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이 좋았다고요.
“네. 거기서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공부 잘해서 월반도 하고.”
-그렇게 어린애가 뭘 아나요.
“안다기보다 그냥 스며든 거죠. 삶의 자세, 정신적인 것부터 걸음걸이, 자유로운 거랑 삐딱한 시선 같은 거. 항상 흑인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걔들이랑 길에서 카세트 매고 춤추고…. 너무 잘 맞았어요. 지금도 흑인들과 있으면 편해요.”
-어떤 면이 잘 맞았죠.
“감정 기복이 큰 거요. 금방 웃다 또 우울하다, 그렇게 안과 밖의 기복이 큰 게 아주 솔직하고 감정적이에요. 화나면 때리고 신나면 춤추고. 우리끼리 노는 그 끼가 다른 사람들하고는 충족될 수 없는 거죠.”
-학교 생활은 어땠어요.
“백인, 흑인, 황인이 다 섞여 있었어요. 첨에는 많이 맞고 돈도 뺏겼죠. 그런데 6개월쯤 후부터는 제가 짱이었어요.”
-계기가 있었겠네요.
“하루는 역시 돈을 뺏기고 밀침을 당했는데 장미덩굴에 쓰러져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어요. 집으로 가는데 제 자신에 대해 너무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내일은 꼭 싸우겠다고 결심했죠. 다음날 쌍절봉을 만들어 가서 다 팼어요. 한번 폭발하니까 되게 많이 때리게 되더라구요. 한 명은 차에 다리까지 끼고. 싸우는 과정을 사람들이 다 봤는데, 그때 미국에선 브루스 리가 (문화) 키워드였거든요. 우리나라 애들은 다 태권도 단 따고 가잖아요. 그때부터 별명이 브루스 리가 됐고, 흑인 애들이 먼저 같이 다니자고 했어요. 덕분에 다른 한국 애들도 놀림을 안 당하게 됐죠.”
-영어는 빨리 배웠나요.
“네, 되게 빨리요.”
-머리가 좋은 건가요 적응이 빠른 건가요.
“머리로 적응한 게 아니라, 제가 되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거든요. 그게 워낙 커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해피하게 산 것 같아요. 안 좋은 일 있으면 반사적으로 ‘그래서 좋은 점은 뭐지’ 하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제가 체력이 아주 좋아요. 어머니 닮았나봐요. 예순 연세에도 하루에 5km씩 뛰시니까. 그런데 끼는 없어요. 다른 식구들 다. 특히 아버지는 혼자 있는 거 너무 좋아하시는데, 전 혼자 있으면 불안해 죽어요.”
-혼자 있는 게 싫은가요.
“항상 그래요. 10대 때도 방문 안 닫고 큰 애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 곁에 누군가 없으면 못 견뎌하죠. 애인과 헤어지면 금방 다른 사람 찾고. 안 그래요?
“정말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전 제일 신기한 사람이 혼자 영화 보고 여행 다니는 사람이에요. 저랑은 다른 종류의 사람 같거든요. 전 혼자 있을 때 뭔가 좋은 걸 만나면 감당을 못해요.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차 타고 가다 좋은 음악 나오면 채널을 아예 돌려버리거나 전화를 해요. 누구한테든 그 말을 하고 같이 들어야 돼요. 아마 제가 대중예술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무슨 곡을 만들었는데 누가 안 좋다 그러면 그냥 덮어버려요. 남들은 자기만족이니 뭐 그런 말을 하는데 전 그런 거 없어요. 남들이 좋아하는 게 내 만족이에요.”
-그에 대한 회의는 없나요.
“없어요.”
-왜 그런 것 같아요?
“전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인간이란 존재를 되게 믿고, 바뀔 수 있어, 해낼 수 있어, 사람은 근본적으로 착해, 늘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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