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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 이명재 전 검찰총장 영욕의 10개월 뒷이야기

  • 글: 장택동 taecks@kdaily.com

‘수도승’ 이명재 전 검찰총장 영욕의 10개월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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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 이명재 전 검찰총장 영욕의 10개월 뒷이야기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진정한 무사(武士)는 겨울날 얼어죽을지언정 곁붙을 쬐어선 안된다”는 ‘무사론’을 설파했다.

홍업·홍걸씨를 모두 구속한 검찰의 조치에 청와대에서는 ‘섭섭하다’는 불평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이 전총장은 ‘수사기밀누설’ 사건도 마무리지어야 했다. 이수동씨에게 수사정보를 알려준 혐의를 받았던 신 전총장은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했고, 김고검장은 수사팀의 소환을 받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면서도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 내 비호남 세력이 호남 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이라는 루머까지 흘러나오는 등 검찰은 내홍(內訌)을 겪었다. 이 전총장은 두 사람 기소를 앞두고 검찰 간부회의에서 “검찰은 위기와 시련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도약과 성장을 거듭해온 전통이 있다. 화합과 단결로 검찰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자”는, 평범하지만 뼈 있는 이야기를 던졌다. 그리고 7월11일 신 전총장과 김고검장을 기소한 이 전총장은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 전총장이 사표를 낸 배경은 단순치 않아 보인다. 먼저 본인이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전직 검찰총장과 현직 고검장이 기소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인간적인 고뇌가 적지 않았다. 이번 일로 또다시 검찰에 큰 실망감을 갖게 된 국민들과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된 검찰조직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해준 대통령의 두 아들을 구속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도 더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간부들의 사표 만류

반면 대통령의 두 아들과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를 기소한 것에 대한 정치권과 검찰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스스로 청와대에 물음으로써 여권으로부터 제기될 정치공세를 사전에 차단하고, 전·현직 고위 검찰간부의 사법처리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검찰 내부의 잡음도 예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 전총장의 사표를 받은 즉시 반려했고, ‘검찰에 남아달라’는 검찰 간부들의 호소를 이 전총장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사표 파동’은 마무리됐다. 이 전총장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때 사표를 제출한 것은 이 전총장의 입지를 크게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홍업·홍걸씨를 둘러싼 정치공세도 사라졌고 검찰 내 불만의 목소리도 수그러들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한층 높아졌다. 이 전총장에 대한 신망과 인기가 검찰의 버팀목이 됐던 시기다.

병풍 수사 때 말수 적어져

그러나 뒤이어 닥친 이른바 ‘병풍’은 이 전총장으로서는 더욱 풀기 힘든 난제였다.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장남 정연씨 병역면제를 둘러싼 이 사건은 1997년 대선 과정에 한번 공론화됐던 내용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전 의무부사관 김대업씨는 “1997년 정연씨의 병역비리를 숨기기 위한 대책회의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5년 전 일인데다 실체를 명확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반면 수사는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 분명했다. 즉 민주당 또는 한나라당 가운데 한 곳은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지검이 수사를 벌이는 동안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거의 날마다 치열한 공방을 되풀이하면서 검찰을 압박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수사가 본격 착수되기 전부터 이 전총장을 찾아와 “서울지검 특수1부에 이 사건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겉으로는 김대업씨가 특수1부에서 수사 보조요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지만 내심 박부장이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비춰졌다.

며칠 뒤 한나라당이 박부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자 이 전총장도 한동안 외부와 연락을 끊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이 이른바 ‘병풍 유도’ 발언을 한 뒤 한나라당 의원과 당원들은 서울지검 청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면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병풍수사에서 ‘기대했던’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불만을 토로하다가 수사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0월25일에는 의원들이 이 전총장을 찾아가 “수사를 계속하라”고 몰아붙였다. 이 전총장의 주변 인사는 “홍업씨 사건 때도 힘들었겠지만 병풍수사를 더욱 부담스러워 한 것은 사실이다. 이 전총장은 부담스러울 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스타일이었는데 가장 말수가 적었을 때가 바로 병풍 수사 때였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 이 전총장은 9월초 4박5일의 일정으로 국제검사협회 회의 참석차 런던을 방문, 잠시 근심을 덜고 한갓진 한때를 보냈다. 마침 병풍 수사는 소강 상태였고 이 전총장도 공식 회의일정을 마친 뒤 모처럼 망중한(忙中閑)을 맞았다고 전해졌다. 당시 이 전총장을 수행했던 한 검사는 “런던에서 한식집을 찾아 삽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며 농담도 하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거의 유일했다”고 술회했다.

병풍수사 결과에 대한 논란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10월26일 서울지검에서 발생한 ‘피의자 사망 사건’은 이 전총장의 최대 시련이자 마지막 시련이 됐다.

사건 발생 이틀 뒤 서울지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 전총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곧바로 대검 감찰부에 본격 수사를 지시했다. 이 때부터 이 전총장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하다 ‘물고문’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사퇴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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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택동 taecks@k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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