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금감위 내부자료로 본 외환은행 매각 전말

금감원과 론스타의 ‘짜고친 고스톱(?)’, 승인 요청 받고 다음날 ‘OK!’

  •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1-25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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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론스타측 ‘구두 약속’ 요청에 김진표 기자회견
    • ‘미국 지점 폐쇄’ 알면서도 외면했나
    • ‘칼라일 방식’ 론스타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아 ‘불가’
    • 금감위 승인 직전 론스타가 보내온 편지 한 통
    금감위 내부자료로 본 외환은행 매각 전말
    외환은행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다. 최근 론스타는 외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동아건설 파산채권 입찰에 뛰어들어 도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가 은행장을 포함한 주요 임원들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당하자 입찰 참여를 포기한 바 있다.

    그러나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에 앞서 재무정보 실사 과정에서 50억원 이상 여신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의 재무정보를 모두 확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론스타의 또다른 인수합병(M&A) 목표가 어디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투기자본감시센터(공동대표 이찬근 허영구)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상대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승인처분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따른 적법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신동아’는 최근, 지난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전후해 개최된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회의록을 포함한 각종 내부 검토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에는 금감위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감독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의심을 품게 하는 대목들이 여기저기 들어있다. 특히 론스타가 은행법상 동일인 주식보유한도(10%)를 초과해 은행 주식을 가질 수 없는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금감위의 인수 승인 배경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나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은 2003년 7월22일이다. 이 날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는 블룸버그통신과 기자회견을 갖고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32.5%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를 론스타에 매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부총리의 이 날 발언으로 그동안 물밑에서만 논의돼 오던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외환은행 외자유치 관련 검토’라는 금감위 작성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론스타는 이미 주식 인수 가격 등 세부 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자격 요건을 놓고 논란이 일 기미가 보이자 대주주 자격 요건 승인 이전에 우선 구두로 확약해 줄 것(verbal assuarance)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김진표 부총리가 외신을 통해 부랴부랴 ‘론스타 매각’을 공개한 것도 론스타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요건을 심사해 주식 취득 승인 결정을 내려야 할 금감위는 뒷전에 밀린 채 재경부가 나서서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요건을 덥썩 승인해준 셈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기정사실화한 이 대외비 문건을 작성한 것은 7월25일이다. 이는 론스타와 외환은행이 주식 인수 계획에 서명(8월27일)하기 한 달 전이며 금감원이 외환은행과 경영개선을 위한 약정서를 맺기(8월12일) 훨씬 전의 일이다. 말하자면 경영개선 약정을 맺기도 전에 이미 금감원은 외환은행에 대해 외자 유치 없이는 경영 개선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대외비 문건은 이밖에도 금감원이 론스타와의 매각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금감원은 당시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요건과 관련해 ▲론스타를 금융기관으로 볼 수 있는지 ▲다른 금융기관과 합작 방식으로 외환은행에 투자할 경우 자격요건이 되는지 ▲은행법상 예외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금감위로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금융기관만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는 은행법 규정에 저촉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검토 결과 일단 론스타를 금융기관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금감원의 결론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다른 금융기관과 합작투자할 경우 금감원이 어떤 해석을 내리느냐는 대목이다. 금감원은 칼라일 펀드가 한미은행을 인수할 때 JP모건과 5대5의 비율로 합작해 은행법상 요건을 충족시켰던 것을 떠올렸다. 따라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ABN암로 은행과 론스타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은행법상 요건을 충족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불가’ 판정. ‘칼라일 방식’대로 ABN암로측에 50%의 의결권을 부여하면 론스타측에서 이를 거부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금감원의 ‘재경부 핑계’

    특히 금감원이 이 방안을 제시할 경우 재경부가 반대할 것이라는 게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금감원이 사실상 재경부의 지침을 받고 움직인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금감원은 재경부가 금감위측에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요건에 은행법상 예외를 적용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것이라는 점까지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이처럼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요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은행법상 규정 때문이다. 은행법 시행령 5조는 외국인이 은행 주식 10% 이상을 보유할 경우 그 자격을 ‘은행업 증권업 보험업 또는 이에 준하는 업으로서 금융감독위원회가 인정하는 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금융기관이 아닌, 론스타와 같은 사모펀드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은행법상 자격미달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된 것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근거한 것이다. 은행법 시행령은 ‘금산법 규정에 따라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은행 인수 자격에 예외를 두고 있다.

    그러나 당시 외환은행은 금산법이 규정하는 부실금융기관이 아니었다. 당시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9.6%로 금감위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던 8%를 훨씬 뛰어넘었다. 단지 금감원이 추정한, 외환은행의 향후 경영 전망이 좋지 않다는 것이 론스타에게 자격요건을 부여한 이유다. 말하자면 금산법상 부실금융기관은 아니었지만 ‘기타 특별한 사유’에 외환은행이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금감원의 이러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금감위 내에는 론스타의 자격요건과 관련해 상당한 이견이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금감위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 취득을 승인한 9월26일 금감위 회의록에 따르면 일부 위원이 론스타의 국내영업 활동 과정에서 드러난 건전성과 도덕성, 공정거래법 위반 사실 등을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외국인이 금융업과 제조업에 함께 투자하는 데 대해서도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끝까지 논란이 됐던 것은 두 가지다. 론스타가 매각차익만을 노려 단기간에 주식을 팔아치우고 나가지 않겠느냐는 우려와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미국 은행법 규정에 따라 외환은행의 미국 지점을 폐쇄하지 않겠느냐는 점이었다. 금감위 회의록의 몇 대목을 보자.

