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살인마’ 유영철, 충격의 엽기행각 추적기

오, 신이여, 이 자가 진정 인간입니까? “토막낸 사체 믹서에 갈고, 간과 뇌수 먹었다”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8-25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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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 조각난 사체
    • 미모의 윤락여성만 골라 성관계 후 살해
    • “뚱뚱한 여자는 옮기기 무겁고, 키 큰 여자는 욕실에 누일 수 없어 기피”
    • 아내 죽이려다 마음 바뀌자 윤락여성 ‘대타’ 삼아 살해
    • 전화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모두 ‘1818’
    • 살해한 여성 장신구를 애인에 선물 추정
    • “국과수 부검 결과 사체에서 간 발견되지 않아”
    • 얼굴 공개 극구 거부하는 것은 ‘지저분한 범죄’ 많이 저질렀기 때문
    ‘살인마’ 유영철, 충격의 엽기행각 추적기
    “그냥 죽이는 거야. 아무런 느낌도 없어.”지난해 9월24일 신사동 노부부 살해사건부터 지난 7월13일 출장마사지사 임모(27)씨 살해사건까지, 한 명의 사내가 10개월 동안 무려 26명을 살해했다는 진술을 듣고 난 경찰관들은 맥이 풀렸다. 강력범죄 수사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베테랑만 모인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들이지만 이 사내의 말은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이 사내의 검거 소식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7월16일 오후. 경찰은 서강대 뒤편 야산에 올라 그가 가리키는 지점을 파헤쳤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지 심하게 부패한 살점들이 드러났다. 수백 조각난 한 구의 사체였다. 그제서야 경찰은 사내의 자백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고 당황한 경찰관들에게 사내는 “그냥 죽였다. 아무 느낌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8월13일 검찰은 유영철(柳永哲·34)씨를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다. 유씨가 경찰에 검거돼 온 국민을 연쇄살인의 충격에 빠뜨린 지 한 달 만이다. 그동안 유씨의 살인행각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경찰은 ‘용의자를 놓쳤다 다시 잡았다’ ‘피해자 가족에게 발길질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단기간에 21명이 살해당한 희대의 사건을 놓고 경찰, 언론, 국민이 모두 혼란에 빠졌다. 유씨의 주변인물과 수사관계자들을 통해 사건 전모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일은 혼란에서 벗어나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7월14일 늦은 오후,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양필주 경장(34)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평소 정보원으로 알고 지내는 노모(33)씨의 전화였다.

    “형님, 요즘 뭐하세요?”



    “일하지, 임마. 다음주엔 여름휴가고. 너도 잘 지내지?”

    “그런데요, 형님….”

    3∼4년 전 마약수사를 벌이다 알게 된 천호동 건달 노씨는 “이틀 전 영등포 보도방 여자 한 명이 손님 받으러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더라”고 전했다. ‘011-XXXX-5834’란 전화번호를 쓰는 손님이라고 했다. 사실 이런 첩보의 99%는 별 쓸모 없는 얘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노씨의 다음 말이 양 경장의 귀에 단단히 박혔다.

    “친구한테 빌려타고 간 승용차가 화곡동에 버려져 있더래요. 시동이 켜진 채로.”

    ‘5834’로 불려간 여자들

    이전에도 보도방 여성을 납치해 지방으로 팔아넘기는 범죄가 종종 일어나곤 했기 때문에 양 경장은 여자가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노씨에게 당장 강남과 영등포 일대 보도방 업주들에게 연락해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일렀다. 휴대전화번호 조회를 할 요량으로 다음날 노씨에게 기동대로 들어오라고도 했다. 건축자재를 훔쳐다 팔아치운 일당을 붙잡느라 이틀째 밤을 지샌 양 경장은 집으로 돌아가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새벽 2시30분경 휴대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

    “형님, ‘5834’가 떴어요!”

    한 시간 후 양 경장과 노씨 일행, 그리고 보도방 여성은 ‘5834’가 시킨 대로 신촌 그랜드마트 앞에 서 있었다. ‘5834’는 여자에게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공원으로 오라며 약속장소를 바꿨다. 그랜드마트 앞에 있던 일행 중 일부가 남고 양 경장은 공원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멀찌감치 떨어져 여자를 주시하던 ‘5834’는 “여자의 키가 너무 크다”며 퇴짜를 놓았다. 두 번째 여성을 불러주자 이번에는 “못생겼다”며 “그냥 가라”고 했다.

