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1-25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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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중반, 독보적인 CDMA 기술 하나로 무명 중소 벤처에서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급부상한 퀄컴. 정보통신업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퀄컴의 신화 뒤에는 ‘기술혁신’과 ‘합리적 의사소통’이라는 확고한 경영철학이 숨어 있었다.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PATENTWALL(특허의 벽).’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자리잡은 퀄컴 본사의 트레이드 마크다. 본사의 중심 건물인 L빌딩에 들어서면, 1000여장의 특허증서가 진열된 ‘특허의 벽’과 마주하게 된다. 푸른빛을 띤 이 벽은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퀄컴의 진취적 분위기를 상징한다.

    디지털 무선통신 서비스의 핵심인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원천기술로 세계를 장악한 IT(정보기술) 기업, 퀄컴. 1985년 군사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무명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퀄컴은 이제 세계적으로 2억명이 사용하는 CDMA 기술을 독점 공급하는 글로벌 정보통신업체로 비상했다. 북미,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등지에서 퀄컴의 CDMA 기술이 상용화됐다.

    퀄컴의 직원은 세계 40여개국 7400여명. 여느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하지만 이들 ‘소수정예’가 올린 2004년 연 매출은 약 48억달러, 순이익은 17억달러로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퀄컴은 물건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제품 생산의 기본이 되는 원천기술을 파는 ‘지식공작소’다. 비근한 예로, 한국의 휴대전화 단말기 생산업체들은 CDMA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난 6년 동안 퀄컴에 7억5700만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했고, 핵심 칩 구입비용으로 18억2600만달러를 사용했다. 100개가 넘는 기업이 무선기기와 무선망 인프라 장비 구축을 위해 퀄컴으로부터 CDMA 사용을 인가받았다. 퀄컴의 저력은 이렇듯 독보적인 지식경쟁력에서 나온다.

    퀄컴이 짧은 시간에 고도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생산성을 중시하는 합리적 기업문화와 누구도 믿지 않았던 꿈을 현실로 증명해 보인 뚝심에 있다.



    CDMA 관련특허, 퀄컴에 집중

    새해맞이로 분주하던 지난 1월6일, 퀄컴 본사는 도약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한 손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연구실로 향하는 젊은 엔지니어들의 얼굴엔 열정이 넘쳐흘렀다. 기후가 온화한 샌디에이고에 들어선 퀄컴 본사 건물은 기능적인 설계와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따스한 햇볕을 흡수하는 통유리창, 은빛을 머금은 23동(棟)의 빌딩. 건물 사이로 길게 난 산책로와 곧게 뻗은 야자수 나무, 여가를 위해 마련된 야외 수영장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퀄컴의 기업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했다.

    편안한 노타이 셔츠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제레미 제임스 퀄컴 코포레이트 마케팅 및 홍보담당 상무는 “CDMA 기술을 빼놓고는 퀄컴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퀄컴을 알기 위해선 먼저 CDM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

    휴대전화 기능을 제어하고 무선신호를 아날로그 음성신호로 바꿔주는 ‘통신 칩셋’인 CDMA는 또 다른 통신기술인 GSM과 함께 세계 이동통신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GSM은 범유럽 디지털 셀룰러 통일규격(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의 약어. 상호 호환성이 없던 유럽 각국의 다양한 아날로그 시스템을 표준화한 것이다. 반면 코드분할다중접속(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으로 불리는 CDMA는 퀄컴이 개발한 원천기술. 1996년 한국에서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CDMA는 GSM보다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점차 시장을 확대해가고 있다.

    동기식으로 분류되는 CDMA는 송·수신 상대가 직접 시간을 일치시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방식인데 비동기식으로 분류되는 GSM에 비해 도·감청이 어렵고 전송효율이 높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4년 중반 현재 25개국 32개 업체를 통해 2억1300만명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CDMA를 이용하고 있고, 116개국 292개 업체를 통해 약 11억800명의 가입자가 GSM을 이용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에서는 GSM이 CDMA에 비해 7대3으로 우위를 점한 상태.

