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탐욕을 버리고 생태문명 일군다

대안교육 꿈꾸는 녹색대학 사람들

  • 정 영시인·자유기고가 01191631971@hanmail.net

    입력2003-03-24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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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이 지난 3월3일 문을 열었다. 인성을 무시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출발한 녹색대학에는 청년에서 노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물 흐르듯 살아가는 녹색대학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탐욕을 버리고 생태문명 일군다
    지리산 자락, 경상남도 함양 백전 마을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살맛나는 세상 한번 살아보자고, 모두가 행복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삶을 가꾸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생태적 삶을 살아보자고 신명나는 웃음과 따뜻한 마음으로 모인 그 주인공이 ‘녹색대학’ 사람들이다.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들은 녹색대학을 만들고 3월3일부터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참된 배움터

    2년 전, 현재 총장을 맡고 있는 장회익 전 서울대 교수, 장원 환경운동가, 김지하 시인, 문규현 신부 등 시민환경단체 인사 33명이 발기인이 되어 태어난 ‘녹색대학’. 학부와 대학원까지 갖췄지만 모든 대안학교들이 그렇듯이 비인가 학교다. 그런데도 인가여부는 아랑곳없다는 듯 모여든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샘’과 ‘물’, 그리고 ‘여울’이다. 이곳에서 샘은 선생님을, 물은 학생을, 여울은 교직원을 칭한다.

    그들이 모여 ‘녹색대학’을 함께 만들며 물 흐르듯 살기로 했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여 그 강인한 응집력으로 서로를 껴안고, 그것이 다시 여울이 되고 샘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다가 바람이나 불보다도 거대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그 작은 물방울들이 어떤 꿈들을 꾸고 있을까.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백운산 아래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녹색대학 교문을 들어서니 나지막이 앉아 있는 학교 건물과 컨테이너박스로 만들어진 임시 기숙사가 봄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넓은 운동장은 겨울을 털어내고 봄을 맞느라 질척질척하다. 아직은 차가운 기운이 손끝에 감도는 날씨인데, 트럭에서 책상과 의자를 나르는 이들이 보인다. 책상과 의자가 들어오는 신나는 오후. 가까이 다가가니 샘들과 물들이 손수 나르는 의자와 책상은 모두 헌 것이다. 어딘가에서 쓰지 않는 것들을 보내준 것이다.



    지금 녹색대학이 서 있는 곳은 폐교된 백전중학교였는데 녹지사(녹색대를 지탱하는 사람들) 회원 2000여 명의 후원금 2억여 원으로 매입해 새롭게 수리했다. 샘과 물들이 토론을 거쳐 손수 학교를 뜯고 고쳐 세웠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채 개교하게 되어 샘님들은 미안한 마음이 큰데, 물들은 일을 하면서도 밝은 모습이다.

    “힘든 일이 많지만, 이미 만들어진 학교가 아니라 처음부터 같이 상의하고 토론을 거쳐서 만들어가는 이 자체가 바로 ‘대안교육’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을 해주세요가 아닌 무엇을 합시다, 무엇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죠. 제게 무엇을 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곳의 주인이 되어 함께하지 않으면 녹색대학 사람이 못 되는 거죠.”

    아직 책상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2층 강의실을 청소하고 도서관 책을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이들이 모두 녹색대학의 샘과 물들이다.

    “그래도 믿음과 교육과 농사를 하나로 껴 붙이어 돈 아니고도 돌아가는 세상을 만들어봤으면 하는 꿈은 언제나 놓지 못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며 녹색대학이 현재 실천하고 있는 자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대안교육이 전개되면서 산청의 ‘간디중학교’, 실상사의 ‘작은학교’ ‘귀농전문학교’, 무주의 ‘푸른꿈고등학교’, 담양의 ‘한빛고등학교’, 거창의 ‘거창고등학교’ 등이 지리산을 둘러싸고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대안 대학교가 없어 대안 중·고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얼마 전에야 대학에서 특별전형으로 대안학교 아이들을 뽑기도 했지만 규격화된 제도권 교육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3월 ‘녹색대학’이 문을 열면서 대안교육의 장이 범위를 넓혔다. 이것만으로도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지만 아직은 대안교육의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샘들은 말한다.

    “문제아이가 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컸던 대안학교는, 규격화된 현 교육의 대안이라는 생각과 개인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하는 학교라는 의미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더 많은 대안학교들이 제각각 다른 특색으로 생겨나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절실한 문제입니다.”

