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계의 갈등 지도 (4)│카슈미르

중재도 협상도 소용없는 21세기 최대의 화약고

  • 글: 라윤도건양대 교수 정치학 ranuma@hanmail.net

중재도 협상도 소용없는 21세기 최대의 화약고

2/8
통칭 카슈미르로 불리는 이 주의 공식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한 22만2000㎢. 마름모꼴로 되어 있으나 1948년 제1차 인파전쟁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현재는 인도령 10만1000㎢, 파키스탄령 7만8천㎢, 중국점령지역 4만㎢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인도령은 또 크게 잠무(2.6만㎢), 카슈미르밸리(1.6만㎢), 라다크(4.9만㎢) 등 3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북위 35도에 걸쳐 있어 사계가 뚜렷하며 풍광이 수려한 카슈미르는 역대 무굴제국 황제들과 영국 식민통치 관료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마름모 형태 국경의 북부 두 변은 소련(아프가니스탄의 와칸 협장지를 사이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과 중국, 남부 두 변은 인도,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에 위치한 높은 전략적 가치를 지닌 지역이다.

독립 당시 200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이 지역의 종교 분포는 힌두교도가 마하라자(왕) 하리 싱 등 집권계층을 포함, 30%에 불과했던 데 비해 모슬렘은 60%가 넘었다. 따라서 인구비례로 한다면 카슈미르는 파키스탄에 속해야 했다.

그러나 이같은 종교분포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카슈미르인들은 파키스탄이 아닌 인도 잔류를 원했다. 이는 카슈미르의 중심을 이루는 밸리 지역이 힌두성자들의 순례지로 전통적으로 인도에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 독립투쟁의 중심에 섰던 자와하를랄 네루 초대 총리가 카슈미르밸리 지역 브라만의 후손이다.

또 이 지역 출신으로 카슈미르인의 ‘국부’ 혹은 ‘카슈미르의 라이온’이라 불린 민족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 압둘라가 인도를 지지, 대다수 카슈미르인들의 인도 편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세기말 브라만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압둘라가(家)의 후예인 셰이크 압둘라는 “나의 종교는 지나(파키스탄 초대 수상)와 같지만 나의 꿈은 네루와 같다”고 강조할 정도로 네루를 추종했다.



힌두 소수정권의 모슬렘 차별

카슈미르는 8세기 이전부터 독립된 힌두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말 무굴제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17세기 이후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지역이 남아시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 영국이 카슈미르를 잠무의 왕 굴랍 싱에게 750만루피에 양도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는 당시 펀자브의 시크족들과 맞서고 있던 영국이 잠무 도그라족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화해의 제스처로 넘겨준 것이었다.

당시 인도식민지를 견고하게 구축하려 했던 영국은 러시아 세력의 남하에 신경을 썼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자국 세력 아래 두기 위해 두 차례 영-아프간 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굴랍 싱은 영국을 적극 도와주었다. 또한 굴랍 싱은 1845년 영국과 시크족의 전쟁인 앵글로-시크전쟁에서 라호르 왕국이 패하자 1846년 시크왕국과는 라호르 조약, 영국 식민정부와는 암리차르 조약 등 2개의 조약을 맺음으로써 펀자브 지방에서 영국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카슈미르로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이로부터 1백년 가까이 카슈미르는 잠무 카슈미르 왕국의 지배 하에 놓였으며 카슈미르 수도인 스리나가르는 여름 수도 역할을 해왔다. 남부의 잠무 지역은 힌두교도가 다수였으며 전체적으로는 모슬렘이 압도적으로 많아 모슬렘과 힌두의 비율이 3:1에 달했다.

원래 카슈미르에서는 힌두 지배에도 불구하고 모슬렘과 힌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로 힌두 우위정책으로 돌아섰고 그에 따라 힌두 지배층이었던 카슈미르 브라민(판디트)과 잠무 지역의 도그라들이 남쪽의 기름진 농토들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다. 자연히 이들 농토에서 일하던 다수 모슬렘들은 힌두의 소작인으로 신분이 격하되었다. 이 지역의 종교분포 비율은 잠무 지역은 53%, 카슈미르 지역은 93%로 모슬렘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지역 마지막 군주였던 하리 싱의 통치 때까지 모슬렘의 신분 개선을 위한 노력은 기울여지지 않았다.

이같은 소수 힌두의 압정에 대한 반대 감정이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갖고 있던 젊은 모슬렘 지도자 셰이크 압둘라에 의해 결집되기 시작했다. 숄 직조공장을 운영하던 카슈미르 브라민의 후손으로 18세기말 모슬렘으로 개종한 집안에서 1905년 태어난 압둘라는 알리가르 모슬렘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뒤 스리나가르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 점차 모슬렘 자치와 토지개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931년 잠무의 한 감옥에서 코란이 간수에 의해 훼손된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모슬렘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압둘라는 이 운동을 이끌며 전국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종파적 편견의 타파를 주장하여 1939년에는 일찍이 자신이 설립했던 ‘모슬렘 컨퍼런스’를 ‘내셔널 컨퍼런스(NC)’로 바꿔 투쟁에 나섰다. 또 1944년에는 카슈미르의 잠무 도그라족 지배로부터의 궁극적인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해방을 의미하는 ‘뉴 카슈미르’ 구상을 발표했으며 그 실현을 위해 1946년부터는 ‘큇 카슈미르(Quit Kashmir, 타세력은 카슈미르에서 손을 떼라)’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간디와 네루의 지지를 받았으며 인도 건국을 이끈 콩그레스당과 내셔널 컨퍼런스 간에는 자연스러운 협력관계가 수립되었다.

2/8
글: 라윤도건양대 교수 정치학 ranuma@hanmail.net
연재

세계의 갈등 지도

더보기
목록 닫기

중재도 협상도 소용없는 21세기 최대의 화약고

댓글 창 닫기

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