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17대 국회 ‘밀사정치’ 막전막후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입력2005-01-24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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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부영-김덕룡 전화통화, “박근혜 빼고 가자”
    • 이강래-홍준표 물밑접촉, 국보법 대체안 문구 조율
    • 염동연-이정일 光州행보, 수차례 합당 타진
    •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 처리를 놓고 여야는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하게 대치한 끝에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연장안을 통과시켰다. 우연이었을까.
    •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야간 충돌이 격화될 때엔 막후 밀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진다. 최근의 정치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17대 국회 정치권 밀사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2004년12월31일. 갑신년의 마지막 날 저녁, 국회의사당 초시계가 또각또각 돌아가고 있었다. 피곤에 찌든 기색이 역력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의장석을 둘러싸고 있었고, 열린우리당 의원 몇 명은 주변을 배회했다.

    새해 예산의 회기 내 처리는 불투명해 보였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원은 ‘불법체류자’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밤 8시15분. 김원기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과거사기본법’의 처리는 해를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재안을 발표했다. 4대 법안 가운데 신문법 개정안만 해가 가기 전에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열었다.

    단상에 선 김덕룡 원내대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의장님이 중재안을 내셨다. 지금부터 이를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비공개 토론을 갖겠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켠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토론은 무슨 토론, 받으면 되지.”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것이 신호가 된 듯 홍준표 의원 등 이른바 한나라당의 ‘입’들이 일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의총장이 술렁댔다. “두말할 것 없잖아. 받아야지” “이 정도 했으면 됐어”….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2005년 예산안과 파병연장안이 통과됨으로써 파국만은 막을 수 있었다.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기대를 모았던 4인 대표회담이 12월27일 성과 없이 종료됐지만 여야는 이틀을 더 허비했다. 12월30일, 김원기 의장 주재로 원내대표회담이 오전부터 열렸지만 결실을 낙관하기 힘들어 보였다.

    오후 2시. 한나라당의 첫 번째 의원총회가 소집됐다. 김덕룡 원내대표가 뜻밖에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의총장에 입장했다. 그의 손에는 ‘쪽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여야간 합의된 내용”이라며 쪽지를 읽어 내려갔다. 주요내용은 4대 법안 가운데 사립학교법 개정안만 이듬해로 넘기고 국가보안법 과거사기본법 신문법 3개 법안은 연내에 처리키로 하는 이른바 ‘3+1’해법이었다. ‘뜨거운 감자’ 국가보안법을 대체입법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에 의총장이 술렁댔다.

    한나라당에는 불리할 것 없는 내용이었다. 추인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홍준표 의원이 단상에 올라 “원내대표 고생하셨다”며 이례적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의원총회 직전부터 상기돼 있던 박 대표가 발언대에 올랐다.

    “어떻게 입맛에 다 맞게 하나요”

    “마음이 슬프고 한계를 느낍니다. 지켜야 할 가치를 꼭 지키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 아픕니다…저 혼자 할 일이면 밟고 가도, 죽이고 가도 핵심 가치를 지키겠지만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과거사기본법의 경우 김 원내대표는 저와는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합의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많이 진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안면몰수하고 나가기 힘들어졌습니다. 막자고 할 수 없게 됐습니다…어떻게 다 입맛에 맞게 하겠나요. 한계나 현실을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 대표의 말을 풀이하자면 이렇다.

    ‘김 원내대표가 가져온 합의안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수용하겠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나도 모르는 부분에서 합의를 진행시켰고 과거사법의 경우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

    김 원내대표와의 이상기류를 드러내놓고 공식화하는 발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단단히 틀어졌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같은 시각 열린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거부되고 말았다. 협상의 주역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강경파 의원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여야 원내대표는 재협상에 들어갔다. 김 원내대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저녁 식사후 한나라당은 다시 의원총회를 열었다. 김 원내대표는 과거사기본법과 신문법만을 회기 내에 처리하고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을 다음해로 넘기는 이른바 ‘2+2’해법을 아예 합의서까지 써와 의원들 앞에 내놓았다.

