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잠자던 통장 사본, 마약 조직 붕괴시키다

사상최대 히로뽕 거래조직 검거 비화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입력2002-11-04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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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던 통장 사본, 마약 조직 붕괴시키다
    지난 7월 어느날 밤 11시 대구 금호강변 동촌유원지. 늦은 시간이지만 더위를 피해 강바람을 쐬러 나온 시민들로 술집 노변 테이블은 빈 자리가 많지 않다. 머뭇머뭇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얼굴을 확인하던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부장 정선태·이하 마약수사부) 신장혁 계장(43·가명·이하 수사요원들의 성명은 신변안전을 위해 가명으로 처리).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던 한 중년사내에게 시선이 꽂히자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진다.

    “설일남씨, 오래간만이네. 나 기억나요?”

    “사람 잘못 봤습니다. 주민등록증 보여줘요? 그런 사람 모른다니까.”

    주민등록증을 받아 든 신계장의 얼굴에 순간 핏기가 가셨다. 겨우 설일남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10여 년 전 부산지검에서 만났던 기억만으로 확신한 것이 실수였을까.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오른쪽 이마 위 반점은 주위가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파출소에 가서 조회해 봅시다. 잠깐이면 되니까.”



    사내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순히 따라오려나보다 생각한 순간 의자를 탁 차고 달리기 시작하는 사내. 그러나 긴장하고 있던 신계장의 발이 더 빨랐다. 채 몇 발짝도 가지 않아 신계장은 사내를 붙들어 자빠뜨렸다. 불빛이 환한 가게 앞에 서자 사내의 이마 위에 하얀 반점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검거박사 신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마약전쟁 13년차 신계장의 실력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설일남. 55세. ‘대한민국 마약쟁이 중에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대구지역 ‘가루 세계’의 전설적 존재다. 1994년 부산지검 강력부에 검거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그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은 2000년 가을이었다. 그러나 마약계가 신진세력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 직접 거래보다는 숨은 중개자 역할만 한 설일남이기에 그를 겨냥한 수사는 빗나가기 일쑤였다. 히로뽕 밀수의 대부 설일남을 검거했다는 신계장의 보고는 수사 착수 5개월을 넘긴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올린 결정적인 승전보였다.

    현장거래가 사라졌다

    큰 건은 항상 작은 단서에서 출발한다. 지난 2월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의 김기동 수석검사(39)는 전임 김진모 검사실 책상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11개의 통장사본을 넘겨받았다. 연말에 검거된 히로뽕 소매책을 조사하는 과정에 나온 계좌에는 50만~100만원의 소규모 마약대금이 오간 흔적이 있었다. “잘 뒤져보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보발령을 받고 떠나는 선배검사의 조언이었다.

    오래전부터 마약은 갱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처럼 ‘눈으로 확인하는’방식으로 거래됐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거래조직끼리 으슥한 장소에서 만난다. 이쪽에서 한 사람이 건너가면 저쪽에서 그 사람을 데리고 가 은밀한 곳에 숨겨둔 ‘상품’을 확인시킨다. 장소를 알지 못하게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거나 일부러 도는 코스를 선택하는 수법도 영화장면 그대로다.

    이쪽에서 물건을 확인하면 저쪽에서 다시 한 사람이 건너온다. 역시 은밀한 곳에 숨겨둔 돈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양쪽 모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면 “다시 연락하자”며 흩어진다. 새로 결정된 장소와 시간에 물건과 돈이 동시에 교환된다. 한 손으로는 물건을 받고 다른 손으로는 돈을 건넨다 해서 ‘왼손 오른손’ 방식이라 불리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 쉽게 도망치기 위해 ‘차 치기’로 교환하는 일이 더 많다.

    검찰의 마약범죄 수사기법 역시 이러한 방식에 맞춰 왔다. 언제 거래가 이뤄지는지 정보를 파악해 현장을 덮치는 ‘작전’이나 거래자에게 마약을 사겠다고 접근한 뒤 물건을 확인하면 바로 검거하는 ‘위장매수제의’ 방식이 주무기다. 간혹 작전중에 수사요원이 부상하거나 매수자금만 빼앗기는 경우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유일무이한 방법이나 다름없었다.

