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학대받는 우리 아이들

온몸 칼로 난자, 매질 끝에 장기 파열, ‘똥싼다’며 손발 묶고 굶기기도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5-01-25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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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와 동반자살’. 잔혹한 살인이자 극단적 아동학대인 이 패륜행위가 심심치 않게 자행되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아동인권지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환경에서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흉기에 난자당하고, 매질로 장기가 파열되고, 장롱 안에서 굶어죽는다. 가해자는 가장 가까운 어른들이다.
    학대받는 우리 아이들
    을유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터져 나온 ‘장롱 속에서 죽은 아이’ 사건은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대구시 불로동 김모(4)군의 죽음은 온 국민에게 ‘우리나라에 아직도 굶어죽는 어린이가 있다니…’ 하는 당혹감을 안겼다.

    김군의 사인을 조사한 대구동부경찰서 형사계는 우선 부모의 고의적인 방치를 의심했다. 하지만 김군을 3년간 진료한 소아과 전문의가 “김군은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말기가 되면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 얼른 보면 굶어죽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여론은 ‘부모보다는 사회적 무관심과 허술한 복지체계가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경찰은 2차 부검을 실시, 사체에서 채취한 근육조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김군의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기아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사를 맡은 경북대 법의학교실 이상한 교수는 “주검으로 발견될 당시 김군의 상태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어 있었고 위 속 내용물도 거의 없었다. 이런 점들로 미뤄보아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논란이 됐던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으로 인한 사망설’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김군이 모종의 근육질환을 앓아왔지만 사인과는 무관하다는 것.

    담당형사는 “쌀 한 톨이 없어 아이가 굶어죽었다는 언론 보도는 잘못됐다. 빈곤가정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부모가 고의적으로 아이를 굶어죽게 했는지 여부를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군의 두 살 난 여동생도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인 것으로 드러나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강서아동학대예방센터 박병기 소장은 “부모가 아픈 아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굶어죽도록 내버려뒀다는 얘긴데, 최근 이와 같은 방임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픈 아이를 치료하다 병원비가 없어 결국 부모가 치료를 포기해 숨지는 아동도 적지 않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적극적 의지와 책임의식이 그만큼 희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부모와 우리 사회가 함께 김군을 죽인 셈”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급증하는 방임, 유기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2003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굶고 매맞고 버려지는 등 한 해 동안 발생한 아동학대 건수가 2921건에 달했다. 전국 20개 센터(현재 38개로 증가)에 신고 접수된 아동학대 의심사례를 더하면 총 3536건에 이르렀다. 이는 2002년에 비해 20%, 2001년에 비하면 35.7%나 증가한 수치다.

    2000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학대 유형에는 우발적 사고가 아닌 상황에서 신체적 손상을 입히거나 신체 손상을 입게 하는 신체학대 행위, 언어적·정서적 위협과 감금이나 억제 및 가학적 행위를 가하는 정서학대 행위, 성적 만족을 위해 아동의 신체에 접촉하는 성학대 행위,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아동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함으로써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방임 및 고의로 아이를 버리는 유기 등이 있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가 2003년 발생한 2921건의 아동학대 유형을 분석한 결과 한 가지 유형 이상의 학대가 가해진 중복학대가 1155건(39.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방임 965건(33.0%), 신체학대 347건(11.9%), 정서학대 207건(7.1%), 성학대 134건(4.6%), 유기 113건(3.9%) 순으로 드러났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이호균 소장은 아동학대 발생원인으로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 ▲부부불화 또는 가정불화 ▲경제적 위기 등을 꼽았다. 이 소장은 “아동학대의 80%가 가정에서 발생한다. 이는 부모가 자녀를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종속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한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만나는 부모 열이면 열 모두가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는데 당신들이 왜 참견하느냐’고 항의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센터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례의 절반 가까이가 부모의 가출 또는 이혼에 의해 불거진 것이다. 최근 급증하는 방임은 빈곤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덧붙였다.