    ‘5834’가 여자를 번갈아 부르는 사이, 양 경장은 공원 일대와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남자들을 모두 붙들고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유흥가와 인접한 동네라 새벽인데도 서성이는 젊은이가 많았다. 동이 트지 않았지만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다. 속옷까지 땀에 흠뻑 젖었다.

    ‘5834’는 세 번째 여성은 마음에 들어했다. 여성에게 그랜드마트 뒤쪽 골목으로 오라고 했다. 바로 그때 노씨가 골목길 전봇대 뒤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수상쩍은 사내를 발견하고 양 경장에게 전화했다. 양 경장은 “내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근처 순찰지구대에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양 경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수상쩍은 사내는 수갑을 채우려는 서강지구대 김성기 경장에게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양 경장이 달려들어 사내를 땅바닥에 눕히고 수갑을 채웠다. 사내가 입에 뭔가를 집어넣고 삼키려 하자 이를 억지로 뱉어내게 했다. 명함 크기의 ‘출장 마사지’ 전단 9장이었다. 슬쩍 던져버린 휴대전화도 확보했다. 휴대전화번호의 뒷자리는 ‘5834’였다.

    ‘살인마’ 유영철, 충격의 엽기행각 추적기

    7월20일 피해자의 부인이 현장검증 도중 오열하고 있다.

    유영철은 마포에 위치한 기동수사대 3층 조사실로 붙들려 갔다. 하지만 경찰에겐 유영철이 납치범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5834’의 전화를 받고 나간 3명의 여성으로부터 연락이 끊겼다는 보도방 업주들의 첩보가 있을 뿐이었다. 당시 유영철이 소지한 물건이라고는 휴대전화와 여성용 ‘아바타’ 손목시계, 그리고 1800원이 전부였다. 휴대전화에 대해 캐묻자 “주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틀 전에 창문 열린 차에서 꺼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들에게 통사정을 했다.

    “지금 서대문경찰서에 찜질방 절도 건이 걸려 있어요. 여기서 절도로 또 걸리면 특가법에 걸려 최소 5년은 살아야 해요. 저, 더는 교도소에서 못 삽니다. 그냥 ‘점유이탈’로 하죠, 네?”

    형사들과 말꼬리를 잡는 승강이도 벌어졌다. 사라진 여성들의 행방을 추궁하자 유영철은 “대체 누굴 찾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어디로 팔아 넘겼어?”

    “납치사건이라면 나는 아니네.”

    “그럼 넌 뭔데?”

    “나? 나는 죽였지….”

    “이 자식이 지금 장난치는 줄 알아?”

    기동수사대 강대원 대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영철을 납치범 이상으론 생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휴대전화도 주운 것이라고 계속 우기면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난감해하던 차에 최진하 경장이 강 대장을 조사실 밖으로 불러냈다. 최 경장은 유영철의 지갑에 달려 있던 금색 줄을 강 대장에게 건넸다. 여성용 발찌였다. 강 대장은 ‘감이 왔다’.

    “엄마, 나 사람 많이 죽였어”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청계천에서 1000원 주고 샀어요. 그냥 장식용이에요.”

    “야, 이거 안 보여? ‘18K’라고 써 있잖아. 이거 여자들이 하는 발찌 맞지? 이게 진짜 1000원짜리면 나랑 같이 이거 사러 가자. 100개쯤 사다 팔아서 떼돈 한번 벌어보자. 나 이제 너 덕분에 경찰 관두고 봉이 김선달이나 할란다.”

    강 대장의 추궁에 유영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이놈이 슬슬 불겠구나’ 싶었다. 휴대전화의 진짜 주인, 사라진 여성들의 신원, 유영철의 전과기록 등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영철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튀어나왔다.

    “발찌는 나중에 설명하고요, 신사동 살인사건부터 얘기할게요….”

