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와 손잡고 디지털 문화와 패션산업 분야 전문가를 키운다. 국가지원금 330억원 규모의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생들의 국제감각을 높이기 위해 외국어 전용 기숙사를 운영한다. 29개국 132개 학교·기관과 교류·협력한다….
- 대학 무한경쟁시대에 구조조정과 개혁으로 우뚝 선 지방대학이 있다. 특성화·세계화 전략으로 내실 있는 교육을 추구하는 계명대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계명대는 지금 개혁의 몸살을 앓고 있다. 학내 소요나 갈등 탓이 아니다. ‘계명-업 2020 프로젝트(Keimyung-Up 2020 Project)’ 때문이다. 지난 7월 취임한 이진우 총장은 취임사에서 “계명-업 2020 프로젝트를 강력히 시행하겠다. 이 프로젝트는 계명 공동체의 뜻을 모아 우리 학교를 명실상부 한국 10위권 대학으로 진입·발전시키려는 야심찬 전략이다. 지금은 계명의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계명-업 2020 프로젝트’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특화 전략. 2020년까지 최소 20개 학과를 선택하여 집중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두권 대학 진입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의 대학들은 구조조정과 개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신입생이 부족해 학교 운영이 어려운 대학도 속출하는 상황. 이에 각 대학은 저마다 발전계획을 마련하는 등 경쟁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계명대 이승희 기획정보처장은 “신입생이 부족하거나 개혁의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 자구책을 강구하는 게 아니다. 우리 대학은 입학정원 5000명에 총 학생수가 2만4000명이 넘어 규모에서 전국 9위를 자랑한다”면서 “지금까지 일궈온 양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질적 성장을 꾀하는 것이 ‘계명-업 2020 프로젝트’의 탄생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콘텐츠 특성화 산업
계명대의 발전 계획을 대변하는 것이 문화콘텐츠 특성화 사업이다. 문화관광부는 대구와 인근 지역을 디지털 문화(게임·모바일 콘텐츠·디자인) 산업단지로 지정했다. 여기에 총 2700억원을 투입, 200개 기업과 외국기관, 연구소를 유치하여 국내 최대의 문화산업단지로 개발하기로 확정한 것. 이 사업의 추진 주역으로 계명대가 선정되었다. 강문식 홍보실장의 말.
“섬유산업을 계승해 향후 지역발전의 기틀이 될 ‘대구문화산업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계명대는 대명캠퍼스 3만5000평을 사업 부지로 제공했다. 또한 정부와 공동으로 문화콘텐츠산업 인력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력양성 사업은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NURI) 사업으로 선정돼, 올해 7월부터 4년 동안 총 280억원이 투입된다.”
대명캠퍼스는 세계적인 디지털 문화산업단지로 발돋움하고 계명대는 여기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하는 디지털 인재양성 사관학교가 되는 셈이다.
양성사업단이 주관하는 이 사업에는 계명대 문화콘텐츠인력과 디자인·정보 통신관련 7개 학과가 참여하고 있다. 사업단은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가 기존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우선 관련학과 학생 전원이 의무적으로 해외산업 시찰, 해외 어학연수, 해외업체 인턴십에 참가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영어집중 교육을 실시하고 방학 중에는 외국인과 함께하는 집중 영어캠프도 마련할 계획.
문화콘텐츠 관련 인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다. 따라서 인문학 관련 강의도 강조된다. 인력양성 사업을 주도하는 정보통신학부 김태식 교수는 “학생 개개인을 어떤 브랜드를 가진 인재로 키워낼 것인지가 주된 고민이다. 결국 인문학, 디자인,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총체적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문화 관련 지식과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강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특화된 교육을 진행한 결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말한다.
국제화된 디지털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계명대는 세계 유수의 대학과 상호 협의에도 적극적이다. 권업 산학협력단장은 지난 9월6일부터 12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어바인)를 방문하여 문화콘텐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상호협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권 단장은 “이 대학은 미국에서도 30위권 안에 드는 명문이다. 디지털 문화산업 관련 지명도도 높다. 우리 대학이 디지털 콘텐츠 인력양성에 높은 관심을 보인 반면, UC 어바인대는 문화산업 클러스터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고 말했다.
이 협약 체결에는 디지털산업진흥원장과 대구시 문화산업 담당 공무원 다수가 동행했다. 이번 협약에 학교 밖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계명대는 1954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이 설립한 이후 50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왔다. 1978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해 발전의 초석을 다진 뒤 1980년대 초반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일대 55만평에 성서캠퍼스를 조성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6년 행정본부를 대명캠퍼스에서 성서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성서시대를 열었다.
