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국회 국정감사 통해 본 김선일 사건 미스터리

美, 알 자지라 방송 전 김씨 피랍 인지 가능성 높아

  • 글: 이준규 전 ‘김선일 사건 국정조사’ 특위 예비조사요원

    입력2004-08-25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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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가 일단락됨에 따라 정부의 진상규명 작업은 일단 매듭을 지었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 참석해 관련기관 보고와 정부문서 등을 확인한 전 특위 예비조사요원이 조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 특히 미군 당국의 사전인지 가능성 여부를 중점적으로 정리해 ‘신동아’에 보내왔다(편집자).
    국회 국정감사 통해 본 김선일 사건 미스터리
    지난 8월3일, 김선일씨의 석방을 위해 무장단체와 협상했다는 이라크 변호사 E씨의 청문회 증언을 마지막으로 김선일씨 피랍 살해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끝났다. 그 과정에 조사요원으로 참여했던 필자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밝혀내는 데 국정조사가 역부족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정조사가 가지는 본래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제기된 갖가지 의혹이 거대한 ‘음모론’으로 연결되는 까닭이기도 했을 것이다.

    언론에서 ‘10대 의혹’이라고 정리했던 이 의문점들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시나리오와 상상력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해명되지 못한 채 억측만이 난무하게 됐다. 그러나 핵심은 결국 ‘사전인지 여부’라는 여섯 글자로 요약된다. 그러한 의구심의 대상은 한국 정부와 미군 당국이다.

    한국 정부는 과연 6월21일 이전에 김씨의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나.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이하 이라크대사관)이나 외교통상부, 국가정보원, 국방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관계기관 어느 곳에도 이와 관련한 정보가 사전에 보고된 적이 없었는가. 또 가나무역의 사업 상대인 AAFES(Army&Air Force Exchange Service)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던 김씨 실종소식에 대해 미군 당국은 어느 수준까지 인지하고 있었을까. 이라크 현지 미군 당국, 중부사령부, 펜타곤, CIA 등의 기관들은 이 사실을 전혀 보고받지 못했나.

    이러한 의혹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그 같은 정보가 정상적인 보고채널을 통해 상부에 보고되었다면 김씨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김씨가 피랍·피살된 때가 한국의 이라크 추가파병 재확인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이 부분에 조사의 초점을 맞춘 것은 당연했다.

    국회 국정조사의 최종결론은 “사전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정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관계기관의 보고와 증인들의 진술내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다양한 ‘심증’이 감지된다.



    지금부터 국정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봄으로써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있는’ 개연성을 따라가보자.

    ‘최종일 보고서’와 ‘무관 보고서’

