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오줌 한 컵 마시기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동아출판사 창업주 김상문 회장. 아흔 나이지만 5층 정도는 계단으로 거뜬히 오르내리고 아직은 돋보기가 거추장스럽다. 화목한 부부관계를 위해 ‘快性’을 포기한 적도 없다. “100살까지 건강 장수하는 건 문제없다”고 자신하는 ‘청춘 노인’의 웰빙 특강.
마주앉은 김 회장은 도저히 아흔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꼿꼿한 허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 무엇보다 잡티 하나 없이 맑은 얼굴색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동아전과, 완전정복시리즈, 동아세계대백과사전을 만들어내며 한때 ‘출판황제’로 불렸던 동아출판사의 창업주 김상문 회장. 현재 동서문화사 명예회장으로, 올 초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출판사 상문각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아직도 ‘필드’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출판계 원로다.
김 회장은 젊은 시절 못지않게 건강하고 열정적인 생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건물 5층 정도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거뜬히 오르내릴 만큼 관절도 쓸 만하고, 사시사철 냉수마찰(겨울철에는 온수마찰)로 건강을 다진 터라 감기 한번 걸린 적이 없다. 10살 무렵 장티푸스를 크게 앓은 일말고는 지금껏 잔병치레 없이 살아왔다는 그는 1915년 9월28일생으로 올해 졸수(卒壽)를 맞았다.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으세요?”
김상문 회장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한결같이 이렇게 묻는다. 아니나다를까. 가지런히 쓴 베레모 아래 검버섯 하나 없이 깨끗한 김 회장의 낯빛은 90년이란 시간이 비켜간 듯하다. 게다가 웃는 인상까지 더해져 그는 실제 나이보다 20~30년은 젊어 보인다.
“얼마 전 피부과에 가서 점을 하나 뺐어요. 눈 밑에 못 보던 점이 생겼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라고. 세수하고 나서 다른 건 몰라도 자외선차단제는 꼭 발라요. 요즘엔 자외선이 강하기 때문에 남자들도 외출할 땐 반드시 발라야 해요. 자외선차단제는 우리 딸아이가 미국에서 보내주는 것을 써요. 사람들은 이 나이에 무슨 피부관리냐 하겠지만 그건 ‘방로(放老)’나 마찬가지예요.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노화를 방치하면 안 되죠. 계속 관리해야 늙는 것을 막지는 못한데도 더디게는 할 수 있어요.”
자외선차단제를 쓰며 노화를 더디게 한다는 김상문 회장의 건강관리는 이처럼 작은 데서부터 시작한다. 얼마 전 받은 정기검진에서 신체나이가 70세 초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김 회장. 100수를 코앞에 둔 나이에 20년이나 젊어졌으니 그것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또 있을까.
8∼10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는 김 회장은 청력이 좋아 큰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오른쪽 시력 0.7에 왼쪽 시력 1.0으로 시력도 좋아 책을 읽을 때도 돋보기를 쓰지 않는다. 몇 시간씩 흔들림 없이 붓글씨를 써내려갈 만큼 팔 근력도 좋고 아래쪽 사랑니 두 개가 아직도 남아 있을 만큼 건치를 자랑한다. 이쯤 되면 김 회장의 건강지수가 꽤 높은 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0년 동안 몸무게가 항상 70kg 정도를 유지했어요. 변동이 거의 없는 편이죠. 키는 163cm로 작은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3cm 정도 줄어 지금은 160cm밖에 안 돼요. 나이가 들면 키도 줄고 내장도 줄어들거든. 위장만 해도 90세면 20대에 비해서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그런데 나는 참 잘 먹거든. 위장 역시 나이가 덜 든 거지.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모이면 다들 입맛이 없다고 젓가락 일찍 내려놓는데 나는 밥맛이 너무 좋아 걱정일 정도예요.”
태어났을 땐 허약체질이었다. 김상문 회장 모친이 김 회장을 임신했을 때 영양실조에 걸렸을 정도로 잘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사범대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했을 만큼 건강체질로 바뀌었다. 20대의 건강을 90세까지 유지하기란 녹록치 않은 일. 김 회장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김 회장은 “단식 덕분”이라고 주저 없이 강조한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사흘씩 단식을 하고 있어서다. 벌써 30년째다.
