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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 운동가 ⑧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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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111개 국가에서 사형제를 폐지했다. 한국에서도 진보적인 변호사와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13년째 “사형 대신 종신형으로!”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은 반향(反響)이 크지 않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지난 4년 간 사형은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지만, 60여 명에 이르는 사형수들은 지금도 ‘내일’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가슴을 졸인다.
  • 사형제 폐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영우 신부를 만났다.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10월4일,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은 국회 법사위의 법무부 감사에서 사형 집행이 지지부진한 점을 문제삼고 나섰다.

“1997년 12월30일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이 한 건도 없었으며, 올해 7월 현재 미집행 사형수가 60여 명에 달합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형집행 명령을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법무부가 여론을 의식, 법규를 사문화해 국가 형벌권과 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구치소. 25명의 사형수들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금요일 종교집회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7명의 천주교 신자 사형수들은 그들을 만나러 온 가족 같은 손님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39)를 비롯한 종교위원들이다. 최근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로 온 새 식구가 있기에 모임은 더욱 진지했다. 매주 두세 차례 구치소를 찾는 종교위원들은 사형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겐 너무도 소중한 하루 하루의 삶을 축복해준다.

사형수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줄곧 미소를 잃지 않던 이영우 신부가 기자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5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던 것은 ‘인권 대통령’을 자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다음 정권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연말에 사형을 집행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표류하는 사형폐지 특별법

존폐 여부를 놓고 사람마다 시각 차가 큰 게 사형제도다. 정치인들도 소신과 종교, 혹은 개인적 경험에 따라 타협이 어려울 만큼 커다란 의견차를 보인다. 한쪽엔 ‘형법과 국가 체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제도’인 반면, 다른 한쪽엔 ‘범죄억제 효과도 없이 구래의 악습을 반복하는 국가 차원의 보복행위’다.

사형제는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의 활동에 힘입어 이미 국회의원 155명의 발의로 폐지에 대한 특별법안이 상정됐다. 그러나 아직 국회 법사위 심의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검사 출신이 대부분인 법사위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이 발의한 특별법안이 법사위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무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국민의 법감정 또한 사형제에 익숙해 있다.

이에 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전방위로 국회를 압박했다. 국회의장을 방문해 사형제 폐지를 다시 건의했고, 국회의장 직권으로 이 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수 있게 하자며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회관 3층에 자리잡은 사회교정사목위원회. 교정사목(矯正司牧)은 일명 ‘교도소 사목’으로 불리는 특별사목이다. 구금시설 수용자들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하는데, 두 명의 신부를 비롯한 40명의 위원과 사목회가 함께 서울지역 구치소와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의 신앙생활을 돕는다.

이영우(본명 토마스) 신부는 5년째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관할인 서울·영등포·성동구치소와 안양교도소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사형수들을 위시한 재소자 선교에 힘쓴다.

서울구치소에 25명, 전국적으로는 60여 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다. 예년엔 30명선을 유지했는데 사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1997년 12월30일 이후 단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아 그 숫자가 늘었다. 8명의 사형수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 김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지만, 사형제 폐지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법무부도 주춤하게 된 게 사실이다.

이영우 신부는 천주교 사형제 폐지운동의 주축이다. 사형제 폐지협의회(사폐협)와 앰네스티 그리고 범종교연합이 이끄는 사형폐지운동에는 천주교 교정사목이 늘 함께 해왔다.

“천주교는 200년 전 이 땅에 들어오면서 갖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교인이 처형됐죠. 천주교가 사형폐지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천주교는 1970년 ‘교도소 후원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재소자와 양심수들의 인권수호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죠.”

이신부의 캐비닛은 편지묶음들로 가득하다. 지난 몇 년 간 서울구치소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다. 이신부가 그중 한 통을 꺼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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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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