    녹색대학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학생을 뽑았다. 고졸 이상이라는 제한을 달았지만 물론 예외를 두었다. 어떤 삶에 대해서건 존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상사에서 1박2일간 합숙을 하며 면접을 했다. 둥글게 모여 앉았는데 교수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교수들에게 질문을 했다. 한 학생은 교수들에게 계속해서 공격적인 질문과 답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그 학생은 입학해도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자신과 서로에 대한 얘기를 통해 만난 이들이 지금의 녹색대학 가족들이다.

    탐욕을 버리고 생태문명 일군다
    녹색대학의 학부는 녹색문화학과 녹색살림학과 생명농업학과 생태건축학과 풍수풍류학과로 나뉘는데 학교측은 복수전공을 권한다. 학생들도 하나만 전공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인도에서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꾸려진 전공이죠” 하고 한 학생이 말을 건넨다.

    대학원의 경우 녹색교육학과, 생태건축학과, 자연의학과(자연의학 전공/침구학 전공)로 나뉘는데 이들은 주말에만 이곳에 내려와 1박2일간 머물며 강의를 듣기 때문에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은 이들도 가능하다. 대학원생의 경우는 60세가 넘은 사람들도 많다.

    이들 중에는 녹지사들도 많다. 행정처장으로 있는 장원씨는 녹지사들이야말로 단순한 회원이 아닌 생태문명을 일구어갈 녹색대학 공동체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녹지사들의 후원금으로 이루어진 학교니까, 그야말로 진정한 국립대학입니다. 모두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마음으로 세운 학교입니다.”

    녹색대학의 등록금은 국립대 수준인데 자신의 형편에 따라 15% 안팎의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더 내거나 덜 내거나 할 수 있다. 게다가 녹색대학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지역화폐인 ‘사랑화’로도 등록금을 낼 수 있다. ‘사랑화’는 자본주의에서 축적을 목적으로 돌아가는 돈이 아닌 생태 경제적 나눔을 도모하는 대안화폐로 노동의 등가가치가 존중되고 공동체 의식이 적용된 녹색화폐다.

    녹색화폐의 액면가는 일반화폐와 1:1로 교환될 수는 있지만 은행도, 이자와도 무관한 그야말로 인간적인 평등의 돈이다. 예쁜 우리꽃 그림과 단원의 풍속도가 그려져 있는데 위조방지화폐로, 한국조폐공사에 의뢰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지역화폐다. 사랑화는 1000사랑, 5000사랑, 10000사랑 세 가지 화폐가 통용된다.

    교수와 교직원들은 급여의 25%를 녹색화폐로 받으며 학생들은 등록금의 25%를 노동을 해서 받은 녹색화폐로 낼 수 있다. 녹색화폐는 녹색대학의 유기농산물 판매점, 녹색카페 등에서, 또 청미래마을, 서울 인사동의 밥집 겸 술집인 시천주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학부생들은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급자족 공동체생활을 한다. 이들은 공부하면서 농사를 짓고 집도 만들면서 생태적 공동체를 실현해나간다. 머리로 배우고 마는 거창한 이론가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행동하는 실천가들이다.

    그들은 하루에 세 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서 그만큼의 사랑화를 받고, 그 돈으로 다시 등록금을 내거나 유기 농산물을 사 먹는다. 녹색대학에서의 돈은 어딘가에 쌓여 막히는 돈이 아니라 둥글게 원을 그리며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이들의 얼굴이 저녁 빛에 빛난다. 참선과 명상으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둥근 얼굴들이 아름답다.

    샘이 물이고 물이 샘이니…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1층의 교무실도 강의실도 모두 온돌이다. 강의가 없는 금요일 오후, 큰 온돌 강의실에 녹색 빛 사람들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은 낮잠을 자고 있다. 좀처럼 강의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누가 샘이고 누가 물인지도 잘 모르겠다.

    누워서 얘기를 하고 있던 두 남자가 문득 일어나서 앉는데, 가만히 보니 한 사람은 샘이고 한 사람은 물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샘이 물이고 물이 샘이지 싶다.

    현재 녹색대학에선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장원 전 대전대 교수, 허병섭 푸른꿈고등학교 운영위원장, 한광용 전 대원대학교 교수 등 전임교수 10명과 초빙교수 25명이 강의를 한다. 37명의 학부생들과 103명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공부하지만, 그것이 한쪽만의 가르침이나 소통인 건 결코 아니다.