    이라크 현지 미군 당국이 6월21일 알 자지라 방송이 있기 전에 김선일씨의 실종·피랍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은 21일 당일 김천호 사장의 최초 발언에서 촉발됐다. 이날 김 사장은 알 자지라 방송이 나간 직후 바그다드에 있던 연합뉴스 안수훈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김선일씨는) 4~5일 전 실종되었고…미군측으로부터 실종사실을 통보받았으며…모술에서 미군 정보부대 관계자 및 KBR 회사측 간부들과 석방대책을 협의중”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국내에는 김선일씨가 일하던 가나무역의 원청업체가 AAFES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AAFES는 가나무역의 ‘바이어(buyer)’라 할 수 있으며 가나무역에 군납업무 하청을 준 원청업체는 KBR이다. KBR은 미국의 부통령인 딕 체니가 한때 CEO를 역임했던 핼리버튼사의 자회사이고 이라크에서 미군에 대한 납품업무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김 사장의 최초발언대로 이라크 현지 미국기업의 직원이 김선일씨와 함께 피랍되었다면 미 당국이 이를 몰랐을 리 없고, 따라서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에 대해 미 당국이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후 김천호 사장은 이 같은 발언내용을 부정했고, 6월22일 이라크대사관에 제출한 진술서에서는 미군과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피랍일자도 5월31일로 번복했다. 외교부 등 정부의 공식입장도 이 진술서에 기반해 ▲김선일씨의 피랍일자는 5월31일이고 ▲김천호 사장이 모술에 간 것은 미군측과 석방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매장이동 등의 사업문제 때문이었으며 ▲함께 실종된 일행은 KBR 직원이 아닌 동행한 운전사이고 ▲김 사장은 미군측이나 이라크대사관에 관련사실을 알리지 않고 현지인 변호사를 통해 독자적으로 협상을 진행해왔다는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김 사장의 진술이 번복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최초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내용 중 미군이나 KBR 관련 부분은 실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정조사 과정에서 다시 한번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김천호 사장이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내용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담은 한국정부의 보고문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문서는 이라크 현지 다국적군에 파견되어 있는 최종일 준장이 6월21일 23시(한국시간) 국방부에 보낸 ‘임 대사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 면담결과 확인사항’이라는 보고서(이하 ‘최종일 보고서’)와 이라크대사관의 전춘택 국방무관이 작성한 6월21일자(한국시간) ‘이라크현지보고서’(이하 ‘무관 보고서’)다. 최종일 준장은 당시 이라크 현지 다국적군에 파견되어 있는 한국군 선임장교였으며 추가파병된 자이툰부대의 작전부사단장이기도 하다. 이 두 문서에는 김선일씨 피랍과 관련, 이라크 현지 미군의 사전인지문제와 KBR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최종일 보고서’는 6월21일 알 자지라 방송이 나간 직후 이라크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김천호 사장이 대사관에 와서 대사관 직원들과 면담한 내용을 임홍재 대사로부터 듣고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 사장은 이날 “KBR의 트레일러 3대와 가나무역 김선일씨가 운전기사와 함께 GMC 차량을 타고” 가다가 실종되었고, “6월16일 (이 사실을) 미측에 공식통보”했으며 “행불인원은 KBR 4명, 가나무역 2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경로를 통해 작성된 ‘무관 보고서’는 김선일씨가 “KBR 직원들과 함께 피랍되었”고 “미측에 공식통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군관련 내용은 어디로 갔나

    이 두 보고서의 존재는 김천호 사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이후 부정하며 내세운 논리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김 사장은 “(인터뷰 당시) 통화상태가 불량”했고 “경황이 없었다”는 말로 인터뷰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기사화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최초 인터뷰와 같은 내용이 이라크대사관에서의 공식면담을 통해 작성된 정부 공식 보고서에 기재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6월22일 아침 외교부는 브리핑을 통해 “김 사장이 어제 오후 이라크대사관을 방문해 임홍재 대사 등과 면담을 가졌으며…김 사장의 진술에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확인이 필요하다”고만 언급했다. 6월21일 면담과 관련해 국방부 라인에 공식 보고된 내용이 외교부 브리핑에서는 일절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국정조사 기간 중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혹시 이라크대사관이 6월21일 면담내용에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외교부 본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데 조사의 초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을 통해 6월23일 이라크대사관이 외교부에 보낸 비밀전문의 내용이 폭로됨으로써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 전문에서 이라크대사관은 앞서의 모든 내용을 외교부 본부에 보고하면서 “일단 김 사장에게 납치일자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조치해놓았음” “앞으로 납치일자 문제로 인한 파장이 우려되니 동 문제에 관한 본부 입장 회신 바람”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전문을 통해 의혹은 애초부터 외교부와 이라크대사관이 피랍일자와 미군관련 부분이 알려졌을 때의 파장을 우려해 김 사장의 진술에서 미군 및 KBR 관련 부분을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입장은 단호했다. 진술이 엇갈려서 신중을 기한 것이지 “은폐하려던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NSC 또한 의혹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과연 NSC는 ‘최종일 보고서’와 ‘무관 보고서’, 6월23일 이라크대사관 전문에 담긴 미군 및 KBR 관련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NSC는 시종일관 보고받지 못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참여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NSC가 외교부와 국방부에 보고된 내용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지만, NSC측은 모든 정보가 NSC에 보고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군 및 KBR을 언급한 김천호 사장의 초기진술과 관련해 정부당국의 공식입장은 ‘김 사장의 진술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진술을 신뢰할 수 없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김 사장이 이후 이라크대사관에 제출한 진술서도 그 신빙성을 검증해봐야 옳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사원과 외교부는 김 사장이 가나무역 직원들과 ‘대책회의’를 한 후 작성·제출한 6월22일 진술서 내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AAFES 매니저가 보낸 메일