1년에 2차례 3일씩 단식
그가 처음 단식을 시도한 것은 57세 무렵. 동아출판사가 정상을 달리던 시절 김상문 회장에게 유네스코 후원으로 3개월간 세계 일주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꿈 같은 시간도 잠시, 해외의 온갖 산해진미에 김 회장의 체중이 82kg까지 불어났다.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다름아닌 단식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20일 단식을 시도했다. 5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장기간이라 할 수 있는 20일 단식을 감행하는 것은 자칫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나는 인내로 단식을 마친 김 회장은 5kg 감량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단식 후 장내 숙변이 제거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걸 경험하게 된 김 회장은 이후 단식 마니아가 됐다.
“체내에 쌓인 노폐물과 유해물질을 말끔히 빼주고 피를 맑게 해주는 데 단식만큼 좋은 게 없어요. 흔히 단식이라고 하면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심한 약체가 아닌 이상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단식을 계속하면 노화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효과까지 있어요. 집사람과 나는 봄 가을로 사흘씩 단식을 하는데 장내에 숙변과 노폐물이 쌓일 틈이 없으니 자연히 혈색도 좋고 머리도 맑아질 수밖에 없어요. 주기적으로 단식을 하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면 따로 건강관리 할 필요가 없죠. 단 단식 중에는 깨끗한 생수를 자주 마셔줘야 해요.”
단식을 마친 보식 첫날에는 세 끼 모두 소량의 미음을 먹는다. 보식 중에 육식을 하거나 과식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김상문 회장은 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꼽았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경고하지만 그 역시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심한 스트레스로 적지 않게 고생했다. 그는 “서예나 잠자기 전 음악을 듣는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고 했다.
김상문 회장의 하루 일과는 새벽 4~5시에 시작된다. 밤 9시 뉴스가 끝나면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그의 평균 수면시간은 6~7시간 정도. 아침에 일어나면 맨먼저 간단한 맨손체조로 몸을 풀어준 뒤 샤워를 한다. 일반 기지개보다 동작을 크게 하는 일명 ‘통일기지개’를 비롯해 양손바닥으로 양볼을 빠르게 비비거나 샤워할 때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30회 정도 반복해 문지르는 것도 그가 즐겨 하는 혈액순환 촉진용 마사지다.
“오줌은 무균 건강음료”
가까운 거리는 되도록 걷는다는 김 회장은 하루 최소 1~2km는 걸으려고 노력한다. 전철이나 차를 탔을 때도 그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수시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하복부 전체의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항문 조이기 등을 멈추지 않는다. 김 회장이 이처럼 유난스러울 만큼 운동하고 몸을 관리하는 데에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외조부를 시작으로 그의 모친은 84세에 위암으로, 그의 친형은 77세에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즉 그의 집안은 암(癌) 가계(家系)였던 것. 유전은 아니지만 암환자의 자손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김 회장의 남다른 건강관리가 수긍이 간다.
“오랫동안 암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살았어요. 어떻게 하면 암을 예방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100살까지 살고 싶지만 인명은 재천인데 누가 알겠어요. 또 우리 집안은 암 가계이니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었죠. 암은 90세에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거든요. 나도 언제 암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얻은 결론이 암 예방에는 단식과 요료법이 최고라는 거예요.”
일본인 의사 나카오가 쓴 ‘기적이 일어나는 요료법’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김 회장은 1999년부터 매일 아침 오줌을 한 컵씩 마셔왔다. 그는 일본에는 1000만명이, 우리나라에는 100만명 정도가 요료법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줌을 마시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그는 “대변은 더럽지만 오줌은 신장에서 걸러진 깨끗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오줌과 대변을 혼동하면 안 돼요. 오줌은 피가 신장에서 걸러진 것으로 무균 상태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줌을 먹은 지는 오래 됐어요. 어릴 적 훈장 할아버지가 우리들 오줌을 받아서 눈도 씻고 먹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 어머니도 오줌을 누고 나서 그것으로 자신의 얼굴을 씻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러면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심한 여드름에도 효과가 좋아요. 5년 전부터 매일 아침에 오줌을 한 컵씩 먹고 있는데 웬만큼 힘든 일을 해도 피로를 잘 느끼지 못할 정도예요.”