    시대의 스승이 될 만한 분을 모셔 배우는 ‘화요특강’, 다른 지역의 문화나 행사를 경험하러 가는 ‘세상보기’, 자신이 배우고 싶은 스승을 찾아가 배우는 ‘도제수업’이 있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해서 강의하는 ‘물이 만드는 수업’은 교수들도 수강한다. 모두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업들이다. 이 모든 것은 학교측에서 기획한 것이 아니라 샘과 물들의 토론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야단법석’이라는 자리를 통해 이들은 늘 끊임없이 토론한다. 가끔은 열띤 논쟁이 펼쳐지기도 해서 무서울 정도지만 이들은 새벽 3시가 넘도록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지난밤에 토론을 거쳤는데도 아직 결정되지 않아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미룬 것은 학생회장을 뽑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 자리 또한 샘과 물들이 함께하는 자리인데, 역시 누가 샘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다.

    저녁 6시, 식사시간이다. 밥이 차려지면 샘들과 물들이 모두 동그랗게 모여 달그락거리며 밥을 먹는다. 모두 한 솥 밥을 먹고 사는 사이다. 함께 밥을 뜨며 웃고 떠드는 일도 그들에겐 또 하나의 배움이다. 식사를 마치면 자신이 먹은 식기들을 손수 씻는다. 어두워지는 저녁 수돗가에서 찬물에 손을 담그고 그릇을 닦는 사람들. 이들은 이곳에서 이렇듯 모여 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곳에서 노래를 처음으로 부릅니다.”

    탐욕을 버리고 생태문명 일군다

    두 아이의 교육을 위해 지리산 자락을 택한 도서관 사서 이숙경씨와 그의 아들

    말이 조금쯤 느리고 발음이 불분명한 조윤호(27)씨는 모두가 둥글게 모여 앉은 자리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불렀다. 다른 대학에서 전자학과도 다녀보고 국문과도 다녀보고 의사가 되려고 공부도 해봤다. 그러다가 이제야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이제 노래를 더 많이 배워서 레퍼토리를 늘려야 할 것 같다며 수줍게 웃는다. 그의 노랫소리가 정말 좋다.

    일주일간의 해오름제(오리엔테이션)를 마치고 다과를 마련해 둘러앉은 자리. 일주일을 함께 보낸 소감을 말하고 노래를 하는 자리인지라 감격스럽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자리다. 아직 익숙지 않은 노동 탓에 조금쯤 피곤해 보이지만 어떤 확신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노래를 처음 하는 이가 또 있다.

    “다같이 모여서 토론할 때, 다들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데 저는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이대로 있다가는 왕따당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 토론에 조금씩 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다 노래하시는데 저만 안하기는 싫습니다. 다른 데선 노래 부른 적 없는데 오늘은 부르겠습니다.”

    수녀도 스님도 한마음

    그녀가 부른 노래는 ‘산골짝의 다람쥐’다. 모두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른다. 그렇게 깊어가는 늦은 밤의 술자리에 앉아 있던 한광용 샘은 그 노래로 인한 감동으로 그만 눈물을 보이고야 만다.

    학생들의 얼굴이 이토록 제 각각일 수 없다. 그리고 모두 자기의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명료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순수하게 웃는 이들은 모두가 정말 솔직하고 눈이 맑다.

    심지어 학부에는 수녀님이 있고 대학원에는 스님도 있다. 수녀님은 수도자이기에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없어 학교 앞마을에 집을 하나 얻어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것만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 수녀님이 계시던 성당의 다른 수녀님들이 학교를 직접 방문해서 둘러보고 안심하며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온 스무 살의 젊은이도 있고 일흔 살의 노인도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예 이곳으로 내려온 엄마 학생도 둘이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학교 앞에 집을 얻어 살기도 한다. 엄마가 공부를 하거나 노동을 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녹색대학 내의 ‘녹색유아방’에서 선생님과 하루를 보낸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아이에 대한 사랑마저 잃고 살던 한 엄마가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이를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양대 사회과학부 1년을 다니다가 이곳에 온 김현우(24)씨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모두 생태와 환경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갔는데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게 싫었어요. 대학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실망이 컸죠. 어느 날 녹색대학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바로 제가 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이곳에서 내공을 쌓고 싶어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굽히지 않고 팽팽하게 토론하는 걸 보면, 여러 우주가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곳에서 그런 우주들의 생각과 그들의 질서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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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가운데)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귀농을 꿈꾸는 청년 신성우(30)씨. 그는 경희대 철학과를 다니며 학생운동을 한 전력이 있다.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회의적이고 세상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어요. 어느샌가 비관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삶에서 달아나고만 싶어서 도피처로 귀농을 생각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에서 나온 후,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는 ‘한살림’에 들어가면서 도피처가 아닌 또 다른 귀농을 꿈꾸게 되었지요. 아주 긍정적으로….”

