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 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입력2004-08-27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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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계 김장생의 종택은 조선 중기 기호학파의 근거지였던 충남 논산에 자리잡고 있다. 율곡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은 조선 예학을 정비, 훗날 ‘예송논쟁’의 사상적 기반을 다진 선비.
    • 소박하되 예학의 뜻만은 오롯이 새겨놓은 종가의 면면이 청백리 선비의 기품과 썩 잘 어울린다.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종가의 정경. 열십자 모양의 돌길은 제사 때 제관들이 다니는 길이다.

    성씨따지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씨 중에 광산 김씨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광김’이라고 줄여 부를 정도로 성씨에 자부심이 높다. 이들 ‘광김’ 자부심의 중심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있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과 학문을 바탕으로 조선 예학을 정비한 한국 예학의 대표적 학자다. 13세 때 귀봉(龜峰) 송익필(宋翼弼)에게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을 배웠고, 20세 때부터 율곡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578년 6품직에 오르면서 벼슬생활을 시작해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 철원(鐵原)부사, 공조참의(工曹參議), 형조참판 등을 지내고 낙향했다.

    김장생의 종가는 충남 논산에 있다. 군사훈련소로 유명한 도시라 의정부나 평택처럼 군사도시 같은 느낌을 주지만, 논산 지방은 조선 중기부터 경북 안동지방의 영남학파에 맞선 기호학파의 중심지였다.

    논산 연산면 고정산 자락에 자리한 종택은 김장생과 그의 뜻을 받들어 예학을 집대성한 아들 김집(金集·1574∼1656)을 배출한 집인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다. 김장생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느라 주거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은 서인(西人)이던 탓도 있겠으나, 그가 청백리(淸白吏)에 오를 만큼 청빈하게 살았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효자문과 사당 주변의 묘역, 그리고 종가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염수재(念修齋)’만이 예학의 종주 김장생 종가임을 짐작케 한다.

    효자문을 들어서면 먼저 열십자로 난 돌길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제사 때 제관들이 다니는 길을 표시한 것으로, 첫눈에 이 집이 예학의 본거지임을 느끼게 한다.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13대 종부 홍용기 할머니와 아들 14대 종손 김선원씨.

    ‘조선왕조실록’은 김장생이 “고금의 예설(禮)을 취하여 뜻을 찾아내고 참작하여 분명하게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장생은 예가 바로 서면 국가도 바로 서고, 예를 잃으면 국가도 혼란해진다고 여겼다. 예를 국가 치란(治亂)의 핵심으로, 예교(禮敎)를 치국(治國)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그가 평소 집안 후손들에게 힘주어 강조한 것도 바로 ‘박문양례(博文約禮)’였다. 즉 학문을 널리 익히고 예를 다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송시열로 이어져 훗날 효종의 상복을 둘러싼 ‘예송논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김장생이 1598년 집대성한 ‘가례집람(家禮輯覽)’은 후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박정희 정권 시절 마련된 ‘가정의례준칙’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 400년이 넘게 통과의례에 관한 대표적인 경전으로 인식됐던 것.

    일찍이 김장생은 “예의 진정한 가치는 허위적인 예의(禮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개개인이 자기 역할에 충실해 조화롭고 열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 아니겠는가. 김장생이 정비한 예학은 여전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침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계의 기일제례를 모시는 염수재. 한밤중에 제사를 지낼 때 불을 밝히기 위한 관솔불을 돌기둥 위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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