    이상한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현장을 누비는 수사 요원들의 레이더망에 소매거래 이상의 큰 건이 포착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처’인 서울에서 유통되는 양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데 ‘공급처’인 대구·부산·창원 일대의 도매거래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답은 하나, 새로운 루트가 뚫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빠른 시일 안에 새 루트를 끊어내지 못하면 1980년대 겨우 진화한 마약열풍이 다시 확산될 가능성도 있었다. 다급해진 마약수사부 요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층 촘촘해진 마약수사부의 그물에 걸려든 ‘잔챙이’들에게서 “물건은 퀵(오토바이 택배)으로 받고 돈은 온라인으로 부쳐줬다”는 진술이 하나둘 확보됐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수십 만원짜리 작은 거래라면 원격거래가 가능하겠지만, 수천 만원대의 대형거래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마약세계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마약수사부 누구도 계좌추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특수부나 강력부에서는 계좌추적을 빈번하게 하지만 마약수사부에는 이 ‘복잡한 수사기법’을 처리할 인력이 없었다. 지난 연말 김진모 검사가 확보해둔 11개의 통장사본이 책상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김포공항 분실에서 근무하던 윤재권 계장이 마약수사부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 2월. 강력부에서 근무하면서 계좌추적을 해본 경험이 있는 윤계장이 온 것은 마약수사부에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11개의 통장사본이 윤계장에게 건네졌다. 하나 둘 계좌를 훑어가던 윤계장은 이들 통장에서 돈이 이체된 새로운 계좌 몇몇에서 거금이 오간 흔적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더 이상 잔챙이들의 푼돈 거래가 아니었다. 급히 계좌추적을 전담할 인력 두 명이 보강되어 서울지검 별관 마약수사본부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윤계장에게도 마약수사 계좌추적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우선 작업의 성격 자체가 강력부 시절과는 판이했다. 한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뭉칫돈이 오간 흔적만 잡아내면 끝나는 조직폭력사건 계좌추적과는 달리 마약수사 계좌는 수상한 거래를 모두 훑는 저인망식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의심이 가는 계좌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아 은행마다 팩스를 보내 거래 명세를 확인하고, 그 거래 명세에서 이상한 징후가 발견되면 다시 영장을 발부받아 또 은행마다 팩스를 보내는 식이었다. 계좌 하나를 새로 열 때마다 확인해야 할 거래 명세가 수십, 수백 건으로 불어났다.

    계좌추적에 착수한 지 두 달이 지난 4월 무렵, 드디어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뻗어나간 계좌들의 현금흐름 속에서 한 밀매조직의 윤곽이 잡힌 것. 이미 검거된 히로뽕 소매책이 그중 한 계좌를 통해 도매책에게 자금을 입금한 흔적이었다. 이 도매책에서 흘러나간 자금의 흐름을 쫓다 보니 다른 도매책들과 국내공급책이 딸려 나왔다. 계좌추적을 통해 한 조직 전체의 ‘그림’이 그려진 셈이었다.

    수사팀이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급파됐다. 국내공급책의 집에서 히로뽕 5.1kg이 발견됐다. 히로뽕 1회 투약분이 0.03g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외풍이 심해 봄에도 썰렁하기 이를 데 없는 마약수사반 사무실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대형거래 흔적이 속속 떠올랐다. 마약 조직들이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온라인으로 돈을 받고 오토바이 택배나 고속버스 송달편을 이용해 물건을 보내는 방식은 거래 범위에서 기존 방식과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위협적이었다. 예전 방식으로는 마약거래가 일부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온라인-택배’ 방식은 전국 어느 곳으로나 물건을 보낼 수 있었다. 이 방법이 확산되면 마약유통이 전국으로 번져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마약조직들의 관계가 이전보다 긴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왼손 오른손’ 방식이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새 방식은 철저한 ‘신뢰’를 근거로 하고 있었다.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끼리 휴대전화 한 통화와 계좌번호 한 줄을 믿고 거래한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대한민국 전체 밀매 조직이 하나의 거대한 신디케이트를 형성해가는 징후였다.