    그는 이제 이곳에서 농부의 얼굴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구 어딘가에서 자신의 땅을 일구며 살아갈 것이다. 농부의 손을 가지게 될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대학원 자연의학과에 입학한 조의래(70)씨는 나이가 많아서 학교에 다니는 일을 주저하기도 했지만, 대학의 목표가 좋고 무엇보다 병든 아내를 위해 찾아왔다. 심장판막증 고혈압 뇌경색까지 갖고 있던 아내는 현대의학으로도 안 고쳐지는 병을 자연의학으로 고쳐갔다. 실제 체험을 한 그로선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객관적이고 폭넓은 지식을 갖고 싶습니다. 자연의학으로 병을 고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난치병을 가진 이들에게 자연의학이 희망이 되었으면 해요. 내가 배워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싶습니다.”

    의사자격증이라는 것도 없고, 돈을 벌 수도 없는 의학과인데 이 과의 현재 학생 수는 50명이 넘는다.

    현재 녹색대학 안에서 여울이라고 불리는 교직원은 넷이다. 도서관 사서를 맡은 이숙경(33)씨는 7세, 3세인 아들 둘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남편은 혼자 부산에 있다. 부부가 떨어져 산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좀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게 그들의 희망이었다. 그녀는 현재 학교 앞마을에 전셋집을 얻어 살고 있는데 아이가 넓은 마당에서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도시에선 흙을 밟을 수 없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이 끔찍했어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학원에 보내겠지만 여기선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산의 능선과 나뭇잎의 선, 꽃들의 색을 보고 아이는 미적 감각을 키우겠지요. 냇물 소리, 바람 소리가 아이 속에 있는 영혼을 깨워주겠지요. 더 가치 있는 소리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따라다니면서 키우지 않아도 아이를 키워주는 것들이 여기는 너무나 많아요.”

    얼마 전엔 날이 풀리면서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는데 짝짓기 하느라 그런지 여름철의 울음소리하고는 달리 노랫소리처럼 들렸다며 그 소리를 듣고 살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단다. 그녀는 매일 아침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까지 걷는다. 25분이 걸리는 그 길을 걷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도시에선 무엇에도 감동하기가 힘들었는데, 여기 와선 고요해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라앉아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 감동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녀는 오래도록 두 아이와 함께 그 길을 걸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의 아침이 싱그럽다.

    오늘은 기숙사에 처음 입방하는 날. 늦은 밤, 아직은 냉기가 가득한 기숙사 방에서 한광용 샘과 백선희(20) 물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다름아닌 ‘똥’. 생태화장실, 즉 똥돼지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여러 가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고 있었다.

    똥돼지 화장실과 연탄불 기숙사

    “생태라는 건 에너지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돌고 도는 거야. 생명의 세계는 인드라망이라는 커다란 그물이고 우리는 그 그물에 꿰어진 구슬들인데 한 구슬이 반대편 구슬에 비치고 그 구슬이 다시 그 건너편 구슬에 비치면서 서로를 계속 비추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중의 어떤 구슬 하나를 빼면 그 원리가 깨지는 거야. 생명의 세계가 깨지는 거지.

    우리가 땅에서 난 것을 먹고 똥을 싸면 똥돼지가 받아먹고 똥돼지 똥을 다시 거름으로 써서 농사를 짓는 것이 바로 생태야. 우리의 똥을 바로 거름으로 사용하면 땅이 그걸 다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새나가게 되거든. 나 어릴 적 제주에서 살 땐 친구 집에서 놀다가도 똥이 마려우면 얼른 집에 오라고 할머니가 그러셨어. 아깝거든. 수세식 변기 물로 흘려보내서 오물을 만들어내는 건 잠시 더러운 걸 내 눈앞에서 치우는 것일 뿐, 그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는 생각하지 못하는 거야. 이 땅, 이 세계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우선 다음달에 똥돼지 두 마리를 들여오기로 했다. 이 많은 인원이 볼일을 보려면 더 많은 돼지들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수세식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처음부터 생태화장실만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곧 들어올 똥돼지로 만들 화장실을 어디에 세울지, 어떻게 지을지 의견을 모은다. 이것이 녹색대학에서 샘과 물이 나누는 생태 대화다.