    하지만 두 번째 합의는 한나라당 쪽에서 보기좋게 퇴짜를 맞았다. 박 대표 측근인 진영 대표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합의서에 대한 의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미 첫 번째 합의를 놓고도 김 원내대표에 대한 박 대표의 불쾌한 심경이 확인된 마당이었다. 한 발 더 물러선 합의서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비토를 선언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점거농성을 벌이기 위해 곧장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자신의 서명이 선명한 합의서가 면전에서 휴짓조작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김 원내대표는 얼굴이 붉어진 채 도중에 의총장을 빠져나갔다. 그시각 이후 그는 국회 원내대표실에 칩거했다.

    첫 번째 합의에서 이부영 의장이 녹다운됐다면 두 번째 합의에선 김덕룡 원내대표가 궁지로 몰린 셈이다. 본회의장에 모여든 한나라당 의원들의 얼굴에 긴장과 오기가 교차했다. 의장석을 점거하고 자리를 차지한 의원, 자기 자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의원…. 그 사이로 분홍 재킷을 입은 박근혜 대표의 얼굴이 보였다. 박 대표도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빛이 역력했다. 맨 처음 박 대표에게 다가간 이는 홍준표 의원. 둘은 선 채 5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이후 박 대표는 중진 의원들과 차례로 머리를 맞댔다.

    잠시 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몰려왔다. 본회의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시각 원희룡 의원과 홍준표 의원이 본회의장 바깥에서 밀담을 나누는 광경이 목격됐다. 이어 홍 의원과 원 의원의 동선이 복잡해졌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김영춘 의원과 잇달아 만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원희룡 의원에게서 당시 홍 의원과 나눈 얘기를 들어봤다.

    “아무래도 박 대표가 과거사법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서 과거사법만 여당이 양보해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우리가 나서서 역할을 좀 하자’고 했다.”

    이후 24시간 동안 여야간 막후교섭은 숨가쁘게 벌어졌다. 여야 의원들의 입을 통해 당시 상황을 모자이크해보자. 김무성 의원의 전언이다.

    “전기 나가자 촛불로 대신한 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더라. 내가 여당 중진 K의원을 붙잡고 협박하다시피했다. ‘예산 안 되면 어떻게 할래’. ‘파병 연장 안 되면 국제적 망신 아니냐’고 했다. ‘이해찬 총리를 압박하라’고도 했다. 내가 알기론 몇몇 여당 의원이 실제로 총리를 찾아가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날 오후 총리가 의장을 찾아와 협상을 종용한 것으로 안다.”

    홍준표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여당 중진 K, Y의원과 연이어 접촉했다. 그쪽에다 ‘과거사법만 빼주면 된다’고 했다. 그쪽 분위기도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어서 얘기가 어렵지 않았다. 형식은 김원기 의장이 중재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갖췄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재오 의원 등과 의총장에서 분위기를 잡는 것으로 사전 조율했다.”

    연말 여야 4대 법안 쟁투국면의 이면엔 이른바 ‘막후접촉’의 위력이 있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12월 30일, 31일 이틀간의 상황을 전기가 끊기는 정전 상태에 비유했다.

    “이전까지 4대 법안 해법을 내놓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부영-김덕룡 라인이 30일 밤을 계기로 끊어지면서 여야 간은 암흑 천지가 됐다. 의원들은 어둠 속에서 저마다의 인맥을 동원해 접촉면을 넓혔다. 전기가 나가자 촛불로 대신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는 밀사정치는 보스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밀사가 상대측과 은밀한 협상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선 성격이 달라졌다. 대표나 원내대표의 하명(下命)이 아니라, 중진의원급이 밀사역을 자임하며 물밑접촉을 벌여 미봉안이나마 타협안을 끌어내 파국을 막아낸 것이다. 밀사정치의 양상도 ‘분권화’하는 양상이다.

    사실 전통적 의미의 물밑접촉, 이면합의, 밀사 등의 용어는 신문지상에서 사라졌다. 달라진 정치환경을 첫째 이유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사회적 분위기도 물밑협상을 과거 제왕적 정치 시스템의 파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성격상 물밑거래를 싫어한다. 한 측근은 “박 대표는 당 운영도 공식라인을 선호한다. 대여 접촉에서 비공식 인사를 동원해 접촉하고 조율하는 것을 좋아할 리 있겠냐”고 말했다.