    그러나 중요한 것은 GSM의 특허기술이 모토로라, 루슨트 등 다수 업체에 분산돼 있는 데 비해 CDMA 관련 특허는 퀄컴 한 곳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퀄컴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어윈 제이콥스 박사는 2300여개에 이르는 방대한 CDMA 관련 미국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GSM의 특허를 보유한 어떤 업체보다 ‘CDMA의 절대강자’인 퀄컴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퀄컴만이 CDMA 칩을 생산해온 건 아니다. 한국에선 이오넥스와 삼성전자가, 외국계 기업으로는 TI와 ST마이크로가 CDMA 칩을 개발했다. 그러나 퀄컴의 강력한 시장지배력으로 인해 상용화되지 못했다. 이들 업체가 개발한 칩은 가격경쟁력이나 기술경쟁력 면에서 아직은 퀄컴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특허의 벽’ 앞에 선 어윈 제이콥스 회장.

    제레미 제임스 상무는 “전통적인 음성통화 서비스 부문 외에 인터넷 기능이 첨가된 3세대(3G) 휴대전화 서비스는 CDMA를 중심으로 구현될 것”이라며 CDMA가 더욱 약진할 것을 확신했다. 비동기식인 GSM 역시 3세대 이동통신인 IMT 2000에 CDMA의 장점을 받아들여 W-CDMA(Wideband CDMA)로 진화했다는 것. 3세대, 나아가 4세대 이동통신을 내다보고 있는 퀄컴은 최근 차세대 시장인 W-CDMA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퀄컴은 CDMA의 세계 지배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기술진화를 꿈꾼다. 다음 목표는 무선 인터넷 플랫폼, 휴대방송 기술 등과 같은 신기술의 표준화다. 퀄컴은 휴대전화가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 ‘미디어센터’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미디어플로’와 ‘브루’

    퀄컴은 영화 TV PC에 이어 새로운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는 휴대전화 PDA 게임기 등의 작은 화면을 ‘차세대 스크린’이라 지칭하면서, 휴대전화를 통해 뉴스를 보고 게임을 즐기며 사진을 찍어 보내고 비디오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장담한다. 지금까지 이동통신시장을 확장시킨 원동력이 음성통화와 문자 메시지였다면, 앞으로는 단말기별로 특화된 멀티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퀄컴은 차세대 모바일 단말기의 형태를 ‘휴대용 무선 미디어센터(the Portable Wireless Media Center)’라고 명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전제품과 결합한 멀티미디어형 PC(퍼스널 컴퓨터)를 ‘미디어센터’라고 지칭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디어플로(MediaFLO) USA’는 특히 퀄컴이 야심만만하게 선보인 휴대방송 규격으로 내년부터 미국 전역에 이 서비스가 제공된다. ‘미디어플로’는 방송의 오디오 비디오 스트리밍(AV Streaming)에 의한 이동수신 방식과 ‘다운로드와 플레이(download and play)’ 방식을 혼합해 데이터를 전송한다. 이동통신망을 통해 비디오 또는 오디오 클립을 보내면 휴대전화에서 이를 수신해 자체 메모리로 간직했다가 사용자가 원할 때 방송의 형태를 갖춰 틀어주는 형태다.

    퀄컴은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휴대이동방송의 미래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한국 방송법에 휴대방송 기술 표준을 DMB와 DVB-H로 정해 당장 ‘미디어플로’가 들어설 여지가 없지만, ‘미디어플로’가 세계 휴대방송 표준으로 자리잡으면 국내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들어선 퀄컴 본사. 23동(棟)의 건물은 각기 기능적 설계와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돋보인다.

    랍 챈독 퀄컴 ‘미디어플로’ 부사장은 “한국 유수 기업들과의 부단한 교류 협력을 통해 ‘미디어플로’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대전화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인 ‘브루(BREW)’도 퀄컴의 핵심기술 중 하나다. 무선 인터넷 플랫폼이란 휴대전화에 내장된 게임, 동영상 등 각종 콘텐츠를 구동하는 기본 프로그램으로 PC의 윈도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브루’는 미국의 버라이존, 일본의 KDDI에 사용되면서 CDMA 진영 최대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KTF의 ‘멀티팩’ 서비스도 퀄컴의 ‘브루’를 기반으로 삼은 것.

