ 가량의 성벽은 지형에 따라 율동감 있게 오르내려 산책을 겸한 등산코스로도 아주 그만이다.
그밖에도 담양군에는 타관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풍경이 여럿 있다. 특히 담양읍내로 들고나는 국도변에 심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는 사시사철 다양한 풍광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담양읍내를 휘감아 도는 담양천변의 관방제숲(천연기념물 제366호)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그 자체만으로도 서정 넘치는 강둑에 울창한 숲까지 들어서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몇 아름씩이나 되는 우람한 나무들로만 숲을 이루고 있어 산책하기도 좋고 걸음을 멈추고 느긋하게 쉬어가기도 좋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61)
※여행 적기: 10월 하순~11월 초순(소쇄원을 비롯한 담양지방의 원림과 정자는 어느 때 찾아가도 운치 있지만, 단풍 곱게 물든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엔 10월 마지막 주나 11월 첫째 주가 적당하다.
▷숙식
소쇄원에서 2㎞쯤 떨어진 남면 소재지에는 럭키하우스(381-3312), 베스트모텔(383-8800)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담양읍내에도 파레스모텔(381-6363), 프라자모텔(381-0447) 등의 장급여관이 많다. 맛집으로는 담양읍내의 민속식당(죽순회, 381-2515), 신식당(떡갈비, 382-9901), 고서면 고읍리의 전통식당(한정식, 382-3111) 등이 유명하다. 그밖에 소쇄원 인근에는 최근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가는 길
88올림픽고속도로 담양IC(29번 국도)→고서면 원강삼거리(887번 지방도)→소쇄원
상고대가 하얗게 핀 안동 하회마을의 초겨울 아침
사실 하회마을은 새삼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하회마을에 가본 이는 많아도 그곳을 제대로 본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양진당, 충효당, 하동고택, 남촌댁, 북촌댁 등의 문화재급 고택들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고택들의 문화재적 가치를 간과할 순 없지만, 그것만 쫓다 보면 마을 곳곳에 스며 있는 소박한 멋과 독특한 정취는 보기 어렵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샅길이다. 낱낱의 건물보다도 이 고샅길을 한가로이 누비면서 느끼는 마을의 정취가 더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런데 가문의 위세와 집의 규모를 감안하면 육중한 돌담이 제격일 성싶지만 의외로 돌담은 거의 없고 흙담이 대종을 이룬다. 이는 마을 지세(地勢)가 행주형(行舟形)이어서 돌담을 쌓으면 무거워 가라앉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고 강물을 끌어다 쓰는 것도 역시 배에 구멍(우물)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회마을의 여러 절경 가운데 으뜸은 강 건너 부용대에서 보는 조망이다. 이 절벽 위에 올라서면 서로 얼싸안으며 산태극수태극을 이루는 물길과 산자락과 마을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또한 강촌(江村)인 이 마을에는 짙은 안개가 자주 깔리는데, 겨울철 안개는 풀과 나뭇가지마다 미세한 물방울이 얼어붙어 눈꽃처럼 하얀 상고대가 만발한다.
하회마을 이웃의 병산서원도 들러볼 만하다. 류성룡과 그의 아들 류진을 배향한 이곳은 서원 특유의 엄격함을 갖추고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공간 배치를 보여준다. 특히 널찍한 만대루의 누마루에서 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풍광은 시간을 까마득히 잊게 할 만큼 절승이다.
안동시와 인접한 영양군에도 옛 정취 그윽한 마을이 여럿 있다. 입암면 연당리도 바로 그런 마을 중 하나다. 고향처럼 아늑하고도 정겨운 마을 분위기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전범(典範)으로 꼽히는 서석지(瑞石池, 중요민속자료 제108호)가 눈길을 끈다. 더욱이 서석지 안에는 수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어서 가을철이면 가지마다 빼곡이 달린 샛노란 은행잎들이 화사하기 그지없다.
‘승무’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의 고향인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도 영양군의 대표적인 반촌이다. 흔히 ‘주실’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수많은 박사와 교수를 배출한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마을 곳곳에는 한양 조씨의 종가인 옥천종택(玉川宗宅)과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을 비롯하여 많은 고가들이 지금껏 남아 있어 마을의 깊은 유서(由緖)를 묵묵히 전해준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54)
※여행 적기: 연중(안동 하회마을이나 영양 주실마을 등의 반촌은 사시사철 어느 때 찾아가도 옛 정취가 그윽하다. 하지만 영양 서석지의 샛노란 은행나무 단풍은 10월20~30일에만 감상할 수 있다.)