    유영철은 “지난해 9월 신사동 노부부부터 이틀 전 사라진 보도방 여자까지 모두 26명을 죽였다”고 털어놨다. 자백대로라면 유영철은 경찰이 1년 가까이 골머리를 썩여온 4건의 노인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었다. 또 여성 출장마사지사 11명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살인범이었다. 경찰로서는 생각지도 않은 ‘대어’를 낚아올린 셈이었다. 유영철은 “모든 범행을 자백할 테니 1시간만 달라. 어머니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엄마, 나 사람 많이 죽였어….”

    어떤 어머니가 아들의 이런 고백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유영철의 어머니 김모(57)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유영철이 말을 하려고 하면 아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너, 형사들이 무서워서 거짓말하는 거지?”라며 흐느꼈다.

    4시간 대화 나눈 후 살해하기도

    김씨가 돌아간 후 유영철은 본격적인 조사를 받았다. 흐느끼던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진술은 오락가락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게거품을 무는 간질발작도 세 차례나 일으켰다. 그러다 자정 무렵 유영철은 “죽인 여자들을 봉원사 근처 야산에 묻었다”며 현장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조사실을 나서는 순간, 유영철은 경찰관들을 따돌리고 도망쳤다. 발작을 염려해 수갑을 풀어준 상태였다.

    12시간 후인 16일 정오 무렵 유영철은 영등포역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됐다. 강 대장은 “다시 잡혀온 이후 자포자기한 심정이 됐는지 범행 일체를 순순히 자백했다”고 말했다.

    유영철은 치밀하고도 잔혹한 ‘살인기계’였다. ‘5834’ 번호의 휴대전화는 유영철이 지난 6월 살해한 우모(28)씨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씨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석 달 전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 휴대전화로 윤락여성들을 ‘살인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살인마’ 유영철, 충격의 엽기행각 추적기

    유영철이 범행에 사용한 5㎏짜리 망치. 손수 손잡이를 개조해 가방에 넣고 다녔다.

    “유영철은 집에 불러들인 윤락여성들을 곧장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사적인 대화를 나눴어요. 고향이 어디냐, 남자친구는 있냐 등등. 고향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걸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 여성들을 협박해 ‘오빠, 나 이제 고향 내려갈 거야. 같이 일하지 못해서 미안해’라던가 ‘언니, 나 지금 이상한 남자한테 납치됐어’ 같은 말들을 녹음해놨어요. 그리고 여성의 사체를 처리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녹음한 음성을 들려줬습니다. 살해 시점을 속이고, 납치로 가장하기도 한 거지요.”

    유영철이 DNA 검사에 걸릴 것을 염려해 윤락여성들과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당초 경찰 발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유영철은 검찰조사에서 “처음에는 아무나 불러다 때려죽였지만, 나중에는 예쁜 여자만 골라 성관계를 가진 뒤 죽였다”고 진술했다. 4시간씩이나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성관계까지 갖고 나서 살해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장마사지’를 빙자해 윤락을 알선하는 보도방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보도방 업주는 사무실에 대여섯 대의 일명 ‘대포폰’과 장부를 갖춰놓는다. 윤락여성들이 사무실에 상주하진 않는다. 업주는 전화를 건 ‘고객’의 연락처를 장부에 기록하고, 윤락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고객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윤락여성은 고객을 만나면 “오빠, 나 도착했어”라며 업주에게 신고전화를 걸고, 일을 마친 뒤 보통 15만원인 화대를 받으면 “오빠, 입금됐어”라며 확인전화를 건다. 이런 형편이니 업주들은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만나는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맨 마지막에 희생된 임모(27)씨에 대해서도 알리바이를 만들어뒀다.

    “유영철은 윤락여성들에게 항상 5만원을 더 얹어줬어요. 임씨는 즐거워하며 5만원을 따로 챙겨넣고는 업주에게 ‘입금됐다’고 확인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 유영철은 업주가 ‘화곡동에 손님이 기다리니 그쪽으로 곧장 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거죠.”

    유영철은 임씨의 사체를 처리한 후 임씨가 타고 온 승용차를 화곡동으로 몰았다. 화곡동에서 유영철은 임씨의 휴대전화로 그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1초, 2초, 3초…. 10초 후 유영철은 전화를 끊었다. 이로써 임씨는 ‘화곡동에서 새벽 4시경 실종’된 셈이 됐다.

