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생물의 다양성 향한 유전학적 접근 ‘유전자의 변신 이야기’

  •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hun@snu.ac.kr

    입력2005-01-26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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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의 다양성 향한 유전학적 접근 ‘유전자의 변신 이야기’

    ‘유전자의 변신 이야기’<br>존 C. 애비스 지음/이영완 옮김/뜨인돌/319쪽/1만2000원

    생물의 다양성은 21세기에도 인간에게 중요한 화두다. 다양성은 우리 인간이 서로 다른 신체와 성격을 가지게 된 원인이며, 한 사람이 담근 김치라도 유산균의 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이유가 된다. 암이나 고혈압 같은 질병의 원인도 인간의 다양성과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다양성은 보건과 산업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생물 다양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물론 생물이 태어난 뒤 줄곧 접하게 되는 환경적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생물 다양성의 원천은 무엇보다 유전자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유전자에 존재하는 아주 미미한 차이 때문인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들이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전자의 측면에서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 바로 존 C. 애비스가 쓴 ‘유전자의 변신 이야기’다. 미국 조지아대 유전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자연계에 상존함을 학술적인 근거를 가지고 풀어낸다.

    한 생물이 지닌 유전자는 A, C, G, T라는 네 개의 알파벳이 연결된 단순한 물질이지만, 그 안에는 그 생물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전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이때 변화하는 양은 시간에 비례한다. 즉 두 생명체의 유전자 사이의 차이를 알면 그들이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시점을 추측할 수 있다. 유전자는 마치 시계처럼 일정하게 변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분자시계’라고 부른다. 이 시계를 이용하면, 마치 마법의 수정구를 통해 보는 것처럼 한 생물체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멸종된 매머드의 과거 들추다



    자연계에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진화적 유연관계를 정확히 알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판다의 경우를 살펴보자. 판다는 중국에서만 사는 멸종 위기의 동물인데, 얼른 보기에는 커다란 곰 인형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해부학적인 특징, 동면을 하지 않는 점, 울음소리 등을 종합해서 과학자들은 “판다는 곰보다는 곰의 사촌 격인 너구리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최근에 개발된 유전자 분석법에 따르면 그 결과가 전혀 다르다. 분자시계 이론을 적용해 판다, 곰, 너구리의 유전자를 계통학적으로 분석하면, 이 동물들은 2000만년 전 하나의 조상에서 분리되어 나온 사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판다는 너구리보다는 곰에 조금 더 가까운 동물임이 밝혀졌다. 유전자는 말 못하는 판다의 과거와 혈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전자를 통한 이 새로운 연구 방법은 우리가 자연계의 생물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그 종이 멸종한 경우엔 절대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1만2000년 전 멸종한 매머드는 과연 어떤 동물이었을까. 영구동토층에서 채취한 매머드의 살점에서 나온 DNA 조각은 매머드가 현존하는 인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의 아주 가까운 친척임을 말해준다.

    이 사실은 현재 여러 과학자가 추진하는 ‘매머드 부활 프로젝트’가 그리 황당한 일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매머드의 시체로부터 분리한 세포의 DNA를 코끼리 난자 세포의 DNA와 바꿔치기 하고, 이를 발생할 수 있는 배아로 바꿔 암컷 코끼리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킨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개요다.

    요즘 같은 생물공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이 멸종된 털북숭이 코끼리를 박물관이 아닌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보다 더 극단적인 경우에도 유전자 분자시계를 적용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인류의 조상으로 거론되던 ‘네안데르탈인’의 경우가 그렇다. 인류보다 먼저 지구상에 나타나 3만여년 전에 갑자기 멸종한 이들은 화석상의 여러 특징으로 보아 우리의 친척임이 분명하다. 정말로 궁금한 것은 이들이 현생인류의 조상이었나 하는 점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DNA에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조상 아닌 사촌

    1997년 독일 뮌헨대의 파보 박사팀은 3만년 된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조각내고 그 안에 있던 유전자 조각을 증폭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염기서열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로부터 우리는 이제 그들이 우리의 조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가까운 사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현생 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요즘 지구상 곳곳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종족 자체를 말살시키고 있는 현생 인류의 잔혹성으로 미루어 보아 네안데르탈인은 인간과 대결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한 상대가 아니었을까.

    국내에서도 방영중인 미국의 유명 TV시리즈 ‘과학수사대 CSI’를 보면 대부분 범인 검거에 DNA 지문인식법이라는 기술이 사용된다. 유전자도 지문처럼 개인마다 다 다른데, 이를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DNA 지문인식법이다. DNA만 가지고 개인을 구분하는 것은 각각의 생명체마다 존재하는 미세한 유전자의 차이를 밝힘으로써 가능하다. 개인의 정체를 확인하거나 친자 또는 부모를 확인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나 최근 동남아에 불어 닥친 해일 피해자의 신분을 밝힌 것도 바로 이 방법이다.

    또 DNA 지문법을 쓰면 ‘유별난’ 방법으로 새끼를 낳고 사는 괴짜 동물을 찾아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성생식을 하지 않는 동물들이다. 유성생식은 암컷과 수컷이 각각 절반씩의 유전자를 새끼에게 전해주는 생식방법. 이를 통해 같은 부모로부터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나온다. 나와 동생이 다른 것도 인간이 유성생식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은 오랫동안 종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겨져왔다.

    하지만 유성생식이 어려울 때도 분명히 있다. 상대방을 만나기 어렵거나, 짝짓기 과정에 무방비로 공격을 받거나, 상대방의 유전자를 받다가 질병에 걸릴 위험도 있다. 혹은 지금 내가 지닌 유전자가 완벽하다면 자식에게 그것을 몽땅 물려주는 것이 검증되지 않은 상대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보다 자녀가 생존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나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자식을 낳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체를 찾아서 확인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누가 야생의 늑대나 앵무새를 24시간 관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DNA 지문법을 이용해 어미와 새끼의 유전자를 비교하면, 그 종의 생식형태를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사는 줄무늬채찍꼬리도마뱀의 사회에는 오직 암컷만 존재한다. 수컷이 필요 없는 무성생식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양성생식을 하는 도마뱀은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새끼가 나오는 반면, 이 도마뱀은 한 종류의 유전자만을 가진 새끼를 낳는다. 일부는 우월하고, 일부는 열등한 새끼들이 섞여서 나오는 것과 현재는 우월한 한 종류의 새끼만 만드는 경우 어떤 것이 종족의 보존을 위해 유리할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자연이 도마뱀을 가지고 이런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이 벌이는 다양성 실험

    이 책의 저자는 다양한 생활사를 가진 동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설파하고 있다. 동물을 중심으로 생물의 다양성을 다룬 책은 많이 있으나, 이 책은 최근에 개발되어 다양한 연구에 적용되는 계통 유전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저자가 들려주는 90개가 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과 현재 우리가 처한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다양한 사고방식과 서로 다른 가치관이 대륙판 부딪치듯 거세게 삐걱거리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 불일치하는 가치관이 왜 필요한 것일까. 우리 모두가 장래가 보장되는 소수의 직종과 목표만을 위해 달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그 대답들이 바로 자연계에 존재한다.

    이 책은 생물학 전공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물은 어렵고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DNA나 유전자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권의 대중서를 낸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한 역자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최근 현대 생물학이 이룩한 업적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다.

    첨단 기술로 날로 새롭게 밝혀지는 생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무엇을 느낄지는 바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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