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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①

‘찬탁론자’ 의심받던 이승만, 세력구축 위해 돌연 반탁운동 나서

  • 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찬탁론자’ 의심받던 이승만, 세력구축 위해 돌연 반탁운동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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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이승만 박사에겐 지지자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박사가 신탁통치 반대세력을 선택한 것이죠. 이박사는 그때서야 신탁통치 반대를 들고 나왔어요. 그 전까지는 신탁통치에 대해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힘이 된다면 언제든지 끌어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반탁세력을 끌어다 썼다고 생각합니다.

박 : 당시 지식인들이 처음 경교장에 모였을 때는 3상회의 내용을 잘 모르고 반탁을 주장하다가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는 생각을 바꿨다고 하셨는데,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쯤입니까.

강 : 경교장 모임 이틀 후인 1945년 12월31일 서울운동장에서 반탁궐기대회를 했어요. 그때 저도 강연 등을 했는데, 그때까지는 여론이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1월 초에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에서 3상회의를 지지하고 나왔어요. 여기에서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 부딪쳤는데, 그때부터 5월 사이에 신탁통치를 반대하던 세력들이 차츰 내용을 알게 되면서 운동의 강도가 약해졌습니다. 5월 초순에는 양측이 남산과 서울운동장으로 나뉘어 모였는데, 저는 아무 데도 안 갔어요.

암살의 배후는?

박 : 혹시 좌우익으로 나뉘어 진행된 1946년 3·1절 기념식이 아니었습니까.



강 : 제가 기억하기엔 5월 초순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면 그 무렵 ‘강원용이 배반해 남로당이 모이는 남산에 가서 강연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경동교회에서 조향록 목사와 얼마 안 되는 교인을 모아놓고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테러단이 왔다”고 합디다. 당시엔 테러단이 자주 몰려다녔는데, 좌익 테러단인지 우익 테러단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요. 양쪽에서 다 몰려다녔으니까. 그날 테러단이 트럭을 타고 왔다길래 제 집사람과 조목사의 부인이 살펴보러 나가면서 저더러는 도망을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교회 뒤 울타리를 넘어 신당동으로 도망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어느 교회 청년들이라는데,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었대요.

조목사 부인이 나가보니 인솔자가 이북에서 넘어온 인척 오빠더래요. 그래서 “오빠 여긴 어떻게 왔소?” 하니까 “너는 왜 여기에 있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과 나하고 이 교회에서 예배드린다고 하니까-그때 저는 아직 목사가 아니었어요-그 청년이 “좌익하는 놈을 왜 끼고 다니냐”며 “그놈이 남산에 가서 공산당 강연을 했다”고 했답니다. 저는 근처에도 간 적이 없어요. 당시에 우리는 대개 양쪽에 다 동의하지 않았어요. 지지운동도, 반대운동도 안 했죠. 물론 계속해서 반대하는 과격파도 있었고, 계속해서 지지하는 좌익들도 있었지만.

박 : 경교장 모임으로 다시 돌아가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날 송진우 선생이 반탁이 주조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했다고 하셨는데, 그는 경교장 모임에서 귀가한 직후 암살당했습니다. 암살자는 이전에 송진우 선생의 경호원을 하다가 그만둔 사람으로 밝혀졌죠. 그런데 나중에 장택상씨가 술자리에서 미군정 인사에게 “송진우 암살사건 배후에 김구가 있었다” “경교장에서 모인 날 싸워서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겁니다(로빈슨 저 ‘미국의 배반’ 참조). 당시 그런 소문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강 : 김구 선생과는 무관하다고 봅니다. 송진우 선생을 죽인 한현우가 법정에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왜 송진우 선생을 죽였냐”고 물으니 “좌익에선 여운형, 우익에선 송진우가 나라를 망치려 해서 둘 다 죽이려고 했다”고 했어요. 둘 다 죽일 생각이었는데, 먼저 여운형 선생을 죽이려고 따라다녔답니다. 그러다 종로3가 파고다공원 근처에서 여운형 선생이 걸어오는 걸 보고 죽이려 했는데, 그가 멀리서 자신을 알아보고 “아, 현우군! 오랜만일세” 하고 다가와서는 어깨를 탁탁 두드리니 차마 못 죽이겠더라는 거예요.

한현우가 두 사람을 다 죽이고자 했다면 김구 선생이 개입됐을 리는 없습니다. 김구 선생은 1947년 장덕수 선생 암살 배후로도 의심받아서 미군정이 그를 법정에 불러내 조사하려 한 일이 있죠. 미국 사람들이 송진우 선생을 죽인 배후에 김구 선생이 있다고 봤다면 거기에는 정치적인 음모가 있을 겁니다. 미군정은 김구 선생을 싫어했으니까. 그를 테러리스트로 봤거든요(송진우, 장덕수의 암살과 관련해서는 박태균 저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도진순저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 참조).

송진우의 혜안(慧眼)

박 : 지금의 시각으로 모스크바 3상협정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강 : 저는 송진우 선생이 당시 정치가로서는 가장 머리를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밤 그는 “3상회의 결의문도 읽지 않고 방송만 듣고 떠들어선 안 된다”며 “길어야 5년 이내에 끝나는 신탁통치를 하고 결국엔 한국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의논해 민주적인 통일정부를 세운다고 하는데, 이대로라면 우리가 5년을 왜 못 견딘다는 말이냐”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끼여들지 않고 우리끼리 정부를 세우라고 하면 과연 우리가 5년 안에 통일정부를 세울 자신이 있느냐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저는 ‘저 사람이 무슨 저 따위 소리를 하고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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