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6월5일 최세창 당시 국방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결론 부분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산을 미군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이에 따라 긍정적인 효과가 유발된다.’ 크게 이문이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굵은 글씨로 힘차게 쓴 국방부 장관의 서명에는 ‘어려운 협상을 잘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04년 4월, 경기도 안양시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인근의 K산업 레미콘공장. 저수조 창고에서 산소용접을 하던 직원 두 명이 갑작스러운 폭발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증발한 석유가 공기중에 떠다니다가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다섯 달 뒤 이 일대 지하를 관통하는 송유관에 구멍이 생겨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바로 1992년 당차게 인수한 그 TKP였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2001년부터 인덕원역 구내 지하철 터널로 휘발성 기름이 흘러들면서 심한 악취를 풍기는 등 피해가 보고된 까닭에 안양시와 국방부로부터 TKP 관리를 위탁받은 대한송유관공사가 공방을 벌이던 중이었다. 인근 수백m 범위로 유출된 기름으로 지하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됐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복구책임은 고스란히 대한송유관공사가 지게 됐다.
‘남는 장사’에서 골칫거리로
1968년 1·21 사태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주한미군사령부는 전시긴요물자인 유류를 전방까지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자국 예산(2677만달러·토지는 한국정부가 무상으로 공여)을 들여 송유관을 건설한다. 속칭 ‘주한미군 송유관’으로 불린 TKP다. 포항에서 대구, 천안, 서울을 거쳐 의정부까지(총연장 452km) 지표에서 1.5~2m 깊이에 직경 20~25cm의 파이프라인이 묻혔다. 1997년 한국정부가 여수와 울산에서 성남을 잇는 총연장 900km의 남북송유관(SNP)을 건설할 때까지 TKP는 남한 내 유일한 전국 송유관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주한미군 감축과 이에 따른 기지조정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자 미군은 이 송유관을 한국측에 넘기고 송유관 관리부대인 19지원사령부 제2병참단을 해체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양제의를 받은 한국 정부는 미군 유류를 계속 수송해주기로 하고 인수를 결정했다. 미군이 저유비용으로 매년 470만달러를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
이후 1993년 서울 강남에서 의정부까지 46km 구간은 한강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됐고, 당초 1996년까지 폐쇄할 예정이던 나머지 송유관 406km는 대체시설인 SNP의 완공이 미뤄져 수명이 연장되다가, 2004년 8월9일 한미 양국이 TKP로 나르던 주한미군용 유류를 SNP로 나르기로 합의하면서 인덕원~평택 등 일부 구간을 제외한 358km를 2005년까지 폐쇄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문제는 쌍수를 들어 인수했던 송유관을 이제와 폐쇄하려고 생각해보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 땅속에 묻힌 송유관을 들어내고 흙으로 메우는 철거비용만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땅속에 둘 수도 없다. 당장 환경부가 ‘철거하지 않으면 심각한 오염원이 되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방부에 관련공문을 보냈다.
수백km의 송유관, 그것도 상당부분이 아스팔트 포장도로 밑에 있는 송유관을 들어내고 다시 포장하는 비용은 수백억 원을 가볍게 넘어선다. TKP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9월20일 관련부처와 환경단체, 국회의원들이 함께한 간담회에서 정부 관계자가 밝힌 예상비용은 km당 2억원씩 대략 700억원 규모. ‘신동아’가 철거전문업체 관계자에게 자문한 결과도 km당 적게는 1억5000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씩 총 540억~11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순수한 철거비용일 뿐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확인될 경우 복구 비용은 훨씬 더 커진다. 송유관의 평균사용연한이라는 30년을 훌쩍 넘긴 TKP는 전에도 여러 차례 기름 누출사고를 일으켰다. 한국이 소유권을 넘겨받은 이래 확인된 사고만 18건. 이 가운데 대구 금호강 둔치 기름유출 사고의 경우 복원비용으로 35억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