    그러다가 불쑥 나가서 연탄불을 갈고 들어오는 백선희씨. 그녀와 또 한 명의 여학생이 오늘 기숙사의 따뜻함을 유지해야 하는 연탄불 당번이다. 밤새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몇 번이나 잠을 설쳐야 하지만 그래도 탄불 갈고 사는 게 낫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무도 이런 고단함에 불평하지 않는다. 아직 채 겨울이 가지 않아 냉기가 가득한 식당이나 도서관에도 전기난로나 석유난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 석탄 난로를 때고 연탄을 가느라 손끝도 코끝도 새까맣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백선희씨는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이 되던 날부터 뜻 있는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급식보조를 자처하기도 했고 ‘강릉 생명의 숲’이라는 환경단체에 청소년으로는 처음으로 들어가서 환경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을 설득해서 ‘숲 지킴이’ 모임을 만들어 함께 숲을 탐방도 하고 산불 안 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야생화 꽃밭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해도 결국엔 늘 혼자만 남았다.

    “동반자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캠페인을 하기 위해 혼자서 강릉시내 한복판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제 앞으로 친구들이 예쁜 치마를 입고 머리를 찰랑대며 놀러가지요. 처음엔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엔 그 애들에게 다가가 서명을 해달라고 말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 그래도 늘 힘들었던 건 생각조차 나눌 동반자가 없다는 거였죠. 그러니 제가 여기 녹색대학에 이 많은 동반자들과 함께 있다는 게 얼마나 설레겠어요.”

    고등학교 내내 환경운동 단체에 들어가서 일을 하던 그녀는 고3 초에 같은 단체 안의 환경운동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상처로 인해 이곳에 오기 전까지 끝없이 방황해야만 했다. 공부도 소홀히하면서 환경운동을 하던 그녀에겐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삶에 솔직하고 싶어서다.

    “여기 사람들은 마음이 투명해 너무나 아름다워요. 그래서 처음 오던 날부터 얘기하고 싶었어요. 나를 계속 숨기는 건 싫거든요. 지금 저는 제 스스로에게 다시 용기를 주고 있는 거예요.”

    개교하던 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사연을 말하며 이곳에서의 희망을 말했다. 모두들 따뜻한 박수로 그녀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방황 끝에 그녀가 찾은 이곳이 그녀의 꿈을 다시 부풀리기 시작했다.

    “서로를 존중하고 부대끼며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이들과 함께 땅을 밟는, 내 생명 자체가 소중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런 교육을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아버지는 건축설비 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집 앞 길목에서 연탄불 포장마차를 하신다. 처음 녹색대학에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를 하셨다.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녹색대학이 점점 알려지면서 지금은 조금 이해해주시지만 아직도 염려가 많으시다.

    “멀리 떨어져서 지내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어떤 말보다도 꾸준히 노력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됐으니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멀지 않은 날, 생태건축가나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어요. 지금만 해도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녹색카페도 기숙사 지붕도 생태화장실도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정말 행복해요.”

    햇살 아래 수돗가에서 양치를 하다가 고개를 들고 웃는 모습이 어여쁘다. 당찬 표정으로 자신의 꿈을 말하는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둥근 얼굴로 원을 그리며 살아라

    탐욕을 버리고 생태문명 일군다

    국내 첫 지역화폐 ‘사랑화’는 이자가 없는 인간적인 돈이다.

    ‘청미래마을’은 녹색대학의 생태공동체 마을이다. 녹색대학에서 조금 더 산으로 들어가 굽이굽이 길이 멈추는 곳, 지리산 자락에 안긴 땅. 대안리 일대 3만평 부지에 청미래마을이 들어서고 있다. 입주자들은 예정됐는데 손수 집을 짓고 있는 터라 겨울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졌으니 집들도 다시 쑥쑥 올라가고 지붕도 덮일 것이다.

    그 중 아직 지붕을 올리지 못한 집에 녹색대학의 장회익 총장이 살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지내다가 이곳으로 터를 옮긴 그는 오늘도 학생들의 기숙사에 들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녹색대학의 학생들은 배움과 삶의 격차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움이 삶에 도움이 되고 삶이 배움에 도움이 되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체험이 아니지요. 이 안에서 그들이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4년 동안 교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무엇을 배우기보다는 공부하는 법을 배워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 마음속에 교수 한두 명을 넣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을 거예요.”

    녹색대학의 모든 샘들이 물들에게 바라는 것은, 세상에 나가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환하게 웃는 둥근 얼굴로 세상에 원을 그리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아직 백운산 산꼭대기엔 눈이 녹지 않았다. 그 눈이 다 녹을 무렵이면 녹색대학은 말끔한 얼굴이 되어 환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맑은 샘물들의 웃음만으로도 봄바람은 산들산들 날아올라 벌써 백운산 정상을 넘는다. 날아라 녹색대학! 피어라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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