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름선수 최홍만이 세계 최고의 이종격투기 대회인 K-1에 진출해 화제다. 지난해 연말엔 브라질 유술을 연마한 최무배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프라이드에 진출, 4연승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에서도 열기를 더해가는 이종격투기의 모든 것.
서로 다른 종목의 무술끼리 겨루는 이종격투기가 국내에서도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종격투기는 이러한 질문들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종격투기는 말 그대로 이종(異種), 즉 서로 다른 종목의 격투기(태권도, 유도, 복싱, 레슬링 등) 중 어느 쪽이 더 센지를 겨루는 새로운 스포츠다.
스포츠에 관심 있는 30~40대라면 권투와 레슬링 최강자가 맞붙은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의 시합을 기억할 것이다. 1976년에 벌어진 이 대결은 시종 누워만 있던 이노키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노키에게 다가서지 않은 알리의 소극적 시합운영으로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지만, 세계적으로 눈길을 끈 최초의 이종격투기 시합이었다.
이 시합이 있기 전에도 레슬링과 유도, 쿵푸와 무에타이, 가라테와 레슬링 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종목의 선수들 간 시합이 몇 차례 있긴 했다. 전세계를 돌며 각국의 무술고수들과 ‘맞짱’을 떴다는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최영의도 말하자면 이종격투기를 한 셈이다.
이종격투기는 각 무술의 주된 기술, 즉 때리고, 차고, 던지고, 꺾고, 조르는 것을 최대한 허용해야 공정한 시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종격투기에는 ‘반칙’이 별로 없다(그렇다고 아무런 제약이 없는 ‘무규칙’ 시합은 아니다).
룰에 규제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이종격투기는 NHB(No Holds Barred·룰에 제한이 없는), 발레 투도(Vale Tudo·‘무엇이든 허용된다’는 뜻의 브라질어)의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그에 따라 한 가지 무술만으로는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게 되었고, 이는 종합무술(Mixed Martial Arts)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았다. 다시 말해 현대의 이종격투기는 종합격투기(MMA)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격투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이종격투기의 기원은 고대올림픽 정식종목의 하나였던 판크라치온(Pancratio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크라치온은 레슬링과 복싱을 섞은 듯한 격렬한 격투기로 현재의 레슬링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도 그리스에서는 자국의 전통무술로 내세우며 수련하고 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이종격투기의 기원은 1993년 미국에서 열린 UFC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대회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해에 조금 더 일찍 시작한 일본의 K-1은 종합격투기라기보다는 입식타격기 위주의 이종격투기다. 역시 일본이 주최국인 프라이드(PRIDE)는 그라운드 기술을 허용하는 종합격투기 대회로 1997년 시작됐다. 이 셋을 세계 3대 이종격투기대회라고 부른다.
이종격투기는 크게 입식타격계열과 종합격투계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입식타격계열 대회는 선 상태에서만 승부를 겨룬다.
입식타격계 대회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K-1으로, 극진가라테에서 갈라져 나온 정도회관의 관장 이시이 가즈요시가 만들었다. K-1에서 K는 가라테(Karate), 킥복싱(Kickboxing), 쿵푸(Kung Fu), 태권도(Tae Kwon Do) 등의 이름 글자를 딴 것이고, 1은 입식타격계 격투기 중에서 최고(No.1)를 가린다는 뜻이다.
가라테 킥복싱 쿵푸…
1993년 제1회 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K-1이 지금과 같이 세계 규모의 예선을 치르는 대회로 성장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K-1의 눈부신 발전은 주최측의 오랜 준비와 노련한 대회운영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거기에 앤디 훅, 피터 아츠, 어네스트 호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제롬 르 밴너, 미르코 크로캅, 밥 샵, 레미 본야스키 등 걸출한 실력을 갖춘 격투스타가 계속 배출되면서 K-1은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격투기대회로 자리잡았다.
