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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해후(邂逅)와 재회의 순간들

해후(邂逅)와 재회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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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邂逅)와 재회의 순간들
그러나 이국땅이나 도시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이 작아지거나 폐허가 된 고향집을 다시 찾았을 때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처럼, 만나는 순간 그들은 모두 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상처 입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모습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절망의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도 그리웠던 얼굴을 외면하거나 그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면, 그것은 그의 삶을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능동적인 참된 삶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성취하거나 그리움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시간의 연속이 아닐까.

너무나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순수한 사랑과 우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오랫만에 만난 얼굴이 아무리 변했더라도, 서로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보다 시간의 힘에 외상(外傷) 입은 모습에 애정의 눈길을 주어야만 한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순간 그리워했던 사람의 일그러진 모습 아래 순수한 옛 모습의 그림자가 조용히 숨을 쉬며 잠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민족시인 예이츠는 결코 맺을 수 없었던 그의 애인, 모드곤의 ‘변한 얼굴의 슬픔’을 사랑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대 늙어서 머리 희어지고 잠이 많아져, 난로 옆에서 꾸벅일 때, 이 책을 꺼내서 천천히 읽으라.그리고 한때 그대가 지녔던 부드러운 눈매와깊은 그늘을 꿈꾸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기쁨에 찬 우아한 순간을 사랑했으며, 거짓된 혹은 참된 사랑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지를,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대의 순례(巡禮)하는 영혼을사랑했고, 그대 변한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음을.



W.B. 예이츠의 ‘그대 늙거든’ 일부

별리(別離)의 슬픔을 나눈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신의 축복으로 잃어버렸던 사람을 만나서 너무나 ‘변한 얼굴의 슬픔’을 사랑하게 되면,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그는 시간의 바닷속에 묻혀서 “바다 작용에 의한 변화를 겪고”도 환경의 변화에 정복당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진주(眞珠)가 된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이별 끝에 이루어진 해후의 순간이나 재회의 순간, 그 찰나적인 기쁨 뒤에 절망이 찾아오면 어디라도 좋으니 어둠 속 빗길을 자동차로 함께 달려보라. 운전을 하며 달리는 차 속에서는 서로가 얼굴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차창을 때리며 흘러내리는 빗물만 보게 되기 때문에, 옆에서 가랑비처럼 찾아오는 부드러운 손길과 함께 잊었던 옛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다시 느끼게 될 것이다. 실로 그것은 오랜 세월의 바닷속에 깊숙이 묻혀 있다 해변으로 밀려온 성숙한 우정인 사랑의 진주와도 같은 것이다.

신동아 200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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