    그러나 한국시장에서 ‘브루’는 한 차례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의 이동전화 3사와 콘텐츠 개발업체들이 공동으로 ‘위피(WIPI·Wireless Internet Plat- form for Interoperability)’를 개발한 것. 차세대 성장사업인 무선 인터넷 플랫폼 분야만큼은 국내 자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국정부가 국내 시장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을 위피로 단일 표준화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면서 한미간 통상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결국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4월말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통신전문가회의에서 한국에 출시되는 신규 단말기에 ‘위피’를 의무적으로 탑재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대신 한국정부는 ‘위피’를 구성하는 규격과 엔진을 모두 의무화하려는 방안에서 한 발 물러나 규격만 의무화하기로 함으로써 퀄컴의 ‘브루’ 엔진은 ‘위피’의 규격에 맞춰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브루’로 무선 인터넷 시장의 제패를 노리는 퀄컴에 한국의 ‘위피 탑재 의무화’는 타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퀄컴은 결코 타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브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위피’의 도전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비쳤다.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수전 론 인사 담당 부사장(左). 제레미 제임스 마케팅 담당 상무.

    사실 퀄컴과 한국 기업들은 묘한 ‘애증관계’에 있다. 퀄컴은 한국 기업을 ‘고마운 업무 협력 파트너’로 여기지만 한국 기업은 퀄컴을 ‘올챙이 적 생각은 않고 로열티만 챙기는 오만한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퀄컴과 한국의 인연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퀄컴은 1985년 미국 엔지니어들이 모여 만든 무명의 벤처기업이었다. 이들은 1990년대 초반 군사통신 기술을 응용해 CDMA라는 원천기술을 개발했지만, 이미 통용되던 GSM 기술에 밀려 미국에서조차 표준화하는 데 실패했다. 실패는 곧 퀄컴의 도산 위기로 이어졌다.

    그때 CDMA 기술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 바로 한국시장이었다. 1992년 당시 한국 체신부가 이동통신 표준기술을 CDMA 방식으로 표준화하겠다고 결정하면서 1996년 SK텔레콤(SKT)이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을 상용화했다. 그때까지 CDMA 원천기술을 상용화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기에 SKT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후 한국의 CDMA 상용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아 경쟁국을 압도했고, 퀄컴은 한국시장의 성공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CDMA 상용화와 함께 한국의 휴대전화 단말기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퀄컴의 성장과 함께 한국의 휴대전화 생산업체도 덩달아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세계 최초로 CDMA 디지털 휴대전화를 개발했고, ‘애니콜’은 세계적인 명품 휴대전화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는 2004년에만 8600만대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팔아치웠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퀄컴이 연간 1조원이 넘는 휴대전화 칩셋 수입 대금과 기술 사용료를 가져간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퀄컴이 최초 CDMA 상용국인 한국 기업에 최혜국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비판도 일었다. 한편 퀄컴에 종속된 한국 이동통신 기술의 현주소를 보면서 “한국이 1990년대 중반 유럽식 GSM 이동통신을 추가로 도입하고 3세대 이동통신 기술에 조기 투자했거나, 퀄컴의 CDMA 기술 투자 제안을 미리 받아들였다면 이처럼 고가의 로열티 지출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임스 상무는 한국시장의 불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퀄컴은 한국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퀄컴은 한국 휴대전화 시장의 성장과 함께 커왔으니까요. 한국의 CDMA 상용화 성공은 CDMA 기술이 세계 표준이 되는 데 결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삼성, LG, KTF, SKT 등 한국 기업들은 우리의 긴밀한 업무 협력 파트너입니다.

    퀄컴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지나치게 높다고 이야기하지만, 한국 기업들 역시 CDMA 상용화로 높은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퀄컴은 휴대전화 단말기를 만들거나 이동통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한국 기업들과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관계’인 셈이죠. 퀄컴은 차세대 이동통신을 향한 새로운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을 뿐입니다.”

    그는 한국을 ‘흥미로운 시장’이라고 표현하며 한국 소비자들의 신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호기심이 한국을 이동통신 강국으로 키웠다고 분석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총매출의 43%를 차지할 정도로 퀄컴의 한국시장 의존도는 높다.

