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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⑩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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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 부부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이는 나보다 위지만 대학 학번이 같은 남편과 나는 결혼 뒤에도 한동안 친구였다. 결혼 뒤 10여년이 흐르고, 아이 둘이 자라면서 관계가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골로 내려와 하루종일 붙어살게 되니, 서로를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우리 부부는 아침밥을 같이 먹고 나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지냈다. 주말에야 같이 있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하지만 함께하는 건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오니 늘 함께 지내게 된다. 사람을 사귀어도 함께 사귀고. 일을 해도 함께 해야 하고. 그러니 참 많이도 부딪혔다.

그렇게 부딪치면서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처음에는 서운하고, 다음에는 답답하고. 남편을 원망해봤자 부부 사이만 벌어질 뿐이다. 귀농한 이웃들 사이에는 ‘남편은 머슴, 아내는 마님’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시골 일이 그렇지. 남자 손이 가야 되는 일이 그만큼 많다. 아파트야 집 밖은 관리소에서, 집 안은 전화 한 통이면 보수가게에서 다 해주지. 사실 자기 집 안팎을 돌볼 일이 있나. 한데 시골은 늘 손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시골 살림이 어설플수록 손볼 일이 더 많다. 살림을 살다 어디를 고치려 하면, 그건 남자가 할 일로 여겨진다. 그러니 계획은 아내가 하고 그에 따라 일은 남편이 하지. 마님과 머슴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 있다.

한데 현대판 머슴은 마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귀농해서 자연에서 살고자 할 때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지 않겠나. 그러니 집안일이지만 아내 말에 얽매일 리 없지. 이렇게 남편을 이해하려 하지만 그런다고 안방 문이 달리는 건 아니고, 겨울은 다가오는데 유리창만 한 겹 달려 있는 방을 볼 때마다 답답했다. 눈이 오고 난 뒤, 산책 삼아 처녀 혼자 사는 집에 놀러갔다. 마을 빈집에서 혼자 사는데. 처마 밑에 어른 팔목 굵기만한 아카시아 줄기가 세워져 있다. 그걸 보니 처녀가 낯선 산에 올라가 혼자 힘으로 땔감을 해오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어떤가? 남편만 믿고 살지 않는가?

자연에서 한 가정이 자립하는 일이 목표였다면 이제부터 한 인간으로 내가 자립하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안방 문 하나 내 손으로 못 짜랴 싶다. 남편도 언제 문을 짜본 적이 있나. 혼자 공부하고 궁리해가며 짜지 않았나.

남은 목재를 모아 거기에 맞는 설계를 했다. 목재도 모자라고 내 실력도 그러니 살을 우물 정(井)자로, 그러니까 문살을 최대한 성기게 넣은 문을 짜기로 했다. 겨우내, 마당에 햇살이 좋을 때, 일을 한다. 대패질, 톱질, 망치질, 끌질. 직각자, 수평자 쓰는 법도 하나하나 배워가며 서투르게. 재고, 깎고, 자르고, 구멍 파고, 끼워가며. 드디어 마름질이 끝나고 문을 짜 맞추는데 어, 문이 평면이어야 하는데 꼬인다. 그걸 되는 만큼 바로잡아, 문 모양새를 잡았다. 남편이 달아주며, 나뭇가지로 만든 손잡이까지 달아주었다.



서툴기 이를 데 없는 문이지만 그래도 문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얼마 뒤다. 이번에는 오리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의논했다. 말이 의논이지 사실은 남편보고 하나 지으라는 소리지. 남편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아는 순간, ‘까짓 거 내가 만들지.’ 이번에는 쉽게 나설 수 있었다. 그 뒤 짐승우리 문 정도는 처음부터 내가 뚝딱 만들어 단다. 이제 스스로 서려는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지금까지 해왔듯, 이 달 절기 이야기를 해보겠다. 1월1일 양력설이다. 대한(大寒)이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소한(小寒) 추위 밀어닥친다. 모든 게 얼고 눈 쌓인다. 저장해둔 먹을거리 있으니 땅 얼고 눈 쌓여도 걱정 없고, 물도 얼지 않게 받아먹는구나. 새는 이런 날 어디서 자며, 산짐승들은 이런 날 어디서 먹이를 구할까? 산길에 새 깃털이 널브러져 있는 걸 보곤 한다. 아, 잡아먹혔구나. 처음에는 놀라고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이제는 목숨을 이어가는 이치구나 하고 넘어간다.

우리 닭과 오리만 해도 바람 숭숭 드나드는 우리에서 추위를 견디며 자고 있겠지. 지난해 추위에 닭이 얼어죽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얼어죽지는 않을까? 아침에 해 뜨면 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을 떠다줘야지.

겨울은 겨울답게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해 뜨거든 하루 일을 시작하고 해 지기에 앞서 불때고 집에 들어와 긴긴 겨울밤에 공부를 한다. 사람 사회는 1월1일부터 새해를 시작하나 농사는 땅이 풀려야 시작이니 아직 새 농사를 하기까지 시간이 있다. 자연에서 새해는 음력이 더 맞는다. 그 동안 미루었던 여러 일들 시나브로 처리할 때다.

농사 지어 넣어둔 것을 하나하나 꺼내 끓이고 익혀, 겨울 이길 힘을 얻는다. 묵나물, 호박죽, 가래떡, 조청, 두부에 비지, 청국장, 전, 찹쌀떡, 강정, 묵.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고, 입에 달지 않다고 내가 갈무리한 것들 제쳐놓고 돈 주고 사서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돈이 필요하고, 돈 생각을 하면 시골서는 답이 없다. 여기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흔들린다. 그러니 갈무리해놓은 것을 하나하나 꺼내 먹으려 하루 한 가지씩 묵나물 먹기, 해 나는 날에는 겨울나물 해먹기. 이렇게 자기 목표를 정하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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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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