    유영철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는 범죄자의 일반적인 행태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24일부터 11월18일까지 두 달 동안 대낮에 신사동, 구기동, 삼성동, 혜화동의 단독주택에 침입해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지만, 현장에 다시 가본 적은 없다. 대신 TV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범행과 관련된 보도를 꼼꼼히 챙겨봤다.

    머리 쓰다듬으며 “잘 가라”

    그러나 범행도구를 빠짐없이 챙겨 나오고, 지문을 남기지 않고, 또 눈앞에 놓인 현금뭉치에도 손대지 않아 경찰 수사를 혼란에 빠뜨린 유영철도 동일한 족흔(足痕)을 남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260mm의 버펄로 신발. 경찰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점치는 내용이 보도되자 그는 버펄로 신발을 밑창까지 잘게 잘라 이 동네 저 동네에 버리고 다녔다.

    유영철은 범행도구로 팔각형의 5kg짜리 망치를 사용했다. 이 망치는 공사현장에서 벽이나 바닥을 깨부수는 데 사용되는 도구. 유영철은 휴대하기 쉽게 1m 길이의 나무 손잡이를 떼어내고 짧은 고무 손잡이를 달았다. 망치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이음새 부분을 석회로 바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영철은 이 망치로 피해자들을 단번에 살해했다. 단독주택에 침입해서는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과 목을 마구 내리쳤고, 윤락여성의 경우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가라”고 속삭이고는 뒤통수를 때렸다. 경찰이 서울 서남부지역 미제 살인사건들의 피해자 사진을 보여주며 “얘도 네가 죽였냐?”고 묻자 그는 “아니오. 수법이 다르잖아요. 나는 한 방에 죽여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서남부 지역의 피해자들은 가슴과 등, 배, 다리 등을 여러 차례 찔려 숨졌다.

    유영철은 범행대상을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춰 골라냈다. 그는 ‘아담한 키에 마른 체구의 미인’을 선호했는데,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이혼한 아내를 닮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뚱뚱한 여자는 무거우니까 살해한 뒤 사체를 옮기기 어려워서, 키가 큰 여자는 목을 잘라내도 좁은 욕실에 똑바로 누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FBI에서 유출된 사체 부검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보고 사체 절단 방법을 익혔다”고도 진술했다.

    7월18일, 범행동기를 집중적으로 캐묻는 기자들 앞에서 유영철은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치 부유층과 윤락여성에 대한 ‘훈계’의 의미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인상을 풍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처럼 ‘정당성을 지닌’ 살인범은 아니다. 검찰에서 유영철은 “출소 후 이혼한 아내와 아들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아내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아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고는 마음을 돌려 아내만 죽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영철은 안방에서 마른 김 한 장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아내에게 연민을 느껴 살해를 포기했다. 그날 유영철은 아내를 대신할 ‘대타’를 구해 살해했다. 이날 희생된 여성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칼집을 내 짓뭉갰다.

    ‘살인마’ 유영철, 충격의 엽기행각 추적기

    7월19일 서울 봉원사 인근에서 이뤄진 현장검증.

    지난 1∼2월경 동거한 애인 김모(27)씨도 죽이려 했다. 유영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김씨를 집에 감금해놓고 온몸을 묶은 후 목을 졸랐다. 김씨가 “절대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매달리자 유영철은 “다시 만나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풀어줬다. 유영철은 김씨가 변심할 때를 대비해 김씨의 부모 연락처까지 받아뒀다. “변심하면 부모를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실신상태로 풀려난 김씨는 이후 병원신세를 졌다.

