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미숙한 기부외교, ‘쓰나미 지원금’ 속사정

‘말발’ 안 먹히는 한국 외교통상부, 반나절만에 5억$ 결정한 일본 외무성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01-24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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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숙한 기부외교, ‘쓰나미 지원금’ 속사정

    지진해일로 폐허가 된 태국 카오락.

    ‘쓰나미(지진해일)’가 아시아를 강타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7일 저녁, 외교통상부의 한 간부를 사석에서 만났다. 이날 한국 정부는 60만달러 지원계획을 밝힌 터였다.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기자)

    “적지요. 우리도 속이 상합니다.”(외교통상부 간부)

    ‘50만달러’도 아니고 ‘100만달러’도 아닌, ‘60만달러’라는 숫자가 나온 이유가 흥미로웠다. 부처소관 예산이 대부분 소진되는 연말이어서 직원 월급 줄 돈 등 경상경비를 빼고 외교통상부가 가용할 수 있는 총 재원이 60만달러였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군색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이 간부는 기획예산처로 화살을 돌렸다. 이날 외교통상부 주도로 동남아 지진피해 사고수습본부가 만들어져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기획예산처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탁상공론이 되고 만다”고 했다. “기획예산처는 회의에 오라고 해도 잘오지 않거나 다른 참석자보다 직급이 한두 단계 낮은 직원을 보내곤 한다”며 묵혀둔 서운함까지 내비쳤다. 평소에도 외교통상부 말은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사고 이틀째인 12월28일 일본정부는 ‘30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60만달러와 3000만달러. 액수차가 너무 컸다. ‘쪼잔하다’는 비난이 외교통상부에 집중됐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해찬 국무총리가 “좀 적다”며 한마디 하고서야 기획예산처와 외교통상부가 지원금 증액을 심도있게 협의했다. 그래서 다시 발표된 액수가 200만달러.

    이어 12월30일 500만달러, 2005년 1월2일 5000만달러로 지원금이 증액됐다. 반면 일본은 1월1일 5억달러로 지원금을 대폭 올렸다. 세계 각국이 치열한 지원외교를 펴던 때였다.

    한국 정부는 적어도 국격(國格)이 실추되는 일은 막아야 했다. 지원 결정을 이틀만 앞당겨, 일본이 3000만달러에 머물러 있을 때 5000만달러로 올렸다면 ‘아시아 최대 지원국’으로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주체적으로 범인류적 문제에 참여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인도적 지원’의 독자적 기준조차 세우지 못했다. 5000만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도 일본의 꽁무니만 좇는 옹색한 꼴로 국내외에 비쳤다. 반면 일본의 기부행위는 태국 등 동남아 신문의 1면을 연일 장식했다.

    그 차이는 한국 외교통상부와 일본 외무성의 경쟁력에 있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정부의 5억달러 지원은 일본 외무성 간부들의 오전 토론 끝에 전격 결정돼 당일 국내외에 발표됐다. 외교통상부의 한 간부는 “이 눈치, 저 눈치 봐야 하는 외교통상부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틀의 격차는 하늘과 땅의 격차였다.

    외교통상부 간부는 “대통령자문역인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은 대통령과 수시로 접촉하며 해외순방시 정상회담과 관련된 조언을 대통령에게 한다. 이종석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실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외교현안도 관장하는 팀장격”이라고 했다. 정작 외교문제에서 외교통상부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코드 논란’으로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갈등을 빚은 뒤 마음속에 고착화된 느낌, 일종의 ‘사기 저하’라고 한다. 참여정부 들어선 부처내 인사위원회에서 인사의 상당부분을 결정하여 외교통상부 장관의 인사권도 위축된 상태다.

    예산-인사권의 한계를 노출하는 화석 같은 관료조직, 부처간 의사소통의 벽,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거리감과 주눅들기. 쓰나미 지원 과정에 드러난 한국 외교의 무기력은 구조의 문제였다. 대통령은 취임 직후 비선이 아닌, 행정부의 장관과 부처가 국정운영의 명실상부한 중심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시스템의 문제는 원칙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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