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중국 선양감옥서 한국인 재소자 가혹행위

“개구리처럼 엎드려 떨 때까지 전기고문 당했다”

  •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1-24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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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료받게 해달라”는 고혈압 환자 방치해 결국 실명
    • 팬티까지 벗긴 채 1시간씩 조사하기도
    • 2001년까지는 전기봉 이용해 상습 구타도
    • 두 차례 옥중 단식, 영사 면담 거절 움직임도
    • 駐선양 한국 총영사관 “가혹행위 들은 바 없다”
    중국 선양감옥서 한국인 재소자 가혹행위

    정부는 지난 2001년 마약사범 신모씨의 사형집행 이후 중국내 재소자 관리를 강화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전화’.

    지난해 4월경으로 기억한다. ‘신동아’ 편집실로 “여기는 중국 선양(瀋陽) 제2감옥”이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수감중인 재소자가 휴대전화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랬고, 이 재소자가 “중국 감옥의 한국인 수감자들이 극심한 차별대우와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털어놓은 구타와 폭행, 심지어 전기고문 사례는 더욱 믿기 어려웠다. 이 제보자의 전화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현재 30명 가까이 되는 선양 제2감옥의 한국인 재소자들은 중국인 수감자에 비해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84세의 한국인 재소자가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들어주지 않고 있다. 주(駐)선양 한국영사관에도 이런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한국인 재소자들은 중국측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 마지막 수단으로 단식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밑도끝도없이 걸려온 전화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국내에 있는 그들의 가족과 접촉해보려 해도 이들이 대개 장기 수감자여서 가족과도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 고민 끝에 현지 취재를 기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지난해 이맘때쯤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김기종씨 일행을 옌지(延吉)에서 만나 인터뷰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옌볜(延邊)에 억류됐던 기자의 전력이 문제였다. ‘불법 취재’ 혐의로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기자가 또다시 민감한 취재에 나섰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데 ‘신동아’ 편집진이 의견을 모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여러 달이 흘렀고 그 후로도 전화는 몇 차례 더 걸려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감옥 내에서 휴대전화를 몰래 사용하다 적발되면 짧게는 15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독방 신세를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기자는 지난해 말 문제의 선양 제2감옥을 출소한 한국인 재소자들을 통해 1999년 이후 이곳에서 벌어진 가혹행위를 포함한 인권침해 사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증언자들을 통해 드러난 선양 제2감옥의 실상은 지난해 휴대전화를 통해 ‘SOS’를 보내온 재소자의 증언을 대부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지난해 말 선양 제2감옥에서 출소해 귀국한 박경춘씨(가명)는 “수형 생활 중 고혈압으로 인해 시신경에 손상을 입어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 전부터 고혈압과 중풍 증세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공안에 체포돼 수감된 이후 아무런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2003년 8월경 선양 제2감옥으로 이감된 뒤 지병인 고혈압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고 오른쪽 시력이 갑자기 약해졌다. 그해 10월 한국 영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통증을 호소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조치해주겠다’는 답변뿐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교도소내 의무관계자를 직접 찾아가 외부 병원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간청한 끝에 겨우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경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서 나온 진단은 ‘오른쪽 눈 실명’이었다. 중국 사법당국과 우리 영사관의 약속만 믿고 1년을 기다리는 사이에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한쪽 눈 실명’ 판정

