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가 국회 법사위원회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은 2000건, 검찰은 577건, 교도소 등 구금기관은 4104건, 보호소 등은 170건, 군대는 221건, 기타 국가기관은 2338건이었다.
다음은 인권위가 “인권위 출범 이후 밝혀진 국가기관에 의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라며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검찰의 ‘엽기적 건망증’
1996년 11월 김OO씨는 사기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중지됐다. 그러나 1997년 1월 검찰은 장애인인 김씨가 실제 피의자와 동명이인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같은 해 5월 검찰출두 요청을 받았다. 김씨는 형사와 함께 검찰청으로 가서 자신이 피의자와 동명이인임을 해명해야 했다.
2년 뒤인 1999년 8월, 같은 검찰청의 수사지휘로 경찰관이 다시 김씨의 집을 방문했다. 같은 사건의 피의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검찰에 자신은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주지시켰다. 그러나 2001년 2월12일 같은 검찰청의 지시로 경찰관이 또다시 김씨 집을 찾아왔다. 김씨는 자신이 무고한 시민임을 또 확인시켜줬다.
참다못한 김씨는 나흘 뒤인 2월16일 “동명이인임이 확인됐는 데도 계속해서 소재수사를 받아 고통스럽다”면서 해당 검찰청장과 검찰총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했다. 검찰에선 곧 “그동안 본의 아니게 심적 고통을 준 점에 대해 사과한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하지만 1년9개월이 지나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2002년 12월19일 같은 검찰청이 다시 경찰에 수사를 지시해 경찰관이 김씨에 대해 같은 혐의로 소재수사를 벌인 것이다. 김씨는 검찰과는 더 이상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보고 1개월 뒤 인권위에 진정을 하게 됐다.
검찰은 인권위에 “업무 인수인계가 잘 안 되어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같은 실수가 반복되어 무고한 시민이 수차례 고통을 호소했고, 이에 검찰이 재발방지 회신까지 했음에도 검찰이 문제를 즉각 시정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은 이 정도의 대민(對民)피해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인권경시와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권위는 “김씨가 사기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명이인임을 확인하고도 반복적으로 소재수사를 함으로써 김씨에게 적지 않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안겨준 행위는 검사 등이 지켜야 할 ‘인권보호수사 준칙’ 6조 및 23조에 반해 김씨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검찰에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권고했다. 이에 검찰총장은 2004년 9월 “재발하지 않게 조치했다”고 통보했다.
자살기도 상태서 10시간 심문
미성년자인 조○○양은 2000년 2월10일 새벽 1시 승용차 안에서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됐다. 박씨는 조양의 부모에게 합의금을 줬고 조양측은 고소를 취하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검찰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심문을 강요했다고 조양측이 주장하고 있는 것.
그해 7월 검찰은 조양에게 피의자와의 대질심문에 출석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조양의 부모는 조양이 임신중독으로 몸이 붓는 등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있는 데다 성폭행을 당한 충격이 큰 상태이므로 가해자와 분리심문해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다. 보호자의 입회도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요구를 무시하고 출석을 강요해 7월6일 보호자를 배제한 채 대질심문을 벌였다. 닷새 뒤인 7월11일 한 번 더 대질심문이 이뤄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대질조사를 했지만 피해자가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범행 일부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주장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강제로 조사한 사실이 없다. 대질조사에 방해가 되는 경우엔 보호자를 조사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인권위에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