    중국·인도·유럽시장 공략 개시

    퀄컴은 이제 중국과 인도, 유럽시장 개척에 승부를 걸었다. 이미 중국의 제2 통신사업자 차이나유니콤은 중국 전역에 CDM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 인도 릴라이언스그룹의 계열사 인포콤은 통신서비스 사업자간의 법정 싸움과 사용료 인하 문제에 따른 일시적인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광섬유 네트워크와 CDMA 2000 1X 네트워크를 확립했다. 또 퀄컴은 차세대 시장인 W-CDMA에 전력을 집중, GSM의 종주국인 유럽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퀄컴이 세계시장 개척을 낙관하는 데에는 지금껏 닥쳐온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퀄컴 코리아의 김승수 홍보이사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보유해도 그 기술이 표준으로 채택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퀄컴의 힘은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새로운 기술을 시장에 직접 실현해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퀄컴의 최대 위기는 언제였는가” 하는 질문에 제임스 상무는 “지금까지 퀄컴에 위기는 없었다. 다만 두 차례의 ‘도전’이 있었을 뿐”이라고 강조하며 그 도전을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고 말한다.

    퀄컴이 뛰어넘어야 했던 첫 번째 도전은 바로 1990년대 중반 CDMA 기술을 상용화하는 일이었다. 이미 통용되던 GSM의 벽이 워낙 높아 퀄컴은 진일보한 CDMA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를 사장시킬 수밖에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퀄컴은 좌절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기업의 문을 두드리며 CDMA의 우수성을 알리고, 투자 유치를 호소했다. 당시 삼성과 LG도 퀄컴 관계자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시장에서 최초로 CDMA 기술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됐고, 퀄컴은 이를 토대로 북미,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등지로 시장을 확대해갔다.

    두 번째 도전은 스웨덴 기업 에릭슨과의 지적재산권 분쟁이었다. 1998년 3세대 이동통신 표준기술의 지적재산권을 놓고 퀄컴과 에릭슨 간에 치열한 싸움이 전개됐다. 유럽의 퀄컴 반대세력 대표격인 에릭슨이 “퀄컴의 지적재산권은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가 3세대 표준기술로 선택한 W-CDMA에서 그다지 핵심적 기술이 아니다”라고 공격했고, 퀄컴은 이 분쟁이 CDMA 2000 1X로 대표되는 미국의 상품을 배척하려는 유럽 카르텔의 음모라고 맞섰다.

    1999년, 끝이 보이지 않던 지리한 분쟁에서 퀄컴은 ‘윈-윈 전략’을 선택했다. CDMA one, CDMA 2000 1X, W-CDMA에 대한 양사간 분쟁을 종식하고 지적재산권을 교차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에릭슨은 퀄컴의 지역적 CDMA 무선 인프라사업을 인수했고, 퀄컴은 에릭슨이 보유한 GSM 특허권에 대한 권한을 확보했다.

    제레미 제임스 상무는 “앞으로도 특허 분쟁이 발생할 경우, 상생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다른 업체와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거나 일부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지니어 지상주의

    ‘기술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퀄컴은 특히 직원들 사이에 ‘엔지니어가 일하기 좋은 회사’로 평가받는다. 여기엔 테크노 CEO로 불리는 어윈 제이콥스 회장의 경영철학이 숨어 있다.

    제이콥스 회장은 1959년부터 1966년까지 MIT 공과대학 전기공학부 교수로, 1966년부터 1976년까지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에서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한 정통 엔지니어. 그는 신기술을 기업 경영을 위한 ‘도구’가 아닌 경제를 주도하는 ‘원동력’으로 끌어올렸다. 부단한 기술혁신이 퀄컴의 생존 비결이라 믿기 때문이다. 퀄컴 본사의 상징물인 ‘특허의 벽’이나 높은 R&D(연구개발) 투자비율도 엔지니어들의 연구 의지를 더욱 북돋운다.