    유기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전국 지방경찰청 장기미아추적전담반이 찾아낸 장기미아 60명 중 33명이 친부모에 의해 고의로 버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가출, 미아, 유기, 부모의 양육포기 등으로 시설(양육시설과 일시보호시설 포함)에서 보호중인 아이는 2003년 12월 현재 전국 총 275개 시설에 1만8818명.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유기아동만 한 해 평균 1000여명에 달하고, 미혼모가 버려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는 아이를 합치면 그 수는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부모가 생존해 있는데도 아동일시보호시설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김진석(14)군. 김군은 9세에 처음 가출을 시도했고 중학생이 된 후 일년 동안 10여 차례 가출했다. 김군의 아버지(39)와 어머니(36)는 그가 7세에 이혼해 김군은 아버지와 계모(33), 세 살 위인 누나와 함께 살았다. 공장 기술자인 아버지 김씨는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후 지금까지 일년 넘게 실직상태이고, 아내가 벌어오는 월 100만원 미만의 생활비로 네 식구가 살고 있다.

    김군은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 선생님에게 야단맞을까 봐 학교를 빼먹었는데, 그 사실을 안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처음으로 집을 나갔다. 이후 잦은 가출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김군은 친구들과 놀다 늦게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야구방망이, 젖은 물수건 등으로 매를 맞았고 팬티바람으로 쫓겨나 몇 시간씩 집 밖에 서 있기도 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 최근에는 책과 가방, 교복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집에서 쫓겨나 일주일간 학교를 못 간 적도 있다.

    김군의 아버지는 “자식이 말썽을 피우면 부모가 때릴 수도 있지, 그게 뭐 큰 잘못이냐? 때리고 난 뒤에 약도 발라줬다. 우리 자랄 때도 다 그렇게 맞고 자랐다”며 불쾌해했다.

    “얼마 전에 아들 친구의 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을 자기 집에서 돌보고 있는데 아동보호시설에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 녀석이 밖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돌아다니기에 친구 부모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겠나. 걔가 ‘우리 엄마는 계모다’ ‘아버지가 때린다’는 등 별별 거짓말을 해대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사람취급도 못 받고 있다.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이제 질렸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 집에 들어오기 싫다면 차라리 시설로 보내는 게 낫다.”

    유치원 때 어머니와 헤어진 김군은 얼마 전 아버지 몰래 친어머니를 만났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호되게 야단맞았다. 김군은 친어머니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고, 김군 친어머니 역시 아이를 기를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 김씨는 “아이를 전처에게 보내느니 차라리 시설에 보내겠다”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여섯 살 난 딸에게 ‘XX년아’

    홍민주(가명·9)·영주(가명·6) 자매도 김군과 비슷한 경우다. 아버지 홍강현(가명·38)씨는 사고로 몸을 심하게 다친 후 일년 넘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김은숙(가명·36)씨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였고, 집안 정리 등 살림에도 서툴렀다. 10여평 남짓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사는 홍씨 가족의 경제사정은 한눈에도 매우 어려워 보였다.

    민주와 영주는 정신지체 혹은 정서적 장애가 의심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제대로 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관계기관의 도움으로 특수학교에 다니는 민주는 “어제 엄마랑 아빠가 싸웠다”는 말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어머니 김씨는 홍씨가 화가 나면 닥치는 대로 두 아이를 때리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을 피해 집 밖으로 나온 김씨는 “어린이집에 있는 영주가 ‘집에 아빠 있냐’고 묻더니 안 들어오려고 한다. 어제 밥을 먹다가 밥알을 흘렸다고 아버지한테 엄청 혼이 났다. 남편과도 그 일로 싸웠다”며 눈물을 훔쳤다. 전날 홍씨가 영주에게 한 말은 “나이가 몇 살인데 밥도 제대로 못 처먹고 흘려, 이 ××년아”였다.

    지난해 7월 아버지를 잃고 집 안에 방치된 이영미(가명·16)·동욱(가명·14) 남매는 끝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남매는 낯선 사람이나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 도움을 주고 있는 동사무소 직원이 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영미는 학교를 그만둔 지 오래고, 동욱이만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부모는 일찍이 이혼했다. 양육을 맡은 아버지는 오랫동안 알코올중독을 앓아 아이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고 얼마 전 사망했다.

    남매의 사정을 귀띔해준 이웃은 “두어 달 전쯤 집 안을 들여다봤는데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사는지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었다.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는지 모르겠다. 애들 둘이서 뭘 얼마나 해먹고 치우고 살겠나. 애들 엄마는 지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이 죽은 걸 알면서도 몇 개월이 지나도록 자식들을 버려두고 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기가 애들을 데려다 키우면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이 끊어질까 걱정하더라”며 혀를 찼다.

