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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⑨

“‘디지털 감옥’에 사느니 좀 불편한 게 낫죠”

정보인권운동 이끄는 ‘진보넷’ 오병일·장여경 국장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디지털 감옥’에 사느니 좀 불편한 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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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고 알려지자 진보 성향의 사회단체 게시판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들었다. 진보넷은 상업성 없는 독자통신망이라 정통윤의 권고를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민주화를 위하는 변호사 모임(민변)도 진보넷에 법률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진보넷도 정통윤의 타깃이 됐다. 동성애 청소년 사이트와 북한관련 게시물이 문제가 된 것. 정통윤은 데이터센터에 공문을 보내 문제의 글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진보넷은 이를 과잉단속, 억압으로 받아들였고, 이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 정치적 지향점을 찾아냈다. 인터넷을 국가의 검열로부터 지켜내자는 것,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1999년 서해교전과 관련, 한 학생이 나우누리 게시판에 장난 수준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는데 정통윤이 전통법 53조에 의거 ‘내용이 불온하다’며 삭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글은 즉시 삭제됐고 ID까지 정지됐다. 이 사건과 관련, 그해 8월 장국장과 오국장은 민변과 함께 전기통신사업법 53조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 법정 싸움은 3년을 끌었고, 지난 6월27일 헌법재판소는 문제의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오국장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며 이렇게 한다.

“인터넷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반영한 법도 아니고, 군사독재 시절에 국민을 감시하던 법 조항을 적용하다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하지만 최근 정통부가 입법예고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온전하게 수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통신부는 ‘불온’을 규제하는 게 위헌이라면 ‘불법’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장관의 삭제명령권과 정통윤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 장국장은 “이대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다시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서구는 이미 표현의 자유 문제를 졸업한 지 오래입니다. 표현이 문제가 되면 해당 법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만일 문화관광부가 언론매체를 그렇게 규제하고 검열한다면 가만히 있을 기자들이 있을까요?”

진보넷은 비단 정부 당국뿐 아니라 인터넷을 이단시하고 사회 병폐로 매도하는 일부 언론은 물론, 사이버 세계는 혼란스럽고 타락했다는 사회적 인식과도 싸워야 했다. 정통윤은 음란 사이트와 자살 사이트, 폭탄제조 사이트 같은 반사회적 사이트가 청소년들을 타락과 죽음으로 이끄는 주범이라고 몰아세우는 마녀사냥 분위기에 편승, 검열을 주도했다.

장국장은 최근 또다시 논란이 된 인터넷 등급제에 유감을 밝힌다.

“인터넷 등급제는 형식상 자율이지만 규제 내용은 사실상 검열에 가깝습니다. 인터넷이란 매체가 검열과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는 그 사람들이 더 잘 알 겁니다. 단지 규제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거죠.”

감시의 사회

전기통신사업법 53조가 위헌판결을 받았으니 어쨌든 표현의 자유 문제는 반쯤 해결된 셈이다. 그렇다면 정보인권운동은 어디를 향해 뻗었을까. 이와 관련해 장여경 국장이 주목하는 분야는 프라이버시 문제다. 검열 문제에서 한 차원 더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보화의 진전과 함께 감시가 자유로워졌습니다. 이것을 통제할 만한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미진해요. 프라이버시 문제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지금은 개인 정보가 기업의 경영자산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동에 대한 감시가 더욱 세밀해졌는데, 과거의 블루칼라가 CC카메라에 의한 감시에 길들었다면 요즘의 화이트칼라는 인터넷에 의한 노동통제에 노출돼 있습니다.”

사실 ‘프라이버시(privacy)’에 딱 들어맞는 우리말은 찾기 어렵다. ‘사생활’ 혹은 ‘비밀’ 정도로 번역되지만, 최근 감시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보다는 ‘반(反)감시(Anti-surveillance)’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정확하다. 장국장의 말.

“1998년에 108개 사업장을 시범 조사했는데, CC카메라는 어디에나 다 있더군요. 문제는 그것에 찍히는 사람이 찍는 사람과 합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반감시법을 도입한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공장에서 노동자를 감시하려면 프라이버시위원회를 소집해 노·사가 함께 조사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감시설비가 인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거죠.”

우리나라의 통신비밀보호법도 감청설비를 설치할 때 정통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신고한 곳은 전무하다. 근로자들은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통신활동이 감시받는다고 짐작한다. 예를 들어 증권사의 경우 고객상담 직원의 통화는 전부 감청된다. 이른바 ‘작전’이나 수익률 보장행위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지만, 직원들의 동의 아래 실시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디지털 통신수단에 대한 감시는 더욱 심하다. 이메일과 네트워크 감시는 일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디지털 사회에서 개인정보 누출이 초래하는 위험은 고스란히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심각한 인권침해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국장은 “노동감시가 정당하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누구나 감시당할 수 있습니다. 이건 노동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문제입니다. 감시의 문제는 노동현장을 벗어나 국가 전반으로 확대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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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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