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크로스오버라는 장르 자체가 아니라 크로스오버를 빙자한 수준 미달의 음반이 여전히 많다는 데 있다. 급조된 팝페라 가수와 연주 실력이 의심스러운 뉴에이지 음반, 괴상한 일렉트릭 클래식 음반들은 보수적인 클래식 애호가들로 하여금 ‘크로스오버’라는 장르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한다.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클래식이 안 되면 크로스오버를 한다’는 의식이 없지 않은 듯싶다.
전방위 피아니스트인 박종훈의 두 번째 뉴에이지 음반 ‘센티멘털리즘’은 이런 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음반은 박종훈이 국제 콩쿠르 우승(이탈리아 산레모 콩쿠르) 경력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작곡 실력까지 만만찮게 갖추었음을 알려준다.
박종훈은 이탈리아와 한국을 오가면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데 첫곡인 ‘프렐류드 2번’부터 남유럽을 연상시키는 밝은 정서가 물씬하다. 무엇보다 박종훈의 탄탄한 연주 실력이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강한 비트가 인상적인 ‘사랑의 길(Via d’armore)’과 재즈적인 느낌의 ‘더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이 눈에 띈다.
이 음반은 올해 박종훈이 내놓은 두 번째 음반이다. 올 상반기에 박종훈은 금호아트홀에서 실황 녹음한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출반한 바 있다. 한 해에 두 장의 음반을, 그것도 클래식과 크로스오버에서 각각 한 장씩 내놓은 것이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크로스오버에서도 클래식의 전형적인 연주자세를 고집하다가, 즉 크로스오버라는 장르 자체를 가볍게 보다가 실패하기 일쑤다. 박종훈은 이 점에서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