    여당도 사정은 마찬가지. 참여정부의 당정분리 선언은 ‘이제 물밑협상은 없다’는 선언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2004년 10월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훼 발언으로 비롯된 보름 가까운 국회 공전사태나 연말 4대 법안 대치상황은 공식조직간 접촉으론 풀리지 않았다. ‘4인 회담’이라는 여야 공식조직간 대면 테이블이 특별히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풀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식접촉이 막히면 이를 뚫어주던 막후 이면접촉의 필요성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이부영(BY)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야당의 ‘넘버2’ 김덕룡(DR) 원내대표간의 막후접촉 창구는 결국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치판이라면 이례적인 광경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밀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환경이 낳은 ‘공개된 밀사’였다. BY-DR 라인은 연말 4대 입법 쟁투 국면뿐 아니라 이해찬 총리로 인해 빚어진 국회 파행 사태에서 격한 파열음을 내며 부딪힌 여야를 조율하는 윤활유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했다. 그러나 BY-DR 라인은 막판 결정적 ‘오버’로 무덤을 팠다는 게 정설이다.

    이부영은 낙마, DR은 아프리카로

    4인 대표회담이 성과 없이 종료된 12월27일 오전, 이부영 당시 의장은 국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1시간30여분간 단독 회동을 가졌다. 회동을 마치고 나온 이 의장은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구먼.” 이 의장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원칙론을 고수하는 박 대표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미 협상을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다음날인 28일, 이 의장은 김덕룡 원내대표와 통화한다. 이 의장이 입을 열었다.

    “협상이 되려면 아무래도 박근혜 대표를 빼고 가야 할 것 같다.”

    “….”

    “대신 김원기 의장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두 사람은 서울대 문리대 동기라 말은 잘 통하는 사이였다.

    17대 국회 ‘밀사정치’ 막전막후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왼쪽 악수하는 사람)과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오른쪽 악수하는 사람)는 ‘공개된 밀사’역을 맡았다.

    당시 이 의장의 제안에 대한 김 원내대표의 반응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2월30일 김원기 의장 주재하에 4대 법안 해법으로 ‘1+3’이 도출되는 과정을 반추해보면 김 원내대표도 이 의장의 제안에 어느 정도 수긍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표 배제”를 운운하는 그 순간 BY-DR 라인은 밀사 접촉으로서의 임계선(臨界線)을 넘어선 것이다. 이 일은 박 대표가 12월30일 의원총회에서 “김 원내대표가 저와 생각이 달랐다”고 직설적으로 털어놓는 계기가 됐다. 이부영 의장의 의장직 중도하차,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의 대표직 중도하차, 김덕룡 원내대표의 정치력 손상 등은 밀사 역할의 실패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의장은 자신의 중도하차를 ‘과격한 커머셜리즘’ 탓으로 돌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김 원내대표는 영남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당내 사퇴 압박을 뒤로한 채 국회 운영위원회 아프리카 방문단에 동행, 쫓기듯 출국해야 했다.

    당장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막후접촉 창구가 어떻게 개설될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여당에선 문희상, 유인태 의원이 꼽힌다. 문 의원은 지난해 말 국가보안법을 연내에 털고 가자며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을 두루 만났다고 한다. 문 의원은 “그냥 아는 사람들을 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고만 했지만, 측근들은 “김무성, 이규택 의원 등과 수차례 만났다”고 전했다.

    유인태 의원은 이해찬 총리 발언 파문 당시 주도적으로 물밑접촉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선배인 김덕룡 원내대표에게 양쪽이 적절한 명분을 찾을 수 있는 방안으로 ‘유감 표명’을 제안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국보법 논의과정에서도 유 의원은 김 원내대표에게 “이부영 의장을 믿으라”며 국보법의 대체입법화 방안을 우리당이 수용할 수 있음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유 의원은 특히 이부영 의장이 꼬인 협상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 때면 어김없이 조언을 구하는 대상이었다. 4인 대표회담이 결렬되던 12월27일 밤, 그가 이 의장의 호출을 받고 급히 국회 본청에 나와 협상장 옆방에서 10여분간 숙의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선 ‘마당발’ 김무성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민주화추진협의회 출신이어서 문희상 의원 등 여당 내 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가진 야당 중진이다.

