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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⑩|고치령에서 댓재까지

기원전 天祭의 역사 간직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숲

기원전 天祭의 역사 간직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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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天祭의 역사 간직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숲

구름 낀 태백산 정상 천제단에서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선달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내리막길을 걷다가 어느 한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길가로 우거진 숲을 몸으로 밀고 나가는데 오른쪽 수풀에서 시커먼 물체 두 개가 아른거리더니 순식간에 아래쪽으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엄청난 몸집의 멧돼지였다.

필자는 발을 떼지 못한 채 스틱으로 옆의 나무를 툭툭 쳤다. 근처에 또 다른 짐승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반경 10m 부근의 풀이 일제히 일렁이더니 멧돼지 새끼 20여마리가 머리와 등을 드러냈다. 필자가 스틱으로 소리를 낼 때마다 새끼멧돼지가 두세 마리씩 달아났다. 하지만 두 마리는 스틱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인간이 짐승의 속내를 알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도 빗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멧돼지의 충격 탓일까. 필자는 우거진 숲만 나오면 겁이 나 걸음을 멈췄다. 스틱으로 풀을 헤치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벗어났다. 멧돼지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먼저 상처를 입거나 새끼가 위험에 처한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필자는 백두대간을 걷다가 멧돼지에게 공격당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거의 집중호우 수준이다. 빗방울이 머리를 때릴 때마다 두피의 울림이 느껴졌다. 이럴 때는 앞만 보며 빠르게 걷는 게 제일이다. 다행히 길이 좋았다.

이따금씩 필자의 앞으로 토끼, 꿩, 날다람쥐 등이 지나갔다. 아마도 멧돼지처럼 먹이를 구하고 있는 듯했다. 빗줄기와 싸우며 1시간쯤 걸었을까. 눈앞에 넓은 공터가 보였다. 박달령이었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잠시 경북 봉화땅으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잠시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산신각이 있다. 필자는 산신각 처마 밑에서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달랬다.



박달령에서 1시간쯤 오르면 옥돌봉(1242m)이다. 날씨가 좋을 땐 봉화지역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빗줄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이 들었다. 옥돌봉부터는 줄곧 내리막. 1시간가량 다리품을 팔면 봉화와 영월을 연결하는 88번 도로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도래기재로 한국전쟁 당시 부근 신기마을 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제 백두대간은 경북의 끄트머리를 지나 강원도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간다.

난데없는 비행기 굉음과 포연

7월20일 새벽, 춘양에서 택시를 타고 도래기재로 향했다. 장마가 물러간 숲에 여명이 비쳤다. 도래기재부터 구룡산(1345m)까지는 긴 오르막이지만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구룡산 정상에 서니 흐린 날씨 때문에 제대로 굽어볼 수 없었던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왔다. 좋은 경치를 벗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난데없이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비행기 한 대가 태백산 자락을 가로지르며 굉음을 내더니 어느 순간 산골짜기에서 포연이 자욱하게 솟아올랐던 것. 이곳이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월군 상동읍의 필승사격장이었다.

필승사격장은 1981년 한국이 부지를 주고 미국이 장비와 기술을 제공해 건설했다. 행정구역상으로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와 태백시 혈동,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등 3개 지역 1800만평에 걸쳐 있다. 이 필승사격장이 세인의 관심사로 등장하게 된 건 얼마 전 전국적인 반미시위의 불씨가 됐던 매향리 폭격장이 이곳으로 옮겨온다는 소문이 나돌면서부터다. 매향리 폭격장 이전설은 태백과 영월지역 주민들에게 날벼락이나 다름없었고 반대투쟁이 오래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폭격장 이전계획이 백지화되는 분위기지만 미군과 국방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불신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구룡산에서 사격장 주위를 크게 돌아서 흘러간다. 이곳에서 필자는 또 한번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쉴새없이 날아다니는 비행기 소음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지만 마구 파헤쳐진 등산로를 바라보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주목을 비롯한 태백산 자락의 희귀식물들이 누군가에 의해 불법으로 캐내진 뒤 뒷정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태백산의 헝클어진 구간은 무려 2km가 넘게 이어졌다.

구룡산에서 1시간쯤 걸으면 평평한 고갯마루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옛 지도에 곰넘이재로 표기돼 있는 참새골 어귀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은 넓은 길을 편하게 오르다가 신선봉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튼다. 신선봉에서는 표지판이 나무에 가려져 있어 길을 잃기 쉽다. ‘처사경주손씨영호지묘’라고 쓰인 묘 앞에서 우회전해야 헛걸음을 피할 수 있다.

신선봉에서 차돌배기(1141m)까지는 산죽을 헤치며 1시간 가까이 내리막을 통과해야 한다. 차돌배기에서부터 본격적인 태백산 줄기다.

차돌배기를 지나자 또다시 구름이 밀려왔다. 바람 따라 구름이 산을 덮었다가도 어느새 산이 구름을 벗어던지는 묘한 날씨다. 구름 속 산길은 한 폭의 은은한 수채화 같다. 그래서 분위기에 쉽게 취하고, 그 취기를 빌려 가파른 오르막도 가볍게 오를 수 있다. 강원 영월과 태백의 분기점인 깃대배기봉을 지나 백두대간에서 경북의 끝점이라 할 수 있는 부소봉(1546m)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계속 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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