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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풍경을 바라봄이란? ‘오름 오르다’ ‘강석경의 경주산책’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풍경을 바라봄이란? ‘오름 오르다’ ‘강석경의 경주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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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고대와 현대, 죽은 자들의 시간과 산 자들의 시간이 평화스럽게 공존하는 곳이다. 죽은 것은 죽음으로써 불멸의 시간에 포획되고, 산것은 삶으로써 늘 현재적 소멸의 시간에 포획된다. 죽은 것은 불멸의 시간에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죽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것들은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는 계절의 순환을 보여주는 자연의 변화와 그 기미들을 민감하게 포착한다. “겨울 내내 언 땅도 갈무리되어 초봄의 공기를 쐬고 나무마다 움이 초록 불꽃처럼 돋아 있다”(9쪽) “며칠 서울에 다녀왔더니 그 사이 능역이 더 푸르러진 듯하다. 비가 와서 초목이 무성해졌나보다. 계림 숲도 우거져 여름의 비경을 보여주는데 그 앞으로 펼쳐진 들판엔 누런 유채 줄기만 볕에 탄 듯이 메말라 있다”(36쪽) “집집마다 석류는 붉게 여물었고 무화과도 성급한 놈은 벌써 속살을 드러내려 한다. 담 너머 가지에 열린 무화과 중 살짝 벌어진 것을 땄으나 완전히 익지는 않아서 분홍빛 살만 먹었다”(58쪽). 언 땅은 녹고 씨앗들은 싹을 틔우고 나무에는 움이 돋는다. 식물들은 푸르러지고 무성해지다가 이윽고 시든다. 석류와 무화과와 사과는 둥글게 여물어 붉어지는 과일들이다. 도심에 솟아 있는 고분과 어우러진 자연이 보여주는 순환의 기미들은 생의 덧없음 위에서 매 순간을 찬연하게 만든다. 이는 삶과 죽음으로 순환하는 생명과 우주의 질서를 구현하는 것이다.

황룡사 터부터 황오동의 뒷골목까지 계림골, 교동, 남산동, 북천, 남천으로 이어지는 산책의 동선에는 신라의 유적들과 그 역사의 숨결이 있다. “도심의 평지에 솟아 있는 고분들이 무릉도원 같기도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되돌아간 듯 환상을 주었다”(42쪽). 고분들은 죽음의 증거물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회귀의 흔적이다. 경주가 아름다운 것은 그 회귀의 흔적들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능원에서 대릉원을 바라보며 작가는 그것이 “우리의 뿌리요 원형”(34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능의 완만한 곡선에서 모든 것을 품고 양육하는 여성성의 원형을 본다.

작가는 왜 그토록 경주에 몰입할까. “내 영혼의 유전인자가 신라혼의 DNA와 같기 때문”(107쪽)이다. 그것은 근원으로의 회귀다. 1000년의 장구한 역사에 겹쳐볼 때 한 사람의 모둠살이는 한순간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석경의 글은 늙은 회화나무 아래서 꾸는 꿈이며, 인생은 덧없는 “꿈, 환상,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92쪽)와 같다고 속삭인다.

내부화된 익숙한 풍경



풍경을 바라봄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대한 탐색이며, 바라보는 주체를 그 탐색에 겹쳐 탐색하는 것이다. 풍경은 외부자의 시선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풍경-텍스트가 된다. 그것은 해석된 풍경이다. 주체의 해석 행위는 풍경을 향한 시선의 증식과 시선의 활동적인 삼투가 진행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시선-풍경의 결합은 풍경-텍스트를 원소들로 잘게 쪼개 징표들의 풍경으로 변환하는 일이다.

글로 씌어진 것들은 외부자의 시선을 충분히 빨아들여서 자극과 낯섦의 원소들이 제거된 풍경이다. 즉 내부화된 익숙한 풍경이다. 외부자에 의해 발견된 모든 풍경은 궁극적으로 메타-풍경이다. 풍경-대상에 대한 해석을 내포로 머금으며 해석하는 주체에 대해 해석하고는 내포를 감싸 안는 외연을 배치시킨다.

제주도의 오름들과 경주의 능들은 그 내부가 텅 빈 자궁이며, 풍경이 끌어안은 자궁들은 공(空)과 무(無)라는 기의를 머금은 기표적 기호의 체계로 환원한다.

신동아 200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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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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