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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깜짝쇼’ 북한의 얼굴

“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현지 르포>신의주 특구 그후

  • 신석호 kyle@donga.com

“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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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젖 더 짜내려 땀 흘리디요”

평양금강판매소 여성 판매원이 대표단 일행에게 물건을 팔고 있다.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한 이후 북한 곳곳에서 변화가 일고 있다. 올 7월 평양 시내의 한 협동농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나가서 김매기를 도와줘야 했다. 그런데 올해는 농장 사람들이 스스로 하겠으니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보다 많이 생산하고 비용을 줄이면 자신의 몫이 많아지는데 공연히 일손을 빌려 일당을 주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 농장 이야기는 경쟁체제와 인센티브라는 물질적 보상제도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는 “시골 협동농장에도 일손이 넘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1일 순안공항에서 만난 한 재미동포는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재미있어 하더라”고 전했다.

전철·버스 정류장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간이매대’는 더 많이 팔려는 기업소들의 의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남측의 ‘테이크아웃’ 상점에 해당하는 간이매대는 8월15일 막을 내린 아리랑축전 기간에 한시적으로 허용됐으나 이후 정식 판매수단이 됐다.

한 안내원은 “한 매대에서 하루 3000원어치 이상의 청량음료를 파는 등 여름철에는 정식 상점보다 길가의 간이매대가 청량음료를 더 판다”며 “많은 기업소들이 간이매대 사업을 원하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는 평양 거리에서 한 여성이 자전거 뒤에 간이매대를 달고 물건을 파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또 석 달 전에는 적막하기만 하던 묘향산 주차장에도 간이매대 7~8개소가 설치돼 영업을 하고 있었다.

기존 판매소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평양 시내에 있는 한 외국인식당 지배인(여)은 “안내원들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와 다른 식당보다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도록 음식과 봉사의 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 안내원은 “안내원은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해 주는 식당을 찾게 마련”이라며 “서비스가 나쁜 식당은 안내원들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언론도 생산성 향상에 최대 역점을 두고 보도하고 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받아본 1일자 노동신문은 1면에 ‘기름작물을 대대적으로!’라는 제목을 붙인 대형 기획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좋은 기름작물을 많이 심어 먹는 기름문제도 풀어야 합니다”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적을 화두로 남포시 등 여러 지역에서 유채 등을 심어 먹는 기름을 많이 생산한 사례를 보도했다.

3면에서는 ‘공동사설의 요구대로 현존발전능력을 최대한 리용하여 더 많은 전력을’이라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웅-웅-”으로 시작되는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 르포가 실렸고 허천강발전소가 ‘잡은 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등이 소개됐다.

“이제부턴 타산에 밝아야”

노동신문은 3일자에도 ‘경제관리를 잘하는 것은 강성대국 건설의 중요한 요구’라는 기사로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취지를 설명했다. 북한이 이번 조치의 핵심을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는 것’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들이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들에서는 사회주의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 경제적 효과성을 소홀히 하거나 경제적 효과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원칙을 줴 버리는 좌우경적 편향이 나타났다.”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보장하면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키는 것은 사회주의경제관리에서 틀어쥐고 가야 할 중요한 원칙의 하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근로자에게 일감을 똑똑히 주고 노동조건을 잘 지어줄 데 대한 문제, 근로자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킬데 대한 문제, 노동에 대한 정치 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을 옳게 배합하는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이 날자 노동신문 3면에는 ‘기업관리를 우리 식으로 하여 경제적 효과성을 더욱 높이자’는 제목으로 대동강축전지공장,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등의 성과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과 방송에는 ‘밝은 타산’ ‘노력과 설비의 1% 효과적 이용’ ‘원가와 노력을 줄이자’ ‘혁신’ 등의 경제 용어가 자주 등장했다.

한 안내원은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타산에 밝다’는 것은 ‘이기적이다’라는 심한 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이나 개인이나 타산에 밝은 것이 덕목이 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7월1일 이후 물가와 임금을 동시에 인상한 것도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러한 정책을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인민들이 일을 하지 않거나 집에 모아둔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살기 힘들게 해 노동력과 자본을 창출하는 한편 생산직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3일 평양역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월급이 오른 뒤 인민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넉넉해졌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안내원들도 “물가는 올랐지만 기본적인 배급이 되고 월급이 더 올라서 살기는 나아진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 주민도 이용할 수 있다는 평양시내 ‘평양금강산판매소’ 정성희지배인(50·여)은 “하루 판매액수가 10∼15원으로 과거의 두세 배”라며 구매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은 2000∼6000원으로 올랐는데 평양시 판매소에서 일하는 여성 판매원의 월급은 3000∼4000원이다. 아주 어려운 일을 맡은 광산노동자는 1만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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