    미군 당국이 김선일씨의 실종 혹은 피랍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정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가나무역의 사업 상대인 AAFES 관련부분에서도 다시 한번 제기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김천호 사장은 6월24일 이라크대사관에서 한 추가진술에서 앞서의 초기진술을 번복하고 ‘진실’을 얘기한다면서 “6월10일 AAFES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타진’했으며” “AAFES측으로부터 ‘우리가 도와주기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고 “6월13일에는 AAFES측이 김선일씨의 안부를 물어왔다”고 진술했다.

    이어 김 사장은 7월8일 감사원 조사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바그다드 국제공항(BIAP) 가나무역 매장의 한국인 매니저인 장계민씨에게 김선일씨 실종 문제를 BIAP AAFES(바그다드 공항의 AAFES) 직원들에게 물어보라고 지시했고 장계민씨가 그쪽 매니저 짐(Jim)에게 ‘우리 직원 1명이 실종되었는데 찾아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으나 짐은 ‘우리로서는 좀 힘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정조사 기관보고 과정에서 감사원의 ‘김천호 사장 문답서’ 열람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국회 국정감사 통해 본 김선일 사건 미스터리

    김선일씨 피랍소식이 전해진 6월22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파병반대집회.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김천호 사장이 6월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및 이라크대사관에서의 최초진술 당시 ‘미군측’이라 한 것이 결국 AAFES였느냐는 데로 모아진다. 백번 양보해 김천호 사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군 정보부대 관계자”라고 언급한 부분이 오류라고 인정한다 해도, 김 사장이 AAFES측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미군측에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을 알렸을 것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AAFES는 “미 육군과 공군의 일종의 PX(군대 매점)로 미 국방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전세계 미군기지 내 육군과 공군 PX를 관리”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 내 AAFES는 미 군무원이 총매니저(General Manager)”를 맡고 “군에서는 미 국방부 소속인 현역 대령이 관리하고” 있으며 “다국적군사령부와는 지휘관계는 없지”만 “협조관계”다. 사실상 군무원들과 현역 군인들이 운영하는 반군반민(半軍半民) 조직인 것이다. 이러한 AAFES의 특성으로 인해 “AAFES가 알았다는 것이 미군측이 알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주장과 “AAFES측이 알았다면 당연히 미군측도 알았을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이 충돌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국정조사 기간에 열람할 수 있었던 김천호 사장의 감사원 문답서에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7월12일 감사원 2차조사에서 김 사장은, 6월10일 장계민씨를 통해 AAFES측에 김선일씨 문제를 타진할 당시 BIAP AAFES 매니저인 짐이 “누군가에게 김선일씨 실종 관련 내용을 이메일로 보냈고 장계민씨가 짐의 이메일 작성을 도와주었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또한 “6월12일, 13일경 티크리트 기지에 갔을 때 AAFES의 30대 중반 흑인 직원이 김선일씨 소식을 물어온 적이 있”었으며 “그래서 AAFES 미국 직원들은 대부분 (김선일씨) 실종사실을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김사장의 진술도 이어졌다.