올해 85세인 그의 부인 박복향 여사도 4년 전부터 요료법을 시작했다고 한다. 몇 해 전 가벼운 뇌경색을 겪은 후 수시로 발작을 해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곤 했지만 요료법을 시작한 뒤로는 증세가 사라졌다고 한다.
단식과 소식을 즐긴다는 김상문 회장의 밥상은 소박하다.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는데, 아침은 귤 2개 혹은 단감 1개, 바나나 1개 등 제철 과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대신 점심은 ‘단단히’ 먹는 편이다. 요즘처럼 지방 출장이 잦을 때는 전주 비빔밥, 광주 한정식, 부산 생선회, 대구 따로국밥 등 지방 특성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 먹기도 한다. 저녁식사는 밥을 먹되 섬유질이 풍부한 된장이나 청국장과 현미밥, 김치 등 소찬으로 하고 과식을 피한다.
김 회장이 좋아하는 반찬은 된장국과 등 푸른 생선 조림. 특히 콜레스테롤을 없애주는 고등어와 꽁치는 그가 즐겨 먹는 생선류다. 찹쌀현미에 까만 콩을 넣은 밥을 주로 먹고 저염식을 선호하는데, 부득이하게 외식을 할 경우에는 김치를 물에 여러 번 헹궈 염분을 제거한 후 먹는다.
물이나 음식 재료도 깐깐하게 고른다. 정수기 물보다는 미네랄이 풍부한 생수를 선택하고 비싸더라도 유기농 야채만을 고집한다. 백설탕 대신 물엿과 꿀, 또는 흑설탕을 먹고 육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식탁 위에 오르지만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담배는 전혀 하지 못하고 주량은 맥주 한 컵 정도다. 몸에 해가 되는 것은 가리고 피하는 덕에 따로 보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건강을 유지한다. 또 뱀탕이나 사슴피 등의 강장식품은 정상적인 식생활을 통해 얻는 스태미너보다 지속력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그리 즐기지 않는다.
“조선조 500년사를 봐도 장수한 왕은 83세까지 산 영조가 유일해요. 역대 왕의 평균수명은 45세였다고 합니다. 산삼이며 몸에 좋은 보약을 싫도록 장복했을 텐데 말이죠. 중국 진시황도 49세에 죽었잖아요. 이는 운동부족과 균형 잃은 식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생각하는 최상의 강장식은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다. 유일하게 하는 ‘보약 사치’라면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 종합비타민을 비롯해 비타민 C와 비타민 E는 종류별로 챙겨먹는다.
쾌성(快性)에는 정년이 없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변을 본다는 그는 오전 중에 대변을 보지 못하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여의치 않을 때는 관장을 해서라도 용변을 해결한다는 김 회장은 “용변을 보지 못하면 장내에 대변이 쌓이고 독소를 내보내지 못해 원활한 혈액순환이 안 되기 때문에 쾌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변비로 고생하는 경우 3일간만 단식하면 쾌변을 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특히 쾌식과 쾌변의 사이클은 건강의 기본으로 이를 위해선 소화기능이 좋아야 하고, 소화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유를 갖고 식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상문 회장은 수면에 대해서도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간이므로 건강한 성인의 경우 하루 7∼8시간은 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정도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낮에 쓴 뇌세포의 피로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70세 이상의 노인은 6∼7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또 언제 수면을 취하느냐가 중요한데, 오후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8시간의 수면효과가 가장 크다. 점심식사 후 20분 정도 가벼운 오수(午睡)를 즐기는 것도 좋다.
쾌식(快食) 쾌변(快便) 쾌면(快眠)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건강비결은 바로 쾌성(快性)이다. “쑥스럽지만 아직도 나름대로 남자구실을 한다”는 김상문 회장은 한달에 한번씩 부인과 잠자리를 갖는다.
27세에 다섯 살 어린 박복향 여사와 결혼한 그는 슬하에 5남매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일구어왔다. 평소에도 부부금슬이 좋기로 유명한 김 회장 내외는 자식들이 모두 출가해 둘이서만 오붓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나이 90세에 쾌성이라는 얘기를 꺼내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몰라요. 우리 집사람도 밖에서 ‘쾌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할 정도니까(웃음). 하지만 쾌성에는 정년이 없어요. 또 부부관계를 화목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이죠. 섹스는 조물주가 사람에게만 준 특별한 은혜니까요. 동물들은 발정기라는 짧은 생식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인간은 언제나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쾌성이 없다면 가정은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어요. 물론 남자가 잘 리드해야 해요. 남자는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줄 의무가 있거든요. 쾌성만 잘 된다면 이혼율도 많이 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에요.”