▷숙식
안동에서 영양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임하호 호반에는 민박집으로 개방된 고택이 두 곳 있다. 임동면 수곡리의 수애당(822-6661 www.suaedang.com)과 지례리의 지례예술촌(822-2590)이 그곳이다. 특히 경상북도의 전통 생활체험장으로 지정된 수애당은 34번 국도에서 약 1㎞ 거리에 있어 찾아가기도 쉽다. 안동지방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는 헛제사밥을 들 수 있는데, 하회마을 초입의 옥류정(854-8844)이나 안동민속촌(안동댐)에 자리한 까치구멍집(821-1056)에 가면 제대로 차려낸 헛제사밥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안동 시내의 안동역 앞 골목길에는 최근 유명해진 안동찜닭의 원조집들이 즐비하고, 안동 최고의 한정식집으로 꼽히는 일원식당(854-3008)이 있다. 그밖에 영양 서석지 부근에는 선바위가든(숯불갈비, 682-7500), 대전식당(메기어죽, 682-4037) 등이 있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34번 국도)→풍산(916번 지방도)→하회마을→풍산(34번 국도)→안동→수곡교 삼거리(우회전)→수애당, 지례예술촌→수곡교 삼거리(34번 국도)→월전리 삼거리(좌회전, 31번 국도)→입암(좌회전, 911번 지방도)→연당리(서석지)→가곡리 삼거리(우회전, 918번 지방도)→주실마을
소매물도 본섬과 등대섬 사이의 몽돌해변.
소매물도는 본섬과 등대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이 2.5㎢쯤인 본섬에는 선착장과 현재 20여 가구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 있는데 마을 뒤편의 비탈길을 따라서 10여 분 오르면 섬의 꼭대기에 이른다. 이곳에 올라서면 등대섬을 비롯하여 통영 앞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과 거제 해금강, 그리고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망망대해가 사방으로 펼쳐지고 대양(大洋)을 건너온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특히 여기에서 보이는 등대섬의 단아한 자태는 소매물도의 여러 절경 중에서도 으뜸이다.
원래 이름이 해금도(海金島)인 등대섬은 본섬과 30여m 떨어져 있는데, 하루 두 번씩 썰물 때에 둥글둥글한 갯돌 바닥이 물 밖으로 드러나면 걸어서 두 섬을 오갈 수도 있다. 등대섬은 크기가 본섬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소매물도의 환상적인 경관 대부분이 몰려 있어 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 부드러운 풀밭과 우뚝한 등대, 짙푸른 물빛과 창망(蒼茫)한 바다의 어울림은 예술인이 아닌 여느 사람들의 눈에도 가위 선경(仙境)으로 비친다. 융단처럼 푹신푹신한 풀밭을 밟으며 산책하듯이 20분쯤 걸으면 섬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지만 이곳 경관의 백미는 배를 타고 나가야 볼 수 있는 곳에 숨겨져 있다.
이 등대섬 동남쪽 절벽 아래에는 양쪽으로 맞뚫린 굴(窟)이 있는데, 아득한 옛날에 중국 진시황의 사자(使者)인 서불이 이곳 바위에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씨를 남겼다고 해서 ‘글씽이굴’이라고 한다. 작은 배를 타고 굴을 드나들며 사방을 올려다보는 풍경이 거제 해금강에 못지않을 만큼 아름답다. 그리고 글씽이굴 주변에는 용바위, 부처바위, 거북바위, 촛대바위 등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55)
※여행 적기: 연중(바닷바람이 심한 겨울철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그리고 10월 하순~11월 초순 사이에 등대섬 초원에는 순백의 구절초가 만발한다.)
▷숙식
하얀산장(642-8515), 다솔산장(641-6734), 힐하우스(641-7960), 김춘근(642-9888), 김옥근(643-4822), 강동률(643-7903) 씨댁 등 민박집 이외의 숙박업소는 없다. 숙박비는 대체로 2만~3만원이다. 옛 소매물도분교에 자리한 힐하우스 숙박비는 무조건 1만원이며 코펠, 버너를 빌려주기도 한다. 다른 민박집들에서는 미리 부탁하면 음식을 준비해주지만, 가능하면 취사도구와 부식을 갖고 가는 게 좋다. 그리고 소매물도에서 하룻밤 이상 묵을 경우에는 낚시도구와 미끼도 미리 챙길 것을 권한다. 소문난 포인트인 소매물도와 등대섬에서는 흔한 우럭, 노래미, 볼락, 망상어 등뿐만 아니라 감성돔, 참돔 등의 고급어종도 제법 입질이 잦아서 손맛도 보고 매운탕거리도 장만할 수 있다.