    김 사장의 이 같은 진술 내용은 청문회나 감사원 감사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생각해볼수록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우선 BIAP AAFES 매니저 짐이 메일을 보낸 ‘누군가’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이 의문을 풀 길은 장계민씨와 매니저 짐에 대한 직접조사뿐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작성한 보고서 어디에도 조사관들이 장계민씨를 조사하면서 이 점을 파고들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또한 감사원은 AAFES 매니저 짐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장계민씨는 국회 국정조사 특위의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도 거부했다.

    AP 의혹의 본질

    김천호 사장의 진술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바그다드, 팔루자, 모술, 티크리트의 AAFES 직원들은 김선일씨의 실종 및 행방불명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현지 미군당국이나 정보 당국이 이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는 “미군이 사전에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국정조사 기관보고 중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의 발언)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국정조사 기간에 국정원, 국방부, 외교통상부 등이 제출한 브리핑 자료들은 하나같이 미국측이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알 자지라 방송과 CNN 뉴스를 통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강력한 반론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항세력과의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는 팔루자 지역에서 군납업체 직원이 무장단체에 피랍되었다는 사실을, 더욱이 AAFES 직원 대다수가 사전에 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 당국이 알 자지라 방송과 CNN 뉴스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는 공식설명에는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김선일씨가 피살된 직후 공개된 AP통신의 비디오테이프가 축소 편집된 것이었다는 사실, AP통신측이 관련사실을 이라크대사관이 아닌 서울 외교부에 문의한 까닭, 이 과정에서 AP통신 기자들이 김씨의 주소, 신분, 피랍경위 등 세부정보를 밝히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결국 미국 당국의 사전인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청문회에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6월3일 AP통신 한국인 기자들이 외교부에 문의할 때 이들은 비디오테이프 원본을 보지 못했다” “AP통신 본사에서 비디오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서울 지국 직원들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채 취재를 시켰다”고 지적하면서, “AP통신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제스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다시 말하면 AP통신이 한국이 이라크 추가파병을 앞둔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여 김선일씨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지 않고, 단지 사실확인을 했다는 일종의 ‘알리바이’를 위해 한국 정부기관에 질문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만약 AP통신이 APTN(AP통신 텔레비전뉴스) 바그다드 지국으로부터 테이프를 입수해놓고도 어떤 외부적 요인(예를 들어 가정하자면, 한국의 추가파병을 감안한 정치적 고려에 따른 엠바고 요청 등)에 의해 보도하지 않았다면 미군의 사전인지 시점은 김선일씨가 피랍된 시점과 거의 동시였다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김천호 사장은 6월21일 인터뷰 및 이라크대사관에서의 최초진술에서 미군은 알 자지라 방송 이전에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고 대책회의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비상식적’인 일들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해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정부가 내린 ‘공식결론’에 따르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5월31일 김씨가 피랍된 이후 김천호 사장은 6월1일, 7일, 10일, 16일 4차례에 걸쳐 이라크대사관을 방문했지만 피랍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와 김 사장의 설명이다. 이 시기 김 사장은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다고 판단하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더욱이 6월16일에는 이라크대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국정원 직원과 1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국정원 직원은 5월10일 입수한 가나무역에 대한 테러첩보를 김 사장에게 재확인하고 경고했다는 게 국정원측의 주장이다. 즉 5월10일 ‘가나무역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가 국정원에 입수되어 이라크에 파견나가 있는 국정원 직원에게 전파되었고, 5월18일 국정원 파견관은 이를 김천호 사장에게 직접 경고했다. 그리고 나서 실제로 김선일씨가 납치된 후인 6월16일 대사관의 국정원 직원은 김 사장에게 다시 한번 테러를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천호 사장은 김선일씨와 관련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6월9일부터 12일까지 임홍재 주이라크 대사는 요르단 암만으로 휴가성 출장을 갔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처음에는 출장이었다고 주장했다가 국정조사 기간에 이르러선 공식적으로는 출장이었지만 사실은 휴가였다고 ‘실토’했다. 여기에는 이라크대사관 국정원 파견관이 동행했다. 6월11일 임홍재 대사는 요르단 암만의 ‘한인교회’에서 온누리교회 선교단의 강부호 목사와 8명의 선교팀을 만났다.

