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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조선시대 궁중음식 A to Z

날고기 스토커연산군, 불고기 마니아 광해군

  • 글: 한복진 전주대 교수·문화관광학 hanbokjin@yahoo.co.kr

조선시대 궁중음식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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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들의 일상적인 식생활은 어땠을까? 아무리 왕족이라 해도 매일 먹는 식사가 백성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금의 진지는 ‘수라’라 했는데, 이는 몽골의 부마국(駙馬國·사위의 나라)이었던 고려 말기 몽골어에서 전해진 말이라고 한다.

궁중의 일상식에 대한 문헌 자료는 연회식 자료보다 훨씬 부족한 형편이라 실제로 어떤 임금이 무엇을 들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궁중의 일상식을 전해주는 문헌으로는 유일하게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전해진다. 이는 정조 19년(1795)에 모후인 혜경궁 홍씨의 갑년(甲年·회갑)을 맞아 화성(華城)의 현융원(顯隆園)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푼 기록이다.

이 의궤 찬품조에는 왕과 자궁(慈宮)과 여형제들이 한성 경복궁을 출발하여 화성에 가서 진찬(進饌)을 베풀고 다시 환궁하는 8일 동안 왕족들에게 올린 음식과 공궤(供饋), 진찬, 양로연 등 잔치에 쓰인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행행(行幸)하는 도중에 이동식 소주방에서 마련한 반수라상, 죽수라상, 응이상, 고임상, 그리고 다과상에 해당하는 다소반과(茶小盤果)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다.

‘영조실록’은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고래로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早飯)과 아침저녁 때의 두 차례에 걸친 수라상, 점심때의 낮것상, 그리고 야참(夜食)까지 총 다섯 번의 식사를 말한다. 이른 아침 초조반으로는 미음, 응이, 죽 등을 가볍게 먹었고, 아침수라(朝水剌)는 오전 10시경, 저녁수라는 5시경에 들었다. 낮것상에는 간단한 장국상이나 다과상을 올렸고, 야참으로는 면, 약식, 식혜 또는 우유죽 등을 올렸다.

그러나 왕 자신의 인생관에 따라서는 사치스러운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즐기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검박(儉朴)함을 몸소 실천하는 현주(賢主)도 있었다. 연산군은 날고기를 좋아하여 한 고을에서 하루 7마리의 생우를 잡게 했고, 광해군은 불고기만 즐겼다고 ‘계축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영조는 하루 세 차례만 식사하였고, 정조는 찬품(饌品)을 서너 그릇 이외에는 더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나온다.



궁궐 안에는 대전, 대비전, 세자전, 대왕대비전 등 전각이 각각 따로 있었고, 각각의 전각마다 수라간이 딸려 있어 제각기 딸린 주방에 수라간 나인들이 배속되었다. 임금은 평소 침전에서 수라를 들었으니 경복궁에서는 교태전에서, 창덕궁에서는 대조전에서 수라를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 임금인 순종과 윤비는 겨울에는 대조전의 등온돌(순종의 침실)에서, 여름에는 대청마루에서 수라상을 받았다. 순종과 윤비는 겸상이 아니라 나란히 일자로 앉아 각각 독상을 받아 수라를 들었다고 한다.

드라마 ‘대장금’에는 여러 궁녀가 둘러서 있는 가운데 임금이 수라상을 받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붉은 상 두 개, 전골상 3개가 한자리에 차려진 12첩 수라상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종 임금 당시의 수라상에 대한 문헌적 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300년 후인 1800년대 고종 임금의 수라상차림을 재현한 것이다.

수라상은 12첩 반상차림으로 수라와 탕 두 가지씩과 김치, 조치, 찜 등 12가지 찬물로 구성된다. 백반(白飯)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두 가지를 수라기에 담는다.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 두 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려 그날그날 먹고 싶은 수라와 탕을 고를 수 있게 한다. 조치는 토장조치와 젓국조치 2가지를 준비하고 찜, 전골, 침채 3가지와 청장, 초장, 윤집(초고추장), 겨자집 등을 종지에 담아 차린다. 쟁첩(반찬그릇)에는 12가지 찬물을 사용해 육류, 어패류, 채소류, 해초류 등 다양한 식품재료로 조리법을 각각 달리하여 만든 반찬을 담는다. 더운 구이, 찬 구이, 전유화(전유어), 편육, 숙채(나물), 생채, 조리개(조림), 장과(장아찌), 젓갈, 마른찬 그리고 별찬으로 회와 수란 등을 올린다.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수라상에는 쌀밥과 팥밥 두 그릇을 함께 놓는 풍속이 있었다. 그러나 고종과 순종은 팥수라는 뚜껑도 열어보지 않았다 하고, 윤비는 팥수라를 좋아했지만 나이가 든 후에는 흰밥만 먹었다고 한다.

수라는 화로에 숯불(白炭)을 담아놓고 새옹이라고 하는 곱돌솥에 꼭 두 그릇씩만 지었다. 이름난 지방에서 진상된 쌀로 지어 밥 끓는 냄새가 마치 잣죽 끓이는 냄새같이 고소했다고 한다. 팥수라는 팥 건더기를 뺀 팥 즙만 가지고 쌀을 물들여 고운 분홍빛이 도는 밥이었다. 팥 건더기를 쓰지 않는 것은 꺼칠꺼칠한 것이 입안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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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복진 전주대 교수·문화관광학 hanbokji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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