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에 도입될 자치경찰제 시행안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자치경찰 단위가 지나치게 왜소하고, 수사업무와 같은 핵심적 경찰권은 전혀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 힘겹게 첫발을 내딛는 한국형 자치경찰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은 분단으로 인한 좌우 이념 대결과 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경찰을 권력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주는 자치경찰제 도입을 감행할 여유가 없었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치경찰제 도입과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다가 검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논의 자체를 중단한 예가 있다.
역사에서 보듯 자치경찰제 도입이 상징하는 것은 권력의 분권화와 민주화다. 압제와 탄압의 무기가 될 수도,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경찰 통제권’을 중앙권력자가 틀어쥐느냐, 지역으로 나눠주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찰학계에서도 1990년대 말까지는 ‘아이에게 칼자루를 쥐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시기상조론이 득세했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늘 분단된 조국 현실과 좁은 국토가 추가적 이유로 등장했다. 2명의 대통령이 연이어 자치경찰제 도입을 주장하자 자치경찰제 도입 반대론자의 목소리는 차츰 들리지 않게 되었고, 논의는 오직 ‘자치경찰제 도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도입단위를 광역시도로 할 것이냐 기초자치단체로 할 것이냐, 별도의 경찰관리위원회를 둘 것이냐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경찰권을 귀속시킬 것이냐, 경찰의 모든 기능을 지방에 이양할 것이냐 행정기능만을 제한적으로 부여할 것이냐 등이 자치경찰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이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자치경찰제 도입안은 이러한 논란과 사회 일각에 잔존하는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까지 염두에 둔 절충안으로 판단된다. 건국 이후 최초로 도입될 자치경찰제가 “제도 변화의 완성이 아닌 출발”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서 이러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지방경찰 감시하는 영국 경찰위원회
사실 경찰학에선 ‘자치경찰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자치경찰제 실시국가라고 부르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탈중앙집권적(Decen tralized)’ 혹은 ‘지방분권적(Localized)’ 경찰제도라 칭한다. 자치경찰제도라는 용어는 행정학에서 경찰행정을 지방정부 소관으로 귀속시키는 형태를 일컫는다. 이렇게 보면 사실 분권적·민주적 경찰제도의 대명사인 영국의 제도는 자치경찰제가 아니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경찰위원회를 관리기관으로 둔 영국 경찰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의 지방경찰청장은 인사 및 작전권, 법집행과 경찰활동과 관련한 의사결정에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법과 전문가의 양심이 결정 근거가 될 따름이다. 다만 중앙정부 내무장관이 각 지방경찰 예산의 50%를 보조하는 대신 그 절차와 성과에 대한 감사권을 갖고 있다. 지방경찰청장과 차장의 임명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권한과 각 지방경찰위원회 위원 17명 중 5명을 임명할 권한을 갖는 것.
9명의 지방의회의원, 3명의 치안판사와 내무장관이 임명한 5명의 지방 명망가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 지방경찰위원회는 지방경찰의 재정을 담당하고, 내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지방청장과 차장을 임면한다. 지방경찰청장과 협의하여 연간 경찰활동계획을 작성하고, 상임위원 중 1명이 지방의회에 출석하여 경찰관련 질의에 응답한다.
지자체에 귀속된 미국의 지방경찰
중앙정부, 지방정부, 경찰전문경영인이 권한과 책임을 적절히 분배해야 민주주의 핵심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정교하게 이뤄진다. 아무도 경찰을 마음대로 장악할 수 없어 경찰학자들은 영국의 경찰제가 ‘정치로부터 차단(insulation from politics)됐다’고 평한다. 하지만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듯, 영국처럼 민주주의 전통과 관행이 정착되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복잡한 경찰통제장치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에서 지역경찰은 시장이나 군수의 직속기관으로 지방정치에 완전히 귀속돼 있다. 경찰력을 제대로 운용하면 다음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정치적 책임을 진다. 시민이 범죄 때문에 불안해하고 경찰의 횡포에 진력이 나면 시장 군수가 그 책임을 지니 경찰의 수준과 자질관리 그리고 범죄예방 등 치안이 지방행정의 주요 정책 과제에 속한다.