    강부호 목사와 선교팀은 6월5~6일경 이미 김선일씨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김천호 사장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임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김선일씨 관련대화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기관 현장방문 당시 김천호 사장과 강부호 목사, 선교팀은 ‘종교적 유대감’으로 인해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숨겼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정원측은 그러한 판단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감사원과 외교통상부의 입장도 동일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가나무역 직원들이나 김 사장과 마찬가지로 임홍재 대사도 기독교인이며 현지 대사관이 김천호 사장에게 돈을 빌려 자금을 융통하는 등 비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로다. 또한 국정조사 과정에서 새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외교통상부가 지난 4월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한국인의 피랍 억류사건을 계기로 이라크를 ‘특정국가’로 지정하고 교민철수를 시작했지만 가나무역만은 ‘체류불가피’로 분류했다. 이는 가나무역과 이라크대사관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사안이다.

    역시 6월5~6일경 김천호 사장은 이메일을 통해 형 김비호씨에게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알렸다. 김비호씨는 자신이 장로로 있는 서울 목양교회의 신용길 선교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용길 선교부장은 김선일씨를 가나무역에 소개한 사람이다. 신용길 부장은 예배가 끝나고 이 사실을 공지했으며 당시 예배를 본 신도는 200~300명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기관이나 정보당국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게 공식 결론이다.

    감사원의 ‘부실감사’?

    백번을 양보해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인정해도, 이는 결국 정부당국의 ‘무능함’을 말해주는 것일 뿐이다. 은폐의혹의 눈초리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이라크현장조사반의 결과보고서’와 ‘국정조사 결과보고서’가, “정부(이라크대사관)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정부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부의 교민안전관리체제 또는 정보수집활동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감사원 감사의 문제점이다. 축소 편집되기 이전의 AP통신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비정상적인 절차는 언론에서도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이러한 문제는 사실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 사건 조사에 임하는 감사원의 열의에 관한 것이다.

    감사원은 AP통신과 관련된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P통신측에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청문회에서 드러난 ‘기자 세 명의 확인전화’ 같은 중요한 사실을 놓친 것이다. 감사원은 외교부의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진 공보관실 정우진 외무관과 AP통신 서울지국 서수경 기자의 통화 이외에는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감사원 감사가 국회 국정조사보다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사원 감사는 처음부터 김천호 사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김 사장의 진술이 여러 차례 번복되었다면 번복된 진술들을 비교·대조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과 함께 가나무역 직원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상황을 재정리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나무역 직원들에 대해 형식적인 조사만 벌였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부랴부랴 재소환해서 조사하기도 했다.

    또한 감사원은 감사가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국회 국정조사특위와의 정보공유를 거부했고 국회가 요구한 자료도 감사중이라는 이유로 상당부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애초 계획했던 기간을 넘기고도 별반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김천호 사장에 대해 무리한 사법처리 방침을 세웠다가 ‘희생양 만들기’에 나섰다는 질타만 받았을 뿐이다.

    더욱이 감사원 감사자료 어디에서도 미군 당국이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감사원의 조사는 그저 김천호 사장에게 자신의 진술이 맞는지 캐묻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나지 않은 진실 찾기

    국회 국정조사나 감사원 감사 모두 김선일씨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의혹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파병결정의 정책적 타당성’과 같은 근원적인 문제는 아예 검토되지도 못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 외교안보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볼 수 있었다”는 국정조사 특위의 평가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는 이번 조사에서 규명되지 못한 사안을 상임위원회와 정기국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천착해갈 것이라 밝히고 있고, 감사원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보강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김선일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이 규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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