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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눈밭, 모래밭 걸어도 발자국 안 남기지요”

산중무예 ‘氣天門’ 사부 박대양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눈밭, 모래밭 걸어도 발자국 안 남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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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 도복 차림에 말씨가 차분하고 조용한 박대양씨는 “기천문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론을 중심으로 수련을 쌓았거나 개론이 정립된 수련법이 아니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기천문이란 무엇입니까.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강남 도심 한복판에 도장을 차린 것이 도발적이기도 하고요.

“기천이란 하늘과 땅의 모든 기운을 포함해 대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민족 고유의 선도입니다. 누구는 국선도라고도 하고, 선도라고도 하는데, 그냥 기천문이라는 이름이 옳지요.”

옆에 있던 변치호 원장이 보충 설명을 한다. 박대양씨는 가능한 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시대 이후 정통 무예로서의 기천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춥니다. 배우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특별한 사람에게만 전수되는 선(禪)의 일종이 되어 산중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말이 아니라 실제 동작과 모습으로 기본원리를 배우는 방식이다 보니 널리 보급되지 않았어요.



그나마 정통의 맥은 산속의 외로운 지킴이들에 의해 이어져왔습니다. 초기에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흐름이 이어지다가 조선조 중기부터 태백산맥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다 현대에 이르러 기천의 마지막 전인(傳人)인 박대양 사부님께서 설악산 주변의 깊은 산중에서 하산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거죠.”

난 곳도, 부모도 모르지만

흡사 무협소설 첫 장을 읽는 듯 신비감이 물씬 풍기는 스토리를 듣다보니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의아한 마음이 생긴다. 그럼 박씨는 기천문을 어떻게 전수하게 된 것일까.

-박선생은 누구에게서 기천문을 배웠습니까.

“원혜상인이라는 스님이십니다.”

-원혜상인은 어떤 분입니까.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스승을 잘 모른다니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그러나 이어지는 설명을 듣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씨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10대 후반까지 설악산과 태백산 근처 깊은 산중에서 자랐다고 한다. 주민등록에는 1957년생으로 돼 있지만 이는 양부모가 호적에 올린 단순한 숫자에 지나지 않을 뿐, 실제로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 생일이 언제인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 저는 스승님이 위대한 스님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다만 제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원혜상인이 저를 기르셨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지는 기억도 없고 들은 바도 없습니다. 그저 깊은 산중에서 노스님의 수발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그러니 한편으로 저는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옛일을 더듬을 때마다 눈물이 나지요. 마음이 약해져요.”

산중무예의 전수자답지 않은 섬세한 마음자락이 언뜻 드러났다.

박대양씨의 스승 원혜상인은 최근에 이르러 무예분야는 물론 품격과 태도면에서 당대 최고의 도인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원혜상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도력이 높은 소수의 승려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다는 것. 이쯤 되면 신비스러운 인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박씨가 열아홉살쯤 되어 속세로 내려온 1970년 무렵 원혜상인의 나이가 무려 159세였다고 한다. 단연 기네스북 감이지만 이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이는 없었다.

“제가 산을 내려와 떠돌던 1972년에 주민들이 제 행동거지가 이상하다고 경찰에 신고해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었어요. 출생지나 부모도 모르고, 행선지도, 고장 지리도 모르니 고스란히 간첩으로 몰린 거죠.

경찰서에서 ‘내 스승이 원혜상인이고 언젠가 탄허스님(1913~83·현대 한국불교의 고승이자 불교학자)이 스승님에게 삼배(三拜)를 드리는 것을 보았다’고 얘기했더니 경찰이 탄허스님께 연락을 하더군요. 예전부터 원혜스님을 잘 알고 계시던 탄허스님이 제가 그 제자라는 보증서를 써주신 덕분에 석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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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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