▷가는 길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소매물도를 찾을 경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서울 강남고속터미널(경부선)에서 1일 2회(23시·0시10분),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1일 1회(23시) 운행하는 통영항 심야버스(통영행)를 이용하면 통영항에서 아침 7시에 출항하는 소매물도행 첫배를 탈 수 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는 소매물도행 여객선이 하루 2회(07시·14시) 운항한다. 그리고 소매물도와 등대섬 주변 바다를 한바퀴 돌아보려면 주민들의 배를 빌려 타야 한다. 민박집에 부탁하면 배를 빌릴 수 있으며, 배삯은 1인당 1만원선.
해질녘 노을빛에 젖은 순천만 갈대숲
전남 순천시 교량동과 대대동, 해룡면의 중흥리·해창리·선학리 등에 걸쳐 있는 순천만 갈대밭은 약 50만 평에 이른다.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상사호로부터 흘러드는 이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하구까지의 3㎞쯤 되는 물길 양쪽은 죄다 갈대밭으로 뒤덮여 있다. 그것도 드문드문 떨어져 있거나 성기게 군락을 이룬 여느 갈대밭과는 달리, 사람 키보다 훨씬 웃자란 갈대들이 빈틈없이 밀생(密生)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갈대 군락지라고 한다.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햇살의 기운에 따라 은빛, 잿빛, 금빛으로 채색되는 갈대밭 풍경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장관이다. 또한 한 줄기의 가녀린 바람에도 일제히 흐느적거리는 갈대밭은 망망한 바다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장엄하고도 아름답다.
이 일대에는 갈대밭만 무성한 게 아니다. 먼발치서 볼 때는 갈대밭 일색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물억새, 쑥부쟁이 등이 곳곳마다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하구의 갈대밭 저편에는 불그스레한 칠면초(七面草) 군락도 넓게 펼쳐져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이곳 갈대밭을 찾아가면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만날 수도 있다. ‘겨울철의 진객(珍客)’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이다. 두루미과에 속하는 흑두루미는 아주 귀한 겨울 철새인데, 몸 전체가 하얀 두루미와는 달리 머리 일부와 목만 흰색을 띨 뿐 몸 전체가 잿빛이 섞인 검은색이다.
이곳에는 흑두루미말고도 재두루미(제203호)·황새(제199호)·저어새(제205호)·검은머리물떼새(제326호)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조류가 11종이나 날아든다고 한다. 또한 흰뺨검둥오리·도요새·청둥오리·혹부리오리·기러기 등과 같이 비교적 흔한 텃새와 철새를 포함해 약 140종의 새들이 이곳의 드넓은 갈대숲과 개펄에서 월동하거나 번식한다. 그야말로 ‘철새들의 낙원’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셈이다.
순천만 갈대밭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일몰과 대대포의 환상적인 새벽 안개를 감상하려면 천상 그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그럴 때에는 번잡한 순천 시내보다는 한적한 소읍인 보성군 벌교 읍내에서 묵는 게 좋다. 벌교에서 대대포까지는 차로 20여 분 만에 다다를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그리고 귀로에는 낙안읍성 민속마을과 선암사를 들러볼 만하다.
둥그런 석성 안에 수십 채의 초가가 올망졸망 들어앉은 낙안읍성은 언제 찾아가도 고향처럼 아늑하고 정겹다. 이곳에 가면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민속음식점에 들러 파전 안주에 사삼주(沙蔘酒, 더덕술) 한잔을 맛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조계산 동남쪽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는 산사다운 정취가 오롯이 살아 있는 고찰이다. 승선교와 강선루의 아름다운 조화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의 그윽한 운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61)
※여행 적기: 11월 초순~11월 하순(절정에 이른 갈대밭의 풍광은 11월 한달 내내 지속되지만, 선암사의 화사한 단풍과 순천만 갈대밭을 함께 감상하기에는 11월 첫째 주가 가장 좋다.)