    “홍 의원, 얘기 좀 하고 싶습니다”

    박 대표가 오래 전부터 ‘김무성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었다지만 11월11일 그를 사무총장으로 중용한 데는 ‘김덕룡’으로 대표되던 대여접촉 창구의 교체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있다. 새해에는 여야 물밑접촉 창구로 문희상-김무성 라인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연말 정국의 핵심은 국가보안법이었다. 막판 BY-DR라인이 내놓은 ‘국가보안법 대체입법안’은 별도의 여야 라인이 만들어냈다는 게 정설이다. 정치권에선 이강래, 홍준표 두 의원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을 둘러싸고 국회 법사위 대치가 한창이던 어느 날, 이강래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7층 홍준표 의원 방으로 찾아왔다. “홍 의원,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는 이 의원의 말에 홍 의원은 직감적으로 ‘국가보안법 문제’임을 눈치챘다고 한다.

    여당내 대표적 기획통인 이강래 의원이 국보법 중재자로 나선 데는 당 지도부와 중진들의 요청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비법조인 출신인 그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우윤근, 최재천 의원 등 당내 율사 출신 의원들에게 휴대전화 통화로 조언을 구하면서 국보법 문구를 조율했다고 한다.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사실상 만들어낸 인물이다. 홍 의원은 이 의원과 몇 차례 조율을 거친 뒤 ‘여야 타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을 박 대표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박 대표로부터 “개인자격으로 협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홍 의원은 고민 끝에 이 의원과의 접촉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 대목은 대여(對與) 막후 접촉에 대한 박 대표의 스타일을 짐작케 한다. 박 대표로서는 가능한 한 당 차원의 공식 창구는 4인 회담, 물밑교섭은 김덕룡 원내대표로 통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의원과 홍 의원간 접촉 결과는 이후 여야가 잠정 합의한 국가보안법 대체입법안의 밑그림이 됐음은 물론이다.

    막후접촉, 물밑교섭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정치권의 큰 그림이 바뀌는 장면에서 나온다. 최근 여야 사이에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무성하다. 열린우리당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민주당과의 ‘합당설’도 그중 하나다.

    올해 국회 지형은 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린 열린우리당 의원이 10여명이다. 그러니 애가 타는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의 대(對)민주당 접촉에서는 염동연 의원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 그는 지난해 4·15 총선 직후부터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해왔다. 그의 민주당쪽 협상 파트너는 이정일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염 의원측 인사는 “이 의원은 우리당에 합류했더라면 대표적인 친노 직계로 분류됐을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염 의원측에 따르면 두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광주의 모 호텔 한식당에서 만나 합당문제를 비롯한 현안들에 대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무너질 듯한 과반수, 빈번한 만남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원과 민주당 김효석 의원 사이의 대화 창구는 반(半)공개적이다. 정 의원측 인사는 “두 의원 모두 경제통으로, 관심사가 비슷해 예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합당 선호파라는 점, 노 대통령과도 각별한 사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자연히 우리당의 차기 원내대표를 노리는 정 의원과 합당 얘기도 상당한 수준까지 오갔을 것이란 게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민주당과의 또 다른 협상창구로는 김태랑 전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영남 출신이면서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김 전 의원은 민주당과의 통합이 우리당에 사활적 문제라는 점을 수차례 공개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연말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이낙연 원내대표 등을 잇따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과의 합당, 혹은 제휴를 염두에 둔 접촉설은 한나라당에서도 흘러나온다. 한나라당 쪽 등장인물은 김무성 의원이다. 특히 김 의원은 사무총장에 임명되기 전부터 동료 의원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한나라당은 좌우를 털어내고 새로 판을 짜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그가 정계개편과 관련한 모종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김 의원 본인은 “탈이념, 탈지역감정, 경제 제일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그려본 그림일 뿐”이라고 말한다. 영-호남 제휴설을 부인하지는 않는 것이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의 접촉, 김덕룡 원내대표와 민주당 전 의원 K씨의 접촉설 등도 꾸준히 흘러나오지만 김무성 의원의 접촉에 비중을 두는 게 한나라당 내 분위기다. 여권의 안정적 과반의석이 깨질 수 있는 2005년엔 말 그대로 밀사와 막후접촉의 르네상스가 다시 도래할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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