    론스타 자격 있나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이후 미국 내 영업은 어떻게 되나?”

    “2년간 유예기간을 달라고 FRB를 설득중이라고 한다. 제한된 범위내에서 지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주주가 얼마나 건전하고 탈법 가능성이 적은가도 중요하다. 그동안 론스타가 우리나라에서 경영한 부분에 대해서도 건전성, 도덕성, 공정거래법 위반 사실을 종합검토해야 한다.”

    “론스타의 운영실적에 대해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있다.”

    “론스타의 한국내 영업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심사했나?”

    “(금융기관이 아닌) 펀드이므로 (금융관련법령을) 직접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실무적으로 확인받았다.”

    “론스타는 왜 이렇게 복잡한 투자구조를 갖고 있나?”(211쪽 그림 참조)

    “조세 회피 목적이라고 한다.”

    결국 금감위 스스로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주 적격성 여부를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론스타가 금감위의 최종 승인 결정 이틀 전인 9월24일 이번 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리 명의의 서한을 금감위에 보낸 것 역시 금감위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스티븐 리는 론스타 내 서열 3위로 알려진 한국시장의 총책임자다. 공식 직함은 론스타 어드바이저스 코리아의 컨트리 매니저(country manager).

    ‘신동아’가 입수한 스티븐 리 명의의 서한에는 ▲건전한 성장과 수익에 기반한 장기 영업 전략으로 외환은행 경영진과 함께 일하기를 기대한다 ▲론스타의 투자는 한국 경제에 대한 장기적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가 되었던 미국지점 문제와 관련해서는 ‘외환은행의 미국내 영업활동이 두 나라의 무역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미국 영업이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론스타의 이 서한은 금감위 최종 승인의 근거 중 하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서한의 성격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승인을 위해 열린 금감위 회의에 참석했던 한 위원은 이 서한을 두고 ‘각서’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론스타가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대한 기여도나 건전성 유지 노력에 대해 확약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금감위 내부에 있었고, 이에 따라 각서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금감위 회의를 주관한 이동걸 전 금감위 부위원장은 론스타측의 서한에 대해 “일종의 신사협정으로 볼 수도 있고, 론스타 쪽도 우리가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의사표시를 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전혀 다른 견해를 내놨다. “이 서한이 론스타의 각서냐”는 질문에 대해 이 전 부위원장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답변을 유보했다.

    앞에서 본 대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막판까지 쟁점이 된 사안 중의 하나는 외환은행의 미국내 지점 처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금감위는 최종 승인을 결정한 9월26일 회의록에 나타난 대로 ‘FRB를 설득중이며 은행 지점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미국 지점의 운명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선 9월5일 금감원 간담회 자료 중 ‘론스타의 향후 외환은행 주요 경영계획’을 보면 ‘지점을 유지하도록 노력중’이라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당시 금감원은 외환은행의 미국내 지점이 ‘제한적인 영업점(Limited Purpose Agency)’과 같은 ‘에이전시’ 형태, 또는 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관계회사로 탈바꿈하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점을 유지하는 것과 ‘영업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금감원이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게 되면 미주법인은 폐쇄될 수 밖에 없음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려 했거나 은폐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외환은행은 론스타의 손에 넘어간 후 예정대로 기존의 미국 현지법인인 퍼시픽유니언뱅크(PUB)를 매각했고, 일부 지점은 (주)외환 뉴욕 파이낸셜과 (주)외환 로스앤젤레스 파이낸셜 등 별도의 관계회사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뉴욕 파이낸셜과 로스앤젤레스 파이낸셜은 은행업무의 핵심인 송금 기능을 가질 수 없어 외환은행은 (주)미주외환송금서비스라는 별도의 송금중개 전문회사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미국 은행법과 한국 은행법이 모두 금지하고 있는 론스타의 은행 인수를 성사시켜 주기 위해 멀쩡한 은행을 팔아버리는가 하면 기존 지점은 절름발이 유사금융회사로 잘게 쪼개버린 것이다.

    이렇듯 금감위의 최종 승인에 이르는 과정, ‘2인3각’으로 비친 금감원과 론스타의 ‘팀워크’등을 종합해 볼 때 금감원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실사하던 2003년 7월, 또는 그 이전부터 이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기정사실화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금감위를 상대로 론스타의 주식취득 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낸 이대순 변호사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금감위의 논의 과정을 보면 금감위가 감독당국인지 론스타의 법률 대리인인지 모를 정도”라며 “이제 와서 금감위는 재경부가 모든 것을 주도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하튼 외환은행과의 최종계약이 완료되고 사전 정지작업이 이뤄졌다는 판단 아래 론스타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동일인 주식보유한도 초과보유 승인서를 금감위에 제출한다. 금감위는 이에 대해 승인신청서를 제출받은 바로 다음날인 9월5일 임시간담회를 열고 사실상 승인 결정을 내렸다.