▷숙식
벌교에는 궁전모텔(858-5252), 그랜드모텔(858-5050) 등 모텔이 많고, 낙안읍성에도 궁전모텔(754-6951)이 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는 초가 민박집이 여럿 있고, 선암사 입구에는 선암장(754-5666), 초원장(754-5811), 행복한 가족(754-5703) 등의 여관이 있다. 맛집으로는 벌교읍내의 벌교우렁집(우렁이회무침, 857-7613)과 소문난곱창(곱창구이, 858-158),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민속잔치집(향토음식, 754-6589) 등이 있다. 그밖에 순천만 대대포구의 강변장어구이집(장어구이, 742-4233)과 순천시내의 전화국 뒤편에 위치한 대원식당(한정식, 744-3582)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서순천IC(2번 국도)→순천 시내→청암대학 사거리(좌회전, 818번 지방도)→대대포구→벌교(857번 지방도)→낙안읍성민속마을→선암사→호남고속도로 승주IC
내변산의 백천내 매표소에서 직소폭포로 가는 숲길
변산반도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풍광이 빼어나다. 그러나 변산반도 최고의 절경은 역시 채석강이다. 채석강이 위치한 격포 바닷가에는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여름철보다 오히려 한겨울에 더 많은 인파로 북적댄다. 잿빛 개펄로 뒤덮인 서해안의 여느 해변들과는 달리, 금빛 모래가 곱게 깔린 해변에 맑고도 깊은 바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채석강은 오랜 세월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수성암층 절벽이다. 마치 수 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하고 절벽 아래에는 커다란 해식동굴도 뚫려 있다. 그 아름다운 경치가 당나라의 이태백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해안경치도 아름답거니와 칠산바다를 불태울 듯 붉디붉은 낙조(落照)가 장관이어서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유난히 잦다. 채석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적벽강(赤壁江) 또한 해질녘의 경관이 볼 만하고 채석강과 마찬가지로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층암절벽(層巖絶壁)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격포에서 모항마을을 지나 내소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줄곧 줄포만과 고창 선운산을 바라보며 달리는데, 동해안의 7번 국도와는 다른 멋을 느낄 수 있다. 평온한 곰소만의 개펄과 바다, 선운산 일대의 아스라한 풍경이 줄곧 차창 밖에 펼쳐진다. 그래서 격포에서 내소사까지의 50여 리 길이 짧기만 하다.
백제 무왕 34년(633) 때 창건됐다는 내소사는 초입의 전나무 숲길이 먼저 길손의 마음을 빼앗는다.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뻗은 수백 그루의 전나무가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르는 길에 600m의 터널을 이루어 놓았다. 흙냄새 짙은 이 숲길을 걷노라면 침엽수 특유의 청신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고 번잡한 세상사는 까마득히 잊혀진다.
내변산의 기골 장대한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내소사 경내에는 여러 채의 불전들이 ㅁ자형으로 들어앉아 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화려한 꽃문살로 치장된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인데, 정면 문짝마다 소담스런 연꽃과 국화꽃이 가득 새겨져 있어 늘 화사한 꽃밭이다. 애초에는 단청이 화려하게 채색되었지만 오랜 풍상으로 색은 바래고 지금은 나무의 소박한 질감과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화려하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내소사의 독특한 분위기가 이 문살에서도 확연히 느껴진다.
바닷가의 외변산을 둘러본 뒤에는 내변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내변산은 예로부터 조선팔경과 호남 5대 명산 중에 하나로 꼽혀왔다. 그러니 내변산을 둘러보지 않고서는 변산반도를 제대로 구경했다고 하기 어렵다. 고인돌군(사적 제103호)이 있는 부안군 하서면 구암리에서 736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내변산으로 들어가는데, 직소폭포 초입의 백천내까지는 삼십리쯤 된다. 백천내 계곡을 중심으로 사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인 내변산에는 직소폭포, 분옥담, 벼락폭포 등의 폭포와 낙조대, 관음봉, 망포대 같은 기암준봉이 즐비하다. 특히 낙조대에서 바라본 서해의 일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직소폭포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장관을 연출한다. 내변산 공원 매표소에서 직소폭포까지 오가는 데에는 느긋하게 걸어도 2~3시간이면 족하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63)
※여행 적기: 연중(특히 겨울철의 정취가 좋다. 그러나 내소사 주변과 내변산의 오색단풍은 10월 하순~11월 초순에 절정의 빛깔을 보여준다.)
▷숙식
변산반도에서 하룻밤 묵으며 바다의 정취를 즐기기에는 각종 편의시설과 채석강, 적벽강 등의 절경이 있는 격포항이 좋다. 격포항에는 그랜드모텔(582-0307), 파레스장(584-4569), 바다모텔(581-3102), 채석장(583-8040) 등 숙박업소가 많다. 격포에서 내소사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한 모항마을의 변산통나무집(584-2885), 모항레저콘도(584-8867) 등과 부안댐 아래의 해창리에 위치한 변산온천리조텔(582-5390)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변산해수욕장 부근의 국도변에는 백제성모텔(581-5434), 해금장(584-1878) 등의 모텔이 있고, 내소사와 개암사 입구에도 민박집이 있다. 부안군 제일의 어항인 격포항에는 수협횟집(581-2400), 이어도횟집(582-4444) 등을 비롯해 횟집이 많다.
그리고 내소사가 있는 진서면 석포리의 부령쌈밥(쌈밥, 584-9128)과 초원식당(청국장, 581-1077), 곰소항의 칠산횟집(젓갈백반, 584-8470), 변산온천산장(바지락죽, 584-4874) 등은 소문난 맛집이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30번 국도)→변산해수욕장→격포→내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