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갈등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상임위 배분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보법 개폐문제, 행정수도 이전문제, 과거사 청산문제 등 사사건건 혈전을 치르는 양상이다.
- 그 선봉에 선 여야 원내대표는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원내정당화의 시작이 그리 순탄치 않다.
과거사특위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왼쪽)와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8월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새단장 기념식에 참석해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중앙당사에서 열리던 각종 회의가 요즘은 국회 내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10월 국정감사가 시작된 뒤에는 각당 당사에 아예 인적이 끊겼을 정도다.
각당의 원내대표는 원내정당화의 리더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각각 국회의원 150명(김원기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로 1명 줄어들었다)과 121명의 원내 활동을 진두지휘하며 새로운 정치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양당 원내대표가 갑작스러운 파워 시프트(power shift)에 걸맞은 대응력을 보여준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17대 국회 개원 전 “더 이상의 협상 파트너는 없다”며 원만한 여야 관계를 유지할 것 같던 양당 원내대표는 5개월째에 접어 든 지금까지 최소한의 핫라인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히려 여야간 극한 대립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들은 각당 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당 원내대표간에, 또 각당 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내정당의 씨앗을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5월20일. 천정배 원내대표는 당시 신기남 의장과 함께 서울 영등포동 열린우리당 당사 3층 회의실에서 한나라당 김덕룡 신임 원내대표의 예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천 대표는 “김 대표같이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분을 만난 것은 내 복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서 축하 난을 제일 먼저 보냈다”며 김 대표를 한껏 추켜세웠다.
이에 김 대표는 “‘송무백열(松茂柏悅·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하더라)’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당이 젊고 개혁적이어서 내 마음이 기쁘다”면서 “천 대표와 함께 상생의 정치를, 개인적으로는 의정 활동의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게 돼 무척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김 대표는 또 “정치를 하려면 인간적으로 가까워져야 한다. 내가 언제 소주 한잔 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두 사람은 6월 한 달 내내 지루하게 계속된 17대 국회 개원협상 과정에 서로 지울 수 없는 의구심과 회의감을 키워갔다.
상임위원회 배분 문제, 특히 정동영-박근혜 양당 대표회담 결과물 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 전환을 적시한 대목을 놓고 벌어진 해석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은 더욱 멀어졌다.
이후 천 대표는 틈만 나면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 다르다”며 김 대표를 비판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두 사람
정치 대선배인 김 대표의 감정은 더 좋지 않았다. 한 측근의 전언이다.
“개원 협상이 고착 상태에 빠져 17대 국회 초반부터 여론이 좋지 않으면 야당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DR(김 대표의 영문이니셜)에게 천 대표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했더니 곧장 ‘내가 그 XX를 왜 만나!’하며 화를 버럭 냈다.”
국가보안법 개폐논란, 언론관련법안 제정논란 등으로 여야간 접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던 9월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별 소득 없이 끝났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언론관련법안 제정을 위해 야권에 국회내 언론발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을 놓고 양당 대표가 수차례 만났으나 그때마다 양당 대변인은 ‘결렬됐다’는 브리핑을 되풀이했다.
만나도 뾰족한 결론 하나 내놓지 못하는 ‘불임(不姙)회동’이 계속되자 취재기자들마저 나중에는 “별 게 있겠냐”며 이들의 회동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소득 없는 회동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했는지 두 사람은 비공식 회동을 갖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는 여야 모두 민생 우선을 선언한 10월 국정감사 기간에 더욱 악화되는 듯했다. 결국 민중사관 역사교과서, 국가기밀 유출 등으로 초반부터 파행 양상을 보이던 국감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들 양당 대표가 만났으나 “민생국감에 주력한다”는 원칙에만 합의하고 다시 돌아섰다.
서로를 최고의 협상 파트너로 기대하던 이들의 사이가 왜 이리 벌어졌을까. 정치권 내 많은 사람이 그 배경으로 당파적 입장차이보다는 두 사람의 스타일을 더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대인관계를 보면 접점을 찾기가 힘들다. 공통점도 고향이 호남(김 대표는 전북, 천 대표는 전남)이라는 것과 서울대 동창이라는 점 정도다.