K-1은 매년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 등 각 대륙에서 열리는 지역예선 우승자들이 연말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대회에 진출해 자웅을 겨루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난해 7월 열린 K-1 서울대회도 지역예선의 하나였다.
K-1은 최근 설립자인 이시이 정도회관 관장이 탈세혐의에 연루되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다니카와 사장을 중심으로 경량급 대회(K-1 MAX)와 종합격투기 룰에 의한 경기(K-1 Romanex) 등 다양한 형태의 시합을 개최함으로써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씨름선수 최홍만을 스카우트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K-1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격투기 대회인 프라이드는 1997년, 당시 최강의 파이터로 평가받던 힉슨 그레이시와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거물 다카다 노부히코의 대결에서 시작됐다. 프라이드는 대회의 정식 명칭인 PRIDE FC(Fighting Championship)가 말해주듯 격투가로서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프라이드는 K-1과 다르게 링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의 공방을 인정하며, 모든 무술이 참가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종합격투기(MMA) 대회로서 미국의 UFC와 더불어 세계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프라이드가 비교적 늦게 출발했음에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국제적인 시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격투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시합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힉슨 그레이시와 다카다 노부히코의 대결을 시작으로 호이스 그레이시와 사쿠라바 카즈시, 반다레이 실바와 미르코 크로캅,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의 시합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드림매치(Dream Match)를 성사시켜 전세계 격투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최고의 종합격투기 대회 PRIDE
프라이드는 규모 면에서도 먼저 시작한 미국의 UFC를 능가하는 종합격투기계의 메이저대회다. 격투가들 사이에는 프라이드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로 간주된다. 일본의 경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도선수 요시다 히데히코가 유도가에서 종합격투가로 변신했고, 역시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레슬링 영웅 룰런 가드너도 최근 프라이드 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인으로는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 최무배가 지난해 12월 열린 ‘프라이드 남제(男祭) 2004’ 대회에서 자이언트 실바에게 승리한 것을 비롯해 4연승을 거두며 격투기계에서 한류를 이끌고 있다.
UFC는 현대 이종격투기 대회의 시작을 알린 대회다. 1993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제1회 대회의 경우 킥복싱, 가라테, 레슬링, 브라질 유술 등 각 무술을 대표할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옥타곤이라는 이름의 팔각형 철망의 링에서 최소한의 룰로 피 튀기는 승부를 펼쳤다.
제1회 UFC 대회는 개최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대회 결과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브라질 유술이 예상을 깨고 다른 무술들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체구가 그리 크지도 않고 근육질이지도 않은 무술인 호이스 그레이시가 내로라하는 거구들을 모조리 꺾고 우승을 한 것이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2회 대회와 4회 대회에서도 우승해 1회 대회 우승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를 계기로 브라질 유술이 최강의 무술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의 UFC 대회는 체급이 없던 초기와는 다르게 복싱처럼 여러 개의 체급으로 나누어져 체급별로 챔피언을 뽑는다. UFC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랜디 커튜어, 티토 오티즈, 비토 벨포트 등이 있다. 이들은 프라이드의 챔피언과 더불어 세계최강의 격투가로 평가된다.
무패의 브라질 투사 힉슨 그레이시
‘최강의 무술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종격투기에서 현재까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무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자신 있게 V자를 그릴 수 있는 무술은 브라질 유술(주짓수, Brazilian jiu-jitsu)이다. 브라질 유술은 그레이시 유술(Gracie jiu-jitsu)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레이시 가문에 의해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브라질로 건너온 일본의 유도가 마에다 미쓰요에게서 유술과 유도를 배운 카를로스 그레이시와 그의 동생 엘리오 그레이시, 그리고 이들의 아들들이 80여년에 걸쳐 실전격투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시킨 최강의 실전무술이 바로 브라질 유술이다. 400전 넘게 치른 시합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무패의 격투가 힉슨 그레이시, UFC 대회를 3회나 석권한 호이스 그레이시 등을 통해 실전성을 확실하게 인정받은 브라질 유술은 종합격투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레이시 유술의 대부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꼽을 수 있는데, 엘리오 그레이시는 자신의 형인 카를로스 그레이시로부터 유술을 배운 후 수많은 실전 대결을 펼치며 그레이시 유술의 강력함을 전파했다. 그의 아들들이 바로 힉슨 그레이시와 호이스 그레이시다.