    학대받는 우리 아이들

    생후 9개월 된 남재호(가명)군이 손발이 묶인 채 발견된 집. 아동학대센터 상담원들이 방문했을 당시 부모는남군을 방치한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신체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들 중엔 ‘친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많다. 손발로 때리거나 머리를 벽에 부딪치는 행위는 보통이고 골프채나 야구방망이, 가죽벨트 등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팔을 조르거나 비틀고 꼬집고 물어뜯는 행위, 흉기로 찔러 심한 상처를 입히거나 아이를 집어던지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아주대병원 학대아동보호팀장인 소아과 전문의 배기수 박사는 “아버지가 8세 된 남자아이의 발등을 칼로 내리찍어 피부가 4㎝ 가량 찢기고 속살이 훤히 드러난 사례도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치료한 생후 9개월 된 남재호(가명)군의 처참한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아이의 눈엔 절망감이 가득했다. 충격과 두려움 때문에 시선을 1㎝도 움직이지 않았다. 체중은 3개월 된 아이와 같았다. 검사 결과 영양실조에 패혈증, 두 군데 머리 골절이 있었다. 핏속에 대장균이 퍼진 패혈증으로 위중한 상태였다. 병원에 2∼3일만 늦게 왔어도 생명을 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남군의 이웃이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했다. 옆집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나는데 애는 안 보인다고 했던 것. 센터 상담원들이 남군 집으로 현장조사를 갔을 때 아이를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술병과 쓰레기로 엉망이 된 집안을 한참 뒤진 끝에 옷과 이불더미 속에 파묻힌 아이를 간신히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재호는 엎드린 상태에서 손목과 발목이 천 기저귀로 묶여 있었다. 조사 결과 재호 어머니는 아이가 똥을 싼다는 이유로 굶겼고, 운다며 발로 차고 집어던졌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따르면 신체학대로 고막파열, 두개골 골절, 복부출혈, 호흡곤란, 시력 손상, 뇌 손상 등의 해를 입은 아이가 적지 않다. 전국에서 보고된 피해 사례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다양한 학대가 자행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가 재혼해 계모와 함께 살던 박수민(가명·당시 9세)군은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계모가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중국으로 유학을 보낸다”는 핑계로 박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 계모는 수민이를 감금하다시피 해놓고 온몸을 심하게 구타하고, 밤새도록 성경구절을 외우게 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일삼았다. “거짓말을 한다”며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어 여기저기 상처를 냈고, 추운 새벽에 옷도 제대로 안 입힌 채 집 밖으로 내쫓았다.

    박지은(가명·8세)양은 친할머니에게 학대당한 사례다. 박양은 부모가 이혼하자 아버지한테 맡겨져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이혼 당시 상당한 카드 빚을 남겼는데, 아버지의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아버지는 지은이를 할머니 손에 맡겨둔 채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빚만 잔뜩 남기고 이혼한 며느리에 대한 분노를 아이에게 대신 쏟아부으며 학대했다. 아동학대예방센터 조사 당시 박양은 다리 전체와 성기 부위를 꼬집혀 상처가 심하게 부어 있었고, 머리에선 커다란 화상자국이 발견됐다. 아이는 “할머니가 뜨거운 솥을 일부러 내 머리 위에 올려 흉터가 생겼다”고 했다. 조사 당시까지 화상 부위에는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아이가 신체적으로 학대받더라도 절반 가량은 외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소아과 전문의 배기수 박사는 “배가 바람 빠진 배구공처럼 된 상태에서 실려온 2세 남자아이도 있었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 아이는 간이 파열되고 췌장이 세 동강 나 있었다. 췌장이 파열되면 소화효소가 뱃속 전체에 퍼져 장기를 녹이기 때문에 생명이 매우 위험하다. 이처럼 신체 외부에 손상이 없더라도 지속적인 학대에 의해 뇌나 장기 등 신체 내부에 치명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신체적 학대 외에도 아이를 집 밖으로 내쫓거나 반대로 집 안에 감금하고, 폭언을 퍼붓고, 무시 또는 모욕하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정서적 학대 양상도 심각하다.

