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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고운 여자 애틋한 엄마, 따뜻한 사람

  •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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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3남4녀 중 다섯째예요. 어머니 모습을 제일 많이 닮았지. 그런데 성격은 아니야. 좋게 말해 명랑소녀랄까, 하여튼 고삐 풀린 몽생이(망아지) 같았으니까.”

고두심은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부모님은 우리들하고 떨어져 농사를 지으셨어요. 7남매가 1주일에 한번씩 순번제로 생필품을 짊어지고 거길 다녀왔거든. 걸어서 오가는 데만 1시간20분쯤 걸리는 곳이었어요. 올 때는 또 우리한테 필요한 물건을 지고 오는데 친구들을 만나면 괜히 창피해. 고개를 못 들겠는 거예요. 근데 동네 어른들 보시기에는 그 모습이 예뻤나 봐요. 저렇게 착한 애는 괜찮다고, 두심이하고 노는 건 무조건 좋다고들 하셨어요. 사실 난 심부름이 싫어 죽겠는데 말야(웃음).”

여느 시골 소녀들처럼 그녀는 씩씩하고 순박했다.

“우리 집에서 똥돼지를 키웠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정물을 얻어다 우리 안에 던져줘야 돼요. 여고 마칠 때까지 내가 그 일을 했어요.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우리 어머니가 새끼돼지 다섯 마리를 주시면서 장에 갖다 팔아 공부하라는 거예요. 근데 그걸 데리고 가다 그만 놓쳐버린 거야. 아이고, 겁도 나고 속이 상해 얼마나 울었는지….”



그녀는 여중, 여고 시절 내내 고전무용을 했다. 도 대표로 뽑힐 만큼 재능이 있었고, 덕분에 중앙대 무용과에 입학할 기회가 생겼지만 부모님은 말도 못 붙이게 했다. 다 커서도 춤추는 여자란 기생이나 다름 없다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어디 춤만 췄나. 학교 연극에도 나가고, 밴드부로 시가행진도 하고, 웅변대회에도 참가했지. 중학교 때는 집집이 돌며 동요에 맞춰 직접 안무한 춤을 공연하기도 했어요. 하여튼 어떤 무대건 박수 소리만 들으면 무슨 신기나 광기 같은 것이 지펴지는 거야. 평소 때의 나보다 훨씬 멋있어지고, 보통 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능력이 마구마구 뻗어나오는 것 같고.”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따라갔는데 수학만은 그렇게도 싫었다.

“시험 치면 당당히 백지를 냈어요. 선생님이 뭐라 그러시면 ‘모르고 싫은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되받아 쳤지. 하여튼, 오빠 친구들이 ‘여자 깡패’라 그럴 만큼 굉장히 왈가닥이었어요.”

배우를 꿈꾸게 된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작은오빠의 영향이었다. 한때 제법 잘나가던 작은오빠가 어느 날 어디선가 조그만 영사기를 구해온 것이다. 마루에 천을 걸어놓고 그것으로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같은 것들을 틀어주곤 했다. 그렇게 막연히 배우의 꿈을 키워가던 그녀에게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신성일, 엄앵란씨 같은 유명 배우 일곱 명이 제주도를 방문했어요. 우리 학교 건너편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에 묵었는데, 애들이 우루루 몰려가 막 소리를 지르면 신성일 선생님이 이 쪽을 보며 손을 흔들어줘요. 그런데 그게 꼭 나만 보고 그러는 것 같은 거야. 오늘 집에 가 있으면 ‘서울 가서 나랑 배우 하자’ 꼭 그런 전화가 올 것만 같았다니까(웃음).”

여고 졸업 후 한 달도 채 안 돼 뭍으로 가는 가야호 3등선실에 몸을 실었다. 서울서 공부하는 오빠 밥을 해주겠다며 며칠을 조른 덕분이었다. 막상 상경해서는 냉큼 취직부터 해버렸다. 직원이 일곱 명뿐인 작은 회사의 유일한 여직원이 됐다.

“이력서를 쓰는데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특기란에 ‘고전무용’이라고 적었어요. 사장님께서 ‘뭐 이런 애가 있나’ 하셨대요.”

그녀는 당시 받은 ‘합격증’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 처음으로 받은 평가이기 때문이었다. 합격증에는 무슨무슨 서류를 어떻게 준비하라는 말과 함께 ‘특기는 전무하나 한번 가르쳐보겠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준비 서류가 적힌 부분만 따로 떼내 고향으로 보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의 시작은 ‘전무’였다.

“2, 3년 지나서부터는 급사부터 현금출납, 사장비서 역할까지 제가 다 도맡아 했어요. 나 없이는 회사가 안 돌아갈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가슴속 불이 꺼지지 않데요. 결국 1972년, 아무도 몰래 MBC 탤런트 공채시험을 보러 갔지요.”

‘정숙한 맏며느리’가 찍어 누르다

스물세 살에 꿈에도 그리던 연기자가 됐다. 하지만 그럴듯한 배역은 주어지지 않았다. 난 아닌가 보다 싶어 다니던 회사로 돌아가버렸다. 2년을 그렇게 보냈는데 갑자기 MBC에서 연락이 왔다. “니가 1등이었다, 키워줄 테니 한번 열심히 해보라”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매달렸어요. 얼마 후 정말 제법 큰 역을 맡게 됐는데 어휴, 대본 리딩 시간에 도무지 입이 안 떨어지는 거야. 몇 번이나 내 차례가 와도 한 마디도 못 하겠더라구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일어나 연출 선생님께 대본 드리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펑펑 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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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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