    4월17일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계좌추적팀을 신설해 본격적으로 작업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잠자던 통장 사본, 마약 조직 붕괴시키다

    마약과의 전쟁은 이제 ‘국제전’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1월 대검찰청에서 열린 한,미,중,일 마약퇴치전략회의

    두 명으로 시작한 계좌추적팀은 다섯 명으로, 다시 인천지검과 의정부지청에서 파견받아 요원이 열 명으로 확대됐다. 검거작전이 있을 때마다 요원들이 차출되어 현장에 투입되는 바람에 업무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한 정선태 부장검사는 아예 계좌추적팀 사무실을 본관 7층 부장실 옆으로 옮겼다. 팀원 일부는 4월 대검에서 금감원 직원들이 강사로 나선 계좌추적 노하우 교육을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

    인원이 늘고 경험이 쌓이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금융거래의 기본개념도 헷갈리던 직원들이 서서히 업무흐름을 익혔다. 5월이 되자 지난 3월에 검거한 마약조직이 단순 밀매조직이 아니라 중국산 마약을 들여오는 밀수조직임이 확인됐다. 한국을 드나드는 자금책의 계좌를 통해 환치기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 이 계좌를 따라가다 보니 중국에 머물며 마약구입을 총괄하는 총책 우현식과 국내반입을 맡고 있는 임식의 존재가 드러났다. 조직 이름이 ‘우현식파’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거래 명세를 통해 2000년 말부터 10kg 이상의 히로뽕을 중국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판매한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현재까지 적발된 중국산 히로뽕 밀수조직 중 최대규모였다. 담당검사는 급히 중국 공안당국에 중국에 머물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범죄인인도를 청구했다.

    마약수사부는 혐의가 드러난 인물들을 바로 검거하는 대신 이들의 계좌에서 뻗어나간 가지를 추적하는 추가작업에 돌입했다. 이 계좌들이 조직과 조직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밀수조직 하나를 깨는 것보다 거래가 오간 큰 판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해외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밀수조직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단서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됐다.

    그러나 계좌추적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금융기관의 협조에서부터 발목이 잡혔다. 수색영장이 떨어진 계좌에 대해서도 은행측의 유권해석은 번번이 달랐다. 전국을 무대로 이루어진 방대한 금융거래를 쫓다 보니 사실상 모든 은행의 주요지점이 모두 수사대상이었다. 특히 지방에 있는 지점은 전화통을 붙들고 말싸움과 통사정을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은행들이 자료를 내주기 껄끄러워하는 것은 거액송금 시 의무화돼 있는 실명확인이나 연락처 확보 등 업무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협조업무의 진행속도는 전적으로 은행 실무자들 손에 달렸다. ‘최고의 권력기관 검찰’이라는 세간의 평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주요 은행 본점 전산과 여직원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로비’에 매달렸다.

    계좌추적으로 혐의점을 찾아내는 것과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이었다. 마약거래에 사용되는 계좌는 백이면 백 가·차명이다. 명의자가 통장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원을 모르는 경우는 물론 명의가 도용됐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수상한 돈이 입·출금된 당시의 해당 지점 CCTV 녹화자료를 확인하는 고전적인 방법도 포기해야 했다. 대부분의 은행이 같은 테이프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까닭에 열흘 이상 지난 화면은 이미 지워지고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조직원 중 누군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것뿐. 수백번 거래마다 겨우 한 번씩 튀어나오는 실수를 잡아내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지루한 ‘팩스질’이 이어졌다.

    뻗어나간 계좌를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었다. 낮에는 은행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던 계좌추적팀 수사요원들은 밤늦은 시간에야 사무실에 앉아 ‘가지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계좌에 찍힌 현금거래를 바탕으로 그렸다 구겨버린 조직도만 수백 장이었다. 대부분 현장과 작전 체질인 수사관들에게 어떤 계좌를 뒤지고 어떤 계좌를 버릴 것인지 신속히 결정해야 하는 ‘머리싸움’과 밤낮 없이 계속되는 서류 분석작업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일주일에 이틀 이상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한창 무덥던 7월 중순이 되자 스트레스와 피로에 지친 계좌추적팀 요원들이 하나 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성과를 묻는 검사들의 재촉 앞에서 “일하려고 사는 건지 살려고 일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젊은 요원들의 푸념이 흘러나왔다. 경찰과는 달리 대형사건을 해결해도 특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검찰 수사관들의 현실이고 보면 무조건적인 헌신만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 팀장인 윤재권 계장이 안면마비 증세로 두 차례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 이 무렵이었다. 말 그대로 한계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마약수사부에 대구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 그 무렵이었다. 수배령을 내린 윤주종을 검거했다는 전갈이었다. 국내 마약조직 가운데 최대물량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윤주종의 검거는 어려움을 겪던 마약수사부에 한줄기 희소식이었다. 그에게서 오리무중인 다른 총책급 혐의자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검거전담 요원들이 급히 대구로 출발했다.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신병을 인수해 저녁 늦게 서울로 데려온 윤주종은, 최근 1~2년간 국내조직 중 가장 활발히움직여온 거대조직의 총책답지 않게 허탈한 표정이었다. 이전에 검거됐을 때와는 달리 그간 거래가 이루어진 정확한 시점과 규모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조사관들이 그저 놀라울 뿐인 듯 했다. 조사관들이 함께 조직을 이끌어온 김재호의 소재를 묻자 한참 뜸을 들이던 윤주종이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난데, 재호 보고 나한테 전화 좀 하라고 그래.”