우선 대인관계. 1970년대 초 서른 살의 나이에 정치권에 입문해 30년을 넘긴 김 대표는 현역 의원 중 가장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정치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파를 초월한 스킨십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올해 초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잠시 구속됐던 이재정 전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가장 먼저 차입금을 넣어준 사람은 열린우리당 사람이 아닌 바로 김 대표였다.
반면 주변에서 ‘목포가 낳은 3대 천재’로 불리는 천 대표는 그 자신도 “그리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로 낯을 가리는 편이다. 원내대표를 맡은 뒤로 많이 나아졌다는 평이지만 여전히 사람을 대할 때면 어색하고 수줍은 미소를 숨기지 못한다. 꽤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가늘게 뜬 눈은 상대적으로 큰 눈의 김 대표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들은 술 한잔도 같이하기 힘들어 보인다. 환갑을 넘긴 김 대표는 여전히 양주 스트레이트에 폭탄주를 즐긴다. 그는 “양주는 웬만큼 마셔도 괜찮은데 맥주는 배불러서 이상하게 싫다”고 말한다. 천 대표는 폭탄주 두 잔이면 얼굴이 불그레해진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러니 같이 앉아서 술이나 한잔 마실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조급해진 천정배
천정배·김덕룡 두 원내대표는 늘어나는 내부의 비판과도 싸워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주요 계파의 중진이 돈과 조직으로 원내를 장악하는 일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됐다. 요즘 원내대표들은 전체의 60%가 넘는 초선 의원들의 각종 의견 개진과 입법 활동에 골머리를 앓고, “어른대접 해주지 않는다”는 보수 성향 중진원로들의 불평을 감수해야 한다.
집안 사정은 천 대표가 좀더 복잡한 편이다. 5월 원내대표 취임 직후 지금까지 천 대표는 주요 현안에 대해 통일된 의사결정을 내려본 적이 거의 없다.
아파트 분양원가공개 파동을 시작으로 최근의 국가보안법 개폐논란에 이르기까지 천 대표는 원내 초선 의원들과 청와대와 중앙당 등 전방위의 의견을 들어가며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러다 보니 당내 초선 의원들은 “우리는 어차피 청와대와 교감하며 정치하는데 원내 눈치까지 볼 필요 있느냐”는 말을 사석에서 공공연히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청와대와의 관계가 점점 서먹해지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난 열린우리당 한 중진의 전언.
“청와대와 천 대표의 간극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아무래도 지난해 10월 천 대표가 당시 대통령 국정상황실장으로 있던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 노 대통령 핵심 386측근을 향해 ‘사약을 받아야 한다’ 운운하며 정면 비판한 것을 비롯해 최근 들어 주요 정책을 놓고 청와대와 의견차를 보인 것에 따른 앙금이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천 대표가 얼마 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나 국정에 대해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이를 두고 노 대통령이 주변에 ‘천 대표는 아직도 나를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후보로 보는 모양이지’라는 말을 했다는 후문이다.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사이가 더 이상해지면 안 될 것 같아 얼마 전 천 대표의 손을 억지로 잡고 청와대에 같이 들어갔다.”
천 대표가 요즘 들어 그답지 않은 조급증을 보이는 것도 이런 정치환경 탓일 가능성이 높다.
천 대표가 국가보안법, 과거사 기본법,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관련법 제정 및 개정안 등에 대한 당론을 10월17일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확정하겠다고 치고 나온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특히 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한 언론관련 법안-신문법(가칭), 언론피해구제법,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천 대표와 일부 당내 중진의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들린다.
열린우리당 문광위 소속 모 의원의 보좌관은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0월 초만 해도 국가보안법, 과거사 기본법 등을 놓고 논란이 극심해 당내 중진 가운데 에는 언론관련 법안은 국감 후에나 다루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이미경 문광위원장은 언론관련 법안이 소관 상임위의 핵심사안인 만큼 당론을 미리 정해 문광위에 올려 야당과 한판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문광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어차피 표결로 가도 수가 많으니까 우리가 원하는 바는 이룰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천 대표는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며 강행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안다.” 천 대표는 이래저래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김덕룡 대표는 겉으로는 천 대표보다 사정이 나은 듯하다. 박근혜 대표 체제 출범 후 단행된 사무처 당직자에 대한 구조조정 결과, 남은 100여명의 당직자 중 70% 가량은 ‘김 대표 사람’이라는 해석이 당내 정설이다.