경찰의 장은 시장 군수가 직접 임명하기도 하고 시장 군수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선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행정학자들이 말하는 자치경찰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식 자치경찰은 과거 지방토호세력의 도구가 되어 부패와 비리의 대명사로 전락한 전례가 있어 최근에는 시장이나 군수와 경찰 사이에 경찰위원회를 두거나 독립적인 감사관을 두는 등 제도를 개선해왔다. 또한 점차 광역화, 조직화, 첨단화하는 범죄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주 경찰과 연방경찰조직의 권한과 관할권이 강화되는 추세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대륙 국가들은 우리처럼 국가경찰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경찰제도를 운영해왔다. 통일성과 균질성, 효율성 및 강력한 집행력이 필요한 경찰업무의 특성에 따라 전국 방방곡곡의 경찰인력을 일사불란한 지휘통제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이다.
하지만 유럽대륙 국가들은 공룡 같은 거대 국가경찰조직으로는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역실정에 맞는 탄력적인 경찰행정을 펼칠 수 없고 지역주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자치단체장에게 제한된 행정경찰 운영권을 보조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즉 국가경찰과는 별도로 지방자치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해 자치법규 집행과 질서유지 및 범죄예방 활동을 하는 자치경찰을 스스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대륙형 자치경찰과 유사
지금 우리 정부가 도입하려는 자치경찰제는 이러한 유럽대륙 국가들의 보조적·제한적 자치경찰 제도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국가경찰의 장점과 자치경찰의 장점이 조화된 합리적 제도’라는 평가와 함께 ‘진정한 자치경찰이 아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패전 이후 점령국 미국에 의해 우리의 기초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시·정·촌 단위의 분권적 경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통치방식에 젖은 일본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맞지 않아 다시 국가공안위원회가 관리하는 국가경찰과 광역행정단위인 도도부현(都道府縣)의 공안위원회가 관리하는 지방경찰로 새롭게 재편됐다.
일본 자치경찰은 영국 경찰처럼 지방정부에서 독립된 한편, 유럽대륙과 같이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의 이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야기하는 ‘자치경찰’의 개념에는 맞지 않으며, 일본에서도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 단위가 아니라서 실질적인 민주 자치경찰이라고 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이처럼 자치경찰제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특히 각 국가별로 독특한 역사와 문화 및 시대적 요구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되어 온 다양한 경찰제도를 자치경찰이냐 아니냐로 일도양단할 수는 없다. 지방정부에 대한 경찰의 귀속 여부를 중심으로 구분할 것인지, 경찰조직이 구성되는 지역단위가 어디냐로 판단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지방경찰이 관장하는 업무의 범위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 학술적·실무적으로 전혀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껏 제기된 자치경찰제 도입 주장들은 ‘경찰을 지방분권화하자’는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주장한 이들은 지방분권화의 방법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고, 영국 미국 유럽 및 일본식 제도나 이들의 절충안이 그 모델로 떠올랐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은 이러한 논의들을 포함, 제도 변화가 가져올 실질적 기대효과나 제약 요인, 예상 문제점을 모두 감안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유사한 경찰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역사의 변천 과정이 비슷한 유럽대륙의 ‘중앙집권-지방분권 혼합식 제도’를 현실적 대안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맞춤형’ 치안서비스 제공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자치경찰제가 행정자치와 같은 의미라면 행정의 자치가 가져온 변화를 통해 자치경찰제 도입의 기대효과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주민이 주인이요 고용주인 지역경찰이 생긴다. 시민들은 그동안 거대한 권력의 일부로 느끼던 낯모르는 경찰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기회를 갖는다. 지역에서 선발된 자치경찰은 그 지역에만 머물며 주민들을 위한 범죄 예방과 질서 유지 활동을 벌인다.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복무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우리 지역의 치안인력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지 않고 지역실정에 맞는 안정적 치안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과거 우리 지역의 경찰인력이 다른 지역의 대규모 파업이나 시위현장에 동원되거나 우리 지역과는 상관없는 탈주범 검거나 마약류 단속을 위한 일제 검문검색에 동원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치경찰제의 출현은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지역의 치안 공백을 막아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민의 여론과 표를 의식한 자치단체장이 치안확보를 위해 관심과 열의를 쏟고, 자치의회가 치안정책의 타당성과 경찰력운용의 효율성을 치열하게 점검하고 감시하며, ‘지역실정에 맞는 고객중심의 맞춤치안’을 꿈꾸게 한다.
