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2일 평양시 주체사상탑에서 만나 북한 여대생들(위)
얼마 전까지 구빈리는 북한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에 속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염소젖을 짜 만든 산유(요구르트)와 치즈를 내다 팔면서 수입이 높아져 타 지역 인민들은 구빈리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1996년 북한 당국이 축산단지 시범지구로 지정한 구빈리 협동농장은 최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염소젖 경쟁생산 단위를 마을(20∼50가구)에서 개인으로 세분화했다. 농장은 주민 한 명에게 20마리 안팎의 젖염소를 나눠준 뒤 매일매일 산출하는 젖의 양을 기록해 개인별 실적에 따라 농장 수입을 분배한다.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가 물자를 지원하고 있는 구빈리농장은 출범 초기 젖염소를 공동 사육하다가 1999년 마을 단위의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경쟁과 인센티브제도라는 자본주의적 경영방법을 잘 활용해 이곳에 기적을 일군 임귀남(44) 지배인을 2일 다시 만났다. 임지배인은 지난 6월 방북했을 때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남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생필품을 구입할 돈을 많이 분배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농장 주민이 젖을 더 생산하려 노력한다”고 개인 경쟁체제의 효과를 자랑했다.
-7월1일 경제관리 개선 조치로 살림살이가 더 좋아졌습니까?
“예. 쌀과 옥수수 가격이 올라 수입이 많이 늘었습니다. 전에는 수입의 70%가 산유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산유와 곡물 수입이 반반씩입니다. 지난해 농장 수입이 400만원이라면 올해는 2000만원 정도 될 것입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
“더 많이 생산하자면 모두가 발동이 걸려야 합니다. 어떤 자극을 주어 능력을 개발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개인별 경쟁체제와 물질적 보상이 주민들의 생산의욕에 ‘발동’을 건 셈이군요.
“그래요. 지금은 연말에 한 해 동안의 수입을 나눠주는데 앞으로는 월말마다 한 달 수입의 절반씩이라도 지급해 생산 의욕을 더 높일 생각입니다.”
-실제로 주민들의 생산과 소득에 큰 차이가 납니까?
“지난해 생산량을 놓고 보자면 ‘똑똑하게 한 사람’과 ‘건달뱅이’의 수입은 다섯배 차가 납니다. 2만5000원을 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 5000원밖에 못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똑똑하게 한 사람’의 비결은 뭔가요.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겁니다. 생산을 많이 하는 사람은 오전 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염소와 함께 산 위로 올라갔다가 오후 8시에야 내려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아침에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산에 올라갔다가 점심을 먹는다며 염소를 데리고 내려옵니다. 그리고는 낮잠을 자고 두시 넘어 올라갔다가 해지기 전에 내려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풀을 뜯은 염소가 젖을 많이 내고 주인 따라 왔다갔다만 한 염소가 젖을 많이 못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임지배인은 최근 균실험실을 만들어 산유와 치즈에 사용되는 다양한 균을 배양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균을 대량으로 만들어 다른 농장에도 나눠줄 생각입니다.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면 주민들이 사는 데 도움도 되고 좋잖아요?”
CEO답게 그의 머리 속은 더 많이 생산해 더 많이 버는 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 농장에는 사업장책임제도가 도입된 지 오래다. 한 해의 생산목표는 국가가 아니라 주민 대표들이 모인 관리위원회에서 정한다. 이런 개혁으로 염소가 날로 늘어나 10월 현재 3300마리 가운데 2000마리가 젖을 낸다. 도심과 주변 농가에서 70여 가구가 이주해 인구는 599세대 1200여 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