    10여 분이 지났을까. 윤주종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윤주종이 휴대전화를 넘겼다.

    “나 서울지검의 김기동 검사입니다. 거래명세 다 알고 있으니까 자수하세요. 도망가봐야 앞으로 계속 쫓겨다닐 텐데 차라리 자수해서 하루라도 형량 줄이는 게 낫지 않습니까.”

    통화가 계속됐다. 때로는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으름장을 놓기도 하며 통화는 몇 시간째 이어졌다. 한번 전화가 끊기면 언제 연락이 닿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인간적인 얘기로 시간을 끌며 설득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부옇게 동이 터오던 새벽 5시, 드디어 김재호의 입에서 자수하겠다는 말이 떨어졌다. 대구에 머물던 요원들이 그의 단칸방을 찾았다.

    서울로 데려온 김재호는 그날 점심 무렵 겸연쩍은 표정으로 마약수사부에 들어섰다. 밤을 꼬박 새운 김검사가 한마디를 던졌다.

    “결국 올 거면서 뭘 그렇게 버텼어요?”

    김재호·윤주종파의 검거로 한계에 부딪혔던 계좌추적팀의 작업도 탄력을 받았다. 이들의 진술로 정체를 알 수 없던 계좌들이 실체를 드러냈다. 집을 수색해 나온 새로운 통장을 뒤지자 막혔던 길이 다시 뚫리기 시작했다. 최대규모의 거래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니만큼 범위도 방대했다. 계좌추적과 검거작업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히로뽕계의 ‘신진세력’

    잠자던 통장 사본, 마약 조직 붕괴시키다

    ‘미끼(마약구입자)’를 풀어 밀매조직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수사관들

    계좌추적을 통해 이들에게 물건을 공급한 박태운파, 설일남파, 강영철파 등 중국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밀수조직들의 계보와 혐의사실, 환치기 수법도 윤곽이 잡혔다. 마약지도를 작성해도 좋을 만큼 분명한 밀수경로와 판매루트가 파악된 것. 대부분의 총책들은 중국에 체류하고 있었지만 설일남은 국내에 머물고 있음이 확인됐다. 전설적 존재인 설일남이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약수사부의 분위기는 일신됐다.

    7월의 늦은 밤, 수사요원들은 ‘설일남과 형제처럼 지냈다’는 한 밀수조직원에게 그의 소재를 묻고 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던 그에게 “설일남이 동촌유원지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대구에 머물며 ‘때’를 기다리고 있던 신장혁 계장팀은 전갈을 받자마자 동촌유원지를 이 잡듯이 뒤져 결국 설일남을 검거한 것이었다.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9월 초순 마약수사부 조사실. 검거된 윤창석파 피의자들이 조사관들 앞에서 대질심문을 받고 있었다. 으레 그랬듯 “나는 투약자일뿐 공급자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조직원들 앞에 조사관이 거래 대금이 오간 명세를 들이밀었다. 자신의 통장계좌 사본임을 확인한 이들은 말을 잃었다. 말단 하부조직원이 실명계좌를 통해 입금한 기록이 꼬투리가 되어 조직전체의 신상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게 내가 절대로 실명으로 입금하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냐. 약하고 돈 넣지 말라고 그랬잖아.”

    윤창석파의 자금책이 다른 조직원들을 향해 눈을 흘기며 분노를 표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난 다음이었다.

    다른 사안으로 검거됐다가 단순투약자로 처리돼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조직원 상당수는 새로 드러난 결과를 바탕으로 별건구속됐다. 총 47건 81개 모계좌와 200여 하부계좌를 열어 수천 건의 거래명세를 따라간 계좌추적의 승리였다.