    회사 구성원의 50%가 엔지니어일 만큼 연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퀄컴은 직원들의 평생교육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직원의 70% 이상이 회사의 지원을 받아 학위를 취득하거나 사내 사이버대학에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엔지니어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문화가 마음에 들어 퀄컴을 선택했다”는 한 연구원의 말은 엔지니어들이 소외받는 한국 기업의 풍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엔지니어로 선발된 직원도 높은 직책에 오르기 위해 R&D와 전혀 상관없는 부서를 지망하는 한국 기업과 달리, 퀄컴은 엔지니어의 연구활동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랍 챈독 부사장은 “엔지니어는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몰두해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그래서 퀄컴은 엔지니어들이 기술의 흐름과 사회 변동을 거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퀄컴의 기업문화는 합리적이고 자유롭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조직문화는 직원들의 옷차림에서부터 감지된다. 상무 이상 간부 중에도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말단 직원도 사장과 거리낌없이 대화한다. 신기술 아이디어나 이견을 내놓기 위해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는 일도 퀄컴에선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조직을 통솔하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는 존재하지만, 이 ‘껍질’은 사원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에 방해가 될 수 없다.

    높은 생산성과 합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분위기 덕택에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직원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상사에게 쪽지를 남기고 재택근무를 한다. 업무 성과로만 평가받기 때문에 회사에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7년 연속 ‘일하기 좋은 기업’ 선정

    퀄컴은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7년 연속으로 뽑혔다. ‘포춘’은 매년 초 미국내 주요 기업들의 직원들을 무작위로 추출해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해왔는데, 퀄컴은 2005년 설문조사에서 17위를 기록했다. IT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다. 2002년에는 8위까지 올랐다. 퀄컴이 이렇듯 직원들이 선호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전 론 인사 담당 부사장의 설명이다.

    퀄컴|CDMA 원천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한 ‘디지털 특허왕국’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본사 야외에 마련된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겼다.

    “퀄컴은 직원들에게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에너지를 심어주는 회사입니다.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준 셈이죠. 다른 기업에서 온 한 직원은 제게 ‘퀄컴은 수평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가진 기업’이라며 놀라움을 나타내더군요. 생산성을 높이는 의사소통 구조도 퀄컴의 장점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슬로건도 직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킨 것 같습니다. 퀄컴은 직원들을 감시하고 억압하기보다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직원들은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죠.”

    실제로 본사에 근무하는 퀄컴 직원들에게서 ‘망중한의 묘(妙)’를 엿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많은 직원이 회사 안에 설치된 피트니스센터나 농구장, 야외 수영장에서 운동을 즐기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머리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구상하면서도 체력 단련이나 취미 생활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은 직원들의 욕구를 회사가 충족시키고 있는 것.

    또한 퀄컴은 직원들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여러 제도를 갖췄다. ‘큐-라이프(Q-Life)’는 직원들의 동아리 활동을 격려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사부서의 핵심 조직이다. 어떻게 카약을 즐길까, 어떻게 자녀를 키우고 어떻게 아이를 입양할까, 효과적인 재테크 방법은 무엇일까…. ‘큐-라이프’를 통해 직원들이 얻는 정보와 이용가능한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다.

    ESPP(직원 주식 구입 계획·Em-ployees’ Stock Purchase Plan)는 직원들의 재테크를 돕는 독특한 제도다. 직원이 6개월분 급여에서 일정량을 모아 가장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구입할 수 있게 특혜를 준다. 김승수 이사는 “한국 기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ESPP 제도는 직원들의 쏠쏠한 재테크 수단”이라고 소개했다.

    퀄컴은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1월6일 퀄컴 본사에는 조기가 내걸렸다. 동·서남아 지진 피해자를 추도하는 의미였다. 퀄컴은 전사적 차원에서 자원봉사와 기부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데, 최근 전 직원이 ‘매칭 펀드(matching fund)’를 통해 지진 피해지역에 기부금을 보냈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대형 화재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퀄컴 직원들의 자원봉사와 기부활동이 빛을 발했다.

    샌디에이고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퀄컴은 지역 학교 육성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어윈 제이콥스 회장이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엔지니어링 스쿨이 설립됐다. 퀄컴은 장학제도를 활용해 이공계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샌디에이고 주립대(SDSU)와 협력하여 사회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아울러 지역 학교를 졸업한 인재를 적극 유치함으로써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지난해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 MBA스쿨은 퀄컴의 성공적인 경영을 케이스 스터디 과제로 채택했다. 무명 벤처기업에 불과하던 퀄컴이 세계시장을 석권한 과정이 경영학적 관심사이자 연구대상으로 떠오른 것. 기술혁신과 시장개척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퀄컴의 성공은 원천기술 부재로 고민하는 한국 기업에도 유익한 ‘경영참고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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