    어머니가 칼로 난자

    경기도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운영하는 쉼터에는 현재 15명의 아동이 보호받고 있다. 김정미 소장은 “신발 신는 법도 모른 채 집 안팎을 돌아다니고 맨손으로 밥을 먹는 등 기본적인 생활방식도 못 배운 아이가 많다. 심지어 텔레비전을 처음 봤다는 아이도 있다. 처음 쉼터에 입소한 아이들은 대부분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폭식을 한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과 관심에 대한 욕구를 먹는 것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으로도 위축되어 있어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쉼터에서 보호중인 10세 남자아이의 학대 사례는 끔찍하다. 어머니가 오랜 기간 온몸을 칼로 난자했다는 아이의 몸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흉터가 나 있다고 김 소장은 귀띔했다. 심지어 이마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칼로 후벼놓은 상처도 남아 있다. 아버지는 아이가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방관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아이를 돕는 데 어려움이 많다. 지금 아이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데 분노와 다른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엄마가 자기 기분에 따라 아이를 학대해왔기 때문에 도덕성과 가치관에도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는 현재 정신과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과 병원진단서 등 여러 증거자료를 제출했지만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기각했다. 이때 판사는 아이 엄마의 등을 두드리며 ‘가서 아이를 잘 키우라’고 했다. 엄마를 구속하면 가정파탄이 된다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이가 부모의 학대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면 그 가정은 이미 파탄상태가 아닌가.”

    대한의사협회 아동학대예방전문위원회 위원장인 한양대 의대 소아정신과 안동현 교수는 “지속적으로 학대에 노출된 아동은 매우 위축되어 대인관계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공격성이 쌓이게 된다. 자긍심이 낮고, 불안 증상을 보이며 때로 충동조절 장애로 반사회적 행동을 하거나 자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공격적 행동을 드러내며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다중인격장애(해리)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최근 골절로 다리를 다쳐 병원을 찾은 14세 남자아이를 치료했다. 2층 창에 기대 서 있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는 이 아이는 입원해 있는 동안 내내 간병하는 어머니와 심하게 다퉜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정형외과 담당의사가 안 교수에게 아이의 정신감정을 의뢰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이는 재혼을 앞둔 어머니와 동거남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해왔다. 사고가 나던 날도 폭행을 당할까 염려한 아이가 스스로 2층에서 뛰어내렸던 것.

    아동학대는 ‘습관성’

    극단적인 사례지만 아이가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3년 7월 이후 약 10개월 동안 ‘동반자살’을 포함해 부모에 의해 사망한 아동 수는 25명이다. 2003년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사례는 세 건. 이 가운데 이미 사망한 후 경찰에 의해 아동학대예방센터로 신고가 접수된 9세 여아는 각목으로 머리와 몸을 무차별 폭행당해 사망에 이르렀다. 사체부검 결과 연속된 타박에 의한 혈액응고 쇼크사로 판명됐다. 가해자는 아버지였다.

    또 다른 사망 사례는 큰아버지에게 학대당한 경우다. 피해아동은 5세 여아로 온몸에 멍이 들고 뇌출혈이 심한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다. 아이의 상태를 살펴본 병원관계자가 아동학대를 의심해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내가 가출하자 피해아동을 형에게 맡겼다. 평소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아이는 큰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욕설을 들으며 매를 맞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아이는 뇌출혈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며 복부와 대퇴부에 심하게 멍이 들어 내장파열과 골절이 의심됐다. 뿐만 아니라 성기 부위가 심하게 붓고 질도 커져 있어 성학대까지 의심됐지만 아이가 이미 의식불명 상태라 제대로 검사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생후 2개월 된 아이를 마당으로 내던져 사망하게 한 사례도 있다. 그 이전에 아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아이를 때리고 거꾸로 든 채 흔들어 아동학대예방센터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이와 부모를 격리시켜 놓는 등 최소한의 조치만 취했더라도 아까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

    강서아동학대예방센터 박병기 소장은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아동학대는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센터에 적발된 후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서약서까지 쓰고도 또다시 학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3년에 재학대 신고사례는 139건에 달했다. 아동학대는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발생하는 학대 건수를 누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학대당하는 아이의 절반 가량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실정이다. 따라서 앞의 사례처럼 가정으로 다시 보내진 아이가 죽음에 이르는 극단적인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기도로 아이를 치료하겠다”

    아이를 부모가 직접 죽이지 않더라도 아이를 방치해 굶어죽게 하거나 의료적 방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주대병원 배기수 박사가 치료중인 12세 여아가 바로 그런 예다.

