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후세인 사주해 이란 공격

지난 걸프전 때 파괴된 이라크군 탱크.
미국과 사담 후세인간 관계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미 중앙정보국(CIA)이 친소련 카셈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알 바크르(Al-Bakr)와 후세인이 주도한 쿠데타를 지원한 것이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후세인은 이집트로 망명했다. 1968년 31세에 불과한 후세인은 마침내 쿠데타를 성공시켜,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미국은 1979년 대통령을 승계한 후세인을 사주하여 혁명 후 혼란기에 처한 이란을 공격하게 했다.
우호관계를 유지해오던 미국과 후세인은 후세인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이스라엘에 대해 극도의 적대적 정책을 펴면서 악화됐다. 후세인이 더 이상 미국의 대변자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강력한 전차군단을 지휘하여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통일한 신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왕의 선례를 따라 아랍 통일에 나선 후세인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기습, 점령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넘어갈 경우 석유 에너지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미국은 판단했다. 이에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1991년 초 이라크군을 격파하고 후세인으로부터 사실상의 항복을 받아 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이라크 전쟁이 종식된 지 10년이 경과한 2001년 9월11일 중동지역을 다시 한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할 사건이 중동이 아닌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뉴욕 국제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이 동시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전략을 수정하고 테러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는 빈곤한 아랍국가에 경제원조를 하고 동(東)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 주장한 문제해결 방식보다는 군사적 해결방식을 택했다.
미국 석유 메이저들의 야욕
물론 미국의 첫째 목표는 중동문제의 고리인 이라크로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제외한 대량살상무기를 제조 또는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서두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현재 확인된 세계 석유 매장량의 65%가 페르시아만을 비롯한 중동에 있다.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유전지대의 총 매장량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스피해 지역에 이어 셋째 규모로 알려져 있다. 제2차 걸프전쟁(1990~91) 이후 미국 등 서방의 봉쇄조치로 사실상 개발이 중단된 이라크의 유전을 신기술로 개발할 경우 1일 600만~700만배럴까지 생산해 세계 원유시장을 좌우하게 된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미국 지도부의 배후에는 미국 석유 메이저들과 군산복합체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 석유 메이저들은 러시아와 프랑스 석유회사들에 넘어간 이라크 유전에 대한 이권을 되찾고 싶어한다.
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배경에는 급속히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견제라는, 더 큰 이유도 숨어 있다. 과거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도 유전 확보를 노려서다.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미국 지도부의 의중에 이라크 석유 통제권 확보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