    7월18일 봉원사 인근 야산에서 벌어진 사체발굴 작업에 모인 경찰 관계자들은 드러난 사체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체가 15∼18조각으로 절단돼 있었다. 서강대 뒤편 야산에서 발견된 사체는 셀 수조차 없을 만큼 작은 조각으로 토막나 있었다. 유영철은 빨리 썩으라고 비닐봉지를 벗기고 사체 조각들을 땅에 묻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얼굴에 칼질한 시체도 있었다. 마치 양념이 잘 배도록 고기를 저며놓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유영철은 살해 목적의 범행과 금품 갈취 목적의 범행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는 지난해 9월11일 출소한 이후 절도를 일삼으며 생계를 꾸렸다. 영등포 모텔에 윤락여성 조모씨를 불러들여 128만원을 갈취했고, 인천에서는 정모씨를 폭행하고 29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승용차에서 명품 가방을 훔쳐 달아난 적도 있다. 훔친 돈을 이혼한 아내에게 아들의 양육비 명목으로 부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조작한 현실세계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소속 최모 경장’이었다. 가짜 경찰신분증을 만들어 불법 복제물을 파는 상인이나 윤락여성에게 돈을 뜯어내는 데 활용했던 것. 유영철의 오피스텔에서는 영화 ‘공공의 적’ DVD 타이틀이 발견됐는데, 그는 경찰에서 “설경구가 경찰신분증을 집어던지고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클로즈업된 신분증을 보고 똑같이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가짜 경찰신분증’은 4월14일 황학동 노점상 안모씨를 살해하는 계기가 됐다. 유영철과 같이 신분증을 위조하는 범행을 우려해 영화에서는 진짜 신분증과는 다른 디자인을 사용했는데, 유영철은 이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 경찰서에 종종 들락거렸던 안씨는 유영철의 경찰신분증이 가짜라고 의심했고, 이것이 유영철을 자극해 결국 안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유영철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잔인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유영철이 8세 때부터 29세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서울 공덕동 주민들은 “교도소를 들락거리긴 했어도 가족에게 잘하고 말수가 적은 젊은이였다”고 그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담임교사였던 하모씨는 “집안 형편이 어렵고 조용한 아이였지만, 학급 일도 솔선수범하고 운동도 곧잘 해 아이들이 좋아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이번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유영철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년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가끔씩 연락이 되지 않아 소식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유영철은 항상 “제주도에서 돈 벌고 있다”고 둘러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유영철과 가깝게 지낸 강모(33)씨는 “전주교도소로 면회를 갔을 때 아내가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는 듯했다”며 “최근까지도 영철이가 이상해졌다는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영철은 전북 고창에서 3남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 막노동을 하게 되면서 여덟 살이던 1977년 식구들과 상경했다. 유영철 가족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공덕동의 낡은 목조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방 두 칸에, 부엌 하나, 화장실이 비좁게 들어선 10평짜리 집이었다. 이 집이 재건축으로 철거되던 1999년까지 살았다. 서울로 전학하는 바람에 1학년을 1년 더 다니게 되어 유영철은 동급생들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림 잘 그리던 ‘마포 소년’

    알코올 중독자이던 아버지는 식구들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만 나다녔다. 어머니가 동네 아기들을 맡아 돌보면서 가계를 꾸렸다. 아버지는 유영철이 중학교 1학년 때 술에 취해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여 숨졌다. 유영철은 검찰에서 아버지에 대해 “연이은 사업실패 에 자포자기해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고 회상했고, 어머니에 대해선 “그런 아버지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고통받은 분”이라고 말했다.

    유영철은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년이었다. 만화를 좋아했는데, 특히 이현세 만화에 열광해 만화 주인공으로 나오는 까치와 엄지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친구 노모(33)씨는 “영철이는 큰 도화지에 까치와 엄지의 다양한 표정을 즐겨 그렸다”며 “이현세가 그린 건지 영철이가 그린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유영철은 미술가가 되고 싶었다. 안양예술고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자 “색맹이라서 떨어졌다”며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고졸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K고등기술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2학년 때 친구 몇몇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주택가를 침입, 절도한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소년원에서 나온 뒤 학교를 그만둔 유영철은 절도를 일삼으며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20세 무렵 아내 황모(32)씨를 만났다. 일부 언론에서는 유영철의 전처를 ‘안마시술사’라고 보도했지만, 그의 친구들은 ‘피부마사지사로 화장품가게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했다. 노씨는 “1990년 무렵 영철이를 만났는데, 아내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걸 온몸으로 구해주면서 서로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영철이는 ‘부부 금슬이 아주 좋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뒤에도 절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1993년에는 승용차를 훔치다 잡혀 또다시 구속됐다. 1994년 둘째형이 실명(失明)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지옥’과 아들이 태어나는 ‘천국’을 동시에 맛보는 와중에도 절도 행각을 이어갔다. 2000년에는 미성년자를 차에 태워 강간·폭행한 혐의로 3년6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아내는 유영철이 구속되자마자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양육권도 가져가 버렸다.