    박씨는 2003년 8월과 2004년 5월 각각 이곳에 면담하러 온 선양 총영사관 소속 한국 영사에게도 통증을 호소하고 병원 진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선양 한국 영사관측의 설명은 달랐다. 영사관 관계자는 “박씨의 경우 2004년 5월 면담에서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것 외에 큰 애로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박씨는 “실명 판정을 받은 후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약을 지급해달라고 감옥당국에 요청했지만 ‘머지 않아 출소할 테니 한국에 가서 치료받으라’는 답변뿐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는 이 밖에도 “선양으로 이감(移監)된 직후에는 팬티까지 벗겨진 채 1시간씩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발가벗겨진 채 조사받고 서 있을 때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97년에서 2003년 출소하기까지 5년여 동안 수감됐던 조형구씨(가명)는 한걸음 더 나아가 “1999~2000년 사이에 모두 세 차례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부당한 대우에 반발해 작업을 거부하거나 재소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면 따로 불려가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전기봉으로 고문당했다. 처음에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약한 전기를 흘려 보내는데 고통을 못 이겨 쓰러지면 어깨와 다리에 전기 충격을 가하고 30여분간 흠씬 두들겨팼다.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채 벌벌 떨 때쯤 돼서야 전기고문이 끝났다.”

    또 당시 조씨는 1년 넘게 독방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교부에 확인한 결과, 조씨에 대한 선양 총영사관측의 공식 면담 기록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조씨에 대한 영사 면담은 2002년 3월과 7월, 그리고 2003년 1월에 걸쳐 세 차례 이뤄졌으나 가혹행위 등을 진술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부의 이러한 설명과는 달리 전기고문 사실을 폭로한 조씨와 함께 선양 제2감옥으로 이감되어 온 나머지 한국인 재소자 2명 역시 그 무렵 비슷한 방법으로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조씨는 전한다. 이 2명은 지금도 수감중이다. 기자는 이중 징역 14년형을 받고 복역중인 A씨의 한국 내 가족과 접촉할 수 있었다. A씨의 가족도 그가 중국측 관계자로부터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A씨 형의 증언이다.

    “2001~2002년 면회했을 때 초죽음이 되어 있던 동생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기고문 사실을 전해들은 것도 그때다.” 한마디로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조씨나 A씨 이외에도 한국인 재소자에 대한 가혹행위를 증언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선양 제2감옥에서 지난해 말 출소한 최기주씨(가명)가 동료 재소자들에게 듣고 전해온 내용이다.

    “한국인끼리 싸움이 나거나 사소한 말썽 때문에 보안과로 불려가면 일단 무릎부터 꿇리고 나서 구둣발로 등을 내리찍는 등 앞뒤 안 가리고 매질이 가해졌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현재 선양 제2감옥에 수감중인 동료 재소자 B씨는 구타 후유증으로 거의 1년 동안 허리를 쓰지 못할 정도였다.”

    기자는 조씨가 말한 동료 재소자 B씨와도 통화할 수 있었다. B씨는 “1998년 선양으로 이감되자마자 중국인 재소자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해 허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 바람에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마약혐의로 중국 현지에서 체포돼 하얼빈(哈爾濱)에서 사형당한 신모씨가 체포될 당시 공범으로 잡혔던 정모씨가 문제의 선양 제2감옥에 수감중인 사실도 재소자와 출소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정씨와 함께 수형생활을 했던 한국인 재소자들은 “정씨 역시 조사 과정에 고문으로 인해 치아가 대부분 손상돼 틀니를 끼고 있으며 한쪽 눈에도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전했다.

    ‘가혹행위 증거 없으니…’

    당시 신모씨 사형 사건은 중국 내 한국인 재소자들의 인권 실태에 대해 경종을 울린 최대의 사건이었다. 외교부가 주선양 총영사관을 통해 한국인 재소자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신씨에 대한 사형집행과 이 사실을 중국으로부터 사전에 통보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외교부의 무능력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양 제2감옥의 한국인 재소자들이 전기고문을 비롯, 1999~2001년 사이에 벌어진 가혹행위 사실을 주선양 총영사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도 털어놓았다고 증언하고 있어 외교부의 태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재소자는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해도 ‘증거가 없다’거나 ‘이미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한국 영사관측은 물론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분해했다.