한나라당 연찬회를 왜 호남에서?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부대표단도 김 대표에게 호의적이고,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 이른바 소장파 그룹도 김 대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비판을 쏟아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영남, 특히 TK(대구 경북)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의 중진들은 공개적으로 김 대표의 원내 장악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등 끊임없는 적개심을 노출하고 있다. 여기에는 같은 중진으로서 김 대표의 독주를 제어하겠다는 ‘정치공학적’ 논리 외에 그가 당내 몇 안되는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8월말 전남 구례에서 2박3일 동안 진행된 의원 연찬회에 출발하기 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안택수, 박종근 의원 등 영남 중진이 “왜 호남에서 연찬회를 하느냐” “우리가 싫다는 데 억지로 갈 필요가 있느냐”며 김 대표의 결정에 반대한 것도 그의 고향에 대한, 딱히 설명하기 힘든 적대감이 녹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구가 지역구인 한 의원의 고백.
“대선에서 두 번 지면서 호남과 충청권을 잡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도 안다. 수도 이전에 대해 아직도 당론을 확정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것도 충청권의 파괴력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은 좀 다르다. 우리가 무엇을 한들 호남이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느냐는 일종의 패배주의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호남 출신인 DR이 당 전면에 나서는 것을 아직까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가 오랫동안 정치를 했지만 YS(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에는 늘 비주류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치고 올라온 것도 좀 그렇고….”
이런 인식이 영남권 저변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8월28일 전남 구례 연찬회장인 농협수련원에 도착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 앞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을 보고 자기네 뜻을 더 굳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호남의 거목 김덕룡 선생 만세!”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아직 공개적으로 속내를 드러낸 적은 없다. YS의 공보비서 등을 오래 해서인지 좀처럼 자기 생각을 노출하지 않는 게 김 대표의 스타일이다.
천·신·정 중 유일한 당내 생존자
천 대표의 원내대표 임기는 내년 5월 초까지. 천 대표가 대과(大過) 없이 원내대표직을 마칠 경우 일단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3인방 중 자신에 맡겨진 당직을 완수한 유일한 인물이 된다.
이에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총선 당시 ‘노인 폄훼 발언’으로 총선 직후 당 의장을 그만뒀고, 신기남 의원은 부친의 일제 치하 헌병 복무와 관련된 거짓말 파문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럴 경우 천 대표는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차지해 재도약을 위한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당내 또 다른 세력인 유시민 의원 등 국민개혁정당 계열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주로 상대하는 원내대표와 당의 간판으로 전면에 나서야 하는 당 의장(대표)과는 그 위상과 요구되는 능력 및 자질이 다른 만큼 천 대표가 원내대표 이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지는 판단하기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또 향후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도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이에 비해 김 대표는 향후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내가 이제 와서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나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할 수 있게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유력 대선 후보군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2007년에 킹 메이커를 자임하거나 향후 당권을 노리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당내 ‘반(反)김덕룡’ 세력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 김 대표의 ‘원내대표 이후’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표측에서도 그리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불투명한 DR의 미래
현재 박 대표와 김 대표는 전략적 제휴 관계, 다시 말해 박 대표의 대중적 인기와 김 대표의 개혁적 중진 이미지를 결합해야 일단 현 여소야대 정국에서 한나라당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 뭉친 사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대표의 한 측근은 기자와 만나 김 대표에 대해 이런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사실 김 대표가 박근혜 대표 체제가 아니라면 그리 쉽게 원내대표직을 맡을 수 있었겠느냐. 그런데도 여권의 정수장학회 의혹 제기 등의 과정에 김 대표가 박 대표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박 대표와 제휴는 하면서도 유신체제 등 박 대표가 갖고 있는 ‘원초적 그늘’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 아니냐.”
다시 말해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김 대표가 예기치 못한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고, 박 대표의 대응도 그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대표의 미래도 박 대표와의 관계 및 영남 보수성향 의원간의 관계설정 등에 따라 언제든지 안개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