    금감위가 론스타의 주식취득을 심의해 승인한 것은 9월26일이다. 그러나 신청서 접수 다음날인 9월5일 작성된 금감위 간담회 자료를 보면 금감원은 이미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 51% 보유를 승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감원은 이 자료에서 은행법 시행령상 주식 취득 자격 요건 이외에도 ▲재경부의 예외승인 요청 ▲론스타의 선진금융기법 도입 등 경영정상화 의지 등을 승인 이유로 들고 있다. 결국 재경부-금감위-론스타가 하나의 이해관계 아래 움직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감위 내부자료로 본 외환은행 매각 전말


    금감위 내부자료로 본 외환은행 매각 전말

    론스타는 금감위의 주식취득 승인이 떨어지기 직전 금감위에 서한을 보내 장기투자와 미국내 영업 유지 노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의 론스타 인수와 관련해 논쟁의 초점은 당시 외환은행이 인수 자격이 애매한 사모펀드에 팔아야 할 정도로 부실 정도가 심각했느냐는 데로 모아진다.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이 9월5일 작성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승인신청건 처리(안)’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미 당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 인수를 금산법이 지정하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를 승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

    부실 징후 있었나

    금감원이 이러한 판단을 내리게 된 근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2003년 6월 말 현재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9.56%였다. 당시 금감위가 내세웠던 BIS 자기자본비율의 가이드라인은 8%였으므로 외환은행의 재무상태는 적어도 BIS 비율로만 따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1998년 이후 한번도 8%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당시 시중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요건이 필요했다.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거나 예금의 지급 또는 차입금의 상환이 정지된 상태, 또는 외부자금 지원 없이는 회생 불가능하다고 금감위 또는 예금보험위원회가 인정한 경우 등이 부실금융기관 지정 요건이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2003년 7월 금감원이 발표한 외환은행 종합검사 결과를 보더라도 자본 적정성, 자산 건전성, 수익성, 유동성 등 6개 부분의 경영상태에서 ‘외환은행은 보통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게다가 부실 여신 규모를 나타내는 고정 이하 여신 비율도 당시 시중은행 평균이 3.3%인 데 비해 외환은행은 3.0%로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만 놓고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도 외환은행이 당장 자본 확충을 필요로 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금감원은 외환은행의 향후 경영 전망과 관련해 외자 유치가 이뤄지지 않고 잠재 부실에 따른 충당금을 적립할 경우 BIS 자기자본비율이 6.2%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에 따라 외환은행을 ‘잠재적인’ 부실금융기관으로 판단했고 이는 곧 은행법 시행령에 따라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게 예외승인 조항을 적용하는 근거가 됐다.

    즉 금감원의 논리는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6.2%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자본을 확충하지 못할 경우 금감위와 맺은 경영개선 약정조차 이행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금감위의 추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시나리오는 외자유치에 성공할 경우와 외자유치에 실패할 경우로 나뉜다.

    먼저 외자유치에 성공할 경우 금감위는 2003년 12월 말 기준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10.2~11.7%까지 올라간다고 내다봤다. 물론 이 경우 외환은행을 설령 ‘잠재적’일지라도 부실금융기관으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

    문제는 외자유치에 실패했을 경우. 그러나 이 경우에도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9.3%로 추정됐다. 외환카드 손실, 분식회계 사건에 휩싸인 SK글로벌 충당금, 하이닉스반도체 평가손을 비롯해 하반기중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을 모두 감안했을 때 예상되는 수치였다. 여기까지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금감원은 2003년 하반기 중 추가부실이 발견돼 충당금을 9654억원이나 쌓게 되는, 또하나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출자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져 3306억원, 추가부실이 밝혀져 6205억원의 충당금을 쌓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될 경우 BIS비율이 6.2%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

    금감위 자료에는 어떻게 해서 이런 수치가 나왔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분명한 것은 6.2%라는 BIS 비율 예측을 근거로, 원칙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론스타가 예외적인 승인 요건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환은행 매각 당시 외환은행에 부실의 징후가 있었느냐는 문제는 금감위에 대한 주식취득 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법정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제일, 한미, 그리고 외환은행

    외환은행 매각은 환란 이후 외국자본에 넘어간 제일은행이나 한미은행의 경우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제일은행은 1998~99년 두 차례나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바 있다. 또 당시는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이라도 눠야 할’ 정도로 국내 금융시장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정부의 외자 유치 의지를 상징적으로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급박한 사정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칼라일은 사모펀드이기는 하지만 JP 모건과 합작함으로써 영업력을 갖춘 금융기관 자격으로 한미은행의 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론스타의 경우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론스타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론스타가 약속대로 얼마나 장기투자에 주력할지 외환은행의 기업금융 분야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일지가 관심 대상이다. 이것이 보장된다면 론스타가 1조원을 벌어갔느니 세금을 한푼도 안 냈느니 하는 문제는 오히려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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