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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 부록|제4회 동아 仁山 문예창작 펠로십 당선작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 글: 김도연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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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는 점점 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주인을 잃고 떠돌던 개가 비를 피해 폐광으로 들어왔다가 길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갈림길이 많은 폐광의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개는 아마 장님이 되거나 굶어 죽을 것이다. 박종포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으며 소리를 따라 방향을 바꿨다. 그를 발견한 개가 굶주림으로 인해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없진 않았지만 호기심을 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개 짖는 소리는 바로 앞에 있는 어둠을 밀어낼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한 마리가 짖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박종포는 입 속의 침이란 침은 모두 긁어모아 삼키곤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았다.

빛은, 조명탑에서 초록의 잔디 구장으로 일시에 내리꽂히는 것처럼 박종포의 부릅떴던 눈을 향해 몰려들었다. 침을 흘리며 덤벼드는 사나운 개떼와 맞닥뜨린 것처럼 박종포는 뒷걸음 한번 못 치고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온몸이 갈가리 뜯겨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을 감았지만 하얗게 타버린 시야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 감아도.

“자자, 일어들 나요! 강씨 아저씨, 일어나라니까! 여기가 여관인 줄 알아!”

박종포는 실눈을 뜬 채 바깥을 살폈다. 젊은 역무원이 만만해 보이는 강(姜)을 흔들어 깨우곤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긴 나무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운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눈만 겨우 가느다랗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유리창 너머 역전에는 변함 없는 폭염이 아스팔트를 하얗게 변색시키고 있었다. 박종포는 다시 눈을 감으려다가 곧 포기했다. 이글거리는 지열을 내뿜는 역전의 아스팔트로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는 개들을 보고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맞대고 누워 있는 황(黃)의 땀에 절어 뒤엉킨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소주 냄새가 진동했다.

“저것 좀 보라구!”



“……끙, 자는 건 개도 안 깨운다고 공잔가 맹잔가가 말했을 텐데 형님은 또 왜 그러슈?”

황이 얼굴을 돌려 투덜거리자 소주 냄새와 안주로 먹은 고등어 통조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잘려나간 무릎 아래를 감싸던 바지가 힘을 잃고 의자 아래로 축 늘어졌다. 언제 보아도 마음 한구석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박종포는 유리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개들 좀 봐!”

“‥…개 첨 보우? 찌는 날씨니 형님도 강가 모양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네.”

“자세히 좀 봐봐!”

“……어라? 저게 웬 조화냐!”

박종포와 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앉아 맨손으로 얼굴을 씻고 멍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개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저것들이 단체로 미친 모양이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뽕짝을 들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허옇게 말라붙은 침을 턱에 붙이고 있는 강이 일어났고 젖무덤이 다 보이는 헐렁한 옷을 걸친 정선댁도 부스스한 머리를 다듬었다. 폭염을 건너온 뽕짝은 대합실의 나른함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 정선댁과 강은 다시 누워버렸다. 개들도 더운지 역사의 그늘 속으로 모여들었다. 황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박종포의 귀를 끌어당겨 속삭였다.

“종포 형님? 지금 우리가 헛것을 보는 모양입니다.”

“헛것이 아닌 것 같은데…….”

“헛것이 아니면, 대명천지에 개새끼들이 만 원짜리 지폘, 그것도 단체로 물고 다니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돈이다아!”

다시 잠든 줄 알았던 강이 어느새 일어나 침을 흘리며 개들을 향해 걸어갔다. 큰 엉덩이를 흔들며 정선댁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목발을 움켜쥔 황이 망설이다가 박종포의 의중을 물었지만 박종포는 대답하지 않았다. 뽕짝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끙! 소리와 함께 때에 전 붕대가 감긴 황의 목발이 대합실 바닥을 딱딱 두드렸다. 박종포는 새우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역전의 ‘지폐 수거 작전’을 눈으로 좇았다.

정선댁은 말과 손짓으로 개를 어르고 달래는 전술을 썼으나 번번이 코앞에서 놓쳤고 강도 어슬렁거리는 개의 꽁무니만 쫓아다닐 뿐 실속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황은 단연 달랐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정선댁과 강이 놓친 개가 옆을 지나치면 벼락치듯 목발로 후려갈겼고 그때마다 만 원짜리 지폐는 나비처럼 팔랑거리다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목발에 일격을 당한 개는 깨갱거리며 역전을 빠져나가거나 성질 사나운 놈은 저만치에서 어금니를 드러낸 채 짖어댔다. 초반 실적에서 황이 앞섰다면 중반부터는 강의 독무대였다. 목발을 의식한 개들의 몸놀림이 빨라지자 황은 번번이 허탕을 쳤고 제 동작에 말려 넘어지면서 힘을 잃었다. 강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안주용 오징어는 단번에 개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녀석들은 당연하게 땀에 절은 오징어다리 하나와 만 원짜리 지폐를 교환했다. 일종의 상거래인 셈이었다. 실적이 저조한 정선댁은 어쩔 수 없이 어부지리 전술로 몇 장을 건졌다. 황에게 으르렁거리는 개들이 흘린 지폐를 줍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후반부는 어느새 냄새를 맡고 달려온 역전 조무래기들의 독무대였다. 빠른 기동력과 두세 명이 한 조가 돼 포위하는 전술로 몰아쳤기에 황과 강, 정선댁은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저 고개만 돌리느라 바빴다. 대합실의 박종포는 그 모든 상황을 낱낱이 살피면서 때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한숨을 토했다. 포장을 친 용달차 한 대가 안경다리 쪽에서 올라오자 역전 일대의 모든 아우성은 뽕짝의 가락 속으로 한꺼번에 빨려들었다. 개들과 사람들은 한데 어울려 즐거운 운동회를 치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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