일본 도쿄에서 채광학을 공부한 김상문 회장은 처음부터 출판업계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광업회사에 취직했으나 이내 그만두고 신혼시절을 ‘백수’로 보낸 그는 도쿄 유학 시절 어깨 너머로 배운 ‘등사쇄판’ 수리 기술을 살려 1942년 동아프린트사를 차렸다. 해방 이후 일본어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출판업이 불붙듯 일어나면서 동아출판사를 창업한 김 회장은 이후 초중고 학생 참고서와 각종 사전류 시장을 석권해 ‘출판황제’ ‘참고서의 제왕’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한창 때는 다른 출판사에서 우리 때문에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경쟁자들과 아이디어 싸움에서 뒤져본 적이 없었거든. 많을 땐 직원이 2400명이나 됐고 1년 매출이 1000억원에 달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동아원색대백과사전을 만들면서 자금난을 겪었고 이후 사정이 급속히 어려워졌어요.”
1985년 30권짜리 동아원색대백과사전을 제작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김 회장은 이후 눈물을 머금고 동아출판사를 다른 회사에 넘기고 만다. 정상에서 일순간 추락한 그는 당시 주머니 속에 비상을 넣어가지고 다닐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회상한다.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죽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어렵게 구한 비상을 복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죽을 생각이었죠. 그런데 전라도 광주 고속버스에서 누가 그 복주머니를 소매치기해간 거예요. ‘하나님이 죽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싶었죠. 이렇게 죽을 바엔 죽을 각오로 다시 도전해보자 생각했어요.”
그때 김상문 회장의 나이가 일흔 살 이었다. 그후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올초에는 동아출판사를 함께 경영하던 셋째아들과 함께 상문각이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그리고 첫 번째 출판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다. 90년 체험을 통한 자신만의 건강관리 비결을 책으로 엮은 ‘100살 자신 있다’를 펴낸 것. 요즘 김 회장은 아들과 함께 서울로, 지방으로 직접 영업을 하러 다닌다.
“책 주문이 들어오는 곳은 어디든 직접 배달을 가요. 관공서나 도서관에 사람들 모아놓고 강연도 하고요. 요즘엔 대학이나 기업체에서도 강연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아요. 사람들에게 내 건강비결을 나눠주는 일이니 보람을 느끼죠.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게 다 사회봉사라 생각해요. 앞으로 이렇게 봉사하며 살 겁니다.”
‘최후의 승자는 건강’
고집스러울 만큼 출판으로 일관된 인생을 살아온 김상문 회장. 수차례 어려운 고비들을 겪으며 지나친 물욕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그는 고결한 인품도 현실 앞에서는 품위를 지키기 어려운 법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향기를 잃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저녁 때면 부인과 함께 가까운 공원에 산책을 나가거나 백화점에 쇼핑을 다니기도 한다. 90세에도 70세 부럽지 않은 건강이 있고 큰 돈벌이는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만큼 수입도 있다는 그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김상문 회장은 3년 전 서울대 의대에 시신기증 서약을 했다. 오래 전에는 자신이 가진 재산 모두를 불우한 노인을 위해 내놓겠다고 공헌하기도 했다. 비록 평생 가꾸어온 ‘출판보국(出版保國)’의 꿈이 막히긴 했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평소 입버릇처럼 “나이 90이 되면 책을 펴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는 그는 ‘100살 자신 있다’는 책을 펴낸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100살 자신 있다’는 제목은 정말 100살까지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나이까지 살아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붙인 거요. 앞으로 수필집도 하나 낼 계획이고 서예전도 두 번쯤 더 열 생각이거든.”
“100살 자신 있다”는 말은 어쩌면 김상문 회장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90세에도 건강을 잃지 않고 사는 비결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필자에게 그가 “제목으로 ‘최후의 승자는 건강이다’는 문구를 꼭 좀 넣어주소”라고 거듭 당부한다. 왕년 ‘출판황제’다운 주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