서울 시내 한 파출소 광경.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주민이 고용한 경찰관이 주민이 부여한 사무를 관장한다.
전국 60여 지방대학에 설치된 경찰관련 학과들은 지방정부와 연계해 졸업생의 취업기회 확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요구하는 지역경찰 인재의 자격과 자질을 충족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훈련하며, 재학중 인턴십 등 현장경험의 기회를 다양하게 부여할 수 있다. 교수와 연구원들은 지방정부의 용역을 받아 지역의 범죄예방책과 효율적 지역경찰 운영기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국가경찰이나 여성부, 국가인권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 등의 지방경찰 교육 프로그램을 위탁받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안전과 민생보호라는 양대 가치 사이에서 갈등해온 국가경찰의 처지에서 보면, 자치경찰제 도입은 민생관련 업무의 과감한 분리이양을 통해 국가적 치안목표와 사회적 범죄 대처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지역주민의 민원이나 지역행사 질서유지, 지방자치단체 업무협조에 에너지를 쏟아붓던 경찰들이 테러 마약 조직범죄 연쇄살인 납치 유괴 산업스파이 화폐위조 등 국제적이고 광역적인 범죄와 대규모 사건 및 사고 대책 마련에 주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기에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가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제도에 너무 익숙하다는 점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균등한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에 상관없이 필요한 곳에 경찰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국가경찰제의 효율성은 분단 상황과 좁은 국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장점이다.
지역간 자치경찰 편차 우려
둘째, 아직 채 성숙하지 않은 지방자치제도다. 우리나라 지방정치의 수준이나 주민 참여도, 단체장을 비롯한 지방 관료의 청렴성과 공정성 등에 대해 국민의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믿을 만한 통제장치조차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기본권을 제한하고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찰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한다는 것에, 국민이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지역간 불균형과 낮은 지방재정 자립도 문제다. 아직 지방화가 채 진전되지 않아 각 지역이 나름의 산업과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고, 각종 세제의 지방이전이 완료되지 않았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일부 자치단체를 제외하고 대부분 기초 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과연 전반적으로 자치경찰의 질과 장비, 처우 및 근무여건 등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간 자치경찰의 편차가 매우 클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속된 중앙집권적 경찰제도의 경직성과 권위적 이미지, 무시된 지역특성과 주민과 괴리된 치안 등의 문제는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제약요인들로 인해 한국은 지금의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제를 미국이나 영국의 완전한 지방분권적 경찰제도처럼 급격하게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민주화와 분권화’라는 자치경찰의 이념을 조금 희생시키더라도 지나친 혼란과 경찰력의 무력화, 지역 패권주의의 도래는 막아야 한다.
한국형 자치경찰의 태생적 한계
이러한 ‘한국적 상황’은 2006년부터 실시될 자치경찰제에 여러 가지 태생적 한계를 부여했다. 우선 기존 국가경찰체제는 그대로 유지한 채 기초자치단체에 과 단위 행정경찰조직을 신설함으로써 자치경찰의 규모가 지나치게 왜소하다는 지적이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와 책임의 구분 역시 모호하다. 특히 정작 경찰의 상징인 수사업무 등 핵심적 경찰권이 자치경찰에는 주어지지 않아, 한국의 자치경찰은 ‘무늬만 경찰’이지 실제는 기존 청원경찰과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취약한 자치치안 재정도 한계로 꼽힌다. 지방정부가 독자적인 재원을 확충할 때까지 ‘자치경찰이 정착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단 중앙정부의 보조금과 범칙금 수입 등에 의존해야 한다.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관리기관 없이 자치단체장에게 경찰운영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치경찰을 민주적이고 실효성 있게 통제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극복해야 하며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제도보다 운용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번에 도입되는 자치경찰제는 민주와 분권, 자율을 이념으로 하는 분권적 경찰제도가 우리 사회에서도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적 성격이 짙다.