    “아이가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배가 많이 부어올라 있었다. 검사 결과 신증후군을 앓고 있었는데 이 병의 초기 증상은 콩팥으로 단백질이 빠지는 것이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단백질뿐 아니라 몸 안의 영양소가 전부 빠져나가고 혈관의 수분까지 빠져 복수가 차고 간이 붓는 등 심각한 증상을 초래한다. 이 정도가 되면 70%는 사망한다. 그런데 아이는 증세가 더 심해 배에 시퍼런 고름이 가득 차 있었다. 배에서 빼낸 고름이 5000cc나 됐다. 일주일만 늦었어도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부모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돈이 없다, 집에 데려가 기도하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며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배 박사는 “부모가 아이의 병을 방치해 사망에 이른 경우 사체를 통해 아동학대 피해사실을 확인하거나 입증하기가 어렵다. 병원에 실려와 곧바로 죽음에 이르는 아이나 이미 사망해 병원에 실려온 아이 가운데 숨겨진 아동학대 피해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이호균 소장은 “아동학대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또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해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의식이 사회에 팽배해 있어서 센터에 신고된 것보다 감춰진 아동학대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강서아동학대센터 박병기 소장은 “아동은 성인과 달리 방어기제가 미약하거나 전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대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03년 발생한 아동학대 대상자 중 0∼12세가 70∼80%에 달했다. 5∼6세에 학대를 피해 가출하는 아이들도 있다. 10세 전후의 아이가 가출이나 비행을 저지르는 등 문제행동을 보인다면 그 이면에 아동학대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국에는 38개의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아동학대 긴급 신고전화(국번 없이 1391)를 통해 접수하고, 그 후 12∼48시간 내에 1차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현장에서 아동을 발견하면 피해 상황과 정도에 따라 부모로부터 격리하거나 병원으로 보내 치료한다. 대한의사협회와 연계해 전국 43개 병원에서 학대아동보호팀을 운영중이다. 또 일시보호시설인 쉼터에서 학대아동을 보호하고, 특성 및 학대유형에 따라 다양하고 전문적인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호균 소장은 “그동안 아동학대와 관련한 자금을 국고에서 보조받아 왔는데 최근 그 역할이 자자체로 이양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지원은 중앙정부에서 예산과 업무지원 등을 강력히 밀어주지 않는 한 위축될 게 뻔하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예산의 50%를 틀어쥐고 주정부를 감시·감독하는 등 강력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그나마 지자체가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고 따라올 것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이 더욱 희박해 지자체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더 낮다. 게다가 아동보호시설과 병원 등의 연계 시설도 미비하다.”

    경기도아동학대예방센터 김정미 소장은 “법조계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조인이 많다. 때문에 아동학대 행위자가 구속되는 경우가 드물고 가벼운 수준에서 처벌받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미국에선 법원이 아동학대 발생 초기부터 적극 개입해 처벌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대처한다. 또한 피해아동에 대한 강제격리 명령을 법원에서 내린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격리시키려면 가해 당사자인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학대 사실을 발뺌하는 부모가 순순히 동의하겠는가. 어렵사리 격리해 쉼터에 보호하고 있어도 부모가 찾아와 아이를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흉기를 들고 찾아온 부모도 있다.”

    최근 김 소장은 한 통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 구속됐다 풀려난 한 아동학대 가해자가 “가만두지 않겠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구속된 것을 억울해하다가 석방된 가해자들이 과연 학대를 멈출 것인가. 오히려 심해질 수도 있다. 김 소장은 아동학대에 대한 교정교육을 교도소 안에서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미래를 구하는 일

    ‘2003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편부모 가정이나 빈곤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많이 발생했다. “둘째를 임신한 뒤 사업이 망했다”며 딸이 태어난 뒤부터 줄곧 학대해온 40대 가장도 있다. 특히 교육적·의료적 방임은 대부분 빈곤가정에서 발견된다. 김정미 소장은 “범국민적으로 아동권리운동을 벌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취재 도중 만난 아동학대 전문가들은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학대당하는 아동을 구제하는 데 정부와 국민이 발 벗고 나선다면 비행·가출청소년 문제, 반사회적 범죄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문제가 절반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동학대 예방은 우리의 미래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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