    경찰에 따르면 유영철은 전주교도소에서 이혼을 통고받은 후 살인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살아 있을 때까지 죽이자’고 마음먹었다는 것. 유영철은 출소 후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물색했다. 미리 ‘찍어둔’ 집에 침입해 속전속결로 작업을 마치고 빠져나왔다.

    범행에 완벽을 기했기에 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2주 간격으로 단독주택에 침입해 살해했지만, 윤락여성을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뒤로는 범행 저지르는 간격이 점차 짧아졌다. 윤락여성 살해를 꾀하다 경찰에 붙잡힌 7월15일은 살인을 저지른 지 고작 이틀 후였다. 유영철은 검찰에서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올해 안에 100명은 거뜬히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영철은 지난해 9월27일 출소한 지 2주 만에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그가 고른 전화번호는 ‘1818’. 신촌에서 6년째 이동통신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1818은 대표적인 기피번호”라며 “그동안 1818번을 택한 사람을 딱 2명 봤는데 둘 다 조직폭력배로 남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고른 숫자”라고 했다. 유영철에게 ‘1818’은 전화번호만이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유영철이 사용하는 인터넷 아이디나 비밀번호도 1818이라는 숫자가 들어있다”며 출소 후 분노와 비관에 빠진 유영철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다.

    유영철은 지난해 11월18일 혜화동 단독주택에서 3명을 살해한 이후 지난 3월 중순 윤락여성 권모씨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할 때까지 3∼4개월의 ‘살인 공백기’를 가졌다. 당초 수사기관은 이 시기에 유영철이 전화방을 통해 만난 김모(27)씨와 연애하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어 살인을 중단한 것으로 봤으나, 최근 새로운 정황이 발견되면서 김씨와 연애하는 중에도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사체들 중 부패 상태가 심한 3구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들이 이 기간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 또 그 무렵 유영철은 부산과 광주 등지를 돌아다녔는데 이 때문에 지방에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유영철은 지난 2월말 애인 김씨에게 한 움큼의 귀금속을 선물했다. 목걸이와 귀고리, 팔찌 등이었다. 김씨가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묻자 유영철은 “쇼핑백을 하나 주웠는데 거기 들어 있었다”고 했다. 수사 관계자는 “살해된 피해자들의 귀금속을 전리품 삼아 챙겨서 애인에게 선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믹서를 찾아라”

    현재까지 유영철이 살해한 사람은 모두 21명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26명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유영철이 “컴퓨터에 살해 날짜, 장소, 피해자 특징 등을 기록한 일지를 썼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아 ‘26명 살해’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나머지 5명의 사체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경찰에서든 검찰에서든 유영철을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유영철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틀어쥔 정보를 가지고 여전히 ‘게임’을 벌이는 듯한 태도라는 것. 그를 면담한 사건 관계자는 “유영철은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한 자신이 그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안다. 이를 이용해 상대를 통제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살인범은 대개 현장검증에서 상황을 회피하려고 애쓰는데, 유영철은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또 범죄자 대부분이 사형을 피할 길 없는 처지를 깨닫게 되면 죄책감을 빠지거나 불안해하지만 유영철은 전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살인마’ 유영철, 충격의 엽기행각 추적기

    7월30일 서울 봉원동에서 봉원사 주관으로 연쇄살인사건 희생자 21명의 위령천도재가 열렸다.

    지난해 10월9일 구기동에서 일가족 세 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유영철은 “본래 그 집의 앞집을 목표로 정했는데, 정원에서 공사를 벌이는 데다 큰 개가 있어 한 시간 동안 주차장에 숨어 있다 포기했다. 나오는 길에 뒷집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진술했다. 수사 과정에서 ‘앞집’이 존속살해범 박한상의 변론을 맡았던 황산성 변호사의 집임을 알게 되자 유영철은 검찰에 “4건의 연쇄살인사건은 황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고 싶으니 의사를 타진해달라”며 상식 밖의 요구를 했다.