브라질 유술은 1990년대 초반 격투계 전면에 등장한 이후 타 종목 격투가들의 연구대상이 됐다. 10여년이 흐른 지금은 적지 않은 패배도 기록하면서 그 위세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무술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브라질 유술을 수련하는 모임이 생겨났는데 수련인구가 점차 늘고 있으며 국내 격투기 대회에서도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K-1이나 UFC 같은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했고, 브라질 유술에 못지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 레슬링이다. 최강의 무술이라고 여겨지던 브라질 유술 선수들을 가장 많이 이긴 것도 레슬러들이다.
‘플라이킥’명수 레미 본야스키.<br>‘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호스트.<br>‘20세기 최강의 킥복서’ 피터 아츠.
격투기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유도나 레슬링처럼 잡고 조르는 그래플링(Grappling)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차고 때리는 스트라이킹(Striking) 계열이다. 종합격투기 대회에서는 그래플링 계열 선수들이 스트라이킹 계열 선수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래플링 계열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이 브라질 유술이라면, 스트라이킹 계열에서 가장 돋보이는 무술은 킥복싱, 좀더 정확히 말하면 무에타이(Muay Thai)다.
태국 전통무술인 무에타이는 그 격렬함과 강력함으로 많은 격투가를 매혹시키고 있다. 무에타이가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가라테나 태권도 등 다른 입식타격기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독특한 파괴력 덕분이다. 무에타이는 주먹, 팔꿈치, 무릎, 정강이 등 온몸을 무기로 사용해 상대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현재 K-1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킥복싱은 무에타이의 공격기술 중 팔꿈치 가격과 접근전에서 상대를 잡은 상태에서의 무릎 공격 등 위험한 기술을 배제하고 가라테나 복싱의 기술을 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킥복싱의 유명 선수를 꼽는 것은 역대 K-1 챔피언을 훑어보는 것과 같다. ‘20세기 최강의 킥복서’라는 닉네임과 함께 K-1을 세 차례 제패한 피터 아츠, K-1 4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호스트, 2003·2004년 K-1 그랑프리 대회를 연속 제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미 본야스키 등이 대표적인 선수다.
‘하이킥의 예술’ 미르코 크로캅. <br>‘그라운드 기술의 달인’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br>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K-1과 프라이드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열렬히 응원하는 무술을 꼽으라면 각각 가라테와 유도라고 할 수 있다. 비록 K-1에서는 킥복싱이, 프라이드에서는 레슬링과 브라질 유술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무적을 자랑하던 브라질 유술의 대부 엘리오 그레이시에게 최초의 패배를 안겨준 사람이 ‘유도의 귀신’이라 불리던 천재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였고, 브라질 유술의 뿌리가 일본 유도라는 점에서 유도에 대한 일본인의 자존심은 대단하다. 브라질 유술 대 일본 유도의 대결 구도는 지금도 프라이드 대회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유도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요시다 히데히코와 오가와 나오야 등이 있고, 일본으로 귀화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추성훈(일본명·아키야마 요시히로)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유도와 더불어 또 하나의 일본 전통무술인 가라테, 그중에서도 실전 위주의 극진가라테는 K-1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K-1을 만든 정도회관의 이시이 관장이 원래 극진가라테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극진가라테의 창시자인 최영의가 수십 년 동안 타 무술 고수들과 벌인 실전 승부가 K-1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 앤디 훅
이렇듯 가라테는 K-1의 탄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가라테 대 킥복싱의 대결구도에서는 늘 열세를 보여왔다. 10여년에 이르는 K-1 역사에서 가라테를 주 무술로 해서 우승한 사람이 앤디 훅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로 불리며 일본인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앤디 훅. 그는 서양인이면서도 가라테를 대표해 출전한 K-1에서 피터 아츠, 어네스트 호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등과 숱한 명승부를 펼친 초기 K-1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2002년 급성 백혈병으로 요절한 앤디 훅은 단순히 격투기 선수에 그치지 않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금욕적인 이미지를 가진 무도가로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가라테를 대표하는 또 다른 K-1 선수로는 브라질 출신의 프란시스코 휠리오를 들 수 있다. 휠리오는 비록 우승을 한 적은 없지만, ‘일격’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빠르고 강한 ‘한 방’으로 결승의 길목에서 복병 노릇을 해왔다.
