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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속으로

서스펜스 중독에서 장바닥 일상으로

‘노회한 文靑’ 황석영과의 질긴 드잡이

  • 글: 이나리 byeme@donga.com

서스펜스 중독에서 장바닥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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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글에 한두 줄씩 비치는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 깊더군요. 혹 문학적 감수성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아닌지요.

“아 그걸 어째 알았나. 맞아요. 그 외에도 어머니가 제 인생에 끼친 영향이 대단히 크죠.”

-어머니 얘기 좀 해주세요.

“우리 어머니는 평양 분이에요. 전문학교까지 다닌 신여성이었어요. 외할아버지는 전홍걸 목사라고, 평양 사람이면 다 아는 유명한 감리교 목사에 교육자고 민족주의자였어요. 3·1운동이랑 신사 참배 거부로 도합 7년간 옥살이를 했는데, 그 때문에 일본 유학중이던 어머니는 중도 귀국할 수밖에 없었대요. 그런 어머니에게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던 아버지가 청혼한 거지요. 그렇게 혼인해서 누나 셋하고 저, 남동생 하나를 보셨어요. 떠밀리듯 한 결혼이라 그랬는지, 어머니는 맏아들인 제게 유난히 집착했어요. 또 평생 일기를 쓸 만큼 문학적 욕구나 소양도 있는 분이었고요.”

-글에서도 그런 게 보여, 혹 외동아들인가 했습니다.



“하여튼 굉장히 심했어요. 오죽하면 제 동생이 요즘도 술 한잔하면 ‘엄마는 평생 형만 알았다’며 섭섭해하겠어요. 누나들도 ‘엄마는 너만 갖고 그랬다’고 할 정도니까. 그 무서운 교육열, 엄청난 교육열…. 대단했지요.”

-그래도 중학생 때까지는 어머니 말씀을 잘 들었나보지요.

“잘 들었죠. 그때는 방법이 없으니까. 근데 압력이 너무 심하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가출도 몇 번하고 자살 기도도 하고…”

-초등학교 때요?

“그럼요. 새끼줄 목에 걸고 광 어디에 매달렸는데, 줄만 툭 끊어지고 말더라고.”

-그때의 자살 충동이란 전적으로 어머니의 억압 때문이었나요.

“그렇죠. 형제끼리 투닥거려도 유독 저만 심하게 때리고 그랬으니까. 저에 대한 지적 욕심도 굉장해서 다섯 살 무렵에는 한글을 깨치게 했어요. 덕분에 일찍부터 책을 참 많이 읽었죠.”

‘비관적 낙관주의자’의 씨

황석영은 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외가가 있던 평양에 머물다 1948년 다시 삼팔선을 넘어 영등포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여학교 교사가 됐다.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병사했다.

6·25가 터지기 전까지 어머니는, 주말이면 어린 석영의 손목을 끌고 연극이며 영화를 보러 다녔다. 뛰노느라 꼬질꼬질한 얼굴을 손수건에 침 묻혀 닦아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눈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사줬다. 1·4 후퇴 후 대구 피란 시절에도 어머니의 책 사 나르기는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재능만 물려준 게 아니라 기본 소양까지 닦아준 셈이네요.

“그게 우리 어머니의 딜레마였던 거지. 예를 들어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꼬박꼬박 일기를 쓰게 하셨는데, 또 잘 쓰면 칭찬도 해주시고. 하지만 작가가 되는 건 결사 반대하셨거든요.”

-부모와의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통과의례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맞아요. 저는 그걸 넘어서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데까지 갔죠. 결국 엄마가 졌지. 아, 그거 참, 잘못 많이 했어.”

-죄의식이 큰가요.

“그런 정도는 아니고…. 왠지 제가 어려운 때면 어머니가 꿈에 뵈어요. 특히 감옥에서 자주 그랬죠. 꿈인지 생시인지, 군용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 머리맡에서 이렇게 절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힘들고 어려울 때면 꼭.”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이 선생 안에 남겨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늘 벗어나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어머니의 유난한 관심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듯도 해요. 전 스스로를 비관적 낙관주의자라 생각하거든요. 평소에는 조울증 비슷하니 낙담할 때도 많고, 그런데 결국은 낙관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죠.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할수록 힘이 생긴달까.”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던 기억이 주는 힘이군요.

“영등포에서 학교 다닐 때도 다른 애들은 무명옷에 검정 고무신이 다였는데, 전 어머니가 손수 만든 반바지에 블라우스, 양말에다 구두까지 챙겨 신고 다녔어요. 계집아이 같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죠. 교복도 1년에 한번씩 꼭꼭 새로 맞추고, 청년기엔 맞춤 구두에 불란서제 레인코트까지 챙겨 입고. 그 없는 살림에도 예의, 체면, 자존심 그런 거는…. 참 무서운 어른이셨어.”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전국단위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어요. 전국적으로 칭찬을 받은 거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그 상을 받는데, 아, 내가 글을 쓰면 칭찬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거죠. 중·고등학교에 가보니 더 그래요. 영등포 변두리에 사는 촌놈이 말이야. 그게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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