지난 50년간 계명대의 터전이었던 대명캠퍼스는 영화나 TV 드라마 배경으로 자주 등장할 정도로 아름답다. 성서캠퍼스는 대명캠퍼스의 고전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녹음이 우거진 주변 야산과 조화를 이루며 빼어난 조경을 자랑한다. 초기 교회 건축양식을 연상시키는 빨간 벽돌 건물과 고궁(古宮)의 앞마당처럼 잘 가꾸어진 녹지가 캠퍼스를 감싸고 있다. 화강암의 육중한 정문을 들어서 동산도서관을 지나 ‘아담스 채플’에 올라서면 캠퍼스와 도심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명대의 문화적 소양과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은 대학박물관이다. 1978년 개관한 박물관은 그동안 대명캠퍼스 도서관 내에 자리잡고 있다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성서캠퍼스 독립건물로 이전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2000여평 규모로 전국 최대다. 특별 전시실과 상설 전시실로 나뉘어 있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 ‘한국 민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9월7일에는 제20차 세계박물관협의회 총회에 참석한 150여개국의 박물관 대표와 관련 전문가들이 계명대 박물관을 찾아 민화 특별전 및 전시물을 관람했다. 국내 희귀 민화를 모아 전시한 특별전을 관람한 국내외 인사들은 대학 박물관의 높은 수준에 만족감을 표명했다.
김권구 박물관장은 “박물관을 데이트하고 공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면서 “대구 지역 주민의 문화공간 역할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은 지난 7월12일 외국인 대학생을 위한 ‘2004 한국어 및 한국문화 연수 캠프’를 열었다. 이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참가신청을 하고 참가비 140만원과 항공료 등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이 4주 동안 숙박하고 생활한 곳이 바로 계명대의 명물 ‘계명 한학촌(韓學村)’이다.
계명대는 미국 내 150여 대학으로 구성된 국제학 관련 협의체 CCIS (College Consortium of International Studies)가 지정한 한국학 대학이다. 최근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학 연구의 메카로 떠오른 이 한학촌은 내·외국인이 서당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한국의 전통가옥 문화를 그대로 재현해 건립했다. 글을 가르치는 계명서당(啓明書堂)과 조선시대 양반의 전통 한옥인 계정헌(溪亭軒), 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국내 최초 외국어 전용 기숙사
계명대는 이제 패션, 첨단 문화산업 특성화에 세계화라는 날개를 달았다. 계명대의 세계화 전략은 특정 분야에 국제적인 감각과 기술을 겸비한 인재를 집중 육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영석 대외협력처장은 계명대 국제교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금까지 계명대는 선진 외국대학과의 교류를 활성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후진국에 앞선 교육을 제공하는 ‘멀티 유니버시티’ 전략을 추구해왔다. 최우선 순위는 특성화 분야다. 교류대학과 복수학위(Dual Degree)를 부여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2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구중심의 문화영역에서 탈피하고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강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계명대가 교류 협력하는 해외 대학은 29개국 132개교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2001년부터는 계절학기를 이용해 해외 자매대학에서 집중적으로 언어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영어, 중국어, 일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 관련 전공학생이 이 과정을 이수하면 3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참가비용은 학교가 책임진다.
한편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외국인 유인전략도 펴고 있는데, 계명대가 한국학 연구를 대표한다는 점이 해외유학생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260여명의 외국 대학생이 계명대에서 유학중이고 이들을 대상으로 130여개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계명대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게 되면서 계명대 학생들도 자연스레 세계화된 교육환경을 누리고 있다. 전국 최초로 문을 연 영어 전용 기숙사(KELI HOUSE)에는 외국인 50여명과 한국 학생 100여명이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언어를 터득하고 있다.
계명대의 명물로 꼽히는 ‘계명 한학촌’.
“1학년부터 이곳에서 생활했어요. 처음에는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나와 힘들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영어 실력이 늘었어요. 여기서 생활하고 아침저녁으로 영어 수업 들은 게 전부인데 외국인과 말하는 데 어색함과 불편함을 못 느껴요. 언어뿐 아니라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영어 전용 기숙사에서 2년째 생활하고 있는 김진명씨(영어영문학과 2년)의 말이다.