    국내 주요 히로뽕 밀수·밀매조직 10개파 224명 적발, 162명 구속, 57명 수배. 거래규모 히로뽕 48㎏(35억원 상당·160만명 투약분), 이중 8㎏ 압수. 설일남 검거를 기점으로 박태운파, 강영철파, 강무길파 등을 휩쓸었던 수사는 엄청난 실적을 기록하며 한고비를 넘겼다.

    잠자던 통장 사본, 마약 조직 붕괴시키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국내 마약공급루트는 대부분 파괴됐고 이에 따라 히로뽕 시장은 극도로 위축됐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현장에서 거래되는 히로뽕 시세가 도매의 경우 100g당 600만~700만원에서 1000만원 수준으로, 소매는 1회 투약분(0.03g)이 8만~10만원에서 12만~13만원으로 크게 상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약수사부측은 “검거된 거물들을 살펴보면 국내 마약계에 일정한 판도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검찰과 옛 보건사회부가 국내에 있던 마약생산공장을 소탕하던 1980년대부터 활동한 1세대 중년층 마약사범들 대신 젊은층이 거물로 성장해 전면에 나섰다는 것. 김재호, 황상철, 이현재 등 이들 30대 총책들은 예전 같으면 잘해야 도매책을 맡을 연배다. ‘온라인-퀵서비스’를 이용한 새 거래방식 또한 폰 뱅킹, 인터넷 뱅킹 등 첨단 금융거래에 익숙한 ‘신진세대’의 참신한 머리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이들은 선배들과는 달리 ‘냉정한 판단력과 순발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은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

    이런 외적인 성과보다 더 큰 의미는 ‘마약수사방식이 일보 진전했다’는 점. 관련자 몇 명을 검거하고 끝내는 단순 단속이 아니라 소매상에서 밀수책까지 전체 유통망을 완전히 괴멸시키는 효과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획기적인 변화다.

    9월27일 마약수사부의 사건 수사발표를 앞두고 서울지검 검사들 사이에서는 작은 논란이 일었다. 계좌추적이라는 새로운 수사기법을 노출시킬 경우 앞으로 수사에 차질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실무팀의 판단은 달랐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계좌를 사용하던 조직들도 같은 계좌를 서너 번 이상 사용하지 않는 등, 눈에 띄게 조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판국이었다. 김기동 검사의 말이다.

    “앞으로도 통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워낙 장점이 많으니까요.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전국적인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 혹시 수사당국의 위장매수가 아닌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마약조직들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메리트입니다.”

    마약수사부는 현재 파악한 계보만으로도 총 600여 명의 혐의자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9월 말까지 검거된 224명은 이중 40%에 지나지 않는 것. 우선 연말까지 나머지 혐의자들을 모두 검거한다는 계획이다.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우현식, 박태운, 강영철, 윤창석 등 중국에 머무르며 마약생산공장과 한국을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하는 총책들을 검거해 공급루트 자체를 파괴하는 작업이다.

    난감한 것은 히로뽕 투약자가 극히 적은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 특히 주한중국대사관측은 이번 사건 발표에 쓰인 ‘중국산 마약’이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눈치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건너와 세운 공장에서 만든 마약이 어떻게 중국산이냐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현지에 숨어 있는 총책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현지 대사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중국 정부도 우리나라와 일본 등 주변국가의 외교적 압력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 지난 5월에는 마약범죄를 다루고 있는 공안부 금독국 산하에 ‘정신약물안건정사처’라는 히로뽕 전담조직을 신설하기도 했다. 마약수사부는 이들의 활동이 중국에 있는 한국인 밀수책들을 검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다시 시작되는 전쟁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어가던 10월9일 저녁, 마약수사부는 서울지검 근처 한 음식점에서 조촐한 회식을 가졌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이 자리에는 정선태 부장검사부터 주임에 이르기까지 3개 검사실 45명 식구들이 모두 참석해 모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고생들 하셨으니 며칠 휴가라도 다녀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자가 묻자 유재룡 수사관(52)이 ‘참 철없는 질문 다 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휴가요? 이번 주말에도 출근해야 됩니다. 마약수사는 끝이 없어요, 한 놈 잡으면 거기서 또 ‘상선(윗선)’이 나오니까. 집에서 싫어하지 않냐고요? 으레 그러려니 해요. ‘나쁜 가장’ 노릇이야 어디 하루 이틀인가.”

    정선태 부장검사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밀수책들이 새 조직을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말했다. 이들을 검거해 반입 자체를 근절할 때까지 새로 형성되는 계보를 깨나가야 한다는 것.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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