그러므로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지역 언론 그리고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면서 한계를 극복하고, 새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경찰분권화를 단계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새로 도입될 자치경찰제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설되는 자치경찰과 기존 국가경찰 사이에 의사소통과 협력이 원활해야 한다. 정부의 발표내용에도 포함된 양자간 협의체가 제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개인이나 조직의 권력적 수직관계를 통해 협력하는 관행이 뿌리깊은 우리 사회에서, 상호 대등한 관계의 경쟁적 기관들이 협의체를 통해 제대로 의사소통하고 협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 당사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관심과 비판이 더욱 중요하다.
둘째, 지방의회와 지역 언론, 시민단체 등 지방정치의 각 주체가 지방자치경찰 운영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국가경찰의 지방조직들은 그간 경찰청의 감찰, 검찰의 통제, 감사원과 국무총리실 등의 지나친 통제를 받으면서도 공정성 시비와 특정 집단, 개인과의 유착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치인인 민선 자치단체장의 우산 아래 있는 자치경찰에 대한 제도적·권력적 외부감시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지역 언론과 의회, 시민단체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는 한 초기 미국에 나타났던 자치경찰의 부패와 비리, 정치적 사병(私兵)화 현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이는 자치경찰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염증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
시민의 참여와 관심
셋째, 시민과 군민, 구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치경찰제의 진정한 의미는 ‘주민 스스로 치안을 확보한다’는 데에 있다. 주민이 고용하는 자치경찰관은 주민을 대신해 상근하며 주민이 부여한 주요 사무를 관장할 뿐이다.
분권적 경찰제도를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영국에서도 지역 치안의 각 영역에 주민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주민의 일부는 지역방범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여 치안정책 수립에 주민 의사를 반영하고 다른 이들은 자원봉사경찰관이 되어 사정에 따라 일주일에 서너 시간씩 할애하여 경찰관들과 함께 정복을 입고 방범순찰을 돈다. 노인이나 주부는 ‘이웃 지켜주기(Neighbour- hood Watch)’ 요원으로 등록해 거동이 수상한 자가 마을에 나타나면 신고하거나 경찰을 대신해 주민에게 범죄예방 메시지를 전달한다.
넷째,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되며 제한된 행정경찰권을 갖는다는 제도적 한계를 오히려 성공적인 자치경찰 구현의 디딤돌로 활용해야 한다.
일례로 미국 애리조나주(州) 템페시(市)는 자치경찰과 건축 세무 위생 복지 환경 등 관련 행정부서요원들이 모여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다. 이렇게 하면 건축이나 개발 등 환경 설계는 물론 범죄예방을 도모하고 지역의 복잡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유능한 ‘지역치안 특공대’를 만들 수 있다.
자치경찰제의 제도적 한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치단체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성공할 것이다.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나머지 권한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만 내세우는 자치단체는 오히려 부담과 갈등을 떠안게 된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한 한 자치단체장은 “그동안 자치단체장들이 경찰권이 없어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서러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주차위반을 단속하려 해도 반발과 저항에 시달리고 가로 정비, 노점상 단속, 철거 등 모든 행정집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청사 내에 집단민원인들이 몰려와 불법시위를 해도 몰아낼 방법이 없고, 경찰에 협조를 요청해도 경찰은 인권과 주민정서 등을 내세우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그는 “경찰권만 주어진다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과감하게 공권력을 사용해서 법을 집행해 나갈 것”이라 공언했다.
단체장 리더십이 성공 관건
경찰관이라면 경찰권의 한계와 물리력 사용의 제약에 불편함을 느낀다. 좋아서라기보다는 책임 문제 때문이다. 물리력 사용은 필연적으로 부상이나 재산권 침해를 유발하고 이에 따르는 민형사적 책임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국가경찰은 국가배상법에 따라 처리하는 등 국가가 책임을 지지만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가 과연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에서도 지방정부가 경찰업무상 발생한 손해와 손실을 배상하고 보상해 주느라 파산에 이른 사례가 종종 있다. 미국에서도 최대 규모인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역시 재정손실의 가장 큰 사유는 경찰력 사용에 따른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이다.
법적 책임문제 이외에도 기존 지방행정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경찰행정을 추가로 담당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새로운 업무에 따라 인식을 바꾸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지방 CEO로서 자치단체장의 준비와 역량이 2006년부터 시행되는 자치경찰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참으로 어려운 첫걸음인 만큼, 자치경찰제가 부디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끔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활발히 참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