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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

인터넷 꼬리말 달기에 목숨건 ‘리플족’, 여자보다 인형이 더 좋은 ‘늙은이애’

  • 장옥경 자유기고가 writerjan@hanmail.net

21세기형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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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성형수술을 받은 김진희(가명·32)씨.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는 이별의 원인을 ‘낮은 코’에서 찾았다. 자존심을 상징하는 코가 낮아, 남자친구가 자신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코 수술을 했다. 그러자 이번엔 속쌍꺼풀 진 눈이 마음에 안 들었다. 윤곽이 또렷해진 코와 비교하면 흐릿한 인상이었다. 쌍꺼풀 라인이 분명하게 만들어지자 다음엔 입술이 문제였다. 송혜교처럼 도톰하고 귀여운 입술을 갖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지금까지 일곱 번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얼굴에 만족할 수가 없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트러블이 있거나 자신의 의도와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외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성형외과 상담실의 문을 노크했다. 걸핏하면 병원으로 찾아가 수술한 부위가 마음에 안 든다며 간호사, 의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병원은 아예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수화기를 내려놓을 정도가 됐다.

젊음을 고수하려는 ‘늙은이애’들의 출현도 눈여겨볼 부분. 30대 중반의 박영우(가명)씨는 행동이나 취향을 보면 영락없는 10대다. ‘헬로 키티’나 ‘마시마로’ 같은 캐릭터 인형이나 캐릭터 식기를 즐겨 사용한다. 자신이 사는 원룸은 물론 자동차 내부도 캐릭터 장난감으로 도배했다. 만화 ‘풀 하우스’의 캐릭터나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도 즐겨 입는 패션 소품 중 하나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는 곧장 아바타 숍으로 달려가 귀엽고 깜찍하고 앙증맞은 장난감들을 한아름 사 안고 돌아온다. 이미 노총각 꼬리표를 달았지만, 여성과의 교제보다는 ‘레진 킷’ 같은 미소녀 피규어 인형에 더 관심이 많고, 인형과 이야기 나눌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박씨가 ‘키덜트(kidult·kid + adult)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45세를 넘긴 민경석(가명)씨는 각박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 나이 드는 걸 거부한다. 민씨는 후배나 부하직원들 사이에 나이 얘기만 나오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사오정, 오륙도’(45세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는 뜻) 같은 말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다.



생존 위해 나이들기 거부

늦은 결혼으로 이제 겨우 유치원,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둔 그로서는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구만리 같다. 퇴직은 꿈에도 생각하기 싫은 단어다. 그런 말이 들리면 저절로 핏대가 올라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지만, 그는 다른 전략을 택했다. 희끗희끗한 새치를 감추기 위해 염색도 하고 피부얼룩과 잔주름을 커버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스킨 스케일링을 받는다. 뱃살을 빼기 위해 퇴근 후에는 헬스클럽에 가서 열심히 복근 운동도 한다. 유행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메트로 섹슈얼 룩을 즐겨 입는다.

그러나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젊어 보이려 처절하게 노력하는 민씨는 밤마다 회사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어 거리를 헤매는 악몽에 시달린다.

현대 사회의 중독 현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쇼핑 중독증이다. 사고 또 사고 반납하는 쇼핑 중독증은 급기야 비극적인 살인 사건을 초래했다.

3년 전 쇼핑 중독증에 빠진 20대 여성이 물건을 사느라 신용카드로 5000여만원을 결제하고, 3000여만원의 사채까지 썼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딸을 꾸짖었고, 그래도 버릇이 고쳐지지 않자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위기를 느낀 딸은 한 인터넷 카페에 “어머니를 살해하면 아파트를 팔아 9000만원을 주겠다”며 살인을 청부했고, 결국 어머니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하루에 10개의 물건 주문

40대 중반의 주부 김혜미(가명)씨도 쇼핑 중독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습관적으로 TV 앞에 앉는다. 홈쇼핑을 보며 물건을 주문하는 것이 낙인 그는 하루라도 물건을 사지 않으면 머리가 굳어버릴 것만 같다. 어쩌다 외출할 일이 생겨 홈쇼핑 시청을 건너뛰면 좋은 물건을 할인받아 살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은 무슨 물건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에 바깥일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초기엔 홈쇼핑을 시청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 50분 한정 판매”니 “서둘러주세요” 같은 말만 들으면 참지 못하고 전화기 버튼을 누르게 됐다. 옷, 신발, 화장품, 액세서리, 그릇, 장식품, 지역 특산품, 매트, 건강식품, 다이어트 제품…. 그가 사들이는 물건은 종류를 셀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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