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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리포트

“무신 걸 허영 살아야 할지 막막허우다”

감귤 가격 대폭락, 한숨짓는 제주 농민

  • 임재영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무신 걸 허영 살아야 할지 막막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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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감귤 가격이 어느 정도나 하락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서울 등 대도시 농산물공판장에서 낙찰된 감귤의 평균 가격은 지난 1월 중순 400원대에서 2월초 270원대로 폭락했다. 3월 들어 kg당 400원대를 회복했으나 감귤이 귀해지는 시기적 특성을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가격이 아니다.

감귤 가격은 무려 4년째 폭락해왔다. 대도시 공판장의 평균 경락가격은 지난 1998년 kg당 948원에서 1999년 510원으로 폭락했으며, 2000년 658원으로 다소 회복세를 보이더니 2001년에는 또다시 559원으로 내려갔다.

감귤 가격이 폭락한 원인은 생산량이 늘어난데다 과일시장이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 감귤재배면적 1만494ha, 생산량 18만7000t에서 1990년 1만9414ha, 생산량 49만3000t으로 증가했고 1999년에는 2만5823ha, 생산량 63만9000t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렌지 등 외국산 감귤류 수입이 1997년부터 개방되면서 감귤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중간상인과 일부 감귤 농민들이 저질 비상품을 시장에 대량 유통시키면서 감귤 이미지 더욱 나빠진 것이다.

감귤의 생산원가는 kg당 400원 정도. 따라서 이 가격으로는 농약값 물류비 등을 갚을 수 없다. 감귤 가격이 폭락하자 일부 농민은 감귤 출하를 포기하고 창고 등에서 썩고 있는 감귤을 산간 도로변에 몰래 버리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 ha당 2400만원을 지원해 300ha의 감귤과수원에 대해 폐원(閉園)작업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농민들의 폐원 신청 면적은 1226ha에 이르렀다. 감귤로는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감귤농사 포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감귤산업발전계획(2001∼10년)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이 별로 없다.

오락가락한 감귤 대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7년부터 감귤 생산과 유통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생산조정제가 시행되고 한해 동안 감귤 생산을 제한하는 감귤 휴식년제가 실시됐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오렌지 등 감귤류 수입에 따른 판매수익금으로 조성된 기금이 바닥나 더 이상 농민에게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지난 1995년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감귤류 수입판매 국영무역기관으로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이하 제주감협)을 지정해 수익금을 감귤 농가를 위해 쓰도록 했으며 일반 수입업체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기금이 조성돼 감귤 관련정책에 투입됐다. 지난해 이월된 감귤류 수입판매 수익금은 134억원. 그러나 올해 수출물류비, 감귤출하연합회 무역사무소 운영비 등의 예산 58억원과 저장용 감귤수매에 따른 부담금 27억원을 제하고 나면 49억원이 남을 뿐이다.

이 돈은 올해 제주도에서 추진하는 감귤과수원 폐원에 따른 예상 지원액 54억66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감귤류 수입판매 수익금이 올해 말 바닥날 형편이다. 특히 제주감협이 지난해 제주감귤을 미국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액 14억7000만원을 감귤류 수입판매 수익금에서 충당할 방침이어서 적자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또 내년부터 오렌지 등 감귤류 수입에 따른 관세율이 제주감협과 일반 수입업체에 동일하게 적용됨으로써 제주감협이 가지고 있는 수입권은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였다.

기금마저 바닥나고 정부에서 끌어다 쓸 예산도 변변치 않게 되면서 제주도는 올해를 감귤산업 생존의 최대 고비로 여기고 있다. 우근민(禹瑾敏) 제주지사는 최근 도의회 개회식에 참석해 강력한 근본대책을 천명했다.

“197억원을 들인 2002년산 감귤 수매대책은 감귤 농가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일시적인 고육책일 뿐 감귤을 살리는 근본대책은 아닙니다. 더 이상 농가들이 생산한 감귤을 폐기하거나 도민의 세금으로 사들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지사의 이같은 발언은 감귤 수매 등 땜질 처방식 대응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회생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우선 감귤 생산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대대적인 간벌(間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간벌이란 빽빽이 심어진 나무를 간간이 베어내는 것으로, 채광을 높여 감귤의 당도를 높이고 생산량을 줄여나가는 감산정책의 하나다. 고지대와 토양이 습한 지역 등 감귤 재배에 부적합한 과수원에 대한 폐원 정책도 제주도가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장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감귤나무는 한때 몇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는 ‘대학나무’로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주도민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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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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