미래산업 인력 사관학교
최근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관련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계명대에 50억원을 기증했다. 동시에 현대자동차의 인력양성 프로그램(NGIV)에 계명대 학생들을 참가시키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해당 회사에 취업하거나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다. 대구시가 자동차 부품산업단지로 새롭게 부각되면서 계명대 또한 자동차 관련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에 적극 나선 것.
계명대의 산학협력 시스템은 이처럼 지역의 성장 동력산업과 연계하여 인력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형태다. 그래서 계명대를 ‘대구 미래산업의 인력양성 사관학교’라 부른다.
계명대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다. 올해 국가지원사업으로 선정된 것만도 여섯 가지에 지원규모가 330억원이 넘는다. 이들 사업의 목적은 지역산업 인프라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에 있다. 또한 디지털과 접목, 미래 기반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중인 ‘퓨전 테크노 벨트(Fusion Techno Belt) 연구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섬유, 자동차, 기계, 전자 등 지역 전통산업에 IT(정보기술), ET(환경공학기술), BT(생명공학기술), MT(기계전자기술) 등 신기술을 접목하여 신제품 개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권업 산학협력단장은 “전통적인 섬유산업 제직기(製織幾)와 정보기술을 결합해 통합 컨트롤러를 개발한다든지, 섬유와 나노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기발한 제품이 출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계명대가 역량을 집중한 것이 섬유패션산업 특성화 전문인력 양성사업(FISEP, Fashion International Specialist Education Program)이다. FISEP은 차별화된 교육이 차별화된 인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FISEP 과정은 국제학대학, 경제·통상대학, 패션대학을 제1전공으로 하는 학생 가운데 매년 30여명의 신입생을 특별 장학생으로 선발해 외국어, 패션 전문, 국제통상 과정을 집중 교육한다. 이후 해외연수를 보내 실무경험과 국제적 감각을 쌓게 하고 최종적으로 국내외 관련업계에 파견하여 실무과정을 검증받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면 외국어 실력과 국제 감각을 두루 갖춘 섬유·패션계의 전문 인력이 태어나는 것이다.
선발된 학생에게는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나 현재는 계명대에서 전액 출자하고 있다. 현재 FISEP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국내외 굴지의 패션, 물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FISEP 사업단장 류건우 교수는 “전국 각지의 우수한 학생이 FISEP 과정에 지원한다.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을 채용한 기업에서도 만족도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명대가 추진하는 특성화 전략과 산학협력에 근거한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성공하려면 이를 이끌어갈 교수들의 연구개발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계명대는 전국 최초로 교수 연봉제를 실시했다. 생물학과 유민 교수는 “연봉제 실시 이후 교수들의 연구 실적이 매년 12% 이상 증가했다.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계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교수들은 이러한 시스템의 공정성과 긍정적 의미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계명대가 교수들을 경쟁으로만 내모는 것은 아니다. 이진우 총장은 “교수의 연구활동 성과와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수업내용이 100% 일치하지 않는다. 교수법에 따라 학생들의 성취도가 크게 차이 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학교 차원에서 교수학습지원센터를 통해 각종 시청각 자료와 학생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만든 수업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명대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건립된 대학이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가치의 실천을 중요한 교육목표로 삼는다.
계명대에서 전 구성원에게 강조하는 가치는 ‘봉사하는 계명인’. 비단 학생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월부터 교수·직원들이 벌이는 ‘계명 1% 사랑나누기 운동’에는 지금까지 94%의 계명인이 동참했다. 여기서 모인 기금은 학생들의 봉사활동에 사용된다. 즉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필요한 비용을 이 기금에서 일정 부분 지원하는 것.
허도화 교목실장은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나눔과 봉사는 의미가 없다. 앞으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금을 조성해서 해외봉사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국내로 초청하여 교육하는 교육 나눔운동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월4일 계명대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교육인적자원부 위탁 영어교사 심화연수기관에 계명대학교 국제교육센터가 선정됐다는 통보였다. 국제교육센터장 김종환 교수는 “다른 어떤 대학보다 계명대가 영어교육과정에 필요한 조건을 훌륭히 갖추었음을 정부가 공인한 것”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13개 대학이 신청해 3개 대학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는데, 여기에는 국내의 대표적인 외국어 전문대학과 재정이 튼튼한 사립대가 포함돼 있었다. 이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계명대가 선정된 것이다. 끊임없는 개혁을 통해 실력을 키워온 지방대가 수도권의 쟁쟁한 대학과 어깨를 겨뤄 우위에 섰다.
바야흐로 대학도 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과거의 명성이나 수도권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따를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계명대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계명대가 일으키는 혁신의 바람이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