    한편 주선양 총영사관측은 재소자들의 ‘가혹행위’ 주장에 대해 “2003년 당시 베이징 주재 주중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이 선양 제2감옥을 방문했을 당시 가혹행위 사실을 전해듣고 중국측에 재발방치 조치를 요구한 일이 한 차례 있으나, 그 이외에 한국인 재소자로부터 구타나 가혹행위 진술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한국인 재소자들에 대한 가혹행위와 차별대우가 계속되자 일부 한국인 재소자들이 감옥 내에서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2003년 12월과 지난해 9월에는 한국인 재소자 전원이 식사를 거부한 채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2003년 12월 당시는 감옥당국 실무자가 한국인들의 단식 사실을 소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쉬쉬하며 덮었다는 것이 재소자와 출소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단식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5일 동안이나 계속된 이 사건으로 인해 주선양 한국총영사관이 나서서 직접 사태를 수습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도 “선양 제2감옥에서 식사와 부식 지급 문제로 재소자들의 불만이 제기돼 주선양 영사관이 직접 나서서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고 해결한 바 있다”고 밝혔다.

    재소자들의 단식투쟁

    당시 선양 제2감옥 한국인 재소자들의 단식사건은 ‘동아일보’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신동아’ 편집실로 걸려온 제보전화를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에게 전달해 기사화한 것이었다. 재소자들은 “‘동아일보’ 보도 때문에 영사관측이 기민하게 움직인 것 같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후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외교부측의 설명에 대한 한국인 재소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한 재소자는 “당시 한국인 재소자들에 대한 부식비로 매달 2000위안(元)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영사관측은 이 비용을 한인회로 떠넘기고 발을 빼는 바람에 부식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재소자들은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서려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 재소자들은 이감(移監)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광시성(廣西省) 난닝(南寧)에서 수형생활을 하다가 문제의 선양 제2감옥으로 옮겨진 출소자 박경춘씨는 “난닝에 있었더라면 3개월 정도 감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장기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선양으로 이감되는 바람에 감형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영사관측은 “한국인 재소자를 선양 제2감옥에 통합 수감하는 것은 중국 사법당국의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부 재소자들은 “‘우리측 요청에 의해 다른 지역의 한국인 재소자들을 선양으로 모은 것’이라는 말을 전직 영사로부터 직접 들었다”며 “관리상 이점만을 내세운 외교부의 행정편의주의가 감형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선양 제2감옥의 한 재소자는 “한국인 재소자 중 가석방 요건을 갖춘 사람이 7명이나 되는데 중국인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는 바람에 단 한 사람도 가석방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재소자는 “심지어 면회를 오는 한국 영사들조차 감형제도나 가석방 요건을 잘 모르고 있더라”며 영사관측의 무관심을 성토했다.

    물론 중국의 사법제도나 재소자 인권상황 등이 우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 우리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중국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우리 외교관이 교도소를 방문해 면회를 하는데도 사소한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 중국측은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면 면회를 중단시키겠다’고 하는 등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물품 반입도 통제

    그런데도 “선양 제2감옥을 지난해만 30여 차례 방문해 재소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여부와 애로를 파악해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총영사관측의 설명과는 달리 외교부가 해외 한국인 재소자들의 처우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는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재소자들은 교도소에서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조차 지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출소한 최태구씨(가명)는 “칫솔 치약 등 개인 보급품이 1년에 4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4년간의 수감생활 중 이런 물품을 지급받은 것은 단 한 차례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또 “외부에서 반입되는 소포도 5kg까지는 허용해주었으나 최근에는 속옷 등만 허용할 뿐 다른 물품의 반입은 통제되고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신모씨 사형사건 이후 선양 총영사를 비롯한 영사 라인 전원을 소환하고 중국 내 한국인 재소자의 인권 개선을 위한 특별대책을 내놓는 등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선양 제2감옥 재소자와 출소자들에 따르면 중국 내 감옥의 인권침해는 여전하고 가혹행위 사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7년째 복역중인 한 재소자는 기자와의 국제통화에서 “중국사람들로부터 얻어맞고 전기고문까지 당할 때 한국 정부는 어디에 있었느냐”며 “우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러 오는 영사 면담이 무슨 소용이냐”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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