비록 다른 무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지만 복싱 또한 격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술이다. 복싱은 격투기의 기본이라 할 만한 펀치 기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만큼 종합격투기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복싱을 수련한다고 볼 수 있다. 일류 복서 출신의 격투가로는 K-1의 강타자 마이크 베르나르도, IBF 헤비급 챔피언 출신의 프랑소와 보타 등이 있다. 최근 이종격투기계에서는 현역 시절 세계 최강의 주먹을 자랑하던 마이크 타이슨의 K-1 출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종격투기의 영역은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일본의 스모에 이어 한국의 씨름선수까지 이종격투기로 진출하고 있다. 일본의 스모 천하장사인 요코즈나 출신의 아케보노라든지 최근 K-1 진출을 선언한 한국의 최홍만이 대표적인 경우다.
뿐만 아니라 격투기 이외 종목 출신도 있다. K-1을 한순간에 제패할 것처럼 보이던 ‘야수’ 밥 샵은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며, 지난해 연말 프라이드에서 한국의 최무배에게 패한 거인 자이언트 실바는 브라질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이다.
국내에서 이종격투기가 본격 등장한 것은 2002년. 인터넷 무술 동호회 등을 통해 이종격투기 경기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확산되면서 일반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KBS SKY, MBC ESPN 등의 케이블 방송에서 K-1, 프라이드의 주요 경기를 정기적으로 방영하면서 동호인이 크게 늘었다.
국내 최강의 파이터 데니스 강
이러한 저변확대와 더불어 KPW 등 아마추어 이종격투기 대회를 통해 고양된 한국의 이종격투기 열기는 마침내 2003년 4월, 국내 최초의 본격 이종격투기 대회인 스피릿 MC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후 네오파이트, 스트라이킥, 코마GP, 글래디에이터 FC 등의 격투기 대회가 연이어 개최되면서 이종격투기는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실전격투기의 최강자를 뽑는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출범한 스피릿 MC 제1회 대회는 언론의 관심 속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스피릿 MC가 성공한 것은 KPW 등 아마추어 이종격투기 대회를 통해 노하우를 쌓은 전문가들과 기존의 격투기 대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스포츠 마케팅의 결합 덕분이다.
지난해 9월 제5회 대회가 치러진 스피릿 MC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종격투기 대회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스피릿 MC가 배출한 걸출한 선수로는 이면주(무에타이), 이은수(레슬링), 데니스 강(브라질 유술) 등이 있다. 특히 강력한 타격기를 겸비한 데니스 강은 현재 국내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최강의 헤비급 파이터로 인정받고 있다.
네오파이트는 스피릿 MC에 참여한 인사 중 일부가 독립해서 만든 대회로 기본 골격은 스피릿 MC와 비슷하다. 다만 스피릿 MC가 정통 종합격투기 마니아들의 지지와 참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네오파이트는 스포츠 비즈니스 차원에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온 것이 강점이다.
네오파이트는 메이저 방송사(KBS, MBC)와 연계해 경기장면을 TV 화면을 통해 내보내고 관(官) 주도 무술이벤트인 충주무술축제에서 대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성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클럽 파이팅 형식의 대회인 김미파이브 대회(GIMME FIVE·G5)를 주도하면서 이종격투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네오파이트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태껸 고수인 홍주표, 합기도를 연마한 허승진 등이 있다.
