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화제인 ‘초코파이의 초코함유량 수식’.
공대생 개그 중 ‘당신은 뼛속까지 공대생인가?’라는 테스트가 있다. 일단 “‘정의’가 영어로 뭘까?”라고 물어보면 된단다. ‘definition’이라고 하면 공대생, ‘justice’가 튀어나오면 인문대생이라는 것. 또 ‘probability’ ‘equation’ ‘evaluate’ ‘frequency’ ‘functi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인문대생은 각각 ‘개연성’ ‘평균화’ ‘평가’ ‘자주 일어남’ ‘기능’이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공대생은 ‘확률’ ‘방정식등식’ ‘계산하다’ ‘주파수’ ‘함수’를 생각한다고.
그런데 공대생 개그 앞에는 ‘재미있지만 서글퍼지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최근 이공계의 위기를 반영한 말이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됐는가’의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열역학 제2법칙도 모르는 문과생, 셰익스피어도 읽지 않은 이과생’을 꼬집은 적이 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일반인이 열역학 법칙을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냐?’라고 생각했지만, “과학을 빼놓고 현대 교양을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열역학 제2법칙도 모르는 문과생
다치바나는 저서 ‘21세기 지(知)의 도전’에서 ‘일본의 무지한 관료’를 예로 들었다. 유전자 연구를 하는 학자가 대장성 관료에게 단백질 이야기를 했더니 그 관료가 “고기나 영양에 관한 말씀인가요?”라고 했다는 것. DNA 속 단백질이 유전 암호를 지정한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유전자 치료니 벡터니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고위직에 앉아 어떤 정책적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소모임에서 서울대 홍성욱 교수(과학기술사)가 ‘기술과 정치’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홍 교수는 테크노크라시(정치의 기술화)는 자칫 기술적 합리성과 효율을 전문 과학기술자만이 다룰 수 있다는 지상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이 이를 견제해야 하는데, 문제는 20세기 중엽 이후 과학이 너무 어려워져 전문 과학기술자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홍 교수는 원자력발전에 대해 ‘통제와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소수 엘리트에게 더 큰 권력을 부여하는 기술’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들은 원자력발전이 ‘조심해서 선의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얼마든지 좋은 기술’이라는 점을 부각시키지만, 세계 어디에도 임시가 아닌 영구적인 핵폐기물 처분장이 없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홍 교수가 강조하는 점은 ‘시민 참여의 기술정치학’, 즉 참여하려면 과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3년 전 교양 열풍을 일으킨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녘)은 과학이 빠져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 후 ‘과학-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녘)이 나와 ‘교양’의 공백을 메워줬고, 최근에는 다빈치에서 파인만까지 102개 원전을 담은 ‘지식의 원전’(바다출판사)도 나왔다. 과학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과학독서아카데미가 펴낸 ‘과학책 읽는 소리’(지성사)부터 잡는 게 낫겠다. 그 중 서울대 최재천 교수의 글 제목이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수학 하기 싫어서 인문대 갔다”는 말이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