    얼마 전 검찰과 경찰에서는 ‘믹서 소동’이 벌어졌다. 유영철이 검찰조사에서 “5명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사체를 모두 믹서에 갈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진술한 것. 검찰은 경찰에 유영철의 오피스텔 등지에서 믹서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믹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관계자는 “완전 범죄를 위해 사체를 믹서에 갈다가 힘이 드니까 그만둔 게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간(肝) 없는 사체들

    8월13일 검찰이 “유영철로부터 4차례에 걸쳐 피해자 인육을 먹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입증되진 않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온 나라가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유영철이 먹었다는 ‘인육’은 간(肝)이다. 살인범들 중에는 장기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94년 지존파는 ‘담력을 키우기 위해’ 인육을 먹었고, 2000년 부모를 토막 살해한 대학생 이은석은 사체에서 심장과 간 등을 도려내 오븐에 구웠다. 그렇다면 유영철은 왜 간을 꺼내먹었을까.

    한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은 아버지와 둘째형 모두 간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은 간질로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6월 중순 이후 살해한 4명의 피해자 사체에서 간을 도려내 바로 먹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둘째형은 실명을 비관해 자살했음에도 그는 간질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은 간질과 한센병에는 사람의 간이 효험 있다는 터무니없는 민간 속설을 그대로 믿었다”며 “실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네 구의 사체에서 간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간뿐만이 아니다. 유영철은 뇌수(腦髓)도 먹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이 ‘뇌수를 떠먹어봤는데, 맛이 비릿하더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심리학)는 “유영철이 장기(臟器)를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 건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영철은 비교적 최근에 야 간이나 뇌수 등을 먹는 엽기행각을 저질렀다. 조 교수는 이를 “살인행각의 진화단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살인도구를 현장에 두고 나오는 등 범행이 미숙했지만, 살인을 거듭하면서 범행기술이 날로 발전해 방화를 하는 등 보다 수준 높은 단계로 진화했다는 것. 장기를 먹는 행위도 이 같은 ‘살인의 진화단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한다. 조 교수는 “연쇄살인범이 사체를 훼손해 장기 일부를 먹는 것은 아주 희귀한 경우지만, 그 동기는 쾌락의 차원으로 봐야 한다”며 “장기를 먹는 쾌감을 맛본 이후로는 그 쾌감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유영철을 윤락여성 연쇄살인 혐의로 기소한 이후에도 유영철에 관한 수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검찰이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5구의 사체를 찾는 일과 “출소 후 예고 여학생들과 동거했다”는 유영철의 진술에 따라 이 여학생들을 추적하는 일. 교통카드 칩이 장착된 ‘스와치 시계’가 알려준 유영철의 행적, 버스에 동승한 3∼4명의 동행자 등으로 미루어 유영철의 진술에 상당히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영철은 검찰에서 아직 사체를 찾지 못한 피해자 5명의 인상착의, 살해시기, 살해장소, 사체 유기장소 등을 진술했다. 유영철은 봉원사 인근 야산에 사체를 파묻고는 캔 조각 등으로 표식을 해뒀다는데, 이 표식이 비에 휩쓸려 떠내려간 탓에 아직 사체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사 관계자는 “봉원사 인근 야산 반경 5m 안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영철은 경찰에서처럼 검찰에서도 마스크 쓰기를 고집하고 있다. 검찰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법정에 출두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애초 검찰은 유영철 실물 사진 3장을 공개하려고 했으나 그가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은 자신이 ‘지저분한 범죄’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면 피해자들이 몰려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영철의 가면들

    가족과 친구들을 잘 챙기는 정답고 ‘의리 있는’ 유영철과 절도·폭행·강간 등 전과 14범에 연쇄살인 피의자로 기소된 ‘살인마’ 유영철.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두 명의 ‘유영철’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 것일까. 21명을 살해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26명을 죽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 과시일까, 아니면 왜곡된 자기방어 전략일까. 깊게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속에 숨겨진 그의 ‘여러 얼굴’을 밝히는 데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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