최무배의 연승행진
이종격투기 대회가 하나 둘씩 생기면서 선수들이 수련한 무술이나 소속 도장, 단체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중에는 이종격투기 붐이 일기 전부터 명성을 자랑하던 전통의 명문 체육관도 있고, 종합격투기에 적응하며 신흥 명문으로 급부상한 체육관들도 있다. 말로만 실전최강이라고 떠들면서 별다른 준비 없이 이종격투기 대회에 참가한 선수와 단체는 대거 도태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 이종격투기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단체는 다음과 같다. 먼저 팀 태클(Team Tackle). 프라이드에서 4연승째를 올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격투가로 떠오른 최무배가 소속된 곳이다. 레슬링이 기본이지만, 타격기, 유술기 등에서도 뒤지지 않는 국내 최고 수준의 종합격투기 단체다.
팀 태클의 간판인 최무배는 지난해 12월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드에서 승리하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국내 격투기 대회에는 한 차례밖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프라이드에서 연승 행진을 하면서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격투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다음으로 정심관을 꼽을 수 있다. 킥복싱 전문 도장으로 브라질 유술을 받아들인 이후 각종 격투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명문 도장으로 자리잡았다. 관장 홍영규는 국내 최초의 이종격투기학과(경북과학대)에서 교수를 맡고 있다. 정심관은 비교적 선수층이 두텁고 실력도 고른 편이다. 임재석, 이치성 등이 정심관을 대표하는 격투가들이다.
이희성 주짓수 아카데미는 브라질 유술의 전도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처음에는 동호회 성격으로 시작했으나, 이곳에서 배운 선수들이 국내 격투기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도장 형태로 발전했다. 정통 브라질 유술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대중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밖에 주목할 만한 단체로는 아마추어 레슬링을 근간으로 삼은 코리안 탑 팀, 무에타이 전문도장에서 종합격투기 도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정진체육관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국내 이종격투기계에서 정상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로는 캐나다 국적의 혼혈 선수 데니스 강을 비롯해 팀 태클 소속의 김민수(레슬링), 이은수, 그리고 최근 G5에서 우승한 이상수(유도) 등이 있다.
한국의 이종격투기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K-1, 프라이드 등의 메이저 대회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은 이웃 일본의 경우 이종격투기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영의와 역도산
국내 이종격투기는 사회적인 인식에서나 실력에서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회가 늘고 경기장을 찾는 인구가 늘긴 했지만 수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일본의 인기열풍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내 최강자로 평가받던 데니스 강이 지난해 7월 K-1 서울대회에서 태국의 카오클라이 카멘노르싱에 KO패 당한 것은 국내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 함께 출전했던, 스피릿 MC 1회 대회 우승자 이면주가 일본의 가라테 선수에게 패한 것도 한국 이종격투기의 수준이 아직은 변방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비록 K-1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국내 이종격투기 발전 전망은 밝은 편이다. 프라이드에 진출한 최무배가 선전하는 것은 청신호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국민적인 지지를 받아온 종목이 태권도, 유도, 레슬링, 복싱 등 격투기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세계 최고의 격투가를 두 사람 배출한 바 있다. 사실은 이 두 사람으로부터 일본의 이종격투기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한 사람인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최영의는 “실천을 통해 증명되지 않은 것은 존경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은 물론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일류 무술가들을 상대로 이종격투시합을 벌여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은 불멸의 신화를 남겼다.
다른 한 사람은 프라이드를 탄생시킨 일본 프로레슬링의 원조 격인 역도산이다. 스모 선수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프로레슬링을 연마한 역도산은 가라테 기술까지 갖춘 당대 최고의 파이터였다.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 등 일본과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걸출한 스타들이 모두 그의 제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종격투기계에서 역도산의 위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점차 애호가가 늘고 있는 한국의 이종격투기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고 말지, 아니면 일본처럼 메이저 스포츠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종격투기를 하는 선수들은 계속 나올 것이고 그들 가운데서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가 배출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